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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붉은 얼굴로 국수를 말다 / 신용묵

by 혜강(惠江) 2020. 7. 1.

 

 

 

 

 

붉은 얼굴로 국수를 말다

 

 

- 신용목

 

 

 

물이 신고 가는 물의 신발과 물 위에 찍힌 물의 발자국,

물에 업힌 물과 물에 안긴 물

물의 바닥인 붉은 포장과 물의 바깥인 포장 아래서

 

국수를 만다

 

허기가 허연 김의 몸을 입고 피어오르는 사발 속에는

빗물의 흰머리인 국숫발,

젓가락마다 어떤 노동이 매달리는가

 

이국의 노동자들이 붉은 얼굴로 지구 저편을 기다리는

궁동*의 버스 종점

 

비가 내린다,

목숨의 감옥에서 그리움이 긁어내리는 허공의 손톱자국!

비가 고인다,

 

궁동의 버스 종점

이국의 노동자들이 붉은 얼굴로 지구 이편을 말아먹는,

 

추억이 허연 면의 가닥으로 감겨 오르는 사발 속에는

마음의 흰머리인 빗발들,

젓가락마다 누구의 이름이 건져지는가

 

국수를 만다*

 

얼굴에 떠오르는 얼굴의 잔상*과 얼굴에 남은 얼굴의

그림자, 얼굴에 잠긴 얼굴과 얼굴에 겹쳐지는 얼굴들

얼굴의 바닥인 마음과 얼굴의 바깥인 기억 속에서

 

 

- 시집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2007) 수록

 

 

◎시어 풀이

 

*궁동 : 구로구 궁동(지명),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

*말다 : 밥·국수 등을 물이나 국물에 넣어서 풀다.

*잔상(殘像) : 시각(視覺)에서, 외부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감각 경험이 잠깐 지속되는 상. 잔류 감각.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궁동 버스 종점의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 노동자들의 고단한 노동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국수’는 이국의 노동자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는 소재이다. 이국인 노동자들은 국수를 먹으면서 고향의 그리운 이들을 떠올린  다. 따라서 이 시의 핵심 시어인 ‘국수를 만다’는 표현은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하고 이러한 행위의 반복은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간절함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 시는 구로구 ‘궁동’이라는 특정 공간이 시의 의미 형성에 기여하고 있으며, 시의 각 연이 중층적으로 대응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설의적 표현과 유사 구조의 변용을 통해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1~2연에서 화자는 비가 내리는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누군가 국수를 말아먹는 모습을 바라본다. ‘물에 업힌 물과 물에 안긴 물’이라는 표현은 비 오는 풍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물의 바닥인 붉은 포장과 물의 바깥인 포장 아래서’라는 표현으로 보아 배경이 포장마차임을 짐작하게 한다.

 

  3~4연에서 화자는 국수에 담긴 이국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이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우선 3연에서 화자는 노동자들이 국수를 먹는 행위를 통해서 그들의 고단한 삶의 바라보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를 말아 드는 젓가락에는 노동의 힘겨움과 신산(辛酸)함이 느껴진다. ‘허기가 허연 김의 옷을 입고 피어오르는 사발’이라는 시구는 국수 먹는 이의 고단한 삶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빗물의 흰머리인 국숫발’은 국수의 면발을 빗물의 머리채로 연상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어 4연에서는 ‘궁동의 버스 종점’이라는 표현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 구체화 되고, ‘붉은 얼굴’은 노동으로 검게 탄 얼굴이 불빛을 받아 붉게 보이는 것이며, 이들이 국수를 먹으며 ‘지구 저편’을 기다린다는 표현으로 멀리 떨어진 고향을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5연은 이국에서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비가 내리는 모습을 ‘목숨의 감옥에서 그리움이 긁어내리는 허공의 손톱자국’이라는 표현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감옥’은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온 것이지만, 타국에서의 삶은 노동으로 인해 마치 '목숨의 감옥'에 사는 것처럼 느낄 것이며, 그 속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견뎌야 하는 비애를 ‘비’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비가 내린다’가 ‘비가 고인다’로 변형하여 거듭 표현한 것은 비애의 정서가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5행의 ‘목숨의 감옥에서 그리움이 긁어내리는 허공의 손톱자국’의 시행을 기준으로, 시행 및 연이 중층적으로 대응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1연과 9연, 2연과 8연, 3연과 7연, 4연과 6연, 그리고 5연의 시행들도 서로 구조적으로 유사하고 시어를 바꾸어 대응되지만, 각각 다른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이국의 노동자들이 타국에서 삶이 고단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지구 저편'의 고향과 그리운 사람들이 더욱 보고 싶어지는 마음을 모두 표현하는 방법으로 중층적인 구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지막 연 ‘얼굴에 떠오르는 얼굴의 잔상과 얼굴에 남은 얼굴의/ 그림자, 얼굴에 잠긴 얼굴과 얼굴에 겹쳐지는 얼굴들/ 얼굴의 바닥인 마음과 얼굴의 바깥인 기억 속에서’라는 표현은 떠오르는 얼굴들을 마치 영화의 몽타주 기법처럼 묘사함으로써 한편의 그림을 그려내듯 표현하고 있다.

 

 

작자 신용목(1974 ~ )

 

 

시인. 경상남도 거창 출생. 2000년 《작가 세계》에 <성내동 옷 수선집 유리문 안쪽〉이 신인상 작품에 당선됨으로써 등단했다. 시대 현실을 관통하는 가운데 타자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자유로운 언어적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일단의 성취를 보여준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2004),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 2007), 《아무 날의 도시》(2012),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2016),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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