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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꽃덤불 / 신석정

by 혜강(惠江) 2020. 6. 30.

 

 

 

 

꽃덤불

 

 

 

- 신석정

 

 

 

 

태양을 의논(議論)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城)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 《신문학》(1946) 수록

 

 

◎시어 풀이 

*오롯한 : 모자람이 없이 온전한.
*꽃덤불 : 꽃이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수풀.

 

 

▲이해와 감상

 

 

  이 시가 쓰인 것은 1946년 광복 직후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 민주주의와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로 대립되어 냉전 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연합군의 신탁 통치를 받았으며, 좌우익의 이념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의 혼란상을 극복하고, 새롭게 수립해야 할 바람직한 민족 국가의 모습을 ‘꽃덤불’로 형상화하여 그 ‘꽃덤불’에 안겨 보고 싶은 소망을 표출하고 있다.

 

  이 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어둠과 밝음의 대조적인 시어들을 사용하여 화자의 현실 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는 한편 반복법과 설의법을 활용하여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일제 치하 ‘태양을 등진 곳’, 즉 암담한 현실 상황에서 일제의 눈을 피해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인 조국 광복을 위한 논의를 해 왔음을 말하고 있다.

 

  2연에서 화자는 1연에 이어,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국권을 회복하여 완전한 광복을 실현하고자 기울인 노력과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냐고’에서 ‘헐어진 성터’는 국권을 상실한 조국을 의미하며, ‘오롯한 태양’은 ‘완전히 국권을 회복한 조국’을 의미한다. 또,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라는 표현은 조국 광복의 염원이 간절했음을 반복법과 설의법을 활용하여 화자의 주제 의식을 강조한 것이다.

 

  3연에서 화자는 유사 시구의 반복으로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의 비극적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영영 잃어버린 벗’은 광복을 이루기 위해 애쓰다 타계(他界)한 사람을, ‘멀리 떠나버린 벗’은 조국을 떠나 타지에서 유랑(流浪)하는 사람을, ‘몸을 팔아 버린 벗’은 절개나 지조를 꺾은 변절(變節)한 사람을, ‘맘을 팔아 버린 벗’은 일제에 동조하고 협력한 사람을 가리킨다.

 

  4연은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라며, 간절히 기다리던 조국의 광복이 일제 강점기 서른여섯 해 만에 실현되었음을 드러낸 뒤, 5연에서 새로운 민족 국가 건설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에서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의 ‘이 하늘’은 광복을 맞이한 조국을 의미하는 것이며,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는 광복 직후 좌우익의 대립 등으로 혼란 상태에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자는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라고 하여 새로 수립된 민족 국가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봄’은 ‘겨울’과 대조되는 시어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진정한 광복의 시간을 가리키며, ‘꽃덤불’은 민족의 화합과 화해가 이루어진 온전한 민족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이런 ‘꽃덤불’과 같은 바람직한 조국에 안겨 보고 싶은 것이다.

 

  이 시는 과거에서 미래로의 시간의 흐름을 통해, 일제 강점 하의 고통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했으나 아직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걱정하는 시인의 고뇌와 민족 화합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작자 신석정(辛夕汀, 1907~1974)

 

  시인. 전북 부안 출생. 본명 석정(錫正). 1931년 《시문학》 제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촛불》(1939), 《슬픈 목가》(1947),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 소리》(1974) 등이 있다.

 

  초기에는 주로 자연을 제재로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시를 썼으나, 광복 이후에는 현실 참여 정신과 역사의식이 강한 작품도 썼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신석정의 시 세계의 변화를 보면 다음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제1기-《촛불》(1939) : 전원시인, 목가적인 시인으로 평가받는 시기. 가상의 공간, 순수의 공간으로서의 이상향이 전원적, 목가적 분위기로 나타남.

  *제2기-《슬픈 목가》(1947) : 보다 성숙한 현실의 눈으로 돌아와 이상향에 대한 천진난만한 시인의 희구가 상실감으로 바뀌어 나타나고, 내적 체험의 결여로 인한 공허감이 나타남.                                                                                                      
  *제3기-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 삶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며, 질곡의 역사적 체험 속에서 역사의식이 예각화되어 주제 의식이 문학적 심미성으로 드러남.                                                                                                
  *제4기-《대바람 소리》(1970) : 차분한 관조의 정신으로 다시 초기 서정시의 세계로 복귀하는 경향을 보임.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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