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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산문시(散文詩) 1 / 신동엽

by 혜강(惠江) 2020. 6. 29.

<출처 : 다음카페 '도봉시벗'>

 

 

산문시(散文詩) 1

 

 

-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 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 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땡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출전 《월간문학》(1968)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중립국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통하여 화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함축적인 언어와 상징적인 시어로 형상화한 산문시이다. 이 시는 ‘스칸디나비아’로 대표되는 중립국의 평화로운 모습을 통해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시행의 구분 없이 문장 또는 문단이 리듬의 단위가 되는 산문시로서, 언뜻 보기에는 산문과 다름없는 형태를 보이나 반복에 의해 운율을 형성하고, 상징과 은유 등의 함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서정 갈래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어 ‘~더란다’라는 종결 어미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여 서정 갈래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형태상 이 시는 하나의 문단이지만, 내용상 시인이 지향하는 세계를 기준으로 하여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부분(스칸디나비아라든가 ~ 훤하더란다)에서 화자는 평화롭고 평등하며 자연과 문화를 가까이하는 중립국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두 번째 부분(애당초 ~ 가더란다)에서는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갈등 없이 평화의 신념을 지키며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희망을 담아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부분의 내용을 보면, 시인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를 예로 들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데르센 동화의 나라 덴마크의 코펜하겐, 겨울 왕국 엘사의 모티브가 된 노르웨이의 베르겐, 알록달록한 북유럽의 대표건물이 모여있는 스톡홀름, 자작나무 숲으로 유명한 핀란드, 선진 복지문화, 평범한 일상에서 소박하고 여유로운 행복을 찾는 북유럽 라이프 스타일 등. 굳이 관광 광고를 보지 않더라도 이들 국가들은 국민 행복지수, 복지 지수 등에서 최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늘 이상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물론, 시인은 '스칸디나비아'라며 북유럽의 지명으로 시를 시작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모형(模型)일 뿐, 그 내용은 실재와 무관한 시인의 바람 속에 있는 나라이며, 생활 모습 또한 자신이 소망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시에서 시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 모습을 따라가 본다. 석양 무렵 대통령은 제 딸 손을 잡고 칫솔을 사러 나오고, 탄광 광부들의 작업복 주머니에는 철학자, 작가들의 책이 꽂혀 있다. 휴가 떠나는 국무총리는 삼등 대합실 앞에 줄 서서 표를 산다. 대학 나온 농민들은 새와 꽃, 지휘자 이름은 훤히 알아도 대통령 이름은 잘 모른다. 그야말로 평화롭고 평등하며, 넉넉한 생활 속에 자연과 문화를 가까이할 줄 아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어 두 번째 부분(애당초 ~ 가더란다)에서는 ‘총 쏘는 야만에 가담하지’ 않고, 전쟁놀이 따윈 하지 않고,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 탱크 기지 등 어떤 무기도 들어올 수 없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자존감이 높은 국민들이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을 즐긴다. 그리고 ‘황톳불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는 모습. 시인은 그럼 모습을 꿈꾸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정치인은 시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어떤 일을 하든 충분한 교육과 문화생활을 누리며,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갈등 없이 평화의 신념을 지키며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곳을 동경하고 있다.

 

  이 시가 쓰인 1968년 당시, 우리 사회는 전쟁 사회와 다름없는 긴장 상태에 있었다. 그즈음 북한에서 보낸 김신조 등이 청와대를 기습한 1․21 사태, 울진과 삼척에선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대통령은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을 강조했고, 정부 정책 지표는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였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국민 위에 군림해 있고, 이념 갈등, 빈부 갈등, 지역 갈등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평화스러운 삶은 꿈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러한 때, 신동엽 시인(1930-1969)은 38세의 나이에 이 시를 남겼다. 이미 50년 전에 시인은 이상적인 복지국가의 모습을 그리고 그런 나라를 꿈꾸고 있었다. 대통령도, 탄광의 광부도 차별 없이 그가 가진 직업과 역할에 충실하게 노동을 하고 그러한 노동의 대가로 양질의 삶을 누리기에 충분한 보상을 받는 나라. 고된 노동 이후에 퇴근하고 나서는 하이데거, 장자, 헤밍웨이를 읽으며 저녁의 여가를 누리며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나라. 대통령이 휴가지에 가기 위해 기차표를 사려고 줄을 서 있어도 아무도 경직되거나 주눅 들지 않고 친근한 이웃처럼 인사하는 나라. 생명을 중히 여기며 그 어떤 군사적 긴장과 갈등도 없는 평화로운 나라, 자기 역할에 충실하게 노동을 하고 같은 노동으로 질 높은 삶을 누리며, 누구나 평등하게 살아가는 나라를 이상향으로 꿈꾸며 노래한 것이다.

 

 

▲작자 신동엽(申東曄, 1930~1969)

 

 

  시인. 충남 부여 출생.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하여 등단하였다. 고통스러운 민족의 역사를 전제로 한 참여적 경향의 시와 분단 조국의 현실적 문제에 관심을 표명한 서정시와 서사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아사녀》(1963),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79), 《금강》(1989)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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