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산
- 신대철
춥다. 눈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잡념과 머리카락이 희어지도록 걷고 밤의 끝에서 또 얼마를 걸어야 될까? 너무 넓은 밤, 사람들은 밤보다 더 넓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이름을 붙여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
이름으로 말하고 이름으로 듣는 사람들
이름을 두세 개씩 갖고 이름에 매여 사는 사람들
깊은 산(山)에 가고 싶다. 사람들은 산(山)을 다 어디에 두고 다닐까? 혹은 산(山)을 깎아 대체 무엇을 메웠을까? 생각을 돌리자, 눈발이 날린다.
눈꽃, 은방울꽃, 안개꽃, 메밀꽃, 배꽃, 찔레꽃, 박꽃
나는 하루를 하루종일 돌았어도
분침 하나 약자의 침묵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들어가자, 추위 속으로.
때까치, 바람새, 까투리, 오소리, 너구리, 도토리, 다람쥐, 물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1977)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추운 산’은 화자가 지향하는 ‘눈사람’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공간으로, 혹독한 자기 단련의 과정을 통하여 순수한 존재로 거듭나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인 ‘나’는 밤을 벗어나 추위를 뚫고 산으로 들어가 ‘눈사람’이 되고자 한다. 따라서 화자는 세속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세속적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하고 있으며, 자기 수련과 정진을 통해서라도 순수한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세속적 가치와 탈속적 가치의 대립적 의미 구조를 통해 화자가 동경하는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눈사람’의 이미지를 닮은 사물을 열거하여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자세를 드러내고 있으며, 또 대조, 열거, 설의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활용하여 주제 의식을 높이고 있다.
화자는 1연에서 추운 산길을 걸어 들어가고 있다. 화자는 ‘눈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라고 말하고 있다. 화자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상황은 ‘너무 넓은 밤, 사람은 밤보다 더 넓다’에서 보듯이, ‘밤’으로 상징되는 부정적인 상황이 만연해 있고, 밤보다 더 부정적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인식한다. 이것을 싫어하는 화자는 ‘잡념을 떨구고 머리카락이 희어’지기 위해 눈사람이 되고 싶어 추운 산길을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세속적인 잡념을 벗어버리고, 깨끗한 모습으로, 즉 순결한 정신, 고아한 정신으로 살고 싶어하는 화자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2연에서는 현실에 얽매어 세속적 가치에 속박되어 사는 사람들을 열거한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이름을 붙여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 이름으로 말하고 이름으로 듣는 사람들/ 이름을 두세 개씩 갖고 이름에 매여 사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화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세속적인 세계에 속박되어 사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이름’은 본질과는 다른 허상이며, 세속적인 명예와 소유욕을 상징하는 것으로, 화자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며 이에 속박되어 사는 인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3연에 와서 깊은 산에 가고 싶어 하는 화자는 ‘사람들은 산을 다 어디에 두고 다닐까?/ 혹은 산을 깎아 대체 무엇을 메웠을까?’라고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산’은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고행(苦行)의 공간이며, 화자가 지향하는 공간이다. ‘산을 깎아 대체 무엇을 메웠을까’라는 표현에는 순수함을 잃고 세속적 가치에 집착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화자는 순수 세계를 상징하는 ‘눈발’과 4연에 열거된 눈의 빛깔과 닮은 온갖 꽃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생각을 돌리자’라는 말로 눈발이 날리는 깊은 산으로 가자고 한다.
5연에 와서 화자는 ‘나는 하루를 하루 종일 돌았어도/ 분침 하나 약자의 침묵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라고 말하면서 세속적인 삶의 시간을 변화시키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한 뒤, 마지막으로 산속 친구들인 새들과 짐승, 자연물을 떠올리며 ‘들어가자, 추위 속으로’라는 간단하지만 명료한 말로 화자가 지향하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세계로 들어가자고 재촉하고 있다.
결국, 이시는 세속적인 세계에 속박되어 있는 자신을 떨쳐버리고 순결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고자 추운 산속으로 들어가 고 싶은 화자의 결연한 의지를 적절한 의문문의 사용을 통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시상 전개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하고, 대립적 의미 구조를 통해 순수한 세계에 대한 화자의 동경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작자 신대철(申大澈, 1945~ )
시인, 충남 홍성 출생. 196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강설(降雪)의 아침에서 해빙(解氷)의 저녁까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인간 바깥으로 탈초월적 의지와 강렬한 사회성을 근원적 서정에 담아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집으로 《무인도를 위하여》(1977),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2000),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2005), 《바이칼 키스》(2007), 《극지의 새》(2018)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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