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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편지2 - 이중섭 화가께 / 신달자

by 혜강(惠江) 2020. 6. 27.

 

 

이중섭의 그림 <두 어린이와 복숭아>

 

 

편지2 - 이중섭 화가께

 

 

 

- 신달자

 

 

 

가슴에는 천도복숭아

엉덩이에는 사과가 익어 가는

내 아이는

지금 향내로 가득합니다.

곧 연둣빛 싹도 살며시 돋고

계집아이 수줍음도 돋아나겠지만

내 아이는

더 자라지 않고

벌거벗은 채로 뛰어노는

당신의 아이들 속에

벌거벗은 채로

봄을 가지고 화평을 가지고

영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싶습니다.

찢어진 은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세상 만들며

순연한 부드러움

맑은 영혼 영혼으로 ……

 

- 시집 《새를 보면서》(1988) 수록

 

 

◎시어 풀이

*화평 : 화목하고 평온함.
*순연한 :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아니하고 제대로 온전한.

 

 

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인이 이중섭 화가의 그린 ‘두 어린이와 복숭아’라는 그림을 보면서 얻은 영감을 편지 형식으로 쓴 작품으로, 어린아이의 동심과 같은 맑고 순수한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의 지향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시는 여성 특유의 감각적 심미감을 드러낸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이 시는 '편지 1-이중섭 화가께'에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으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단순한 선으로 생명력 넘치는 아이들의 세계를 표현한 이중섭의 그림에서 아이들의 맑은 영혼과 순수한 삶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제목이 보여 주듯이, 이 시는 이중섭 화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중섭 화가와 관련된 소재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시각적·후각적 심상을 적절히 활용하여 감각적인 분위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연구분이 되어 있지 않으나, 내용상으로 보면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4행에서는 향내로 가득한 내 아이의 현재 모습을, 5~13행에서는 그림 속의 아이들 속에서 벌거벗은 채로 널게 하고 싶은 마음을, 14~17행에서는 아이들의 맑은 영혼과 순수한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우선 1행에서 4행까지는 향내로 가득한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이의 가슴에는 천도복숭아, 엉덩이에는 사과가 익어 가고, 향내로 가득하다고 표현함으로써 ‘내 아이’의 모습이 ‘두 아이와 복숭아’라는 그림의 내용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시각적 심상과 후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의 순수함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어지는 5행에서 13행까지는 아이가 순수함을 지키며 성장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화자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연둣빛 싹’이 돋고 ‘수줍음’도 돋아나는 것으로 그리면서, 자신의 아이는 더 자라지 않고 이중섭의 그림 속 아이처럼 ‘벌거벗은 채로/ 봄을 가지고 화평을 가지고/ 영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소망한다. 여기서 ‘벌거벗은 채로’는 순수한 삶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며, 화자는 이러한 삶의 모습 속에서만 ‘봄’, ‘화평’, ‘영원’의 긍정적 이미지의 세상을 이룰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14~17행에서는 고달픈 현실에서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며 맑은 영혼으로 살기를 바라는 소망이 다시 한 번 강조된다. 화자는 자신의 아이들이 ‘찢어진 은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세상 만들며/ 순연한 부드러움/ 맑은 영혼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은지’는 이중섭이 담뱃갑의 은지에 그림을 그린 데 착안해 ‘찢어진 은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이는 가난했던 이중섭의 삶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현실의 고난과 시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화자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화자는 자신의 아이들 역시 맑은 영혼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순연한 아름다움’과 ‘맑은 영혼’은 화자가 추구하는 긍정적인 가치로서 이는 아름다운 세상에서만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시는 힘들고 고단한 현대 사회 속에서 어린 아이의 동심과 같은 맑고 순수한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의 지향점을 잘 보여 준다. 자신은 힘들더라도 자신의 아이만은 이중섭 그림 속의 아이들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작자 신달자(愼達子, 1943~ )

 

  시인. 경남 거창 출생. 1964년 《여상》에 <환상의 밤>이 당선되고, 1972년 《현대문학》에 <발>, <처음 목소리> 등으로 추천을 받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평이한 어법으로 일상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대상을 관찰하면서도 삶의 본질에 대한 순간적 깨달음을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한다. 시집으로 《봉헌문자》(1973)를 시작으로 《겨울축제》, 《고향의 물》, 《모순의 방》, 《새를 보면서》,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오래 말하는 사이》, 《열애》 등 10여권의 시집을 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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