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 신달자
지나치게 내성적이다
그저 얼굴이나
벌겋게 달아오를 뿐
깊은 뜻 내색*을 하는 일이 없다
새벽부터 하고픈 말
끝내 말머리도 꺼내지 못하고
어둠에 밀려 밀려
속절없이* 사라지고
그러나 아주 영 사라지지는 않고
다음날 또 다음날도
해만 지면
타는 속을 빛깔로나 풀어놓는
너는 나와 같은 혈액형인가 보다
언제라도
서로 수혈*할 수 있다
- 시집 《모순의 방》(1985) 수록
◎시어 풀이
*내색 : 마음에 느낀 것을 얼굴에 드러냄.
*속절없이 : 어찌할 도리가 없이.
*수혈(輸血) : 중환자나 출혈이 심한 사람에게 그 혈액형과 같은 건강한 사람의 피를 혈관에 주입함.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소심한 내면의 소유자가 노을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노을의 속성과 자아 성찰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화자인 ‘나’는 중심 제재인 ‘노을’을 의인화하여 대상의 속성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노을’의 시각적 이미지를 빌려 속에서 타오르기만 하는 시적 화자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모두 2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제재인 '노을'의 속성을 다루고 있는 1연과, '노을'과의 동질감을 느끼는 화자의 심정을 다룬 2연으로 구분된다. 1연에서 화자는 노을의 속성을 ‘지나치게 내성적’이어서, ‘그저 얼굴이나/ 벌겋게 달아오를 뿐/ 깊은 뜻 내색을 하는 일이 없다’며, 노을의 외형을 색채 이미지를 통해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새벽부터 하고픈 말/ 끝내 말머리도 꺼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사라지고’라며, 의인화된 ‘노을’의 태도를 보여 주어 ‘지나치게 내성적’인 노을의 속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 ‘노을’의 속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아주 영 사라지지 않고/ 다음날 또 다음날도/ 해만 지면/ 타는 속을 빛깔로나 풀어 놓는/ 너는 나와 같은 혈액형인가 보다’라고 묘사하여,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내면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타는 속을 빛깔로나 풀어놓는 ‘노을’의 모습이 내성적 성격인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돋보이는 대목은 ‘너는 나와 같다’ 밋밋한 표현 대신 ‘너는 나와 같은 형액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핏빛과 같이 붉게 타는 속’을 연상케 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2연의 ‘언제라도/ 서로 수혈할 수 있다’라고 하여, 서로 ‘수혈’이 가능한 존재로 연결시켜 ‘너’인 노을과 자신의 성향이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며 동질감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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