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에 서서
- 신석정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 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 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
대숲은 좋더라.
성글어 좋더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척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 시집 《촛불》(1934) 수록
◎시어 풀이
*한사코 : 기어코. 고집하여 몹시 심하게.
*성근 : 성긴, 물건의 사이가 뜬. ‘성글다’의 관형어.
*흥근히 : ‘흥건히’의 잘못, 물 따위가 푹 잠기거나 고일 정도로 많게.
▲이해와 감상
1931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하는 등 서정시와 전원시를 주로 쓴 신석정 시인이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대나무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의 시적 화자인 ‘나’는 대나무가 성글게 난 ‘대숲에 서서’ 고요하고 굿굿하게 자라는 대나무와 같이, 절망적 상황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곧게 살고 싶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자연 친화적 작품이다.
이 시는 ‘대숲’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화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반복적인 표현과 역설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공감각적 심상을 사용해 복합적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성근 대숲’으로 가려는 마음을 ‘한사코’라는 시어와 ‘간다’하는 서술어를 반복하여 표현하고 있다. 을 통하여 여기서 ‘대숲’은 화자가 서 있는 공간이며, 대나무는 화자가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자세(방식)이다. 즉, 곧게 뻗어나가며, 늘 변치 않는 ‘대’의 모습이 화자가 추구하는 삶인 것이다.
2연은 화자가 ‘대숲’에서 느끼는 정감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 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 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는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대숲의 호젓한 풍경을 복합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인데, 앞 뒤 시구가 연쇄법과 대구로 이루어져 표현의 묘미를 드러내고 있다.
3연은 화자가 ‘대숲’을 좋아하는 이유를 드러내고 있다. ‘성글어 좋아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에서 보듯이, 첫째 이유는 ‘성글어’ 좋다고 한다. ‘성글어’는 ‘듬성듬성하여’라는 뜻으로 ‘고요하고 호젓한’ 그래서 조금은 ‘고독한’ 화자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다’고 한다. 이 역설적인 표현은 고독하게 서 있는 대의 모습이 서러워서 좋다는 뜻으로, 나름대로 다르게 살고 싶어하는 화자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4연에서 화자는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척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라는 표현으로 대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살거나’에서 자신의 의사에 대하여 자문(自問)하는 형식의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자신이 바라는 삶이 ‘대같이’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로부터 대나무는 절개를 상징하여 왔다. 곧게 자라며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대나무의 속성으로부터 인간 정신이나 도덕적 원리를 끌어내 한국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왔다. 대나무처럼 곧게 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이 작품은 이와 같은 전통을 이어받은 작품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작자 신석정(辛夕汀, 1907~1974)
시인. 전북 부안 출생. 본명 석정(錫正). 1931년 《시문학》 제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초기에는 주로 자연을 제재로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시를 썼으나, 광복 이후에는 현실 참여 정신과 역사의식이 강한 작품도 썼다. 시집으로 《촛불》(1939), 《슬픈 목가》(1947),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 소리》(1974)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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