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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by 혜강(惠江) 2020. 8. 29.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 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 출전 《삼천갑자복사빛》(2005) 수록

 

 

◎시어 풀이

*애먼 : 일의 결과가 엉뚱하게 혹은 억울하게 느껴지는

*적막(寂寞)히 : 쓸쓸하고 고요하게.

*혼연일체(渾然一體) : 생각·행동·의지 따위가 완전히 하나가 됨.

*정분(情分) : 정이 넘치는 따뜻한 마음. 사귀어 정이 든 정도

*신명 : 흥겨운 신과 멋.

*머뭇 : 말이나 행동 따위를 선뜻 행하지 못하고 망설임

*금단(禁斷) :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금함.

*정수리 : ① 머리 위의 숫구멍이 있는 자리. ② 사물의 가장 꼭대기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반(道伴) : 함께 도를 닦는 벗.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수양 버드나무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어가는 모습을 통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용기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수양 버드나무라는 자연물을 의인화하여 담을 넘은 수양 가지의 심정을 추측하고 있는 이 시는 버드나무라 가지가 담을 넘는 모습에서 인간의 태도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 아니었으면 ~ 아니었을 것이다.’라는 이중 부정을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하고, ‘~ㄹ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반복 사용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첫머리에서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는 것을 의인화하여 어려움을 이기고 자유를 쟁취하는 일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어 화자는 수양 버드나무 자체의 ‘뿌리’와 ‘꽃과 잎’의 협력자들의 생각과 행동과 의지가 완전히 하나가 된 원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진술한다.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라는 것은 혼자서는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했을 것임을 말해준다.

 

  2연에서는 수양 가지가 담을 넘은 원동력은 외적 요인인 ‘비’, ‘폭설’, ‘금단의 담’에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금단의 벽’은 어떤 구역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막는 벽, 즉 장애물을 의미한다. 이것들은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겪는 시련과 고통으로, 화자는 시련과 고통을 겪는 것을 오히려 신명 나는 일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다. 여기서 ‘담’은 ‘한계’와 ‘제약’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아니라 꿈과 목표를 가지게 하는 자극, 새로운 도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하는 동반자로 인식된다. 그래서 화자는 여기서 화자는 ‘담’이 있었기에 비로소 꿈을 꾸게 되고 결국 꿈을 이루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3연에서는 수양 버드나무와 함께 다른 식물들도 담을 넘을 수 있음을 드러내고, 마지막 4연에서는 수양 가지를 보편화한 가지로 확대하여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선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무명에 선을 긋는’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일로 위협을 무릅쓰는 일로써, 그러므로 담을 넘는 행위는 ‘도전’이요, 그 담 때문에 도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하는 동반자로 신명과 용기가 솟아 담을 넘으려는 생각이 더 강해졌기에 ‘도반’인 것이다.

 

  이 시는 참신한 발상이 주목된다. “시인은 ‘가지’가 ‘담’을 넘어가는 결과 자체보다 그 과정에 주목한다. 이러한 시선으로 인해 ‘가지’와 이어진 ‘뿌리’와 ‘꽃’과 ‘잎’을 보게 되고, ‘비’와 ‘폭설’도 신명을 가져오게 하는 긍정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가지’가 넘어야 할 ‘담’ 역시 부정적 이미지가 아니라 꿈과 목표를 가지게 하는 자극, 새로운 도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하는 동반자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참신한 발상이 수양 버드나무 가지, 비, 눈, 담장 등의 친숙한 이미지로 형상화되면서 독자는 시를 통해 전달되는 삶의 구체적 모습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출처 : 다음 백과-해법 문학, 현대시고등)

 

 

▲작자 정끝별(1964~ )

 

 

  시인, 국문학자. 1988년 《문학사상》에 <칼레의 바다>로 등단했다. 1989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평론 <서늘한 패로 디스크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되었다.생명의 본성을 깊이 통찰하는 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1996), 《흰책》(2000), 《행복》(2001), 《삼천갑자복사빛》(2006),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등이 있다. 평론집으로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륙의 노래》, 《하늘 연못》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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