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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웃음설 / 양주동 웃음설 무애(无涯) 양주동 백 사람이 앉아 즐기는 중에 혹 한 사람이 모퉁이를 향하여 한숨지으면 다들ㄹ 마음이 언짢아지고, 그와 반대로 여러 사람이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어느 한 사람의 화창한 웃음을 대하면 금시 모두 기분이 명랑해짐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웃음’에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란 공리적인 속담이 있고,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타산적인 잠언도 있고, 또 누구의 말인지는 잊었으나 ‘웃음은 인생의 꽃’이라는 사뭇 시적(?)인 표어도 있다. 사람과 동물과의 구별이 연모사용 여부에 있다고 학자들은 말하거니와, 그것보다는 차라리 ‘웃음의 능부(能否)’에 달렸다(소가 웃음이 약간 문제이나) 함이 더 문학적이라 할까. 또한 문학이나 정치의 요는 결국 전자는 독자로 하여금 입가에 은.. 2007. 6. 10.
내금강, 천하절경 짙고 푸르른 '천년의 숲' 비경 내금강 탐방 천하절경 짙고 푸르른 '천년의 숲' 비경 내금강 '신비의 구름' 걷히다 글ㆍ사진 김형우 기자 ▲ 만폭동 법기봉 자락에 마치 제비집처럼 걸려 있는 보덕암. 구리기둥 하나에 의지한 채 수백년 풍상을 거쳐 온 고려의 대표적 사찰 건축물이다. 금강의 속살 내금강이 열렸다. 내금강은 산세가 가파르고 굳건한 외금강과는 달리 부드러운 듯 아가자기한 절제미를 간직해 '여성'에 곧잘 비유되곤 한다. 특히 완만한 숲길을 따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담과 계류는 주변 절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또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 아름드리 전나무 숲 그늘을 따라 묘길상 까지 난 산길엔 장안사 표훈사 마하연 보덕암 삼신암 등 많은 사찰과 유적을 품고 있어 가히 천혜의 문화유산 트레킹 코스라 불리울 법하다.. 2007. 6. 9.
(수필) 지조론(志操論) - 변절자를 위하여 / 조지훈 지조론(志操論) ― 변절자(變節者)를 위하여 조지훈(趙芝薰)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 확고한 집념)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엄숙한 차림새)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자는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와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2007. 6. 8.
(논설문) 기미독립선언문(원문 및 번역문) 기미독립선언문(원문) 선언서(宣言書)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 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 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 자존)의 政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半萬年(반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발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 2007. 6. 8.
(수필) 글을 쓴다는 것 / 김태길 글을 쓴다는 것 김태길(金泰吉)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整理)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姿勢)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 무언(有言無言)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約束)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充實)하게 실천(實踐)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整頓)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方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反省)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想念)을 어떤 형식으로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 자신(自己自身)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自畵像)이다. .. 2007. 6. 8.
(수필) 매화찬(梅花讚) / 김진섭 매화찬(梅花讚) 김진섭 나는 매화를 볼 때마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감정에 붙들리고야 마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으니, 왜냐하면, 첫째로 그것은 추위를 타지 않고 구태여 한풍(寒風)을 택해서 피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것은 그럼으로써 초지상적(超地上的)인, 비현세적인 인상을 내 마음 속에 던져 주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혹은 눈 가운데 완전히 동화된 매화를 보고, 혹은 찬 달 아래 처연(悽然)히 조응된 매화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매화가 사군자의 필두(筆頭)로 꼽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겠지만, 적설(積雪)과 한월(寒月)을 대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에라야만 고요히 피는 이 꽃의 한없이 장엄하고 숭고한 기세에는, 친화(親和)한 동감(同感)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굴복감을 우리는 품지 않을 수 없는 것.. 2007. 6. 8.
(수필) 얼굴 / 안병욱 얼굴 - 안 병 욱(安秉煜) 사람은 저마다 정다운 얼굴을 갖고 있다. 착하고 품위 있는 얼굴의 소유자도 있고 흉하고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이도 있다. 우리는 자기의 얼굴을 선택하는 자유는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님한테서 선물로 받은 얼굴이다. 제주나 체질과 마찬가지로 운명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누구나 맑고 아름다운 얼굴을 갖기를 원한다. 추하고 못생긴 얼굴을 바라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자서전적 작품을 읽어보면 젊었을 때 자기의 코가 넓적하고 보기 흉한 것을 무척 비관하고 염세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젊었을 때에는 특히 자기 얼굴의 미추에 대해서 유별한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젊은 여자일수록 더하다. 얼굴의 근본 바탕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운명적으로.. 2007. 6. 8.
(수필) 고독에의 향수 / 안병욱 고독에의 향수 -안병욱(安秉煜) 인간은 세 개의 눈을 갖는다. 첫째는 밖으로 향하는 눈이요, 둘째는 위로 향하는 눈이요, 셋째는 안으로 향하는 눈이다. 밖으로 향하는 눈은 자연과 객관적 대상의 세계로 향한다. 위로 향하는 눈은 신과 종교적 신앙의 세계로 향한다. 안으로 향하는 눈은 자아와 내면적 세계로 향한다. 청년의 사색과 관심의 특색은 내향성과 내면성이 있다. 그는 눈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고 남에게서 자기에게로 돌린다. 청년은 주로 자아와 내면적 세계로 향한다. 그것은 자기 발견, 자기 탐구, 자기 성찰, 자기 응시의 눈이다. 내가 나의 내적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눈이다. 사색에는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색하기 위해서 주위의 접촉에서 격리되어 조용한 장소를 구한다. 더구나 자기 성찰에는 그러.. 2007. 6. 8.
(수필) 행복(幸福)의 메타포 / 안병욱 행복(幸福)의 메타포 - 안병욱(安秉煜) [1] 앉은뱅이꽃의 노래 괴테의 시(詩) 가운데 「않은뱅이꽃의 노래」라는 시가 있다. 어느 날, 들에 핀 한 떨기의 조그만 앉은뱅이꽃이 양의 젖을 짜는 순진 무구한 시골 처녀의 발에 짓밟혀서 시들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앉은뱅이꽃은 조금도 그것을 서러워하지 않는다. 추잡하고 못된 사내의 손에 무참히 꺾이우지 않고 밝고 깨끗한 처녀에게 밟혔기 때문에 꽃으로 태어났던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의 상징을 좋아한다. 들에 핀 조그만 꽃 한 송이에도 꽃으로서의 보람, 생명으로 태어났던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람 있는 생(生)을 원한다. 누구나 보람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보람 있는 일생을 마치고 싶어한다. 우리 인생의 희열.. 2007. 6. 8.
(수필)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위암(葦庵) 장지연(張志淵)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 2007. 6. 8.
(수필) 권태 / 이상 권태(倦怠) - 이상(李箱) 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아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십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대싸리나무, 오늘도 보는 김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려쪼인다. 아침이나 저녁.. 2007. 6. 7.
(수필) 생활인(生活人)의 철학(哲學) / 김진섭 생활인(生活人)의 철학(哲學) - 청천(聽川) 김진섭(金晋燮) 철학을 철학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결코 무리한 일은 아니니, 왜냐 하면, 그만큼 철학은 오늘날 그 본래의 사명――사람에게 인생의 의의와 인생의 지식을 교시(敎示)하려 하는 의도를 거의 방기(放棄)하여 버렸고, 철학자는 속세와 절연(絶緣)하고, 관외(管外)에 은둔(隱遁)하여 고일(高逸)한 고독경(孤獨境)에서 오로지 자기의 담론(談論)에만 경청(傾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철학과 철학자가 생활의 지각(知覺)을 온전히 상실하여 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부단히 인생의 예지(叡智)를 추구하는 현대 중국의 '양식(良識)의 철학자' 임어당(林語堂)이 .. 2007. 6. 7.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시나크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시나크 (Anton Schnack) / 김진섭 옮김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人跡)은 끊어져 거의 일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 그래서, 벽은 헐어서 흙이 떨어지고, 어느 문설주의 삭은 나무 위에 거의 판독(判讀)하기 어려운 문자를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될 때. 그 곳에 씌었으되,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너의 소행(所行)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不眠)의 밤을 가져오게 했는가……." 대체 나의.. 2007. 6. 7.
(수필) 페이터의 산문 / 이양하 페이터의 산문 - 이양하(李敭河) 만일 나의 애독하는 서적을 제한하여 이삼권 내지 사오 권만을 들라면, 나는 그 중의 하나로 옛날 로마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들기를 주저하지 아니하겠다. 혹은 설움으로 혹은 분노로, 혹은 욕정으로 마음이 뒤흔들리거나, 또는 모든 일이 뜻같이 아니하여, 세상이 귀찮고, 아름다운 동무의 이야기까지 번거롭게 들릴 때 나는 흔히 이 견인주의자 황제를 생각하고, 어떤 때는 직접 조용히 그의 명상록을 펴 본다. 그리하면, 그것은 대강의 경우에 있어,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회복해 주고, 당면한 고통과 침울을 많이 완화해 주고, 진무해 준다. 이러한 위안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모르거니와, 그것은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내 마음에 달.. 2007. 6. 7.
(수필) 은근과 끈기 / 조윤제 은근과 끈기 - 조윤제(趙潤濟) 한국 문학과 한국 사람 생활의 특질(特質)이란 어떤 것인가? 오랜 역사의 전통에서 살아 온 한국 사람의 생활에 특질이 없을 리 없고, 또 그를 표현한 한국 문학에 특질이 없을 수 없다. 한국 예술(藝術)을 흔히들 선(線)의 예술이라 하는데, 기와집 추녀 끝을 보나, 버선의 콧 등을 보나, 분명히 선으로 이루어진 극치(極致)다. 또, 미인(美人)을 그려서 한 말에 '반달 같은 미인'이란 말이 있으니, 이도 또한 선과 선의 묘미(妙味)일 뿐 아니라, 장구 소리가 가늘게 또 길게 끄는 것도 일종의 선의 예술일 시 분명하다. 그런데, 반달은 아직 충만(充滿)하지 않은 데 여백이 있고, 장구 소리에는 여운(餘韻)이 있다. 이 여백과 여운은 그 본체(本體)의 미완성(未完成)을 말함일.. 2007. 6. 7.
(수필) 면학(勉學)의 서(書) / 양주동 면학(勉學)의 서(書) - 양주동(梁柱東) 독서(讀書)의 즐거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東西) 전배(前輩)들의 무수(無數)한 언급(言及)이 있으니, 다시 무엇을 덧붙이랴. 좀 과장(課長)하여 말한다면, 그야말로 맹자(孟子)의 인생 삼락(人生三樂)에 무름지기 '독서(讀書), 면학(勉學)'의 제 4일락(第四一樂)을 추가(追加)할 것이다. 진부(陳腐)한 인문(引文)이나 만인(萬人) 주지(周知)의 평범(平凡)한 일화(逸話) 따위는 일체 그만두고, 단적(端的)으로 나의 실감(實感) 하나를 피력(披瀝)하기로 하자. 열 살 전후 때에 논어(論語)를 처음 보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운운(云云)이 대성현(大聖賢)의 글의 모두(冒頭)로 너무나 평범한 데 놀랐다. "배우고 .. 2007. 6. 7.
(수필) 산정무한(山情無限) / 정비석 산정무한(山情無限) - 금강기행(金剛紀行) - 정비석(鄭飛石)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해선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몸이 지닌 기쁨이 하도 컸던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던 영봉(靈峯)들을 대면(對面)하려고 새댁 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준봉(峻峯)은 상기 깊은 구름 속에서 용이(容易)하게 자태를 엿보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까운 데의 전나무, 잣나무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모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밋밋하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한 야산(野山)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귀공자와 같이 기품(.. 2007. 6. 7.
(수필) 신록예찬(新綠禮讚) / 이양하 신록예찬(新綠禮讚) - 이양하(李敭河)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 2007. 6. 7.
(수필) 나무 / 이양하(李敭河) 나무 - 이양하(李敭河)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滿足)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處地)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 2007. 6. 7.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 /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李孝石)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뜰의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 새 날아 떨어져서, 또 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調練)ㅎ지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제일 귀찮은 것이 담쟁이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굴뚝의 붉은 빛만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거들떠 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 2007. 6. 7.
(수필) 청춘 예찬 / 민태원 청춘예찬(靑春禮讚) 민태원(閔泰瑗, 1894~1935)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얼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 내는 것이 따뜻한 .. 2007. 6. 7.
(수필) 장미 / 피천득 장 미 - 피천득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 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C의 하.. 2007. 6. 7.
(수필) 수필 / 피천득 수필 - 피천득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를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 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빛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 2007. 6. 7.
다시 열린 내금강(內金剛) 사전답사기 내금강 답사 다시 열린 내금강 사전답사기 - 즈려밟다, 금강의 진미 글·사진 최명애기자 교과서에 나왔던 금강산은 죄다 내금강이었다. 정철의 ‘관동별곡’ 절반이 내금강 유람,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도 내금강 전경. 정말 그렇게 좋을까? 혹시 옛 사람들 특유의 과장은 아니었을까? 지난 1일 내금강 관광이 시작되면서 그 명성을 확인해 볼 수 있게 됐다. 사실 진면목을 느끼기엔 시간이 짧다. 내금강에 주어진 시간은 5시간30분. 이동시간까지 합쳐도 하루다. 금강산 관광의 특수성 때문에 투어 형태도 한 가지. 내금산 관광객의 일정대로 트래블팀이 먼저 다녀왔다. ◇ 08:05 외금강 온정각 버스는 예정보다 5분 늦게 온정각을 출발했다. 내금강 관광의 기점인 표훈사까지는 44㎞. 1시간40분~2시간이 걸린다. 금강.. 2007. 6. 7.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걷기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걷기 - 새소리를 들으며 시(詩)와 함께 걷는 길 - 글·사진 남상학 의사의 권유에 따라 1주일에 3회 정도 낮은 산에 오르기 3개월, 숨이 가쁘고 무겁던 내 몸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평지를 빠르게 걷는 속보나 가볍게 뛰는 조깅보다는 자연적인 높낮이에 맞춰 장시간 걷는 등산이 유산소운동에는 크게 효과가 있다는 말에 가벼운 등산을 시작한 것이다. 등산의 효과는 심폐기능 향상, 근력(筋力)강화, 정신적 만족감 등 세 가지로 알려져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언덕을 오를 때 숨이 가쁘던 것이 좀 완화된 것만 보아도 심박출량(심장이 한 번의 박동으로 피를 뿜어내는 양)이 늘어나고, 오르막과 내리막운동으로 골밀도 강화까지는 몰라도 근육이 강화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집에 있으면 대부분의 .. 2007. 6. 6.
파주 벽초지문화수목원, 천국의 문 지나 동·서양 정원으로 파주 벽초지문화수목원 천국의 문 지나 동·서양 정원으로 글=박근희 기자, 사진=이구희 객원기자 손바닥만한 그늘마저 허락지 않는 뜨거운 아스팔트. 이제 여름의 입구에 섰을 뿐인데 작열하는 태양이 원망스럽다. 나무가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요즘, 수목원으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시원함은 물론 풀벌레 소리, 새소리 들으며 걷다 보면 더위는 물론 근심, 걱정도 어느새 저만치 물러서 있다. 6월 와이드기획은 그늘과 녹음 그리고 명상이 있는 공간, 수목원 탐방이다. 첫 번째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있는 벽초지문화수목원을 소개한다. 유럽스타일의 로맨틱한 정원 퀸스가든&천국의 광장 용인 한택식물원이 산과 들에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그대로의 들꽃과 나무를 구경할 수 있다면 벽초지문화수목원은 조경의 힘.. 2007. 6. 5.
고창 청보리밭, 황금물결 출렁이는 보리밭 사잇길로 추억이 걸어온다 고창 청보리밭 황금물결 출렁이는 보리밭 사잇길로 추억이 걸어온다 박상문기자 ▲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고창군 공음면의 학원농장 보리밭이 파란 하늘에 점점이 떠있는 흰 구름과 어울려 목가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 청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기 전 연록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 학원농장 보리밭을 찾은 젊은이들이 초가로 지은 정자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기후 여건이 좋아 대풍을 이룬 보리밭에서 콤바인을 사용해 보리를 수확하고 있다. ▲ 보리수확이 한창인 가운데 기계에 의해 자동으로 탈곡된 보리가 우수수 쏟아지고 있다. ▲ 학원농장 보리밭을 찾은 한 부부가 보리피리를 불며 어린 시절 추억을 음미하고 있다. ▲ 학생들이 보리 이삭을 불에 태우며 보리 서리를 체험하고 있다. 남쪽 들녘은 지금 .. 2007. 6. 2.
제주 여미지식물원, 동양 최대의 온실을 갖춘 식물원 제주 여미지식물원 동양 최대의 온실을 갖춘 식물원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여미지식물원의 옥외식물원. 제주도 자생식물원과 세계 여러 나라의 특색 있는 민속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동양 최대의 온실식물원을 보유한 사립 식물원으로 부국개발이 운영하고 있다. 중문관광단지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부지 면적 34,000평에 2,550종 6만 개체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1989년 10월 개원 이래 관광객과 수학여행단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온실식물원과 옥외식물원으로 크게 구분된다. 여미지의 상징과 다름없는 온실식물원은 3,800평 규모로서 화접원을 비롯하여 수생식물원, 열대생태원, 열대과수원, 다육식물원, 중앙 전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접원은 관람객들에게 가장 .. 2007. 6. 2.
포항 기청산식물원, 교육 강조하는 고즈넉한 식물 포항 기청산식물원 교육 강조하는 고즈넉한 식물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덕성리 362 / 054-232-4469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이 식물원은 식재한 후 30년 이상 관리해온 큰 수목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서 있어 몇 해만에 새롭게 조성되는 식물원들과는 달리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오래 된 수목들을 생태적으로 배려해 관리하기 때문에 수많은 동물들이 함께 서식하는 것도 이 식물원만의 자랑이다. 또한, 외모가 화려한 외래식물보다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자생식물만 수집한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969년 설립된 기청산농원을 기반으로 1990년에 식물원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식물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사립 식물원으로서 전체 면적은 25,000평에 이르며, 자생식물 1,800.. 2007. 6. 2.
용인 한택식물원, 최대 규모의 사립 식물원 용인 한택식물원 최대 규모의 사립식물원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국내 최대의 시설과 규모를 자랑하는 사립 식물원이다. 1979년 설립된 이래 수년 동안 회원과 교육을 위한 방문만을 허용하다가 2003년 5월 편의시설을 확충하여 공식 개장했다. 20여만 평 부지에 크게 동원(East Garden)과 서원(West Garden)으로 나뉘어 조성되어 있다. 보유식물은 자생식물 2,400여 종류, 외국식물 5,900여 종류 등 8,300여 종류이며, 개체수로는 730만 개체에 달하여 이 역시 국내 최고 수준이다. 서원은 초창기에 조성된 식물원으로서 지금은 연구시설과 재배시설이 자리 잡고 있어 일반인의 방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서원은 환경부가 지정한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한데,.. 2007.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