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석모도 해명산
보문사를 감싸고 있는 수도권 산행지
산과 바다의 정취를 함께 맛보는 이색 산행
글 ·사진 남 상 학
일반적으로 강화의 산이라 하면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으로 알려진 참성단(塹星壇)이 위치한 마니산(摩尼山, 468m)을 떠올리게 되지만, 조용함을 찾아 떠나는 이들은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으면서 순수 자연미가 살아있는 해명산를 애호하는 편이다.
해명산(海明山, 327m)은 강화도의 서쪽에 위치한 석모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으로 삼산(三山)이라는 명칭은 석모도의 세 개의 산, 즉 해명산, 상봉산(上峰山, 316.1m), 상주산(上株山, 264m)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산면 석모도 한가운데 서있는 해명산은 산과 바다의 정취를 함께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해의 금산 보리암,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불리는 보문사(普門寺)를 감싸고 있어서 산행과 더불어 보문사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특히 석모대교 개통으로 강화 본섬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비교적 여유롭고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듬뿍 받으며 바다와 함께 걸어가는 능선 상에는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넓적한 바위들이 줄곧 나타나 산행 도중 쉬면서 산 아래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바다를 조망하며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 가족 등반 산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해명산 산행 기점은 전득이고개다. 도로 오른편에 해명산, 보문사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푯말이 있는 곳에서 곧바로 능선에 오르는 것으로 산행은 시작된다.
전득이고개에서 서북쪽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은 여느 산과 다름없이 편안한 산길이다. 활짝 열려 있는 능선을 따라 20여분 올라 만나는 주능선에서 서해바다가 열리기 시작한다. 이곳에 서면 전방으로 낙가산과 상봉산의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고, 뒤편으론 석모도 선착장과 대섬, 그 뒤로 외포리 마을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리고 서쪽 바다에는 이름 모를 섬들이 아른거린다.
여기서 40여분 더 진행하여 310봉에 서면 해명산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이 지척에서 바라보인다. 310봉에서 가파른 내리막으로 15분 정도 내려가면 사거리 길이 있는 방개고개에 이른다. 이정목이 있는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올라가면 전망좋은 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도 지나온 봉우리들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전망바위를 지나 올라가면 등로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있으며 좌측으로는 250암봉이 우뚝 솟아 있고 잠시 후에는 270봉 갈림길에 닿는다. 270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다 보면 250암봉이 코앞에서 펼쳐지고 곧이어 새가리고개에 닿는데, 지금은 사람 통행이 없지만 옛날에는 좌측 매음리, 우측은 면사무소가 있는 석모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주변 바다와 섬들을 감상하면서 진달래와 참나무들이 우거진 능선을 따라 해명산 정상과 이어지는 낙가산으로 갈 때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정상에서 낙가산까지는 몇 개의 오르내림의 능선이 있으나 그다지 힘들지 않다. 누에등처럼 길게 늘어선 낙가산 능선을 오르내리기 1시간,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이면서 삼각점 표시가 있는 낙가산(308m봉) 정상이 나타난다. 옷깃에 스미는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온몸을 감싼다.
정상에 서면 강화도 마니산과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과 매음리 염전, 주문도가 보인다. 들판 뒤로 멀리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곳은 원래 어류정이란 이름의 섬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957년 윤철상씨가 매음리 연안 일대를 매립해 240ha의 염전과 농장을 개척해 본섬(석모도)과 연결이 되었고, 이곳 매음리 '삼량 염전'은 우리나라에 몇 개 남지 않은 천일염전에 속한다. 그리고 이곳 농경지는 강화도 본섬과 마찬가지로 바둑판처럼 평평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데 대부분 간척지다. 그리고 앞으로 보이는 언덕 너머에는 민머루 해수욕장이 있다. 이 지점에 서면 시원스레 풍경이 열리며 저절로 시심을 불러온다.
낙가산, 그 정상에 서면
시원스레 눈이 열리고
바다는 나긋나긋한 몸짓으로
발밑에 다가와
눈 아래 포근히 잠긴다.
해수관음(海水觀音)*의 자비로움이
무량(無量) 세월 널브러진
저 질펀한 가슴만 하랴
(중략)
시선의 끝에서 시원스레
구름이 피어오르듯
눈가에 열리는 문
마치 정토(淨土)의 백성이 된 듯
한결 가벼워진 내 영혼이
출렁이는 물결 따라 여울진다.
아득한 수평선
빈 가슴에
꿈 하나 새겨놓고.
- <졸고> “낙가산, 그 정상에 서면” 일부
능선에는 회백색 넓적바위인 천인대(일명 삿갓바위)가 펼쳐져 있으며, 서북쪽으로 이어진 능선 끝에는 상봉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산행을 위주로 하는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면 보통 이 지점에서 좌측으로 하산한다. 상봉산으로 향한 능선을 곧장 진행하다 보면 눈썹바위와 보문사를 만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석모도 여행의 목적 중 8할은 보문사 탐방에 있다고 했으니 보문사를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낙가산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서면 마애석불좌상이 조각된 눈썹바위로 향하게 된다. 눈썹바위는 보문사의 가장 큰 볼거리로 보문사 뒤 낙가산 중턱에 높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10미터의 높이의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 마애불상이 특유의 미소를 머금고 서해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그 모습이 힘들게 찾아온 향배객들을 위로해 는 듯하여 신심이 깊은 불자들이 전국에서 몰려온다. 불심이 깊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서면 누구나 엄숙해지고 경건한 마음을 느끼는 것은 자연 속에 인간의 경건한 마음을 불어넣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에 대한 외경심 때문일 것이다. 그레서 일찌기 마애불상이 있는 눈썹바위를 강화 8경으로 지정한 것이다. 여기서 4백 계단을 내려가면 보문사에 닿는다.
여기까지의 산행시간은 전득이고개~해명산~308m봉~300m봉~방개고개~270m봉~새가리고개~250m봉~삿갓바위 절고개 3거리~눈썹바위~보문사~주차장까지 약3시간 30분 안팎이다.
낙가산 서쪽 기슭에 포근히 안겨 있는 보문사는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처중 하나로 이름이 높다. 여느 절과 마찬가지로 절 마당에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이 있으며, 특히 인천시기념물 17호로 지정된 수령 약 600여년이나 된 향나무가 절 마당에서 은은한 향을 머금고 있다. 향나무 뒤에는 자연석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석실이 있다. 이 석실 안에는 어부가 건져 올렸다는 전설이 있는 23나한님이 모셔져 있다.
또 석실 입구 옆에는 보통의 것보다 약 2배가량 큰 맷돌이 하나 있다.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맷돌은 지름 69cm, 두께 20cm나 된다. 또 석실불당 바로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3일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대웅전 앞으로 나오니 어느새 저녁해가 기웃거린다.
잘 쓸은 마당으로
가을 낙엽처럼
목탁소리 뚝뚝 떨어지고
깔끔한 불당 앞
하늘이 성큼 내려와
좌정한 자리로
바다로 숨는 저녁 해가
약수(藥水) 물을
퍼 올리듯
뻔질나게
붉은 가을을 실어 나르네.
- <졸고> “산사(山寺)의 가을- 보문사” 전문
만약 시간이 허락한다면 석모도 칠면초 군락지를 가 보자. 석모도 칠면조군락지는 갯벌 위로 붉은 칠면초가 넓게 펼쳐져 마치 갯벌에 단풍이 핀 것 같은 장관을 이룬다. ‘강화나들길 11코스 석모도 바람길’ 구간에 있는 곳이다. 석모대교를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보문사로 가는 길에 위치하며 붉은색을 띄는 칠면초가 황금 들판과 함께하는 모습은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칠면초 군락이 곱게 물든 해변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광활한 강화 갯벌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외포리에서 석포리 나루터로 배를 타고 건너던 추억을 떠올리며 석포리 나루터에 있는 선창식당(032-932-3225)에 들러 피곤한 몸을 풀 겸 튀김이라도 시켜 먹으며 또 하나의 낭만과 추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최성원, 김정미 젊은 내외가 경영하는 2층으로 된 이 식당은 전면 간판 위를 목선(어선)을 올려 장식해 놓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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