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연평도
서해 최북단 북방한계선에 인접한 최전방 기지
- 멋진 해안풍경, 맛 깊은 생선, 티 없는 인심 -
글·사진 남상학
서해 최북단 북방한계선(NNL)에 인접한 연평도는 최전방 기지로 온통 요새화되어 있지만 때묻지 않은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해안에는 기암괴석과 백사장, 절경이 즐비하고 꽃게를 비롯한 싱싱한 해산물도 풍성하다. 하지만 분단의 상흔인 연평도포격사건과 연평도해전의 현장이기도 해서 평화로운 풍경 저편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인천에서 뱃길로 145km 떨어진 연평도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하며 북한의 부포리가 불과 10km 거리에 있는 서해 최대의 어항으로 통한다. 황해도 해주 수양산으로부터 일곱 번째에 있는 이 섬은 바다 위를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평평하게 뻗친 형이라 하여 '연평도(延坪島)'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람의 손때 묻지 않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한연평도를 만나러 떠났다.
연평도는 대연평도(면적 6.951㎢), 소연평도(대연평도 남방 6.4㎞ 지점, 면적 0.241㎢), 구지도와 모이도 등 4개의 유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흔히 부르는 연평도는 보통 대연평도를 말하며, 이곳은 전초방위기지로써 1999년 연평해전 이후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안보관광지이며 청정 피서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 제일의 황금 조기어장으로 각광 받던 섬이었으나 성시(盛市)를 이루었던 연평도가 '눈물의 연평도'가 된 것은 1959년 사라호 태풍이 불면서 수백 척의 어선이 부서지고, 많은 어부들이 생명은 뒤부터였다. 게다가 어로 장비와 기법이 발달하여 조기떼들이 이른 봄(4월) 산란을 위하여 연평도에 올라오기 전, 이미 동중국해와 흑산도 근해에서 거의 다 잡히게 되자 어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연평도는 꽃게어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1년 중 가장 바쁜 꽃게시즌은 4~6월의 봄 꽃게철과 9~11월의 가을 꽃게철로 나눌 수 있다. 봄에 잡은 꽃게는 산란을 앞둔 암꽃게가 살과 알이 가득 차 있어 가장 맛있고, 가을 꽃게철에는 숫꽃게가 더 맛있다고 한다. 암꽃게는 간장게장, 숫꽃게는 양념게장·찜·꽃게탕이 제격이다. 우리가 방문한 10월은 연평도 포구에 꽃게 작업이 한창이다.
다만, 안보상의 이유로 1974년 어로저지선을 남하시킴으로써 북녘 땅 가까운 어장엔 들어갈 수 없게 됨으로써 연평도는 조기를 잡을 수 없는 '눈물의 연평도'가 된 셈이다. 조기 어종의 고갈로 옛날의 명성을 잃게된데다가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 고귀한 생명을 잃은 현장이 되었으니 어찌 '눈물의 연평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간 북한과 지척지간에 있는 지역적인 특성과 뱃길 사정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던 터라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그대로의 아름다운 해변 절경과 서해 제일의 청정 해역답게 아름다운 바다와 해안 절경, 맛 좋은 생선, 티 없이 맑은 인심, 조용한 분위기 등으로 많은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연평도를 왕복하는 쾌속선 '시플레인' 호
▲연평도 정상에서 본 마을 풍경, 멀리 당섬, 안목, 모이도 등이 보인다.
▲ 마을로 들어가며 연도교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와 연평해전전승비
연안부두를 출발한 여객선은 소연평도에 손님을 내려놓고, 다시 연평도의 당섬 선착장에 도착한다. 당섬은 연평도의 관문으로 모든 여객선이 연평도 앞의 당섬(당도) 선착장에 접안한다. 우리가 도착한 당섬선착장은 터미널 이름이 ‘연평바다역’이다. 여객은 주로 지역 주민들과 여행객 그리고 최전방 연평도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이다.
그 앞에는 ‘눈물의 연평도’라는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1964년에 발표된 최숙자의 히트곡으로 한반도를 휩쓸며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던 태풍 사라호(1959년)에 희생된 어부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당섬에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당섬 소공원이 조성되어 오고가는 여객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당섬에서 연평도까지는 700m의 연도교가 가설되어 왕래하고 있는데, 당섬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1.5km 거리로 도보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당섬에서 연평도로 들어가는 연도교 초입, 마을 입구에는 연평해병전승비가 우뚝 서있다. 1999년 11월 11일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의해 건립된 전승비는 1999년 6월 7일부터 북방한계선을 무효화할 목적으로 북한경비정이 수차례에 걸쳐 불법 침입하여 15일에는 선제공격을 해오자 우리 해군이 북한 함정 10척 중 어뢰정 1정 격침하고, 중, 소형 경비정 5척을 격파하여 북방한계선을 확고히 수호하였다.
이에 해군은 당시 전장이 바라다 보이는 자리에 국방의 의무를 다한 해군 장병의 무훈을 기리고,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자 연평 해병의 전승비를 세웠다.
바다와 어울린 연도교의 밤경치는 연평도 관광의 색다른 풍광을 제공하는데, 특히 연도교의 가로등 불빛이 장관을 연출하여 황홀한 야경을 제공해 준다. 또 북한 해주시의 야경도 좋은 볼거리이다. 또 당섬에서 마을을 연결하는 연도교는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선착장에 세운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
▲ 당섬에서 연도교로 이어지는 곳에 세운 연평해병전승비
▲ 연평해병전승비 옆 돌틈에 넋을 위로하는 듯 핀 해국(海菊)
▲당섬과 마을을 연결하는 연도교
조기섬 동상과 조기역사관
연평도 최남단에는 평화공원, 조기역사관, 등대공원이 있다. 평화공원은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고 든든한 안보와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조성한 공원이다. 공원 중심에 있는 조형추모비는 용치(龍齒, 용의 이빨 모양을 한 해상 방어시설)를 형상화한 추모비로 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25인의 영령을 기리고 있다. 또한 공원 뜰에는 군에서 사용했던 탱크와 장갑차, 헬기를 전시해 안보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조기파시의 풍요로움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조기역사관을 가봐야 한다. 조기 철이면 전국에서 3천여척의 배들이 모여 장관을 이뤘다는 연평도 앞바다. 지금은 조기가 사라져 과거 일이 되었지만 조기는 당시 연평도의 부의 상징이었다. 조기역사관은 연평도 역사와 함께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고,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1층은 조기역사관, 2층은 전망대로 꾸몄다. 관광객들에게는 조기 어장의 내력과 북한의 정경을 관람할 수 있도록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시관 2층으로 올라가면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다. 이곳에서는 1·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장소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연평도는 예로부터 서해어업의 중심이 되었던 섬이다. 지금은 연평도 하면 꽃게를 떠올리지만 예전의 연평도는 조기 파시로 명성이 자자했다. 지금은 한적한 모습이지만, 과거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조기잡이 인파로 연평도 파시는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조기파시촌이 별도의 마을로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1950년대까지 흥청거렸던 연평파시는 조기가 급격히 사라지면서 막을 내렸고 지금은 연평파출소 옆에서 시작되는 조기파시 탐방로를 걷다보면 수많은 벽화 속에서 지나간 흔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제 연평도에는 조기는 사라졌지만, 청정 해역에서는 고급 어종과 어패류 등이 지천으로 깔려 있고, 특히 매년 2월 초순부터 11월 하순까지 나오는 꽃게는 조기가 사라진 후 어민들의 주소득원이 되고 있는데 씨알이 굵고 맛이 있어 최고의 상품으로 인기가 높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어지러운 지역 정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NLL(북방한계선)을 넘은 중국 어선이 저인망으로 뻘 바닥까지 훑어 어족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는데,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당국을 원망하며 대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주민들은 “군·경(軍警)은 북한을 자극할까봐 단속을 게을리 하고 있고, 외교 당국은 중국과의 외교 분쟁을 우려해 중국 어선들의 불법 행위를 방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기역사관 앞뜰에는 두 개의 돌비가 있는데 하나는 ‘조기섬’의 내력을 적은 것이고, 또 하나의 돌비에는 연평도 고유의 민속소리인 “니나나나”와 조기를 퍼 실을 때 부르는 “배치기소리”가 양면에 조각되어 있다.
샘평(소연평) 꼭대기 실안개 돌고, 우리 집 문턱에 정든 님만 돈다.
우리가 살았길래 형님 동생하지, 우리가 죽으면 다 소용 없다네.
서산에 지는 해 지고 싶어지나요, 날 버리고 가신님 가고 싶어 갔나요.
강남 갔던 제비는 다시 돌아오련만, 황천에 가신 님 다시 한 번 못 오나
뱀자(배 임자)네 이즈마이 인심 좋아, 막둥 딸 길러 화장 아이 주었네.
(후렴) 나나나나 니나나나 아니나 놀고 뭣 할소냐.
- 민속소리 “니나나나"
돈 실러 가세 동 실러 가세 연평 바다로 돈 실러 가세
연평 바다에 널린 조기 양주만 남기고 다 잡아들이자.
뱀자(배 임자)네 아즈마이 정성 덕에 연평바다에 도장원했네.
나갈 적엔 깃발로 나가고 돌아올 적엔 꽃발이 되었네.
연평 장군님 모셔 실고 연평 바다로 돈 실러가세
(후렴) 에-에헤야 에헤 에-에헤 에-에헤 에헤 에헤 어하요.
- 배치기소리
그 옛날 삶의 애환이 담긴 노랫말들을 읽노라니, 조기어장으로 파시를 이루었던 그 시절의 삶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건만 그 시절의 명성을 언제 찾을 수 있을지 울컥 가슴이 메어온다.
관광전망대에 오르면 바로 왼쪽 해안으로 빠삐용 절벽이 보이고, 또 북서쪽으로 병풍바위를 비롯하여 옹돌 해변의 기암괴석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다. 또 맑은 날 이곳에 서면 북녘 하늘로 지는 석양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고 안내하는 송영옥 여사가 귀뜸을 한다. 또 여기서는 1999년 6월 15일 발생했던 서해교전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기 어장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조기섬 동상
▲ㅈ조족조기기역사관 건물과 내부
▲연평도에서 바라본 북녘의 바다, 불법 어로작업 중인 중국어선들
▲조기역사관 뒤의 빠삐용절벽(상)과 북서쪽으로 보이는 병풍바위(하)
등대 공원과 빛을 잃은 등대
등대공원은 연평도 남쪽 해안 언덕 위에 있었다. 등대 공원에 들어서는 입구에서 먼저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가 우리를 맞이한다.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 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 구나 눈물의 연평도
어디선가 애절하고 구성진 가요 한 자락이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하다. 노래비 옆에는 육중한 전차 한 대가 전시되어 있어 이곳이 안보상 중요지역임을 말해 준다. 그리고 공원에는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을 위한 소규모 놀이시설이 있다. 여기서 언덕 위로 계단을 오르면 빛을 잃고 다시 점화될 날을 기다리며 퇴색된 등대가 홀로 서 있다.
연평도가 조기어장으로 각광을 받자 연평도는 황금의 조기 파시어장을 이루는 때가 있었다. 각 지역의 어선들이 연평도 앞바다를 메우던 시절 연평도 등대는 이들의 길잡이로서 1930년 첫 점등을 시작하여 찬란한 황금 어장을 비쳐왔다.
그러나 1974년 7월 국가 안보의 목적으로 일시 소등하게 되었고, 1987년 4월 등대로서의 용도가 폐지되면서 현재는 빛도 소리도 내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등대 아래 평지에는 조난어업자위령비가 외로이 서 있다. 어업에 종사하다 세찬 바람과 풍랑에 떠밀려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언제 이곳에 지난날과 같은 풍요와 자유가 찾아올 것인지 기원해 본다.
▲등대공원 입구의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 언덕 위에 등대가 보인다
▲ 용도 폐기된 등대의 모습
▲조난어부위령비
임경업 장군 사당 충민사와 풍어제
연평도 조기잡이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하나 있다. 예전부터 연평도와 서해5도 지역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와 관련이 있는 곳이 연평도의 충민사다.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충민사는 조선중기의 명장 임경업 장군의 사당으로 연평면 사무소 뒤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인조대왕 14년(1636년) 명장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한 후 청나라를 치기 위해 명나라로 가던 중 식수와 부식을 구하기 위해 연평도에 들른 적이 있었다. 마침 간조 시에 안목이라는 곳에서 가시나무(뽀르세나무)를 꺾어 꽂았는데, 조기가 나무가시에 걸려 많은 조기를 포획하게 되었다.
여기서 유래하여 연평도에 어부들이 몰려들어 조기잡이로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그 후 연평도에 우리나라 제일의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파시(波市)가 열리면서, 전국에서 수천 척의 고깃배가 몰려들었고, 어획량이 하도 많아 '연평도 인심'이란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이에 그의 전설적인 지혜를 숭모하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 충민사이다.
해마다 음력 1월 15일을 전후하여 전 주민들이 이 사당 앞에 모여 오색만기를 내세우고, 당굿과 배굿으로 북과 징을 울리며 임경업 장군의 고마운 뜻을 기리고 풍어와 어선의 안전을 기원하는 어민 행렬이 가히 볼만하다. 풍어제를 지내는 이날은 연평도 축제의 날이기도 하다.
▲충민사와 임경업 장군 영정
▲풍어제 (사진 : 연평면사무소 제공)
북녘을 향해 서있는 망향비
또 연평도 동북쪽 언덕 위에는 북녘을 향하여 망향비가 우뚝 서 있다. 두고 온 고향땅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을 모아 북녘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세운 것인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넘어서 이제는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는 듯했다.
어메 뜨거운 심정이 살아 모성의 피 되어 가슴 절절 흐르네.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망향비 하단에 새긴 이 글은 황송문 씨의 시 “망향가” 중의 일부분이다. 늘그막엔 기필코 고향땅을 밟아보겠다는 염원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날은 안개 자욱한 날씨만큼이나 어둡다.
제단에는 누가 다녀갔는지 술병과 술잔, 북어 한 마리 그리고 배. 사과, 감을 담아놓고 접시가 놓여 있다. 아마도 북녘에 부모를 두고 온 실향민이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갈 수 없는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부모를 생각하는 정을 못 이겨 이 망향의 동산에 올랐으리라.
북한이 지척지간인 이곳은 지형적으로 옹진반도가 눈앞에 있어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해주 시멘트 공장의 연기까지 보인다고 한다. 이곳에 서서 두고 온 북녘의 고향과 식구들을 그리워하며 애틋한 마음을 달랜 실향민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 진다.
▲ 북녘땅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망향비와 망향가, 제단에 차려진 제물이 울컥하게 한다.
해안에 즐비한 기암괴석과 오석 해안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아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병풍바위 해안 주변은 몽글몽글한 오석(烏石)이 많아 오석해안(몽돌갱변)이라고 한다. 송곳바위 오른쪽 해변에 있는 거북바위는 십장생에 속하는 장수의 동물 형상이라 하여 연평도 주민이 신성시하고 있다.
주변에는 티타늄 광산이 있어 티타늄 조각이 마모되어 해안에 둥근돌(오석)이 생긴 것인데 썰물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검은 돌들은 가히 수석 수집가들도 탐낼 만한 명물이다. 잔 자갈밭을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와 찜질효과까지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이곳은 북녘땅과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북한 부포리에서 10㎞, 북녘의 대수압도까지 어선으로 15분, 경비정으로 5분 거리로 낮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또 동북쪽 해안에는 송곳과 같이 끝이 뾰족하게 생겼다 하여 송곳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추운 겨울 이 바위에 눈이 내려앉으면 영락없이 아이스크림 모양과 같다 하여 일명 '아이스크림바위'라고도 한다. 그 뒤로 보이는 거북바위는 십장생에 속하는 장수의 동물 형상이라 하여 연평도 주민이 신성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등대 아래 바닷가의 '안고 도는 바위'와 빠삐용이 탈출한 절벽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빠삐용 절벽은 연평도의 자랑거리로, 이 절벽에서 바라보는 일몰 광경은 주홍빛 바다와 하늘이 조화를 이뤄 황홀경을 연출한다. 낙조 사진 촬영대회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외에도 구지도 3개 섬과 개펄 사이로 지는 저녁노을이 유명하며, 마을 앞 모이도 바위섬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은 마치 동해 바다의 일출을 연상할 정도로 장엄하다.
▲연평도 해안 가운데 북서쪽 지역은 우리나라 해안 절경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절경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연평도 서북쪽에 위치한 병풍바위.
▲해변 위쪽에 보이는 건물이 조기역사관과 전망대
▲송곳바위(일명 아이스크림 바위
▲거북바위
구리동 해수욕장과 새마을 해수욕장
연평 북서쪽으로 위치한 구리동 해수욕장은 일명 구룻나루 해수욕장이라고도 한다. 천혜의 자연 해수욕장으로 여기서는 북녘해안이 보인다. 백사장은 1km 길이에 200m 폭으로 완만하여 어린이이들이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다.
또한 기암괴석, 흰 자갈, 모래가 나란히 펼쳐진 곳으로, 모래가 아주 부드럽고 해송이 어우러져 한여름 해수욕을 즐기기에 아주 그만이다. 선착장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이며, 마을에서는 1.5㎞ 거리에 있다.
또 마을 앞쪽에 자잘한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안(1.5㎞ 정도)이 있는데, 물이 맑아 여름철 해수욕을 할 수 있다. 이곳을 새마을해수욕장이라 부른다. 특히 이 해안은 간조 때 조개, 낙지, 게 등을 잡을 수 있어 초등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구리동해수욕장
▲자잘한 몽돌이 끝나는 부분부터 완만한 백사장이 드러난다.
8. 연평도 삶의 현장-안목 어장
연평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어살은 당섬과 모니섬 사이 안목이라 부르는 곳에 있다. 숲이 우거진 모니섬은 당섬과 연륙되어 이어진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연평항으로 들어서서 뱃전의 왼쪽 방향이고, 마을에서는 당섬으로 이어지는 연도교 끝에서 우측으로 나가면 소연평도 쪽으로 거대한 어살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안목 어살이다. 임경업 장군이 뽀르세나무를 꽂자 가시마다 조기의 눈이 꿰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그 현장이다.
안목은 예로부터 연평도 어업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연평도의 물살은 상당히 빠른데 그 중에서 당섬과 모니섬 사이의 길목이 가장 가파르다. 그 물목에 길이 100여m의 어살을 설치하였다. 이 어살은 현재 12명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
예전에는 17인이 공동으로 소유했는데, 고기가 들지 않자 차차 소유권을 정리해 지금은 12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은 어살의 어획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소유권을 사고파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 탓이다.
안목어살은 조기가 많을 때는 수확량이 너무도 많아 ‘안목은 고기 반 물 반’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조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어 농어 같은 고기가 워낙 많이 잡혀 등짐으로도 지고 오지 못할 정도였는데, 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3∼4일에 광어 한 마리도 안 걸린다고 이곳 어부들은 푸념이다. 간재미나 병어 한두 마리가 어쩌다 잡히는 정도란다.
‘삼마이그물’이 들어와 20년이 넘게 불법으로 바다를 훑어대 고기씨가 마른 탓이다. 그러나 그물에 걸린 잔챙이들을 먹이로 삼는 바다갈매기들은 여전히 이곳을 좋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안목어장으로 가는 길
▲물이 빠지기 전, 물 위로 잠겨있는 어살의 말뚝이 보인다.
▲먹이를 위하여 몰려든 갈매기들
천혜의 바다낚시터
낚시 포인트는 안목 어장, 선착장 주변과 주변 갯바위가 모두 낚시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지도(일명 토끼섬), 소연평 주변에선 배를 띄워 놓고 하는 채낚시가 성황을 이룬다. 바다에 낚시를 담그기만 하면 올라오는 손맛에 '물반 고기반'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이다.
낚시철은 5월∼11월 중순까지이며, 물때의 최적기는 매월 음력 8∼12일, 23∼27일,(조금-세마)이며, 적기는 매월 음력 7∼14일, 22∼29(열세마-다섯마)이다. 잡히는 주요 어종은 5∼10월은 우럭, 9∼10월은 농어, 7∼9월은 준치, 수조기, 민어가 잡히며, 그 외에도 광어, 장어, 도다리, 숭어, 장대, 돌돔 등이 있다. 조황이나 출어는 현지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문의 032-831-2921 )
사리 때 연평도를 방문한 사람은 야심한 밤에 썰물 때에 손에 랜턴이나 플래시를 들고 안목어장으로 나가 볼 것을 권장하고 싶다. 박하지(바와지)라는 돌게가 널려 있는데 소라, 낙지를 비롯해서 꽃게철이면 꽃게도 잡을 수 있다.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낚싯배들이 몰려 있다.
연평도 안보교육장
연평도는 북한의 해상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제1·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포격 도발까지 북한의 계속된 도발이 계속되어 왔다. 그래서 아까운 생명(군인과 민간인)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
2010년 11월 23일 자행된 연평도 주민을 향한 무차별한 포격 사건만 하더라도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군인 60명이 부상을 입고 산림 47㏊가 전소, 도로, 전기, 통신, 농·어업시설, 차량과 건물 271동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어 주민들이 큰 충격과 아픔을 겪었다.
연평도 안보교육장은 북한의 만행으로 피폭된 포격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안보교육장으로 조성, 대국민적 현장체험을 통한 안보의식을 강화하고 안보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2년 개관했다. 연평면 연평리 172번지 일대 1,282㎡ 부지에 지하1층, 지상2층 규모로 피폭건물 보존구역과 교육관으로 조성됐다.
피폭건물 보존구역은 피폭된 주택 3개동(539㎡)에 안전 구조물을 보강하고 포격당시 수거한 포탄 잔해와 주민 생활용품 등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해 관람객에게 피폭 당시의 생생한 현장감이 전달될 수 있게 했다.
교육관은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지하에는 대피소를 만들어 관람객들이 대피소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섰고 지상에는 추모실, 전시실, 상영관이 마련됐다. 전시실에는제1·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포격 도발까지 북한의 계속된 도발과 우리군의 대응과 피해상황에 대한 정보와 이미지가 전시되고 있다.
▲안보교육장장과 피폭현장 모습
▲전시실 내의 전시물
소연평도
연평도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원뿔 형태의 작은 섬이 소연평도다. 대연평도에서 3.8km 거리로 지척에 있는 형제 섬이다. 대연평도에 딸린 작은 섬(대연평도 남방 6.4km거리)이라 하여 소연평도라 부르는 이 섬은 214m의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다. 대연평도 쪽에서 바라보면 섬 모양이 삼각형으로 최고봉인 연화봉 정상에는 송전탑이 우뚝 솟아 있다.
선착장에 들어서면 아담한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주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섬을 한 바퀴 둘러 볼 수 있다. 선착장에서 갈매기섬 ~ 연평도등대 ~ 연화봉 송전탑을 거쳐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주민들은 모두 선착장에 모여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 골목은 새로 단장한 벽화로 섬을 찾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4.7㎞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바다낚시 장소가 많아 100여명의 주민들은 농어, 민어, 준치, 우럭 등을 비롯하여 주변 해역에서 굴, 소라 등 패류를 다량으로 어획하고 있다.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조형물은 바로 소연평도의 ‘얼굴바위’다. 마치 사람의 옆모습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이 절벽은 소연평도를 대표하는 명물이다. 예로부터 한결 같이 풍요로운 황금어장을 지켜온 소연평도의 등대는 현재 소등되어 제 역할은 못 하지만 언제나 묵묵히 바다를 향해 서있다. 등대 좌측의 해안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이용하면 얼굴바위가 잘 조망된다.
소연평도 동쪽 일주도로를 따라가면 바닷가에 작고 아담한 시루섬이 앙증맞게 떠 있다. 섬 정상부는 갈매기의 서식지인지 갈매기의 분비물로 인해 온통 하얀색을 띄고 있고, 섬 주변으로 모래톱(풀등)이 드러나 시루섬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연평도
▲소연평도의 명물 얼굴바위
◎여행정보
◈가는길
○ 배편 :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연평도로 가는 플라잉 카페리호 여객선이 8시, 13시 15분에 출항하며, 연평도에서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로 오는 여객선은 10시 30분, 15시 45분에 출항한다. 기상조건에 따라 결항될 수 있으니 인천항 여객터미널( 032-700-2223) 에 확인 요망
○섬 내 교통 : 군내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편이 전혀 없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민박집 차량을 이용해 연평도의 주요 명소를 한번 둘러본 뒤 되돌아간다. 하지만 연평도를 제대로 여행하려면 애초부터 도보나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여객선에 자전거를 실어도 선사에서는 자전거 운임을 추가로 받지는 않는다.
◈먹을 것/잠잘곳
○ 숙박정보
해성여관(032-832-4156), 서해여관(032-831-4555), 황해여관(032-831-5338), 허브펜션민박(010-3129-4332), 갈까마펜션(011-9875-5559), 둘리민박(032-831-8902), 신일민박(032-831-3635), 미영민박(032-831-4327), 연평민박(032-832-1573)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 식당정보
미영식당(032-831-4327), 연동타운(032-831-3705), 서해식당(032-831-4555), 연평회관(032-833-1195), 제일식당(032-831-4363) 등의 음식점이 있다. 대부분 식당들이 생선회, 백반, 꽃게탕, 매운탕 등의 메뉴를 내놓는다.
▲둘리민박에서 별미로 먹었던 바닷가재탕
▲우리 일행을 재워준 둘리민박의 변종현, 송영옥 부부(가운데)와 함께
▲연평도 곳곳에서 손님을 반기는 해당화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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