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도 배미꾸미 조각공원
그 해변의 질펀한 에로티즘
- 조각가 이일호 씨의 작품 세계 -
글·사진 남상학
겨울날씨치곤 지나치게 따뜻하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차를 몰고 나와 인천공항 쪽으로 차를 몰았다. 영종대교를 건너 인천국제공항 방향으로 5분 정도 나오다가 우측 화물터미널, 신도 방향 표지판을 보고 빠져 나온다. 5분 정도 직진하면 삼목사거리가 나오고 우회전하면 삼목선착장이다.
집에서 출발할 때 강화도에나 다녀올까 생각했는데, 늘 하는 버릇대로 오는 도중 방향이 바뀐 것이다. 얼마 전 TV에서 '자그마한 섬 바닷가에 조각공원이 들어서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어느 문화해설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게 모도 섬으로 갈 수 있는 배가 출발하는 삼목선착장에 도착했다.
모도를 가는 배는 카페리(철부선)이다. 이 배는 소위 삼형제 섬으로 불리는 신도, 시도 모도 중에서 육지에서 제일 가까운 신도에만 기착하므로 모도에 가려면 신도선착장에서 하선해야 한다. 신도, 시도 모도는 연도교로 서로 이어져 있어서 걷거나 차량으로 왕래가 가능하다.
삼목선착장에서 건너다 보이는 신도까지는 10분이 면 닿는다. 신도 선착장을 빠져나와 갈림길에서 좌회전해 곧장 시도로 향했다. 신도에 있는 구봉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신도에는 별 볼거리가 없으므로 곧바로 <풀하우스> <슬픈연가> 세트장이 있는 시도로 가기 위해서다. 신도 선착장에서 시도까지는 2.8km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지만, 드러난 갯벌과 정겨운 해안도로, 섬과 섬을 이어주는 다리 등 섬마을만이 지닌 독특한 풍경이 방문자를 즐겁게 한다.
<슬픈연가> <풀하우스> 세트장이 있는 시도를 지나
시도교회 앞에서 촬영장 표지판을 따라가면, 왼쪽 언덕위에 시도리 이장인 박상근 씨 내외가 운영하는 예쁜 펜션 ‘영화 속 풍경’이 나타난다. 유럽풍의 하얀색 목조 건물이다. 오른쪽으로 소금 염전과 그 뒤의 바닷가 풍경이 멋지다.
조금 더 달리면 언덕위에 <슬픈 연가>의 세트장이 나타난다. 이 세트장은 권상우와 김희선 등이 수시로 찾아와 우정과 사랑을 나누던 상징적인 장소. 통유리로 된 2층 방에서 멀리 석양을 뒤로 한 채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 등 화려한 영상 미학이 돋보이도록 세심하게 디자인됐다. 한 동안 실내 개봉을 하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던 건물을 실내를 새롭게 꾸며 개방하면서 관람료 5000원을 받았다. 그후 요금 징수에 대한 비난이 일자 무료개방하면서 관리인도 없어지고 현재 방치상태로 있다.
<슬픈연가> 세트장에서 불과 300미터 떨어진 수기해수욕장 해변에는 <풀하우스> 세트장이 있다. 넓은 백사장이 활처럼 길게 휘어져 있고, 그 아래로 갯벌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또 백사장 뒤로 울창한 숲이 펼쳐져 마치 외국의 어느 해변에 와 있는 듯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이 야외세트 <풀하우스>는 드라마에서 유명 스타 비와 계약 결혼을 한 작가지망생 송혜교가 함께 지내던 곳. <풀하우스>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유럽식 별장으로 무려 8억이라는 비용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이 세트장으로 인해 이미 시도는 관광지로 변했고, 일본이나 중국의 여행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입장료를 내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이미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어 모래사장을 거닐며 바다정취를 마음껏 감상하다 곧바로 모도를 향했다. 거긴 바다를 배경으로 조각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모도의 조각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연도교를 지나 좌회전을 해야 한다.
길목에 있는 모도 초등학교는 폐교 되어 방치되다가 MT장소로 쓰임직한 수련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은 잡초가 우거져 버려진 땅이 되었다. 초등학교 터 앞의 저수지도 지금은 온통 마른 갈대들 차지가 되었다. 표지판을 따라 낮은 언덕 위로 우회전해 고개를 넘어서자 바로 ‘배미꾸미 조각공원’이 마중한다.
모도의 배미꾸미 조각공원
바닷가에 조성된 배미꾸미 조각공원은 조각가 이일호씨가 조성한 공원이다. ‘배미꾸미’는 ‘배의 밑바닥’을 뜻하는 말인데, 모도의 형세가 배 밑바닥을 닮았다고 해서 붙였다고 한다. 바로 바다를 앞에 두고 500여 평의 잔디밭에 그의 대형 조각 작품 3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설치된 그의 조각들은 한결같이 원초적 생의 근원을 묻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상체가 활처럼 휜 여자는 두 팔을 벌려 하늘로 비상하는 듯하고, 성(性)을 주제로 하여 서로 몸을 포갠 남녀의 얼굴은 윤곽만 살아 있을 뿐 나머지는 뻥 뚫려 있다. 바다는 잔잔하지만, 바다 곁의 이일호 조각들은 욕망에 사로잡힌 채 삶에 대해 사유하기를 권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안 한쪽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의 배경으로 사용된 폐선이 있는데 이 역시 하나의 적품 역할을 한다.
지독한 몽상 속에서 펼쳐지는 에로티즘
조각가 이일호의 조각은 한 마디로 에로티시즘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는 문학과 영화, 성, 나르시시즘적 몽상이 깃든 총제적이고 종합적인 예술관을 갖고 있는 조각가로 국내외 화단에서 작품성이 높은 조각가로 정평이 나 있다.
1946년 충남 보령 출생인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5회의 개인전과 수십차례의 단체전에 출품하였고 FIAC '96, NICAF 요코하마 '92, 국제 슈박스전 등의 해외전에 참가하였다. 수상 경력도 화려했다. 중앙일보 미술대전 대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등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 미술세계 뉴-프론티어 대전,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등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현대 조각회와 홍익조각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출강하고 있다. 그의 약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잠시, 작가 이일호 씨에 대하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현대미술학회 C.A.S>에서 내놓은 평가 및 의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그의 조각은 한 마다로 에로티즘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각이라는 3차원의 공간을 통해 에로티즘을 담고 또한 그 속에 담긴 시적 영감, 철학적 사유의 메시지를 조형화하였다. 잠재된 인간의 성적 충동과 나르시시즘, 이에 의한 에로티즘 형상들은 작가 이일호의 자유의지를 반영한다.
"예술을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축약시킨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라는 앙드레 브르통의 말처럼, 에로티즘은 쾌락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사항의 횡포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현대의 모든 예술 역시 유희적 특성을 바탕으로 전통적 관념과 규범 등에서 벗어나기 시작. 따라서 에로티즘의 예술은 관습적 억압에서 인간의 해방을 생각하며, 무의식의 세계까지 넓혀 나가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 세계는 '사랑' 그리고 '죽음'의 세계를 반영한다. '사랑'은 성적 이미지를 통해 시각화한다. 왜곡되고 변형된 신체표현이 특징이다. 자유로운 에로틱한 표현과 솔직한 성적 이미지 묘사를 바탕으로 상상하기 힘든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죽음'의 이미지는 해골로 나타나는데, 젊은 여인의 얼굴과 같이 붙어있는 해골의 조각이나, 비명을 지르는 여인의 누드와 결합된 전신상의 해골 모습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다.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 그 사랑을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조형화하였다.
낭만적인 카페와 펜션
조각가 이일호 씨가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은 리모델링하여 카페 배미꾸미로 오픈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잠시 휴식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카페 배미꾸미는 통유리로 되어있어 조각 작품을 배경으로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다. 에로티시즘이 질펀한 작품과 바다가 어울려 한 몸을 이루는 형국이다.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음료는 각종 우리 차와 허브차, 커피와 쥬스 등이 있고, 간단한 식사를 원한다면 샌드위치, 해초 비빔밥 등을 시키면 된다.
카페 옆에는 3층으로 된 펜션이 있다. 방은 네 개. 방 안에 취사 시설을 해 놓아 콘도나 다름없다. 취사준비를 해 오지 않았다면 카페에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이곳 펜션에서 묵는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방에 앉아 해 질 무렵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감상하는 것. 어디서도 볼 수 없는 1억 원짜리 해넘이다. 다른 편의 시설은 둘째치더라도 낭만적인, 한없이 낭만적인 ‘풍경’에 정신이 홀딱 팔린다.
그 조각들 위로 인천공항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들이 1, 2분 간격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1, 2분 간격이긴 하지만 비행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별과 재회가 동승해 있다. 그러니까 신도·시도·모도에서의 시간은 뭍과 바다와 하늘의 움직임이 더불어 존재하는 공간이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간이다.
해가 기울면서 밀물이 시작되었다. 개펄의 면적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잠간 사이 물이 모래사장 안으로 가득 들어찼다. 포만감 같은 충만(充滿)의 아름다움. 구름 사이로 지는 해가 몸을 숨기는 것을 보아 일몰은 기대하기가 어려워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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