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대금굴
‘억겁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이색체험
글·사진 남상학
2007년 6월 5일, 대금굴이 환선굴 관음굴로도 유명한 강원 삼척시 대이리 동굴지대에 일곱 번째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3년 탐사 끝에 동굴을 발견한 것이 2003년. 길과 조명을 설치하고 최종 공개까지는 거기서 4년이 더 걸렸다.
동굴이 생긴 게 수천만 년 전, 그 뼈대인 바위는 수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이 억겁의 시간을 품어 만든 최고의 걸작품.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거나, 제일 오래된 굴은 아니어도 국내 최초로 열차를 타고 진입할 수 있도록 한 색다른 묘미를 지니고 있다.
* 상쾌한 산책로 따라 동굴 가는 길
환선굴 입구에서 10분만 걸어 올라가면 모노레일 승강장 겸 동굴 안내소인 ‘대금굴 관광센터’가 나온다. 센터까지 가는 길엔 계곡을 건너지르는 다리를 건너 짙은 고동색 데크(deck)가 270m 정도 이어져 있어 가볍게 산길을 트레킹하는 기분이 든다.
오른쪽으로는 물 맑은 계곡이 유쾌하게 흐르고 정면에는 태백산맥 주능선(主楞線)의 일부인 덕항산의 산줄기가 웅장하게 솟아있다. 커다랗고 강한 ‘무엇’이 훑고 지나간 듯 군데군데 거칠게 패인, 높은 산의 우람하고 정직한 모습이다. 한발 내디딜 때마다 눈에 띄게 맑아지는 공기와 울창한 전나무 숲이 동굴 관람을 준비하는 전채 요리처럼 상큼하다.
* 모노레일 타고 출발, 동굴까지 7분
대금굴 관광의 시작은 고동색으로 꾸민 대금굴 관광센터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은하철도 대금호'에 오른다. '은하철도'라는, 풋풋한 이름의 어원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점이 많은 동굴이 '미지의 세계'라는 점에 착안해 '은하철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주황빛 모노레일 덕에 여유롭고 편안하게 동굴로 즉각 진입이 가능해졌다. 동굴 구경 시작도 전 기진맥진해지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산길을 열차로 오를 수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열차는 단궤(單軌) 철도인 '모노레일'로 14인승짜리 세 칸으로 된 42인승. 모노레일이 방문객을 싣고 느릿느릿 산을 올라 동굴 내부 ‘은하역’까지 데려다 준다. 사람의 빠른 걸음 정도인 시속 약 5㎞에 불과한 느린 움직임이어서 산과 계곡의 짙은 녹음(綠陰)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동굴 속을 상상하게 된다.
운전석이 없고 자동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앞뒤좌우로 동굴 안팎이 잘 보인다. 운이 좋아 맨 앞이나 맨 뒤에 앉으면 넓은 앞뒤 유리를 통해 제대로 산 구경을 할 수 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발 밑 물골 공원을 구경할 수 있다. 동굴 내부에 열차를 타고 들어가는 건 분명 이색체험이다.
총 길이 610m 중 4분의 3 정도는 동굴 입구로 향하는 산길이고 나머지는 동굴 안쪽 길이다. 굴의 입구에서 140m까지 인공 터널을 뚫어 관람객을 동굴 안까지 데려다 준다. 모노레일은 승강장에서 동굴 내부 140m에 설치된 ‘은하역’까지는 약 7분 만에 데려다 준다. 동굴에 진입하는 즉시 열차 내부의 조명은 꺼진다.
* 언제나 '섭씨 12도', 물 많은 동굴
은하역 나무 데크에 내려서면 갑자기 시간의 깊이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설명에 의하면 5억년에 걸쳐 이루어진 동굴이라 한다. 길어야 100년에 미치기 어려운, 찰나의 시간을 지구에서 보내는 인간에게 동굴이 살금살금 만들어졌다는 억년 단위의 세월은 상상만으로도 버겁다. 빛이 달려도 수만 년이 걸린다는 밤하늘의 먼먼 별들을 보며 공간의 크기를 생각하듯, 싸늘한 동굴 속을 거닐다 보면 억겁의 존재감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바깥세상과는 완전 격리될 각오를 해야 한다. 휴대폰은 '통화 불능' 상태에 돌입하고 공기의 질감도 달라진다. 굴속에선 당장 세 가지가 몸에 와 닿는다. 어둠, 냉기, 습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태어난 석회 동굴에 밝은 빛은 최대의 적이다.
관광객을 위해 환히 조명을 밝혔다간 이끼. 곰팡이가 바위 표면을 뒤덮는 '녹색 오염'이 생기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대금굴은 어둡다. 은은한 간접 조명뿐이다. 온도는 10~12도로 한낮에도 서늘한 편. 쉬 추위를 타는 사람이라면 긴팔 옷을 챙겨 가는 것이 좋다. 습도는 평균 95%.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아도 '콸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만큼 동굴수(水)가 풍부하다.
* 지축을 흔드는 용울음 - 비룡폭포
대금굴은 다른 동굴에 비해 물이 유난히 많아 '물길 동굴'이라고도 불린다. 장마철이 되면 물의 양이 늘어 동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리자마자 대금굴의 압권인 은하역 인근의 비룡폭포. 승강장 맞은편 왼쪽에 8m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수가 지축을 진동한다. 거의 밀폐된 공간이라 거센 물줄기에 관람용 발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굉음이 대단하다.
어제 이 지역에 많은 양의 비가 내려 굴속에 스며든 물이 크게 불었다는 것이다. 이런 장쾌한 폭포를 굴속에서 보다니! 정말 장관이다. 관람을 위해 설치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 폭포를 옆에서 위에서 대각선에서 여러 차례 다시 만나게 된다.
* 화려한 돌 커튼 - 커튼 광장
비룡폭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큰 커튼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대형 종유석이 나온다. 이른바 종유 커튼. 원래 석회 동굴은 이산화탄소를 품은 지하수가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을 녹이면서 만들어진다. 종유 커튼은 그 석회 동굴에 다시 지하수가 스며들며 만들어진 2차 생성물 중 하나.
작은 틈 사이로 석회암이 녹아내리며 조성된 판(叛)상 종유석이다. 종유 커튼이란 이름은 생긴 모습이 커튼 같아 보인다 해서 붙은 것이다. 대금굴 종유 커튼은 그 길이가 무려 12m로 무척 크다. 비교적 짧은 구간에 다양한 종유석과 석순이 모여 있다는 게 대금굴의 특징이다.
* 층층이 쌓인 황금 계단 - 휴석 계곡
커튼 광장을 지나면 계단 오른쪽에 휴석 계곡이 나온다. 이 구간에도 물은 끊이지 않는다. 왼쪽으로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마주칠 법한 격렬한 계곡이 콸콸 쏟아지고 오른쪽에는 둥글둥글한 휴석(休石) 위로 물이 사뿐사뿐 걷고 있다.
휴석은 경사면을 따라 흐르던 탄산칼슘 용액이 바닥에 고이며 만들어진 것. 작은 언덕이 층층이 쌓여 마치 계단 같다. 정식 명칭은 석회화단구다. 대금굴 휴석은 규석 성분이 많아 붉은 황금빛을 띠며 빛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것이 특징이다. 계단과 계단 사이 층간이 크고 뚜렷해 꼭 다랑논처럼 보인다.
* 동굴 종합선물세트 - 만물상 광장
동굴 2차 생성물의 대명사는 셋이다. 천장에 매달려 자라는 종유석, 바닥에서 위로 솟는 석순, 그리고 이 둘이 맞닿아 이어진 석주. 휴석(休石) 계곡을 지나 위로 오르다 보면 석주가 되다 만 독특한 동굴 생성물을 볼 수 있다. 위에는 종유석, 아래는 석순이 닿을 듯 말 듯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 삼척시에선 가운데 허리 부분만 잘록한 모습에 착안해 '모래시계'란 이름을 붙였다.
'모래시계' 지역을 지나 조금만 더 위로 오르면 대금굴의 하이라이트인 '만물상 광장'에 닿는다. 종유석. 동굴 방패. 곡석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종유석도 막대형. 뚱딴지형. 남성심벌형 등 모양이 제각각이다. 이중 학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막대형 석순이다. 밑동이 넓고 위가 뾰족한 일반적인 석순과 달리 몸통이 가늘고 홀쭉하다. 그중에는 높이가 3.5m나 돼 '여의봉'이라고 불리는 것도 있다.
* 다 풀리지 않은 신비 - 천지연 호수
만물상 광장을 지나면 대금굴 동굴수의 발원지. 대금굴의 백미인 '호수 지역'이 자리 잡고 있다. 세로 60m, 가로 30m의 커다란 호수는 수심이 8~9m에 달한다. 삼척시는 '용소'와 '천지연'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꾸불꾸불 좁고 긴 동굴, 그 가장 안쪽에 이렇게 넓고 깊은 호수가 있다니…. 실제로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믿기 어려운 광경이다. 물속에 설치된 조명 덕분에 맑디맑은 호수 바닥이 참 깨끗하게 들여다보인다. 바닥이 뚫린 관람로와 호수 사이 폭은 두 뼘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동굴 안 호수의 그 많은 물은 산에서 나왔겠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왜 동굴로 흘러 들어오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또 믿기 힘든 사실 하나는 천지연 깊은 물밑에 또 다른 동굴이 있다는 것. 하지만 동굴이 얼마나 깊은지, 또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학자들이 관음굴. 환선굴과 연결돼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 여행수첩 *
* 찾아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동해 톨게이트’에서 나와 삼척 방향 7번국도 10분 정도 가다 보면 38번 국도로 연결되는 분기점으로 나와 ‘태백’ 방향으로 20분 정도 간다. 여기부터는 대금굴 바로 옆에 있는 ‘환선굴’ 이정표가 계속 나온다.
* 관람료 및 예약 : 성인 1만2000원, 중·고등학생 및 군인 8500원, 초등학생 6000원. 삼척시청 홈페이지(www.samcheok.go.kr)를 통하여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다른 동굴과 달리 하루 입장객수를 약 720명으로 제한한다. 깊고 웅장하기로 유명한 환선굴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1만2000원(성인 기준) 하는 입장권 하나만 끊으면 두 동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문의 : 대이동굴관리사무소(033)541-9266
* 먹거리 : 주차장 주변과 매표소 안에 식당이 있다. 이곳이 마땅치 않으면 가까운 동해안 삼척은 시원하고 칼칼한 해장국인 곰칫국으로 유명하다. 삼척 해수욕장 부근 ‘바다마을(033-572-5559)’은 곰칫국 전문 식당이어서 일년내내 곰칫국을 맛볼 수 있다. 새천년 횟집(033-572-2800), 바다이야기(033-572-7009) 등도 자주 찾는 집이다.
* 숙소 : 삼척 해안가에 영화 ‘외출’의 촬영 장소였던 펠리스 관광호텔(www.palace-hotel.co.kr)과 이 호텔 약간 남쪽으로 내려와 있는 파라다이스 모텔(033-576-0411)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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