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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남한강변의 신륵사(神勒寺)와 강월헌(江月軒)

by 혜강(惠江) 2007. 8. 13.

 

여주 신륵사

남한강변의 신륵사(神勒寺)와 강월헌(江月軒)

 

글·사진 남상학

 

 

 

 

 “들은 평평하고 산은 멀다" 신륵사에서 나옹화상과 벗 삼아 놀고, 스님의 행장을 비문으로 남긴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말한 대로  여주는 풍요로운 곳이다.

 

  충주의 월악에서 발원하여 오대산의 물과 합하여 이곳에 이르러 남한강의 상류가 되는 여강(麗江)을 만들고, 그 주변에 너른 여주평야를 끌어안은 여주." 굽이굽이 돌던 한강수가 서울에 이르기 전 한 순간 쉬는 곳. 여주. 그곳 중심을 흐르는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나지막한 봉미산, 이 산의 꼬리가 여강에까지 뻗어 안벽을 이루는 그 남쪽 기슭에 천년고찰 신륵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륵사는 예로부터 그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이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조선시대 문인 김수온은 '여주는 국토의 상류에 위치하여 산이 맑고 물이 아름다워 낙토라 불렸는데, 신륵사가 이 형승의 복판에 있다'고 그 절경을 노래한 적이 있다. 신륵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다. 절 앞에는 남한강이 한 구비 돌아 머물면서 넓은 모랫벌을 만들어 놓았다. 

 

   신륵사는 신라 진흥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로 그 이름을 뒷받침하듯 넓은 광장 중간에 서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경내에는 이성계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절 입구에는 고려 때의 고승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은행나무가 연륜을 자랑한다. 얼핏 지나치기 쉽지만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목은 이색의 문학비도 눈여겨 볼 것 중 하나다.

 

 

 

   신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로 절의 본전인 극락보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과 극락보전 앞에서 신륵사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강월헌 뒤에서 남한강을 여유롭게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에 우아한 자태로 서 있는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보제존자석종(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보제존자석종앞석등(보물 제231호) 등 7종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다.

 특히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보전은 신륵사의 중심건물인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자연석의 주춧돌 위에 흘림기둥을 세우고 다포식 공법으로 지은 조선말기의 건물로 건축학적인 가치가 높다. 대장각기비는 신륵사 대장각의 건립내력을 새긴 비로서 극락보전 서쪽 언덕의 비각에 전한다. 이곳에는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선사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한 2층의 대장각을 지었다. 신륵사의 연혁을 읽어보면 나옹스님이 신륵사에서 열반한 후 신륵사는 거찰로 변모했다고 하는데, 경내에서 잠시 묵상해 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聊無愛而無憎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水如風而終我)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聊無怒而無惜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水如風而終我)

 조용한 산장의 찻집이나 분위기 있다는 음식점 등에 빼놓지 않고 걸어놓은 이 글은 여주 신륵사에서 열반에 든 나옹 스님의 글로 알려져 있다. 나옹은 고려 말의 고승으로 혜근(彗勤)이라고도 쓴다. 속명은 원혜(元惠). 호는 나옹(懶翁) 또는 강월헌(江月軒). 나이 56세, 법랍 37세로 이곳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고려말 보우(普愚)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운 위대한 고승으로 평가 받고 있다.

  철저한 선객이었던 나옹화상은 대중교화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지금까지 남아 전해오는 스님의 수많은 문학작품은 불교의 교법을 확립하고 중생들을 교화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나옹은 어려운 교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성에 호소하는 대중적 언어로 글을 써 스님의 글을 읽는 이치고 감탄하고 동감하지 않는 이 없게 만든다. 요즘말로하면 노래하는 시인이며, 거리의 철학자인 것이다.

 

 


  신륵사를 더욱 유명케 하는 것은 절 앞 강가 절벽에 세워놓은 정자 강월헌(江月軒)이다. 강월헌(江月軒)은 나옹 스님의 호이기도 한데 정자 그대로 이름으로 붙였다. 고려 말 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과 나옹화상이 바로 이 강월헌에서 강물에 비치는 달빛을 보며 정담을 나누었다고 한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한가위에 어디 달구경하기 좋은 곳 없을까’ 질문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되는 곳이 바로 여주 남한강 절벽위의 누각인 강월헌이다. 나옹화상을 다비하던 강변의 반석 위에 높이 9.4m의 다층석탑이 세워져 있는 바로 그 아래 자리잡고 있다.


  강월헌은 신륵사의 경치 중 최고를 자랑하는데, 이 위에 올라앉으면 남한강의 물굽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사방이 툭 터진 정자 위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황포돛배를 단 유람선이 두둥실 강줄기에 떠 있는 풍경이 그림 같다. 특히 휘영청 보름달이 떠오르는 밤에 이곳에 서면 달빛에 젖은 강물과 하얀 은모래 백사장이 한 폭 그림 같은 정경을 보여준다. 
 
   왼손으론 번개를 잡고 (左手捉飛電)
   오른손으론 바늘에 실을 꿴다네(右手能穿針)
   산에 구름 피어나니 정안(定眼)이요(山雲生定眼)
   강 위에 뜬 달엔 선심(禪心)이 서렸구나(江月入禪心)

    - 서산대사의 ‘江月軒(강월헌)’

  서산대사님의 손바닥 안에 건곤(乾坤)이 머문다. 산 구름이 피어나니 그것이 정안이라. 정안(定眼)은 깨닳음의 눈 즉 활안(活眼)이다. 강달에 서린 선심(禪心)이라면 선정 삼매리라. 오늘날에도 강월헌은 절벽위로 넓게 바위가 이어져 있어 연인들이 함께 앉아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되고 있다.

 

 



   신륵사 입구에는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맞은 편 강변에는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어 산사 본래의 호젓한 맛은 잃었지만, 한나절을 즐기기 위한 데이트 장소로는 오히려 편한 구석이 많다. 

   만약 불교신자나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륵사를 둘러보고 근처 불교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목아박물관을 가보자. 목아박물관은 최근 들어 여주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무형문화재 제108호(목조각장)인 목아 박찬수 선생이 수집·제작한 6천여 점의 불교 관련 유물과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나무와 잔디밭 사이로 석탑 등 여러 볼거리가 어우러진 2천평 규모의 야외조각공원은 한가로이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885-9952) 아니면 세계생활도자관이나 세종대왕릉인 영릉, 명성황후 생가가 주변이 있으므로 취향에 맞는 곳을 고를 수 있다. 

 

 

 

 

* 맛집

신륵사 입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음식점이 즐비하다. 이들은 대부분 남한강에서 잡아올린 쏘가리, 붕어, 잉어 등 민물고기를 재료로 한 매운탕집이다. 이 곳에서 잡힌 고기는 해감내가 없고 달착지근해 그 맛이 별미로 손꼽힌다. 용궁식당(031-885-2604)이 터주대감. 시원한 먹을거리를 원한다면 천서리 이포대교 앞 4거리에 형성된 막국수촌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메밀로 만든 막국수의 새콤달콤매콤한 맛이 별미다. 시원한 동치미국물은 내장까지 얼얼하게 만든다. 한방편육 한 접시를 곁들이면 푸짐한 식사가 된다. 강계 봉진 막국수(031-882-830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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