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경포대
관동팔경의 으뜸, 경포대(鏡浦臺)에 올라
글·사진 남상학
강릉 경포대는 경포호 서쪽 수변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정자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에 강원도 안렴사(按廉使)였던 박숙정(朴淑貞)이 당시의 인월사(印月寺) 옛터에 세웠던 것을 조선 중종 3년(1508년) 강릉 부사 한급(韓汲)이 지금의 자리에 옮겼고, 여러 차례의 중수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인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내부의 높이를 달리하고 흙과 마루를 적절히 사용하여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누정에 올라서면 넓은 호수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호수에 비친 달의 운치와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을 함께 볼 수 있다. 특히 경포대로 오르는 언덕위에 늘어진 푸른 노송은 이곳을 더욱 멋스럽게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주로 바다나 해수욕장으로 관심을 쏟기 때문에 경포 호숫가 언덕위에 서있는 경포대는 별 관심이 없어 한적한 곳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경포대는 예부터 동해에서 풍광 좋기로 소문난 여덟 곳(관동팔경)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히던 곳이다.
조선 선조 때의 문인이며 관찰사를 지낸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그의 가사작품인 <관동별곡(關東別曲)>은 경포대를 비롯한 경포 주변의 아름다움과 멋과 풍광을 한껏 노래했다. <관동별곡> 중에서 경포대를 노래한 대목을 보면,
사양(斜陽) 현산(峴山)의 척촉을 므니발와
우개지륜(羽蓋之輪)이 경포(鏡浦)로 나려가니
십리(十里) 빙환(氷紈)을 다리고 고텨 다려
장송(長松) 울흔 소개 슬카장 펴더시니
믈결도 자도 잘샤 모래랄 헤리로다.
고주(孤舟) 해람(解纜)하야 정자(亭子) 우희 올라가니
강문교(江門橋) 너믄 겨틔 대양(大洋)이 거긔로다
종용(從容)한댜 이 기상(氣像) 활원(闊遠)한댜 뎌 경계(境界)
이 도곤 가잔단 또 어듸 잇닷말고
홍장(紅粧) 고사도 헌사타 하리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풀어쓰면,
노을 비낀 현산의 철쭉꽃을 이어 밟아, 우개지륜을 타고 경포로 내려가니,
십 리나 펼쳐 있는 얼음같이 흰 비단을 다린 것 같은,
맑고 잔잔한 호수가 큰 소나무 숲속에 한껏 펼쳐져 있으니,
물결이 너무나 잔잔하여 물 속 모래알까지도 헤아릴 만하구나.
한 척의 배를 띄워 호수를 건너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넘은 곁에 동해가 거기로구나.
조용하구나 경포의 기상이여, 넓고 아득하구나 저 동해의 경계여,
이곳보다 아름다운 경치를 갖춘 곳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과연 고려 우왕 때 박신과 홍장의 사랑이 호사스런 풍류이기도 하구나.
경포대의 이름 『경포대』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의 글씨이고, 정자안의『제일강산(第一江山)』은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 않으며, 정자에 내건 ‘제일강산’이란 현판은 이곳의 경관이 으뜸임을 말해주고 있다.
정자에는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및 율곡이 10세에 지었다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유명한 문장가로 알려진 조하망(趙夏望)의 상량문 등 수많은 명사와 시인묵객의 글을 적은 현판이 걸려 있다. 특이한 것은, 호수를 바라보는 쪽 누대의 단을 한 단 더 높여 놓은 것이다. 이는 방문객들이 주변의 경치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일 것이다. 숙종의 어제시는,
난초 지초 동과 서로 서로 가지런히 감아 돌고,
십리 호수 물안개는 물 속에도 비추이네.
아침 햇살 저녁 노을 천만가지 형상인데,
바람결에 잔을 드니 흥겨움이 무궁하네.
汀蘭岸芷繞西東(정란안지요서동)
十里煙霞映水中(십리연하영수중)
朝噎夕陰千萬像(조예석음천만상)
臨風把酒興無窮(임풍파주흥무궁)
한편, 황희(黃喜,1363-1452)의 “경포대(鏡浦臺)” 글을 소개하면,
해맑은 경포호 초승달을 머금고
퇴락한 찬 솔은 푸른 안개 잠겼네.
땅엔 구름 비단이 가득, 누대에는 대가 가득
티끌세상 중에도 바다 신선이로다
澄澄鏡浦涵新月(징징경포함신월)
落落寒松?碧烟(낙낙한송소벽연)
雲錦滿地臺滿竹(운금만지대만죽)
塵寰亦有海中仙(진환역유해중선)
이곳 정자에 서면 넓은 호수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호수에 비친 달의 운치와 바다 위로 떠오르는, 아름다운 일출의 장관을 바라보노라면 경포호의 여유로운 풍광과 잔잔함이 가슴을 애잔하게 해준다.
경포대와 주변호수는 1981년 강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경내를 정비하기 시작하여 지금 경내에는 신사임당상이 있고, 송강 정철선생의 관동별곡비를 비롯한 한시비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면서 시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곳에 세운 충혼탑은 주변 환경에 비추어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넓은 주차장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포대에서 손꼽을 만한 것은 경포호를 바라보는 풍광이다. 경포호는 호수가 거울처럼 맑다고 하여 일명 ‘경호(鏡湖)’라고도 불리는데 그 뜻은 모두 호수가 거울처럼 맑다는 뜻이다. 호수 한가운데 자리잡은 바위는 각종 철새들이 찾아와 노는 곳으로 새바위라 하며, 조선 숙종 때 송시열(宋時烈)이 쓴 ‘조암(鳥岩)’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이 호수는 옛날에는 어스름 달빛에도 고기가 뛰노는 모양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풍류를 좋아하는 시인묵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와 예찬의 글을 썼다. 이율곡이 이곳 태생이고, 허난설헌이 이곳 태생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 그중에서도 정철의 관동별곡에 나오는 구절이 단연 유명한데, 장엄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 붉게 타오르는 석양, 달밤의 호수경치,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백사청송(白沙靑松)과 해당화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관동최고의 절경이라 할만하다.
경포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경포호는 예전에는 둘레가 무려 삼십여 리에 이르렀으나 토사가 흘러들어 지금은 겨우 십여 리에 지나지 않는다. 호수 주변에는 12개의 정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경포대를 비롯해, 금란정, 경호정, 호해정, 석란정, 창랑정, 취영정, 상영정, 방해정, 해운정, 월파정 등 10개만이 남아있다. 경포 호수 가운데 세워져 있는 월파정(月波亭)에는 새 모양이 세워져 있다.그리고 월파정 바위에는 '조암(鳥巖)'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한다.
경포호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봄이다. 경포대와 호수 주변으로 벚꽃이 만발한다. 정월 대보름에는 이곳 경포대에서 달마중이 유명하다. 또 늦가을이 되면 북쪽에서 철새 들이 찾아와 월동을 한다. 정철이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 했다는 경포대에 저녁이 되어 달빛이 쏟아지면 경포대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하였다. "하늘에 달이 있고, 바다에 달이 있고, 호수에 달이 있고, 술잔에 달이 있고, 더하여 내 님의 눈 속에도 달이 있다. "고. 이 얼마나 멋진 풍류가 깃든 표현인가. 여기서 이율곡이 지은 ‘경포대부’의 한 구절 -
그 봄철에는 동군(東君: 봄을 맡은 신(神))이 조화를 부리어 화창한 기운이 유행하면,
동쪽 서쪽에서는 꽃과 풀이 빼어남을 경쟁하고, 위와 아래는 무로가 하늘이 똑같이 맑아라.
유안(柳岸)의 실버들에는 연기가 노래하는 꾀꼬리 집을 봉쇄(封鎖)하고,
도원(桃源)의 꽃에는 이슬이 나는 나비 날개를 적시네.
아른거리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먼 봉우리가 아득한가 하면,
향기로운 비가 어부(漁父) 집에 뿌리고 비단 물결이 모래톱에 일렁인다.
이에 거문고를 뜯으며 옷을 벗으면 기수(沂水)에서 목욕한 증점(曾點)의 즐거움을 방불케 하고,
바람에 임하여 술잔을 들면 세상을 근심한 범 희문(范希文)의 심정*을 상상하게 하네.
- 경포대부(鏡浦臺賦)의 한 부분
<주> 심정 : 강호에서 나라를 걱정한다는 뜻으로, 송(宋) 나라 명신 범 희문(范希文)이 악양루(岳陽樓)기문(記文)에서 "총욕(寵辱)을 다 잊고 술잔 잡고서 바람에 임하면 그 즐거움이 양양(洋洋)하다." 하였다는 내용.
강릉시의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6km, 여기서 경포대해수욕장까지는 1km 더 가야 한다. 경포대 해수욕장은 경포호와 바다 사이에 생성되어 있는 사빈으로 6km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주위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또한 곳곳에 산재하는 해당화는 한층 아름다움을 더한다. 부근에는 오죽헌, 선교장, 허난설헌, 허균 생가 터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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