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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돼지곱창 구이집 '신창집' 최초의 돼지곱창 구이집 '신창집' 돼지곱창 대중화 시킨 원조 삽교곱창 월간외식경영 / 글·사진 심상용(원조코리아 기획 팀장) 충청남도 예산과 당진에 펼쳐진 예당평야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삽교읍내. 그 조그만 시골 소읍(小邑)에서 '돼지곱창구이'라는 메뉴를 개발해 47년간 전통과 명맥을 이어온 우리나라 최초의 돼지곱창 구이집이 있다. 바로 '삽교곱창', '삽다리곱창'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돼지곱창의 원조, 충청남도 삽교읍내의 돼지곱창·전골 전문점들의 원조 삽교곱창 이다. 의 정소득 여사는 특별한 곱창 손질법을 개발해 최초로 돼지곱창구이를 선보여 높은 가격으로 일반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소곱창 대신 돼지곱창으로 곱창요리를 대중화했다. 고향 버리고 삽교로 들어와 호구지책으로 선술집 시작해 지금의 삽교에서 .. 2011. 5. 2.
100년의 맛, 이문(里門)설농탕 100년의 맛, 이문(里門)설농탕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실장 사진·엄태헌 기자 겨울이 되어서야 송백의 푸름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날이 지고 새면 멀쩡했던 식당이 어느새 사라지고 또 새로운 식당이 생기는 요즘, 꿋꿋이 수십 년 이상을 버텨온 노포들의 모습은 자못 송백의 기상에 가깝다. 예전 화신백화점 뒤, 지금의 종로타워 뒤편에 10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 그래서 더욱 존재감이 부각되어 보인다. 이 집의 개점연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902년 설과 1905년 설이 있는가 하면 1907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맞든 100년, 한 세기가 지난 것만큼은 틀림없다. 100년 동안 세 가문에서 맛과 경영 이어와 의 첫 주인은 홍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이 가게.. 2011. 5. 2.
없어서 못파는 통영 명물 '오미사꿀빵' 통영 명물 '오미사꿀빵' 사람에 대한 배려와 손맛의 정감 담긴 원조의 맛 월간외식경영 / 글·사진 심상용(원조코리아 기획 팀장) 40여년 전, 경상남도 통영의 골목길에서 간판도 없이 미국의 원조 밀가루를 배급받아 만들어 팔기 시작 해 인근 통영여고, 충일여상 학생들을 통해 맛이 알려지며 통영의 대표 명물이 된 것이 있다. 바로 충무 . 현재 창업주 정원석 옹(76세)에 이어 그의 아들 정창엽 대표(오미사꿀빵 도남점 대표)가 대를 이어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 부자의 꿀빵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울의 춥고 매서운 날씨,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무주구간의 눈보라를 뚫고 진주에 이르자 따뜻하고 화창한 봄 날씨가 취재진을 반겨주었다. 따뜻하고 화창한 통영의 날씨는 눈 뿐 아니라 눈길을 달려온 취재진의 긴장감까지 녹이.. 2011. 5. 2.
해조류 음식, 자연맛 그대로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 해조류를 이용한 음식 자연맛 그대로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의 해조류 월간외식경영 글·김여진 기자 사진·엄태헌 기자 요오드, 망간, 아연, 칼슘, 철 등의 미네랄과 알긴산 등의 섬유질이 풍부한 해조류가 몸에 좋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김, 미역, 다시마를 제외하면 친숙한 해조류를 찾기 어렵다. 청정지역으로 유명한 제주도는 섬이라 해조류가 육지보다 다양하고 널리 활용되고 있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양식이 쉽지 않기 때문에 100% 자연산 해조류를 채취하며 타 지역에 비해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아직 해조류를 활용한 요리가 많지 않지만 지금처럼 해조류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웰빙 콘셉트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으로 새로운 식재료를 찾는.. 2011. 5. 2.
다동의 '용금옥(湧金屋)', 장안의 재사들 모여 낭만의 일화 남겼던 곳 서울 다동의 '용금옥(湧金屋)' 장안의 재사들 모여 낭만과 기행의 일화 남겼던 곳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실장 사진·엄태헌 기자 1932년 신석숭(申石崇) 홍기녀(洪基女) 부부가 처음 문 열어 은 1932년 신석숭(申石崇) 홍기녀(洪基女) 부부가 처음 문을 연 추탕집이다. 서울 한복판 청계천 다동에서 무교동으로 나가는 어귀에 자리 잡았던 . 이곳을 드나들었던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당시 의 위상과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집의 단골손님 중 세상 사람들이 알만한 인사로는 정치인 유석 조병옥과 이만섭을 비롯하여 문인으로는 수주 변영로, 월탄 박종화, 팔봉 김기진, 공초 오상순, 김성한, 정지용, 구상, 언론인으로는 선우휘, 이용상, 이관구, 최상덕, 고정훈, 홍종인, 만화가 김용환, 이홍우 등이 있다. 이.. 2011. 5. 2.
청담동 '피어에비뉴', 캘리포니아 롤이 맛있는 집 청담동 '피어에비뉴' 캘리포니아 롤이 맛있는 집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변귀섭 기자 롤은 날생선 먹지 않는 미국인 입맛에 맞게 스시 변형시킨 것 음식도 그 내력을 추적하다보면 생활문화사의 일부로서 정치 경제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 경제적으로 패권을 장악한 세력의 음식이 주변세력의 식탁까지 점령하는 장면을 역사의 페이지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된다. 고도 성장기를 거친 일본기업들이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높아진 엔화 강세를 배경으로 9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 뉴욕․LA․하와이에 있는 큰 빌딩과 노른자위 땅을 마구 사들였다. 미국인들은 일본의 ‘미국부동산 사냥’을 보면서 일본과 일본경제에 대해 선망의 시선을 보냈다. 바로 이 시기에 일본의 엔화 강세만큼이나 미국에서 위세를.. 2011. 5. 2.
녹번동 '우주미', 곰국시에 담긴 디아스포라의 꿈 녹번동 '우주미' 곰국시에 담긴 디아스포라의 꿈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변귀섭 기자 진한 곰국물에 말아낸 국수, 곰국시 곰탕 하면 기자가 한 때 근무했던 어느 대기업체 사장님이 떠오른다. 그는 재계는 물론이고 정계와 문화체육계에서도 두루 활동했던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부하직원들과 사적인 술자리에서 어려웠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가끔씩 들려주곤 했는데, ‘아버지와 곰탕’편이 그분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레퍼토리다. 막노동을 하셨던 그분의 아버지는 평소 ‘곰탕 한 그릇에 소주 한 병만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고 한다. 그 후 자식들이 장성하여 이른바, 출세를 하고 생활이 안정된 이후에도 그분 아버지는 어떤 값비싼 산해진미보다 당신 아들이 사주는 ‘곰탕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2011. 5. 2.
삼전동 '도나우', 은은한 풍미의 '연탄구이 돼지불고기' 삼전동 '도나우' 은은한 풍미의 '연탄구이 돼지불고기' 월간외식경영 이정훈 기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꿈을 안고 외식업에 진출한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직장생활을 정리한 샐러리맨 출신이다. 이재윤 사장도 그런 경우. 이른바 명문대학을 나와 대기업체에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한 뒤 고심 끝에 창업하였다. 이 사장은 페인트를 취급하는 대기업체 지역 본부장으로 일했다. 그는 직장생활 중 동료들과 식사를 하러 가면 ‘나도 저런 식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몇 해 전부터 점점 건축경기가 나빠지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결국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평소 하고 싶어 했던 외식업으로 진로를 결정했지만 어떤 아이템으로 할 것인지 고심했다. 그러다가 고향 대구에서 인기 있는 메뉴였던 고추장불고기를 생각해내었.. 2011. 5. 2.
경기도 양평 몽실식당, '도래창’을 아시나요? 경기도 양평 몽실식당 '도래창’을 아시나요? 월간외식경영 이정훈 기자 ‘소나기’의 고장 양평은 지금도 5일마다 3·8장이 선다. 중앙선 양평역 건너편에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쓰는 장터가 있고, 장터 너른 마당 앞에 이 있다. 이 식당은 요즘 ‘도래창’으로 새로운 맛을 찾는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도래창은 돼지의 횡격막을 둥글게 잘래낸 일종의 특수부위다. ‘도래’라는 이름과 같이 봉제인형의 손바닥처럼 통통하고 둥글넓적하게 생겼는데 쫄깃한 씹는 맛과 고소함이 그만이다. 도래창 맛을 손님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닭똥집 맛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집 주인장 김동운 사장은 도축장에 다니는 동네 선배들이 일 끝나면 자기들끼리 뭔가를 맛있게 구워먹는 것을 가끔 보았다. 김 사장이 찾아가 먹어보니 역시 맛이 괜찮았다.. 2011. 5. 2.
당진 안국사지, 고려왕조 수호하던 호국사찰 당진 안국사지 고려왕조 수호하던 호국사찰 지금은 몇 점의 유물과 절터만 남아 옛 영화를 짐작게 해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 보물 제100호인 안국사지 석불입상 * 우리나라에는 안국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이 여럿 있다. 무주 적상산의 안국사가 대표적으로 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고찰이다. 안국사(安國寺)는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호국 사찰'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주 안국사가 조선왕조를 수호하기 위한 사찰이라면, 당진 안국사는 고려왕조를 수호하던 사찰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된 몇 점의 유물들과 절터만 남아 있을 뿐, 그 옛날의 번성했던 영화를 찾아볼 길이 없다. 1530년 조선 중종 25년)에 간행된 '해미현조'에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라는 기록이 나오지만 사찰의 창건 연대는 정.. 2011. 5. 1.
삼척 갈남리, 천태만상 갯바위의 파노라마 삼척 갈남리 천태만상 갯바위의 파노라마 해안 절벽 사이로 갈남, 신남 아름다운 갯마을 풍경 * 한적하고 아름다운 포구 갈남마을 * 삼척에서 원덕 쪽으로 내려가노라면 맹방, 궁촌, 용화, 장호 등의 해변이 숨바꼭질하듯 나타난다. 산자락을 자른 듯한 낭떠러지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해안도로 언덕 위에서 굽어보는 해안선 풍경이 그림 같다. 그러다가 장호리를 지나면 아담한 어촌인 갈남리가 손짓한다. 삼척시 원덕읍에 속해 있는 갈남리는 해안 절벽을 사이에 두고 1리인 갈남 마을과 2리인 신남 마을로 나뉜다. 갈남 마을은 천태만상의 갯바위가 운치를 돋우는 아름다운 포구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스치듯 이곳을 지나친다. 언뜻 보면 평범한 어촌일 뿐이지만, 비밀스러운 속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다소곳이 숨어 있는.. 2011. 5. 1.
거제시 공고지, '꽃의 천국'서 봄 정취를 즐기다 거제시 공고지 '꽃의 천국'서 봄 정취를 즐기다 동백나무 터널, 종려나무 숲 지나 노란 수선화 물결이 반기네 * 공고지 언덕에서 굽어본 안섬 내도 * 경상남도 거제시는 6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불과 아홉이고 인적 없이 동식물만 살아가는 무인도는 53개에 이른다. 거제시를 이루는 많은 섬 중에서 가장 크면서 대다수 인구가 살아가는 곳은 거제도다.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며 많은 경승지를 품고 있다. 거제도의 많은 경승지 중에서 봄의 정취를 호젓하고 오붓하게 느낄 수 있는 비경 지대로는 단연 공고지(공곶 마을, 鞏串)가 손꼽힌다. 거제도 최대의 항구로 매우 북적이는 장승포에서 이곳까지 불과 10여km 거리에 있지만 찾는 이가 별로 없어 한.. 2011. 5. 1.
안동 가송리, 낙동강 상류의 아늑한 강마을 안동 가송리 낙동강 상류의 아늑한 강마을 아름다운 소나무와 푸른 강물 어릴 적 시골 외갓집 떠올라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쏘두들에서 굽어본 고산협과 학소대 * 청량산 축융봉(845m) 서편 자락을 휘어 감고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상류의 맑은 물을 끼고 아늑한 강마을이 앉아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마을이다. 농촌진흥청 및 환경부가 농촌전통테마마을 및 생태우수마을로 지정한 마을이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가송(佳松)이요, 금상첨화로 푸른 강물도 어우러지니 경치야 말할 것도 없다. 찾아갈 고향이 없는 도시인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던져주는 곳으로 어릴 적 시골 외갓집을 떠올리게 하는 정경이 펼쳐진다. 퇴계 이황 선생도 이 강변을 즐겨 거닐며 시를 읊조리곤 했다. 안동 도산서원 입구와 봉.. 2011. 5. 1.
영흥도, 그 아픔의 세월 영흥도, 그 아픔의 세월 - 그것이 가슴 저린 내 그리움일 줄이야 글 · 남 상 학 * 영흥도 진두 갯벌 * 나는 기분이 울적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서해의 작은 섬 영흥도(永興島)를 찾는다. 영흥도는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인천에서 뱃길로 1시간이나 떨어진 외로운 섬이었다. 그러나 2001년 선재도와 영흥도 간의 연육교인 영흥대교가 개통되면서 뭍과 이어졌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이 섬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에게 영흥대교의 개통은 감격과 환희 그 자체일 것이다. 서해에서 백령도 다음으로 큰 섬이지만 전체 둘레가 15km 남짓해 자동차로 30분가량이면 둘러볼 수 있다. 내가 이 섬을 즐겨 찾는 이유는 한국전쟁이 한창(1952년)이던 때 이작도(伊作島)에서 이곳 영흥도로 이사 와서 어려운 생활고.. 2011. 4. 23.
이작도(伊作島) 섬 아이 이작도(伊作島) 섬 아이 - 아, 잊을 수 없는 유년의 추억이여 - 글 · 남 상 학 “섬은 / 누군가를 / 하염없이 기다리다 바다 한 자락을 베고 / 몸으로 졸고 있었다.” * 마을 앞 바다에서 본 이작도 큰말 정경 * 섬은 그리움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섬은 숙명적으로 고립과 단절이라는 이미지를 안고 있다. 그래서 섬이 지니는 그리움은 곧 외로움이 된다.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섬으로 들어간 나는 초등학교 시절 동안 서해의 한 외로운 섬 이작도(9년)와 영흥도(1년)에서 산 철부지 섬 아이였다. 나는 그 때 이작도 섬마을 선생님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 섬에 발을 디뎠다. 바닷가 사택에서 자란 나는 바다와 함께 철이 들었다. 잠에서 눈을 뜨면 넓게 펼쳐진 바다와 섬들, .. 2011. 4. 23.
내 고향은 어디? 내 고향은 어디 ? 글 · 남상학 " 나는 ‘당신의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오히려 내게는 고향을 묻기보다 출생지, 성장지를 구별하여 묻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 내가 유년시절 10년간 살았던 이작도 장승 * 라디오나 TV 음악프로에서 고향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누구나 가슴이 뭉클해진다. 조영남의 번안가요 “내 고향 충청도”의 정겨운 노랫가락을 들을 때도 그렇다. ‘1.4 후퇴 때 피난 내려와 살다 정든 곳 두메나 산골,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나를 키워준 고향 충청도 ⋯ ’ 비록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자신을 키워준 곳이기에 그는 남다른 애착으로 충청도를 노래한 것이다. 조영남과는 반대로 나는 1940년 3월 2일 충청남도 서산군 성연면 왕정리 240번지.. 2011. 4. 23.
지혜로운 나의 어머니 지혜로운 나의 어머니 글 · 남상학 "헌신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더욱 빛난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이 아니었으면 전쟁 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태에서 어찌 우리가 일어설 수 있었을까.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우리 가정의 인생역전은 한 마디로 어머니의 눈물 어린 희생과 헌신의 결과였던 것이다." 나의 어머니(의:義자, 동:東자)는 청주 한씨 집안의 상(庠)자, 원源)자 외할아버지의 1남 5녀 중 둘째딸로 1906년 3월 2일에 출생하셨다. 유복한 농가에서 태어나 14살 때 같은 마을에 살던 아버지와 결혼하셨다고 한다. 위로 딸 넷을 낳았으나 셋째 딸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잃은 뒤 나를 포함하여 아들 셋을 낳으셨다. 천성이 온화하고 인자하셨던 어머니는 엄한 성격의 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를 각별한.. 2011. 4. 21.
올곧은 선비, 나의 아버지 올곧은 선비, 나의 아버지 글 · 남 상 학 "선비형의 아버지는 명예나 재물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고향 서산에서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마다하고 '낙도의 교사로 자원했던 것도 욕심 없이 어린 아이들의 교육에 헌신하려는 열정 때문이었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나는 두 살 때(1941) 서해의 작은 섬 이작도(伊作島)로 이사했다. 서산군청 농업기사로 계셨던 아버지(成자, 熙자)가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 식구는 나를 포함하여 넷(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나), 그곳에서 남동생(상범, 상우) 둘이 태어났다. 이작도는 인천에서 여객선을 타고 1시간여 가야하는 낙도로 이 섬의 큰말에는 영흥초등학교 이작분교가 있었다. 이작분교는 2개의 교실에서 6개 학년이 2부제로 공부하는.. 2011. 4. 21.
진주성, 촉석루 아래 남강(南江)엔 논개의 넋이 흐르고 진주성 촉석루 아래 남강(南江)엔 논개의 넋이 흐르고 글·사진 남상학 * 남강 너머로 보이는 촉석루 * 진주성은 호국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특히 논개(論介)의 장렬한 죽음과 관련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있는, 일명 촉석성(矗石城)이라고도 하는 진주성은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강(南江)을 끼고 있는 석축산성으로 외성의 둘레가 약 4㎞이다. 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하륜(河崙)의 성문기(城門記)에 따르면 조선시대 이전인 것이 분명하다. 본래 백제 때는 거열성지(居烈城址)였으며, 고려 말기부터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 방어시설의 보완이 시급했는데, 본래 토성이었던 것을 1379년 고려 우왕 5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석성으로 개.. 2011. 4. 14.
경남 고성, 옛적 공룡들의 낙원이었던 상족암과 공룡박물관 경남 고성 공룡들의 낙원이었던 상족암과 공룡박물관 글·사진 남상학 ‘고성’하면 누가 뭐래도 옛적 공룡발자국 화석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통영, 거제의 자연 풍광을 즐기는 맛에 취해서 고성 땅을 밟으면서도 고성에 펼쳐진 천연기념물들을 그대로 지나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국내 최초로 문을 연 공룡테마박물관인 고성 공룡박물관을 비롯하여 억겁의 세월이 함축된 ‘노천 자연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상족암군립공원의 최고 매력 포인트 상족암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따라서 나의 고성 여행은 천혜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1억 년 전 백악기 대륙으로의 여행인 셈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언덕 위로 올라서자 공룡을 상징하는 거대한 조형물인 공룡탑이 방문.. 2011. 4. 12.
거제 옥포대첩 기념공원,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넋이 잠들다 거제 옥포대첩 기념공원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넋이 잠들다 글·사진 남상학 * 옥포대첩 기념공원 * 김영삼 대통령의 생가 및 기록전시관에서 나와 거제도 동쪽 해안을 따라 내려와 해전사에 빛나는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혼이 담겨있는 옥포대첩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옥포대첩 기념공원은 거제시 옥포 2동에 위치한다. 옥포대첩 기념공원은 1592년 5월 7일, 전라 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현재 대우조선이 위치한 옥포만에서 침략 행위 중이던 왜선 50여척 중 26척을 격침시킨 것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른바 옥포해전(玉浦海戰)으로 불리는 이 전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살펴본다. 「1592년(선조 25) 4월 일본군이 부산진과 동래를 함락하고 계속 북.. 2011. 4. 11.
거제 작은 포구 대계마을의 김영삼 대통령 생가 및 기록전시관 거제 작은 포구 대계마을 김영삼 대통령 생가 및 기록전시관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1383-3) 글·사진 남상학 거제도 여행은 관광여행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을 날듯, 때로는 바다를 헤치듯 펼쳐진 해안 일주도로, 산자락 커브길을 돌 때마다 펼쳐지는 눈부신 해변과 아기자기한 마을들이 조화를 이루며 절경을 만들어 내고, 그 길을 따라가면 해안에는 몽동해수욕장 등이 펼쳐지고, 마을 구석구석마다 계곡과 호수, 자연휴양림이 반기고, 옥포대첩기념공원, 포로수용소 등 역사유적지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해금강으로, 외도와 내도로, 동백섬 지심도로 떠나는 해상 유람은 섬과 바다의 환상적인 합주곡이다. 그 동안 나는 여러 차례에 걸친 거제도 여행에서 거제도의 중부 이남 쪽에 치중했다. 자연의 비경은 중부 .. 2011. 4. 7.
창원 진해 해양공원, 해양관광의 기상 고취 창원 진해 해양공원 해양 관광도시의 기상 고취 (경남 창원시 진해구 명동 656, 055-712-0403) 글·사진 남상학 경남 창원시 명동 음지도에 위치한 해양공원은 해군본부로부터 무상 양여된 퇴역함(강원함)을 활용하여 한국 제일의 군항도시에 걸맞은 해양공원을 건립하여 해양관광도시의 기상을 고취시키는 역사·문화·교육 체험장이다. 시설로는 해양솔라파크, 어류생태학습관, 해전사 체험관, 해양생물테마파크, 군함전시관, 해안데크로드, 음지교 등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해양솔라파크는 음지도 해양공원 내에 건축연면적 7,576㎡ 건축물로, 전시동과 태양광 타워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일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태양광 모듈 600kW), 최대 높이(136m)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다. 창원의 랜드마크 중 하나.. 2011. 4. 6.
진해 제황산 공원,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진해 중심공원 진해 제황산 공원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진해 제황산 공원 (경남 창원시 진해구 제황산동 산 28-6) 글·사진 남상학 *진해 제황산공원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정상에 높이 솟은 것은 진해탑이다. 진해를 말할 때 누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군항도시나 벚꽃을 떠올릴 수 있다. 진해는 임진왜란 때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문화유적이 많다. 1952년 4월 13일에 북원 로터리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제막하면서 시작된 추모행사가 진해 군항제로 이어졌고 지금은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 시기에 맞춰 시내 전역에 벚꽃이 만개, 벚꽃 축제도 함께 열린다. 벚꽃의 만개에 앞서 진해에 찾아온 우리는 벚꽃으로 유명한 여좌천, 경화역을 제쳐두고 제일 먼저 진해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 2011. 4. 6.
남상학의 자전에세이집 <아름다운 동행> 출간 남상학의 자전에세이집 「아름다운 동행」 아름다운 동행(同行)에 감사하며 어느 덧 희수(稀壽)를 넘어섰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다. 70을 넘어서면 겸손한 마음으로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성서는 인간을 가리켜 ‘거류민과 나그네’(벧전 2:11)라고 표현했다. ‘거류민과 나그네’는 자기 고장을 떠나서 객지에서 임시로 살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 땅 위에서 사는 인생길은 길든 짧든 나그네 길임에 틀림없고, 언젠가는 천상병 시인의 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존재인 것이다. 인생을 여행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인간은 우연히 이 땅에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어느 한 생명도 하나님의 .. 2011. 3. 6.
안면도 천상의 옛집, 간고(艱苦)의 생애를 살다간 '귀천'의 시인 안면도 천상병의 옛집 간고(艱)한 생애를 살다간 '귀천'의 시인 글·사진 남상학 * 안면도에 복원된 천상병 시인의 옛집 * 국내 예술계의 3대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천상병(千祥炳: 1930~1993) 시인, 시인의 옛집을 찾아가는 날은 봄기운이 완연했다. 안면대교를 건너 마치 차창 밖 풍경이 시화전에 걸린 액자처럼 눈에 들어오는 섬, 안면도 그 종단 길을 따라 휴양림 입구, 상촌 삼거리, 지포 저수지를 차례로 지나 누동 삼거리에 이르면 대야도 어촌체험마을 입구를 알리는 대형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아래에 시인 천상병 고택으로 가는 화살표가 보인다. 천상병 시인의 옛집은 ‘시인의 섬’으로 잘 알려진 안면읍 대야도에 복원되어 있다. 본래 생가로 불리는 집은 의정부에 있었다. 그러나 이 집 역시 생가는 아니다.. 2011. 3. 2.
김포 덕포진, 산책하기 좋은 문화유산 답사지 김포 덕포진 산책하기 좋은 문화유산 답사지 경기도글·사진=신성순 여행작가 * 김포 덕포진 진지로 가는 길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의 바닷가에 자리한 덕포진은 강화의 초지진 및 덕진진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통한 외세의 침공에 대비해 설치한 조선 시대의 군영이다. 설치된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현종 7년(1666년) 이미 강화에 예속된 진이었으며, 조선 숙종 5년(1679년)에는 강화의 광성보, 덕진진, 용두 등의 여러 돈대와 함께 이곳에도 돈대가 축성되었다. 넓이는 4만 8794㎡에 이르며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92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조선 고종 3년(1866년) 9월의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와, 고종 8년(1871년) 4월 신미양요 때 미국 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 2011.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