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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촉석루 아래 남강(南江)엔 논개의 넋이 흐르고

by 혜강(惠江) 2011. 4. 14.

진주성

촉석루 아래 남강(南江)엔 논개의 넋이 흐르고 

 

·사진 남상학

 

 

 

* 남강 너머로 보이는 촉석루 *

 

  진주성은 호국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특히 논개(論介)의 장렬한 죽음과 관련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있는, 일명 촉석성(矗石城)이라고도 하는 진주성은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강(南江)을 끼고 있는 석축산성으로 외성의 둘레가 약 4㎞이다.

  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하륜(河崙)의 성문기(城門記)에 따르면 조선시대 이전인 것이 분명하다. 본래 백제 때는 거열성지(居烈城址)였으며, 고려 말기부터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 방어시설의 보완이 시급했는데, 본래 토성이었던 것을 1379년 고려 우왕 5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7차례 중수되었고 주로 왜구를 방어하는 기지로 사용되었다. 1437년(세종 19)에 성을 새로 쌓아 완성시켰다. 이때에 3개의 못물을 성 북쪽에 모이게 하고, 그 사이에 참호를 파서 적의 접근을 막는 일종의 해자(垓字) 구실을 하게 했다.

 

 

안내도
의암



  이곳 진주성에서 왜적을 맞아 벌인 전투는 우선 195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10월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한 것을 들 수 있다. 진주는 아군 군량의 보급지라 할 수 있는 전라도로 가는 길목이므로 이곳을 빼앗기게 되면 전라도 지방을 방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진주성민은 굳게 뭉쳐 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성을 지켰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평가되는 제1차 진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남강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험준한 성벽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나 이듬해(195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7만여 명의 민관군이 최후까지 항쟁하다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치열한 전투 끝에 진주성이 함락되자, 일본군은 촉석루에서 전승기념 잔치를 벌였는데, 전사한 최경회의 애첩이였던 기생 논개는 촉석루 아래의 바위로 적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之助)를 유인하여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죽음으로 그 의로운 기개를 떨쳤다. 이 바위를 가리켜 의암(義岩)이라 불렀다.  신문학 초창기에 주로 민족의식을 고취한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는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 충절(憂國忠節)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수주는 우국충절이라는 이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진부한 관념에 빠지지 않고, '강낭콩'·'양귀비꽃'·'아미'·'석류'와 같은 토속적 분위기의 소재를 빌어 참신한 이미지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의 '푸른 강물'은 '영원한 역사'를 상징하므로 진주 남강이 마르지 않고 푸르게 흐르는 한, 논개의 충절도 역사와 더불어 영원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항적 색채로 말미암아 이 작품이 수록된 시집 {조선의 마음(1924)}은 발간 직후 일제로부터 판매 금지 및 압수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러한 호국의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진주성의 가치를 고려하여 1972년 촉석문을 복원하였고, 1975년에는 공북문을 복원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외성의 둘레를 4km로 쌓고, 내성은 1.7km에 이르며, 성곽 안에는 정문인 촉석문과 후문인 공북문, 그리고 망루인 촉석루와 서장대, 북장대를 비롯하여 사찰로는 호국사가 있고, 사당으로는 하공진 장군을 모신 경절사, 충절의 여인 논개를 모신 의기사, 임진왜란 때 전몰한 순국영령들을 모신 창렬사가 있으며,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으로 명성이 높은 국립진주박물관과 문익점의 장인이자 베틀을 발명하여 의생활을 혁명을 일으킨 정천익 선생을 모신 청계서원 등 많은 주요 시설물들이 있다.

  촉석루는 진주성의 정문 입구로 왼쪽 편 남강 쪽으로는 시인 변영로의 논개 헌시가 있고, 입구를 통과하면 정면으로 바로 촉석루가 가장 먼저 보인다. 촉석루는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국내 '3대 명루'로 꼽히는 대형 누각이다. 고려말에 지어져 임진왜란 때 지휘소로 사용됐다. 굽이쳐 흐르는 남강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누각을 찾아와 숱한 묵객들이 읊고 또 읊었다. "퇴계도 읊고 다산도 읊고 좌우간 이 땅 역대 글쟁이 중 촉석루에 와 시 한 수 읊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그 중 촉석루 가장 왼쪽에 걸려있는 농포 정문부(農圃 鄭文孚, 1565-1624)의 시를 보면,

 

 

    龍歲兵焚捲八區   임진년 전화가 팔도를 휩쓸 적에

    魚殃最慘此城樓   무고한 재앙이 성루에 가장 처참하였어라

    石非可轉仍成矗   굴릴 수도 없는 돌이 이내 촉석 이루었네

    江亦何心自在流   강은 또한 무슨 맘에 절로 절로 흐르는가

    起廢神將人共力   폐허를 일으킴에 신과 사람 힘 모으고

    凌虛天與地同浮   허공을 능지르니 천지가 함께 떴네

    須知幕府經營手   모름지기 알리라 막부의 경영 솜씨

    壯麗非徒鎭一州   한 고을만 장려하게 진압할 뿐 아님을

 

 

 

  이 시의 원제는 '차촉석루운(次矗石樓韻)'으로, 내용으로 보아 임란 후 1618년에 중건한 직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란으로 불타버린 촉석루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동적인 장면이 드러나 있고, 그로 인하여 자부심을 회복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임진왜란 대 의병장이었던 그는 경성을 수복하고 회령에 진격하여 반란을 평정하였으나, 1624 년에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던 끝에 죽었다. 

 

시인 묵객들이 이토록 진주 땅에 몰려든 건 경치도 경치거니와 그 유명한 진주 기생 때문이기도 했겠다. 북에 평양 기생이 있고 남에 진주 기생이 있었다. 미색을 갖추고 학문·예술에도 조예 깊은 이들이었다. 이들 중에 논개도 있고 산홍도 있다. 

 

  오른쪽 편으로는 호국의 종과 더불어 1592년 진주대첩의 승전과 1593년 전몰한 7만 민관군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임진대첩계사순의단이 있다. 의기사는 충절의 여인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촉석루 뒤편으로 담을 이웃하고 있으며, 입구에는 시인묵객들이 바친 충절을 찬양한 시비들이 있다. 

  이토록 진주성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역사의 보고이며, 아름다운 남강과 절벽에 지어진 진주성과 잘 조화된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건축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 촉석문 *  

 

 *  촉석루와 뒤 성벽 일부 *

 

 * 촉석루에 걸린 액자들 *

 

 * 촉석루 뒤문으로 내려가면 논개의암사적비가 있다. *


* 논개가 적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유인, 투신한 바위 곧 의암(義岩) 모습 *

 

* 논개 사당인 의기사와 논개 영정 *

 

 * 임진왜란 대 의병을 모으다 순직한 제말장군과 그의 조카 제홍록 장군의 충의를 새긴 쌍충 비각

 

 

 * 진주성의 후문인 공북문, 안에서 찍은 것임  * 

 

 

 * 국립진주박물관, 임진왜란 관련 유물 800여 점 전시 *

 

 

  *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승병들의 넉사을 기리는 호국사 *

 

 

 * 진주성 서문의 지휘소, 서장대 * 

 

  * 진주성 북쪽의 지휘소 북장대. 진람루라고도 불림 *

 

  *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를의 전몰자를 기리는 창렬사 *

 

 

 * 경상남도 관찰사 감영의 정문인 영남포정사(일명 망미루) *

 

*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대첩에서 순절한 김시민 장군 동상 *

 

 * 진주대첩과 전몰자를 기리는 임진대첩계사순의단 *


 * 진주성벽 안에서 찍은 남강 주변의 모습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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