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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옥포대첩 기념공원,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넋이 잠들다

by 혜강(惠江) 2011. 4. 11.

거제 옥포대첩 기념공원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넋이 잠들다 

 

·사진 남상학

 



* 옥포대첩 기념공원 * 

        
  

 김영삼 대통령의 생가 및 기록전시관에서 나와 거제도 동쪽 해안을 따라 내려와 해전사에 빛나는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혼이 담겨있는 옥포대첩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옥포대첩 기념공원은 거제시 옥포 2동에 위치한다.
    
  옥포대첩 기념공원은 1592년 5월 7일, 전라 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현재 대우조선이 위치한 옥포만에서 침략 행위 중이던 왜선 50여척 중 26척을 격침시킨 것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른바 옥포해전(玉浦海戰)으로 불리는 이 전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살펴본다.

  「1592년(선조 25) 4월 일본군이 부산진과 동래를 함락하고 계속 북상하자,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은 율포만호 이영남(李英男)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이순신은 포구에 있던 수사(水使)들을 여수 앞바다에 모아놓고 의견을 수합하여, 여수 좌수영을 떠나 거제 앞바다에 가서 원균의 군사와 합세하기로 결정했다. 이어서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에게 급사를 보내 원균의 군사에 함께 가담할 것을 연락하고, 이를 조정에 알렸다. 5월 5일 이른 아침 출항하여, 이튿날 전라·경상 양도의 모든 장수들이 한산도에서 합석하여 작전계획을 짜고 송미포(松未浦)에서 결진했다. 7일 전함대가 동시에 출항하여 옥포 앞바다에 이르러 전열을 가다듬고 일제히 포구를 향하여 공격을 시작했는데, 이때 왜선 50여 척은 선창에 정박하고 일본군들은 포구로 들어가 분탕질을 하고 있었다. 조선군이 급습을 가하니 일본군도 대포와 활로써 대항하여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일본군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치고, 조선군은 승리를 거두어 왜선 26척을 격파하고 포로가 되었던 조선인 3명을 구출했다.」(야후 백과사전 참조)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의 침공에 의해 시작된 임진란 초기에는 왜군의 파죽지세로 진행되었으나 옥포대전의 승리는 옥포·합포․적진포 해전의 승리에 결전적인 역할을 했고, 이에 조선수군이 해전에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옥포 해전은 임진왜란 첫 승첩이며 우리 수군에 자신감을 안겨주어 계속적인 승리를 가능하게, 해전의 승리를 통해 임진왜란의 종결을 가져오게 한 우리나리 역사상 값진 전승지라 할 만하다.

 

 

*기념관 *



  1957년 옥포 승첩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해 유서 깊은 옥포만이 내려다보이는 옥포동 산 1번지 일대에 1991년 12월에 기공식을 갖고 33,037평 규모로 조성한 기념공원이다. 기념공원에는 기념관(전시관)을 비롯하여 높이 30m의 기념탑과, 참배단, 옥포루, 팔각정 등을 건립해 1996년 6월에 준공하였다. 옥포루에 오르면 정면으로 보이는 옥포만의 푸른 바다가 환히 내려다보인다. 공원에서는 매년 6월 중순에 3일간 옥포대첩기념제전 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되는데, 기념식을 비롯하여 제례행상, 문화예술, 민속, 이벤트 행사 등이 다양하게 진행된다고 한다.  공원 안쪽에 옥포만 방파제가 있는데 이곳에는 강태공들이 모여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옥포대첩 기념공원 안내도 *

* 옥포대첩 안내판 *

 

* 전시관 출입구 안족에 설치한 북 *

* 일본의 침략과 그에 맞서 싸우는 광경 * 

 

* 왜군을 격멸시킨, 해군사에 빛나는 거북선 *  

 

 

* 일본군을 격퇴시키는데 사용된 총포, 군관 및 해전 모습 * 

 

*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과 난중일기 *

 

* 옥포루 *

 

* 기념탑과 참배단 * 

 

*옥포루에서 내려다 본 옥포만  풍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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