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련1790 (시) 과원에서(성숙) 과원에서 - 성숙 남상학 여름의 이마 위에 입맞춤하는 햇살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눈부신 햇과일 열렸구나 하늘 베개 삼고 누운 내 뜨락 당신 나무에 단맛 나는 열매로 내가 열리는 날은 그 언제일까?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9월의 시 2020. 1. 4. (시) 포도(은혜) 포도 - 은혜 남상학 하늘 청아한 소리 여름 뜨락에 주렁주렁 열렸네 갈맷빛 하늘에 목축이고 따스한 햇볕 받아 알알이 영근 포도송이 오랜 날 기도의 샘물 퍼 올려 상큼한 바람으로 빚어낸 단맛이여!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8월의 시 2020. 1. 4. (시) 갈릴리 어부(순종) 갈릴리 어부 - 순종 남상학 물고기 떼 펄펄 그분과 함께하는 만선(滿船)의 기쁨이라면 “사람 낚는 어부 되라” 정든 것을 버리고도 기쁠 수 있는 우린 순명(順命)의 사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자.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7월의 시 2020. 1. 4. (시) 서로 손 잡고(부부) 서로 손 잡고 - 부부 남상학 산 넘고 바다 건너 숨 가쁜 길을 서로 손 잡고 뜻을 모으는 재미 해 뜨고 달 지는 꿈길에 아, 가도가도 정겨운 물보라 빛 세월 은혜의 텃밭에 꽃을 가꾸네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7월의 시 2020. 1. 4. (시) 새해 / 남상학 새 해 - 남상학 둥근 해를 보아라 창을 열면 온 누리 눈 뜨는 아침 출발의 이 자리 우리들 설레는 가슴에도 커다란 동그라미 하나 부푼 꿈 소망을 실어 하늘 높이 연(鳶)을 띄운다.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1월의 시 2020. 1. 4. (시) 사랑의 서사시(십자가) 사랑의 서사시 - 십자가 남상학 어둠 깔린 산등성이 쓴잔(盞)을 마시고도 얼굴에는 빛나는 광채 그건 창조 이래 최대의 서사시 아픔의 무게만큼 환한 그 사랑, 그 은혜 없었다면… 나는 다만, 무릎 꿇고 눈물로 바라볼 뿐이네!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4월의 시 2020. 1. 4. (시) 3월의 환희 (개화) 3월의 환희 - 개화(開花) 남상학 싱그런 봄 뜨락에 하늘 꿈 담아다가 인고의 땅에서 기도로 피운 눈물인가 신생하는 천지에 천사들의 고운 합창 온통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반가운 복음이네.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3월의 시 2020. 1. 4. (시) 하늘 꿈꾸는 사람 (돌베개) 하늘 꿈꾸는 사람 - 돌베개 남상학 돌베개 베고 누워 하늘에 닿은 꿈속 사다리를 보네 천상을 오르내리는 눈부신 옷깃 하늘 꿈꾸는 사람아 어디를 가나 너를 축복하시리.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2월의 시 2020. 1. 4. (시) 꽃밭 / 남상학 (시) 꽃밭 남상학 깊은 잠에서 눈 뜬 온갖 생명이 일제히 얼굴을 씻고 환호한다. 얼어붙은 땅 오랜 기도의 씨앗들이 맑은 이슬 머금고 천의 만의 꽃으로 피어 사랑하는 이를 향해 두 손 받쳐 들고 고운 잇속 들어내 활짝 웃는다 불면의 밤을 새우며 피눈물로 뜨겁게 피워 올린 아픈 사랑의 이야기들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 고백인가 안으로 속삭이며 애태우던 비밀스런 가슴 이제야 열어 놓고 환한 얼굴로 당신의 뜨락에서 숨 쉬는 기쁨 언제 그이는 오실까 은총의 햇살로 빚은 향기 가득 드리고 싶어 밤낮없이 발돋움하는 마음인데 싱그런 바람 불면 곱게 머리 빗고 한나절 찬미의 꽃술 흔들며 춤을 추다가 푸른 옷자락 내걸린 그리운 하늘가로 너울너울 수천 마리 나비 떼를 날린다. 2020. 1. 3. (시) 어느 아침 / 남상학 (시) 어느 아침 남상학 먼동 트기 전 이른 아침 젖은 길섶에 가늘게 눈 뜨는 풀꽃들의 미소 눈 부신 햇살이 긴 목을 빼고 나뭇가지의 새 둥지 앞에서 잔칫집에 초대된 손님처럼 기웃거린다 순간 번쩍이는 금화를 흩뿌리며 빈 하늘 가득 솟구치는 날갯짓 푸르고 싱싱한 복음이듯 들려오는 청아한 생명의 노랫소리 푸른 소나무 언덕 넘어오는 싱그런 바람에 앞산 위로 흘러가는 뭉게구름처럼 맑은 정신이 되살아 온다 감당할 길 없는 눈부심 속에 두고두고 마음으로 익힌 얼굴이 부서지는 햇살 사이로 선명하게 다가오고 나는 풀꽃들이 반기는 냇가 길섶에 앉아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는다. 2020. 1. 3. (시) 사냥개 / 남상학 (출처 : pxhere) (시) 사냥개 남상학 어둠이 휘장을 내리는 밤이면 골목에 숨어 엿보던 사냥개가 음모를 품고 내게 다가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계엄을 선포한다 온몸에 야광처럼 와 박히는 비수 번쩍이는 푸른빛에 손발 묶인 나는 더 도망칠 수가 없다 경계를 풀 때마다 달려들어 사정없이 내 지친 육체를 물고 늘어진다 묻어나는 살점, 선연한 핏자국 부끄러운 삶의 비린내가 사방으로 퍼진다 육신을 얽어매는 덫의 가시여, 끝내 영혼마저 탈진하여 쓰러지고 막다른 골목에서 나는 항복한다 풀어낼 수 없는 가위눌림 나는 좀처럼 일어설 수가 없다. 2020. 1. 3. (시) 추억 · 3 -겨울 햇살 / 남상학 (시) 추억 · 3 - 겨울 햇살 남상학 그해 겨울 서울 변두리 응봉동 비탈진 언덕에 둥지 틀고 푸른 하늘 우러르며 칼을 베는 바람 등지고 살았네. 참새가 떼 지어 날아와 기웃거리는 가난한 빈방 창가에 소록소록 눈이 쌓이고 오로지 언 몸 녹이는 불씨 하나 살아 그 타오르는 불꽃으로 피워낸 우리들의 사랑 긴 밤을 밝히는 마음 하나로 새 생명을 길러내고 때 묻지 않은 하얀 손수건에 따스한 겨울 햇살 받아 하늘을 베개 삼고 살았네 전신주에 바람이 울고 있는데…. 2020. 1. 3. (시) 추억2 -젖은 안개꽃 / 남상학 (시) 추억 · 2 - 젖은 안개꽃 남상학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수동리 장대비 사정없이 두드리던 날 물안골을 휩쓴 흙탕물이 입석 수련장을 끼고 휘돌아 나갔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각처에서 모여 무릎 꿇고 앉은 자리 밤이 깊어가며 마음은 비워지고 뜬눈으로 밤을 밝힐 때 어둠을 한 꺼풀씩 벗기며 먼동 트는 새벽 아침 안개를 거느리고 한 다발 물기 젖은 안개꽃으로 아아, 기적처럼 너는 왔다 한여름의 반란 먼 산이 허물어지는 소리 산사태 혹은 개벽 과거 일체의 어두운 기억들을 씻어 버리는 이 엄청난 소용돌이 초록의 숲은 더욱 푸르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더욱 빨라지고 하늘 문이 열리는 소리 그것이 평생 끊지 못할 사랑일 줄이야! 뜨겁게 흐르는 은혜의 강 건너 초록 숲에 맑은 빗방울 소리 없이 듣는 은총에의 감사를.. 2020. 1. 3. (시) 추억 1 - 유년의 추억 / 남상학 추억1 - 내 유년의 기억 남상학 1 무릇 둥굴레 고아 먹고 어지러워 멀미하는 세월이었네. 돌쩌귀에 살점이 쩍쩍 달라붙는 겨울 진물 흐르는 부어터진 손마디로 꺼져 가는 화톳불 불씨를 뒤적거리다 한기에 지친 몸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 2 언 땅에 팽이를 돌리던 친구야 토시 끝에 매어 달린 가난의 흔적 양잿물 잘못 먹고 뒤집힌 너의 눈동자 그 악몽의 기억에 놀라 잠을 깨면 눈가에는 땟국 같은 눈물이 흐르고 하얗게 바랜 얼굴을 하고 핏방울 엉킨 젖은기침 소리를 목젖에 삼키곤 했지. 3 허기져 쓰린 배 움켜잡으며 꽁꽁 언 땅, 비탈진 언덕배기 채소밭을 오르내린 지 몇 번인가? 호미 끝에 걸리는 생존의 무게 손가락 크기의 고구마나 배추 꼬리 주우며 칼로 베어내는 아픈 살점을 우적우적 씹고 있었지. 4 누이 따라 .. 2020. 1. 3. (시) 무덤 앞에서 / 남상학 (시) 무덤 앞에서 남상학 다시는 죽지 않아 외롭지 않으리. 꿈꾸어 온 꽃자리에 영원히 살아 그대 외롭지 않으리. 고향 마을 양지바른 언덕 한 무더기 바람으로, 한 떨기 꽃으로 한 무리 날아가는 새들 벗 삼고 울음의 강 건너 죽음의 강 건너 생명 나무 우거진 숲속에 아련히 화답하는 찬미 소리 들으며 더 이상의 가슴졸임도 없는 더 이상의 두려움도 없는 목 늘여 기다리는 애태움도 없는 피눈물 한 방울도 없는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고 그래서 어제가 내일인 영원 속에 사는 자여 한평생 믿음으로 살아 그 넓은 품에 안기는 빛으로 둘러싸인 영광 그 감격의 내력을 일깨우며 양지바른 언덕 지금 그대 얼굴 오래오래 내 가슴에 살아 영원히 외롭지 않으리. 2020. 1. 3. (시) 성묘 / 남상학 (시) 성묘 남상학 충청남도 아산시 기산동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달려와서 양지바른 곳 아버님 어머님 뜰에 불효자식들이 나란히 섭니다 얼굴 한 번 보신 적 없는 사위 자부들까지 옛날 집 앞의 미류나무처럼 서서 뜨거운 사랑 가슴 뭉클하여 두 손 모아 넙죽 큰절을 올립니다. 외딴 섬 큰 바위 얼굴로 사신 아버님 긴 겨울밤 촛불 밝혀 새우시던 어머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셨지만 우리는 늘 부끄러움인 채로 그 문밖에서 하염없이 눈물 같은 비에 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어주신 고귀한 사랑 여기 잔디밭에 피어나는 들꽃처럼 아버님 어머님 뜰에 한 떨기 아름다운 꽃으로 피우겠습니다. 하늘보다 높으신 그 모습 우러러 불효자식 사남매가 짝하여 서서 오늘은 아버님, 어머님 뜰에 한 아름 카네이션 붉은 꽃을 바.. 2020. 1. 3. (시) 아내를 위한 소묘(素描) / 남상학 (시) 아내를 위한 소묘(素描) 남상학 초가 지붕에 박꽃 피는 가난한 집 처마 끝에 둥지 튼 햇살로 두 아이의 눈을 틔우고 어둠이 묻어 있는 방안에 예지의 불을 밝힌다. 하고많은 날 바람 찬 세월의 고비고비 안으로 다스리는 아픔과 수고 잔잔한 주름살이 늘어가도 광주리에 가득 담은 상큼한 햇과일로 양지쪽 결 고운 항아리에 진한 포도주를 빚었구나 고운 빛깔과 향기로 함께 걷는 길 어느 때고 부르면 이내 달려와 방울 소리 앞세우고 내 곁에 서는 여자 '나는 언제나 당신을 위한 종이에요' 묻기도 전에 대답하는 여자 그대는 영원한 나의 리베* 무상으로 나누는 웃음소리에 우리의 정원엔 사시사철 목련이 핀다. (주) 리베(liebe) : 아내의 이름 석 자를 가리키는 음성 및 의미부호. lie(이)+be('종'을 가.. 2020. 1. 3. (시) 두꺼비 손 / 남상학 (시) 두꺼비 손 남상학 좀처럼 나를 칭찬할 줄 모르는 아내가 나의 두꺼비 같은 손은 좋다고 한다 만나서는 반갑다고 기뻐하고 헤어질 때는 섭섭하다고 아쉬워하고 살면서 우리는 손을 흔들어 악수한다 깡마른 것보다는 두툼한 것이 낫고 차가운 것보다는 따스한 것이 낫고 손끝에 간신히 잡히는 것보다는 덥석 쥐는 것이 인색하지 않아서 좋단다 아침저녁 물빛 하늘만 쳐다보고 양손 마주 잡아 빚어 만드는 온기(溫氣) 손은 내가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다 두꺼비 같은 손이 좋다고 하며 오늘도 아내는 나의 손을 잡는다. 2020. 1. 3. (시) 아내의 빨래 / 남상학 (시) 아내의 빨래 남상학 아내의 빨래 솜씨는 늘 익숙하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놀다 돌아오면 어둠을 묻혀 왔을까 조바심하는 눈치 어쩌다 밤늦게라도 내가 돌아오는 날에는 한숨을 숨겨왔을까 안절부절못하면서 우리 집 식구의 옷은 유난히도 더러움을 잘 타는 물빛이어서 그렇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밤늦도록 빨래를 한다 세상에서 묻혀 온 어둠과 한숨은 재빠른 아내의 손끝에서 곧바로 시커먼 땟국으로 빠지고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름과 얼룩들은 밤새도록 뜨겁게 흐르는 눈물에 삶아낸다 작은 몸집에 어디서 그리 큰 힘이 나오는지 아내의 부지런한 손끝에서 하얗게 표백되는 우리들의 하루 아내의 빨래는 하루도 거르는 날 없이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서툴지 않다. 2020. 1. 3. (시) 또 다른 크리스마스 / 남상학 (시) 또 다른 크리스마스 남상학 눈을 비비고 보아도 아기 예수는 그 어디에도 없다 첫 번 크리스마스의 빛나던 별은 거대한 굴뚝의 매연 뒤로 숨고 오토바이 행렬만이 줄지어 선 거리 호텔과 카페 앞 크리스마스트리에 밤낮없이 명멸하는 불빛 유행가 풍의 캐럴이 발길에 밟힌다 소돔과 고모라의 밤이 깊어가면서 모두가 휘청거리는 ‘메리 크리스마스’ 휘황찬란한 장식 뒤로 남몰래 흘리는 눈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차가운 종탑 위의 십자가는 오늘 밤 왜 이리 아프고 선명한가? 2020. 1. 3. (시) 가을 빈자리 / 남상학 (시) 가을 빈자리 남상학 갈대숲이 머리 풀고 흐느낀다 바람 부는 황량한 들길 뭉게구름 피어오르던 여름 그 날의 향연은 끝나고 가을이 빈 수레를 끌고 온다 텅 빈 자리 모두가 낯설고 두렵다 이웃들은 모두 떠나고 또 친구들은 어디 갔는가 벌판에는 홀로 허수아비만이 지키고 있다 허공을 가르는 한 떼의 기러기 아득히 사라지는 세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뜨락에서 이마에 주름진 나이만큼 홀로 깊은 고독에 잠긴다 쓸쓸히 참새 떼 흩어져 날아간 아스라한 언덕 위 오늘따라 십자가 없는 교회당은 왜 이리 초라하고 쓸쓸한가 먼 나라로 떠난 종소리 쉴 곳 없어 떠도는 영혼을 찾아 다소곳이 기도의 손을 모은다 가을 텅 빈자리 채워야 할 양식을 위해 …. 2020. 1. 3. (시) 늦가을 오후 / 남상학 (시) 늦가을 오후 남상학 양수리 강을 끼고 돌아 용문산 가는 길가의 은행나무는 마른 손을 비비며 서성거린다 이제 막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는 봉두난발 한 한 무더기 코스모스를 짓궂은 바람이 맨 가슴 밟고 지나간다 목화송이처럼 부풀어 오르던 꿈이 뭉게구름을 타고 흘러 넘는 산허리 어느새 짙은 가을색으로 물들었다 모두 황급히 돌아가는 계절 앞에서 시인 정지용의 향수를 흥얼거리며 나는 왜 이리 목이 메는지 그걸 알아차린 듯 기적소리 토해내며 힘겨운 중앙선 화물 열차가 빈 들판을 가로질러 몸을 숨긴다 이 휘청거리는 늦가을 오후 하얗게 머리 푼 갈대숲으로 우수수 몸을 숨기는 낙하의 몸짓 이제 한 무더기의 바람이 텅 빈 가슴을 휩쓸고 떠나면 나는 미완성의 아쉬움 안고 또 얼마나 기나긴 기도를 올려야 할까 세월의.. 2020. 1. 2. (시) 모닥불을 피우며 / 남상학 (시) 모닥불을 피우며 남상학 타오르는 모닥불 곁에 별들이 속삭이며 내린다 제각기 빛을 거느리고 와서 왁자지껄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지상에 베푸는 천상의 축제 어둠을 불사르고 작은 소망의 불꽃 하나 이야기꽃으로 피워 올린다. 거리를 잴 수 없는 곳에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는 발광체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열려 있을 때 비로소 하늘이 보이고 천상과 지상을 잇는 태초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 속에서만 울리는 장엄함 그 거룩한 신비의 현을 뜯으며 영혼은 더 맑게 눈을 뜨고 부서지는 빛살의 충만으로 나는 거룩한 나라 백성이 된다 타오르는 빛 둘레에서 이리도 밝은 세상 아, 오늘 밝음 속에 은혜의 불 밝히고 반딧불처럼 살아나는 의식을 위하여 별들과 짝하여 앉아 긴 밤새워 모닥불을 피운다. 2020. 1. 2. (시) 파도야, 파도야 / 남상학 (시) 파도야, 파도야 - 청간정에서 남상학 저 파도는 누가 보낼까 바람이 자면 노래이다가 바람이 일면 흐느낌이 되는 저 파도는 누가 보낼까 밀고 당기며 끝없이 출렁이는 한바다의 폭풍에 부대끼던 목숨 노래는 가고 눈물만 남아 고꾸라지고 엎어지고 얻어터지고 오열하며 달려와 넙죽 엎드리는 절대의 복종, 절대의 신앙 검은 머리채 풀고 누워 물결 구비구비 싱싱한 물고기 떼 넓고 큰 가슴에 나를 품어 세상의 온갖 남루를 빨듯 내 영혼을 흔들어 헹구는 신비의 하얀 절정 누가 저 파도를 내게 보낼까 어디서 저 파도를 내게 보낼까 파도야, 파도야. 2020. 1. 2. (시) 3·8 휴게소를 지나며 / 남상학 (시) 3·8 휴게소를 지나며 남상학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발걸음은 언제나 설렌다. 새잎이 돋아나는 것을 바라보는 낯선 풍경, 경이로운 눈길 산등성이 위로 뜨겁게 타오르는 햇살 바다와 맞닿은 곳에서 피어나는 새털구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나를 반기고 순간, 일제히 뜨는 바닷새가 친구 하자고 날개 치며 환영한다. 발길 머문 곳 따뜻한 차를 나누어 마시는 3.8 휴게소, 왁자지껄한 사투리의 억양 속 이름 모를 앳된 얼굴이 해당화 붉은 꽃으로 핀다. 그리움 가득 안고 이대로 북으로 달리면 어딘가 설악을 지나 꿈에서나 보는 일만 이천 봉 금강인가 아니면 신선이 노닌다는 그 어디인가? 만나는 마을마다 내가 꿈꾸는 자유마를 손짓하여 부르는 잡목 사이로 달리는 차창은 늘 새롭다. 2020. 1. 2. (시) 봄이 오는 길목에서 / 남상학 (시)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남상학 봄기운이 찾아 들어 채 눈뜨지 못한 나무들이 봄바람 속에 속앓이한다. 시간은 한 치의 오차 없이 흐르고 달려 한동안 닫혔던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지난겨울 폭설과 눈보라 온몸으로 이겨 온 인고의 땅, 맨살로 버틴 의지 어느덧 화단 어귀에도 모진 생명이 하늘을 향하여 눈을 번쩍 떴다. 나무는 잔기침하며 일어서고 가지 사이 새들이 고운 목청을 뽑아 푸른 하늘로 끝없이 그리움을 날릴 때 오늘, 이 풋풋한 대지 위 봄이 오는 길목에서 골방 깊숙이 갇힌 영혼에 날개를 달고 하늘 향해 힘껏 솟아오르고 싶다. 2020. 1. 2. (시) 봄의 서곡 / 남상학 (시) 봄의 서곡 남상학 산들이 기지개를 켠다 오랜 가위눌림에서 일어나 들 바람 앞세우고 걸어온다 백만대군의 함성처럼 초록의 파도가 밀려오는 들녘 시냇물 소리가 경쾌한 목소리로 남국의 설화를 속살거린다 고무줄 튀어 오르듯 참새떼가 대지 가득 넘쳐나누나 눈으로 귀로 집중되는 생명의 소리 이 속삭임, 설레임 시들었던 의식의 새싹이 돋아날 때 잠자던 감성이 살포시 눈을 뜬다 친구여, 어깨에 쌓인 어둠을 털고 길고 긴 계절의 터널에서 나서라 소망의 꿈이 대지에 지천으로 살아나는 자유와 평화의 땅에 울려 퍼지는 한 편의 교향악 신생하는 천지 이 감당할 수 없는 복음 닫힌 귀를 열고 피부 속으로 촉촉이 젖어오는 봄비를 맞는다. 2020. 1. 2. (시) 꽃샘추위 / 남상학 (시) 꽃샘추위 남상학 불거진 늑골 사이로 바람이 칼날을 세우며 지나간다 잡목 사이 숨었던 복병들이 일제히 소리지르며 달려나가는 한랭한 전선 목이 부러진 겨울나무의 아픈 환부에 무수히 산탄이 박힌다 아무런 방비도 없는 오오, 겟세마네 그 날 오욕(汚辱)의 화살 맞으며 당신이 거기 그렇게 피 흘리는 나무로 서 계셨을까 살기 가득한 눈을 뜨고 다메섹 언덕으로 치닫는 함성 앙상한 가지 사이 어느 날 샛바람 불어오고 한 무리의 짐승이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다 깊숙이 빠지는 날 눈 속에서 복수초 꽃잎 피어나듯 어둠 속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는 그 아픈 사랑 생목피(生木皮) 찢으며 눈은 뜨리라 찬 바람 부는 벼랑 끝에서도 겨울나무로 버티고 서서 조용히 봄을 가꾸는 일 얼마나 큰 보람인가. 2020. 1. 2. (시) 기적은 오리라 / 남상학 (시) 기적은 오리라 남상학 동녘 햇살이 누리에 퍼지듯 기적은 홀연히 오리라 예언은 가고 때가 차서 첫눈 내리는 아침 앙상한 가지 끝에 하이얀 눈꽃이 피듯 그렇게 기적은 오리라 곱게 가꾼 신부의 꿈 순결을 심어 놓은 하늘 별자리에 축복의 나래를 펴고 아른거리는 임의 형상이 살아나고 어디선가 정적을 깨는 천상의 소리 무한히 뻗어나는 청각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순은을 반짝이며 쏟아지는 이 엄청난 눈사태 동굴 속에 숨었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와 하늘을 덮는다 이때 비로소 지상은 천 길 깊이로 함몰되고 새날을 환영하는 나팔소리, 북소리 울려 퍼지는 생음악 믿음 있는 자만이 마음의 귀로만 듣게 되는 정지된 시간 도적같이 그 날은 기적처럼 홀연히 오리라. 2020. 1. 2. (시) 감격시대 / 남상학 (시) 감격시대 남상학 말로는 안 되네 은밀한 곳 어디선가 남모르게 발원하여 긴 침묵의 깊이에서 울려오는 그윽한 묵시의 소리 어느새 마음은 비워지고 눈 덮인 새벽 산하에 다시 태어나는 눈뜸의 기적을 경이로운 신생의 감격을 다 말할 수 없네 말로는 안 되네 오랜 날 하늘 보듬어 꿈으로 빚어 받은 방울방울 작은 가슴 속 흥건히 적시어 안으로 흐르고 넘쳐 일시에 나를 휩싸고 도는 이 엄청난 사태, 형언할 길 없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소용돌이를 나는 말로는 다할 수 없네 말로는 안 되네 눈물로 정성껏 씻어 가슴속에 고이 가꾸어 온 보석 그 찬란한 광채의 눈부심으로 차마 말문이 막히는 은총에의 감사를 어찌할까 나의 감사기도는 언제나 뜨겁게 흐르는 눈물의 강 다만 침묵으로 끝날 뿐이네. 2020. 1. 2. 이전 1 ··· 31 32 33 34 35 36 37 ···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