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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탐방(6) - '세종대왕 탄생지'의 의미를 살려 '세종마을'로 명명 서촌 탐방(6) '세종대왕 탄생지'의 의미를 살려 '세종마을'로 명명 글·사진 남상학 * 자하문로 길가에 세운 '세종대왕 나신 곳' 표지석(서울 종로구 통인동 137) * 서울 종로구 통인동 137번지,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직진하여 통인시장 가까운 대로변에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일대는 세종대왕의 생가가 있었다고 알려진 곳. 그래서 이곳이 '세종마을'이라 불리는 이유다. 세종대왕은 1397년 지금의 통인동 119에서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표지석에는 “세종대왕 나신곳 - 서울 북부 준수방(이 근처)에서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 태조 6년(1397)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1418년 6월 3일 조선의 제3대 왕인 태종은 세자 .. 2014. 6. 17.
서촌 탐방(5) - 이상(李箱)의 집과 노천명(盧天命) 가옥 서촌 탐방(5) 이상(李箱)의 집과 노천명(盧天命) 가옥 글·사진 남상학 이상(李箱)의 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154-10 통의동에 있는 이상의 집은 이상(李箱, 1910-1937)이 큰아버지 댁 양자로 들어간 두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았던 집이다. 유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접어들 때까지 생의 8할 이상을 이 집에서 머물렀다. 그는 이 집에서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여러 작품을 썼다. 천재시인으로 알려진 이상은 실험정신이 강한 시 등을 써오다가 1936년 소설 〈날개〉를 발표하면서 시에서 시도했던 자의식을 소설로 승화시켰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그는 아버지 연창(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의 2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세 살 때부터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큰집에서 살았는.. 2014. 6. 16.
서촌 탐방(4) - 홍종문(洪鍾文) 가옥과 이상범 화백의 가옥과 화실 서촌 탐방(4) 홍종문(洪鍾文) 가옥과 이상범 화백의 가옥과 화실 글·사진 남상학 체부동 홍종문(洪鍾文) 가옥 서울시 종로구 체부동 배화여고에서 나와 체부동 홍종문 가옥을 찾기로 했다. 홍문종 가옥은 사직파출소 맞은편에서 북쪽으로 꺾어 조금 가다가 소호갤러리 건너편으로 난 골목길을 들어가면 오른쪽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개방하지 않고 있어 실제로 둘러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자료 조사를 통하여 홍종문 가옥을 정리해 보았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홍종문 가옥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일제시대의 전통 한옥으로, 고유의 멋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이다. 넓은 대지에 연못과 정원을 갖춘 한옥으로 1910년대에 지은 것이다. 건축부재의 사용과 기단 처리에 있어서 이 시기 개량 한옥의 모습.. 2014. 6. 14.
서촌 탐방(3) - 이항복(李恒福) 집터 필운대와 배화여고 생활관 서촌 탐방(3) 이항복(李恒福) 집터 필운대와 배화여고 생활관 글·사진 남상학 이항복 집터 필운대(弼雲臺)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동 사직공원에서 사직단과 단군성전을 둘러보고 황학정을 탐방한 후 필운대를 찾기로 했다. 이항복의 집터인 필운대를 보려면 필운동 배화여자고등학교 구내로 들어가야 한다. 배화여고 인근에는 우리나라 최초 공립 도서관인 종로도서관과 최초 공립 보통학교인 매동초등학교가 있다. 배화여고 구내매점을 돌아 배화여고 별관 뒤로 오르면 바로 암벽이 나오고, 그 암벽에 ‘필운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 선조 때의 재상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자신의 집 뒤 바위에 그의 호인 ‘필운’을 따서 ‘필운대’라고 써놓고 학문과 정치를 연구했던 곳이다. 흔히 오성대감이라 불린.. 2014. 6. 13.
서촌 탐방(2) - 사직공원과 황학정(黃鶴亭) 서촌 탐방(2) 사직공원(社稷公園)과 황학정(黃鶴亭) 글·사진 남상학 사직공원(社稷公園)의 사직단과 단군성전 서울 종로구 사직동 146-2번지 경복궁과 창덕궁 중간에 북촌이 있다면 경복궁의 서쪽, 인왕산 밑에는 서촌이 있다. 서촌에는 조선을 호령하는 노론계층의 관료들이 주로 살았던 북촌한옥마을과는 달리 역관이나 의원 등의 중인계급이 많이 모여 살았다. 조선시대에는 화가 겸재 정선과 최고의 문필가 추사 김정희 선생도 이곳을 거쳐 갔다. 근대에는 화가 이상범과 박노수, 이중섭, 시인 이상과 노천명, 윤동주도 이 지역에 살면서 예술의 꿈을 키웠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촌에는 한옥과 양옥이 촘촘히 어우러진 골목마다 문화적 향기와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그래서 서촌을 탐방하는 것은 특별한 묘미가 있다. 서촌.. 2014. 6. 12.
서촌 탐방(1) - 세종마을로 불리는 서촌(西村)을 가 보셨나요? 서촌 탐방(1) 세종마을로 불리는 서촌(西)을 가 보셨나요? 과거와 현재가 멋스럽게 공존하는 공간 - 문화적 향기와 즐길 거리 풍부 - 글·사진 남상학 최근 서촌이라 불리는 동네가 인기다. 경복궁과 창덕궁 중간에 북촌이 있다면 경복궁의 서쪽, 인왕산 밑에는 서촌이 있다. 본디 서촌은 서소문 일대를 일컫던 지명이었고, 이 일대는 ‘상촌(上村 )’이나 '웃대' 혹은 '웃마을'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이곳을 북촌에 대비하여 서촌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2011년 종로구에서는 세종대왕 탄신 614주년을 맞아 서촌을 ‘세종마을’로 명명했다.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장소를 포함한 동네라는 데서 지명을 바꾸려 한 것이리라. 하지만 아직은 ‘서촌’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여.. 2014. 6. 11.
전문음악감상실 '까르페 더 뮤직', 양평 그곳에 가면 '까르페 더 뮤직', 양평 그곳에 가면 그동안 몰랐던 음악과 소리의 감동을 만날 수 있다. 글·사진 남상학 우리 부부가가깝게 지내는 김 교장 내외의 초대를 받고 점심을 함께하기 위해 안내된 곳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에 있는 ‘명달리 맑은산채나물’집. 양평과 가평의 경계에 펼쳐진 통방산 자락 삼태봉 계곡,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찾아오기 힘든 곳에 있었다. 이 식당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산나물과 유기농 채소로 정갈하고 담백한 맛을 내는 집이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일행은 근처 '까르페 더 뮤직(Carpe the Music)'으로 자리를 옮겼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현대식으로 잘 지은 2층 건물이다. 길가 입구의 팻말을 보니 ‘전문음악감상실’이란다. 사람의 통행도 별로 없고 가옥도 띄엄띄엄한 이곳.. 2014. 5. 24.
숭의여자중·고등학교 퇴직교사 모임 ‘옛숭회’ 봄나들이 스케치 ‘옛숭회’ 봄나들이 숭의여자중·고등학교 퇴직교사 모임 - 화창한 봄날, 서울 경마공원을 산책하다 - 2014년 5월 13일, 서울 경마공원에서 ‘옛숭회’ 봄나들이가 있었습니다. ‘옛숭회’는 숭의여자중·고등학교에서 평생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 퇴임한 선생님들의 친목모임입니다. 옛숭회의 첫 결성은 2000년이었습니다. 1999년 1월 교사 정년이 65세에서 62세로 단축되어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되자 평생 한 직장에서 생활하며 다져온 동료애를 기초로 친목을 도모할 목적으로 만들게 되었지요. 옛숭회 모임의 시작 옛숭회는 처음에는 경조사를 치른 분이 답례하는 모임을 갖게 되면서 이와는 별도로 정식 모임을 갖자는 의견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되었지요. 그래서 명칭을 옛숭회로 정하고 회장과 총무를 선출하였고, 연.. 2014. 5. 14.
종묘(宗廟), 세계문화유산이 된 조선 왕가의 사당 종묘(宗廟) 세계문화유산이 된 조선 왕가의 사당 - 종묘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세계가 인정한 걸작 - 글·사진 남상학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王)과 왕비(王妃)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 종로 157에 자리잡고 있다. 사적 제125호.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종묘가 인류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음을 알리는 표지석과 해설판 조선의 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천도하면서 경복궁의 위치를 선정한 뒤 동쪽에는 종묘를 세우고 서쪽에는 사직단(사적 제121호)을 세웠다. 종묘는 태조 3년 (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2014. 5. 9.
무명도(無名島) / 이생진 ▲완도타워 2층 전시실에 걸린 이생진의 시 무명도(無名島) - 이생진 저 섬에서 한 달만 t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눈으로 살자 - 이생진 ‘악(惡)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대안 찾아야 완도타워에서 여섯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유가족은 물론 전 국민의 슬픔이 되고 있는 이때, 참사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완도의 완도타워 2층 전시물에서 우연히 속의 시 여섯 편을 발견하고 여섯 번째 희망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이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저 나름의 생각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였습니다. 이제 마지막의 편지는 이생진 시인의 와 관련이.. 2014. 5. 9.
그 적막한 바닷가 / 송수권 ▲완도타워 2층에 걸린 송수권의 시 그 적막한 바닷가 - 송수권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밀물을 쳐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 서서 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 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 또는 바삐바삐 서녘 하늘을 채워가는 갈바람 소리에 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이 바닷가에서 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 송수권 더러는 비워놓고,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완도타워에서 다섯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침묵의 바다가 원망스러워 산 언덕으로 올랐지만 여전히 적막한 마음을 달랠 수 없습니다. 전망층에서는 다도해가 한눈에 보였습니다. 오른.. 2014. 5. 9.
오늘날 잠언의 바다 위를 나는 / 황지우 오늘날 잠언의 바다 위를 나는 - 황지우 새는 자기 몸을 쳐서 건너간다. 자기를 매질하여 일생일대의 물 위를 날아가는 그 새는 이 바다와 닿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있는, 다만 머언, 또 다른 연안(沿岸)으로 가고 있다. - 황지우 지금은 나 자신을 매질해야 할 때 완도타워에서 네 번째 꿈의 편지를 띄웁니다. 사리 때로 접어드는 오늘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게 일 것”이라는 예보가 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지?’란 말이 들려옵니다. 이래저래 가슴 찢는 소식에 제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오늘도 허공에 시선을 놓아둔 채 넋을 잃고 먼바다를 바라보는 당신에게 또 한 장의 위로의 편지라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문보도에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계속 드러.. 2014. 5. 9.
바다 2 / 채호기 ▲ 완도타워 2층에서 만난 채호기의 시 바다 2 - 채호기 바다에 와서야 바다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하늘을 향해 열린 그 거대한 눈에 내 눈을 맞췄다. 거울을 보면 그 속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바다는 읽을 수 없는 푸른 책이었다. 쉼 없이 일렁이는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췄다. 바다를 떠나고 나서야 눈이 바다를 향해 열린 창임을 알았다. 바다의 눈에 내 눈을 맞추고 완도타워에서 세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진도는 완도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진도 팽목항 앞바다는 우리가 부딪치며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한 현장입니다. 숙명이라고나 할까요? 삶의 현장으로 비유된 바다는 어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늘 위협의 대상이며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2014. 5. 9.
어부 / 김종삼 ▲완도타워 2층에서 만난 김종삼 시인의 시 어부 -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완도타워에 올라 두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오늘 이른 새벽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간밤 뒤숭숭한 꿈자리로 잠을 설쳐 새벽에 눈을 붙이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면서 일찍부터 바다의 두 얼굴을 목격하며 살았습니다. 잔잔한 바다에 태풍 일어 바다가 뒤집히는 날에는 으레 새벽 바닷가 모래사장에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밀려온 물체를 .. 2014. 5. 9.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완도타워 2층 전시홀에서 만난 김종해의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추운 겨울 다 지내고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완도에 갔었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온 나라가 비통에 젖어 있는 때에 진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완도타워에 올라 바라본 바다는 예상외로 잔잔했습니다. 그런 그곳에 죄 없는 어린 것들이 잠들어 있다는 생각에 가.. 2014. 5. 9.
벽초지문화수목원, 어느 아름다운 봄날 튜울립과 함께 벽초지문화수목원 어느 아름다운 봄날, 튜울립과 함께 글·사진 남상학 경기도 파주에 자리하고 있는 벽초지(碧草池) 문화수목원은 약 120,000㎡ 평평한 대지 위에 관목, 교목, 야생화 및 초화류 등 1,400여 종의 식물을 식재하고 있으며, 예술적인 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벽초지’는 푸를벽(碧)’‘풀초(草)’‘못지(池)’세 글자의 합성어로, 이 수목원은 2005년 개원하였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본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창조력에서 시작된 예술과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한국의 미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지도록 공간을 꾸몄다는 뜻으로 ‘문화’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미 수많은 방송 카메라에 담길 정도로 멋진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될 수 있는 .. 2014. 5. 6.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⑥ - ‘악(惡)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대안 찾아야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⑥ ‘악(惡)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대안 찾아야 완도타워에서 여섯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유가족은 물론 전 국민의 슬픔이 되고 있는 이때, 참사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완도의 완도타워 2층 전시물에서 우연히 속의 시 여섯 편을 발견하게 되어 이 시를 바탕으로 희망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이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저 나름의 다짐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였습니다. 이제 마지막의 시는 이생진 시인의 입니다. 이생진 시인은 ‘섬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섬과 바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을 지닌 시인입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시집과 화첩을 들고 수많은 섬으로 돌아다닌.. 2014. 5. 4.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⑤ - 그 적막한 바닷가에서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⑤ 그 적막한 바닷가에서 완도타워에서 다섯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침묵의 바다가 원망스러워 산 언덕으로 올랐지만 여전히 적막한 마음을 달랠 수 없습니다. 전망층에서는 다도해가 한눈에 보였습니다. 오른쪽으로 소안도, 보길도, 노화도, 횡간도, 흑일도가 보였습니다. 진도 참사 현장은 아마도 횡간도와 흑일도 사이 그 너머 먼 바다인 듯싶습니다. 밝혀진 진실은 우리를 너무 놀라게 합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웠던 사람들, 엄청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사실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했던 사람들을 믿고 배를 탄 것이 어리석었던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니 적막감은 격분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치솟아 오르는 울분을 참으며 타워 2층으로 내려와 전시벽에 걸린 송수권 시인의 시 를 읽었습니다. 더러.. 2014. 5. 3.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④ - 지금은 나 자신을 매질해야 할 때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④ 지금은 나 자신을 매질해야 할 때 완도타워에서 네 번째 꿈의 편지를 띄웁니다. 사리 때로 접어드는 오늘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게 일 것”이라는 예보가 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지?’란 말이 들려옵니다. 이래저래 가슴 찢는 소식에 제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오늘도 허공에 시선을 놓아둔 채 넋을 잃고 먼바다를 바라보는 당신에게 또 한 장의 위로의 편지라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상습적인 과적(過積), 그것을 속이려는 뻔뻔스런 눈가림과 속임수, 탐욕(貪慾)과 거짓으로 가득찬 이 도시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슴을 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너나.. 2014. 5. 2.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③ -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췄다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③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췄다 완도타워에서 세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진도는 완도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진도 팽목항 앞바다는 우리가 부딪치며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한 현장입니다. 숙명이라고나 할까요? 삶의 현장으로 비유된 바다는 어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늘 위력의 대상이며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되지요. 그 바다는 때로 집채만 한 파도를 앞세워 배를 삼키고 허연 이빨을 드러내어 만용(蠻勇)을 부리곤 하지요. 이럴 때 우리는 안타깝게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인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 바다는 만용을 부리는 것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완도타워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시, 채호기의 는 우리에게 .. 2014. 5. 2.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②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②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완도타워에 올라 두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오늘 이른 새벽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간밤 뒤숭숭한 꿈자리로 잠을 설쳐 새벽에 눈을 붙이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면서 일찍부터 바다의 두 얼굴을 목격하며 살았습니다. 잔잔한 바다에 태풍 일어 바다가 뒤집히는 날에는 으레 새벽 바닷가 모래사장에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밀려온 물체를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이 악몽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바람이 자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물을 걷어 배에 싣고 망망한 바다로 나가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지요. 헤밍웨이의 처럼 말입니다. 아무.. 2014. 5. 2.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① -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①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완도에 갔었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온 나라가 비통에 젖어 있는 때에 진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완도타워에 올라 바라본 바다는 예상외로 잔잔했습니다. 그런 그곳에 죄 없는 어린 것들이 잠들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미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점전 그 책임자들이 밝혀지면서 분통이 터집니다. 어른인 나는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밖에,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 바라본 완도 타워 2층 벽 한쪽에는 몇 편의 시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김종해 시인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는 시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2014. 5. 1.
완도 다도해일출공원 : 완도의 명물인 완도타워, 소정원, 산책로 갖춰 완도 다도해일출공원 완도의 명물인 완도타워, 소정원, 산책로 갖춰 글·사진 남상학 * 완도의 명물이 된 완도타워, 여기 오르면 주변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도해 일출공원은 동망산 정상 부근에 조성되었다. 수려한 해양 경관과 일출, 일몰을 조망할 수 있는 특색있는 관광인프라 조성을 위해 완도군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총 사업비 154억이 투입된 다도해 일출공원은 광장, 소정원, 산책로, 관리동, 완도타워 등 다양한 시설로 꾸며졌다. 소정원에는 주변 자연경관 감상을 위한 전망테크가 조성되어 있어 완도 전경이 한눈에 보이고 바다 위 돛대형태의 막구조 파고라를 설치하여 청해진의 지역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또한 소정원 내 바다정원, 꽃비정원, 미소정원의 작은 테마를 설정하여 바다정원에는 야생초 및 꽃.. 2014. 4. 29.
청산도 여행, 구불구불한 길따라 느리게 걸어야 제맛 청산도 여행  구불구불한 길따라 느리게 걸어야 제맛   글·사진 남상학      지중해의 어느 섬 못지 않게 아름다운 섬 ‘청산도(靑山島)’는 이름 그대로 푸른 섬이다. 맑고 푸른 다도해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예로부터 신선들이 산다는 ‘선산(仙山)’ 또는 ‘선원(仙源)’이라고도 불렸다. 청산도는 동쪽에 거문도, 서쪽에 소안도, 남쪽에는 여서도와 제주도, 북쪽으로는 신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경치는 두말할 나위 없이 빼어나다. 완도에서 뱃길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먼 길이지만, 한번 다녀온 후에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두고두고 남는 환상의 섬이다.   청산도는 전남 완도항에서 약 19.2㎞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5배 정도인 33.28km.. 2014. 4. 28.
국립서울현충원, 호국영령의 충혼(忠魂)이 깃든 국가의 성역 국립서울현충원 호국영령의 충혼(忠魂)이 깃든 국가의 성역 글·사진 남상학 봄이 무르익는 어느 날 나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현충원 봄꽃 나들이는 지하철 동작역(현충원역) 4호선(4번출구)과 9호선(8번출구)로 쉽게 닿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은 저절로 엄숙하고 경건해진다. 조국 수호를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국가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현충원은 지형적으로 보아, 뒤로는 관악산 기슭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를 타고 능선이 병풍 치듯 포근히 감싸고 앞으로는 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아늑하고 포근한 어머니 품과도 같다. 이곳에 잠든 영웅들을 만나러 간다는 기분에 엄숙함이 깃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다. 광장 99.174㎡, 임야 912.400㎡ 및 공.. 2014. 4. 25.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 일대를 걷다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 일대를 걷다 글, 사진 : 김수진(여행작가) 2013년 가을에서 겨울, 마산이란 도시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바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때문이다. 하숙집 주인 나정이네 가족과 중심인물인 쓰레기가 모두 마산 출신이었다. 드라마에서 마산이 종종 언급됐고, 큰 웃음을 줬던 미팅 장면에서는 '마산 3대 갑부' 아들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1994년 배경 속에는 마산시가 당당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마산시가 없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마산은 1970년대와 80년대 전국적인 도시이자 경남 최고의 도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2010년 7월 진해시와 함께 창원시에 통합되었고, 이제는 창원시 안의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로 존재하게 됐다. 알록달록한 벽.. 2014. 4. 24.
화순 세량지와 환산정, 잔잔한 수면 위 봄의 찬가가 흐른다 전남 화순의 세량지와 환산정 잔잔한 수면 위 봄의 찬가가 흐른다 글, 사진 : 안정수(여행작가) 화합과 순함을 담은 이름처럼 전남 화순은 사람, 자연, 문화가 두루 어우러진 고장이다. 일제강점기에 능주군과 동복군이 화순군으로 편입·통합되면서 산간, 평야 문화가 만나 독특한 화합을 이뤘기 때문. 이런 과거를 거쳐 화순은 평화롭고 순박하고 정다운 고장으로 자리 잡아왔다. 갠 하늘의 달, 들의 맑은 바람, 새벽 종소리, 저녁노을, 밥 짓는 연기 등이 화순팔경에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화순은 지리적으로 산과 바다가 비교적 복잡하게 얽혀 지류가 다양하다. 덕분에 세간의 관심이 쉽게 닿지 않는 곳곳이 천혜의 비경이다. 그중 세량지와 서성제의 환산정을 소개한다. 4월의 화순은 봄과 어떻게 화합하고 있을까. 세량지를.. 2014.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