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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서촌 탐방(5) - 이상(李箱)의 집과 노천명(盧天命) 가옥

by 혜강(惠江) 2014. 6. 16.

 

서촌 탐방(5)

이상(李箱)의 집과 노천명(盧天命) 가옥

 

 

·사진 남상학

 

 

 

이상(李箱)의 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154-10

  

 

  통의동에 있는 이상의 집은 이상(李箱, 1910-1937)이 큰아버지 댁 양자로 들어간 두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았던 집이다. 유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접어들 때까지 생의 8할 이상을 이 집에서 머물렀다. 그는 이 집에서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여러 작품을 썼다. 천재시인으로 알려진 이상은 실험정신이 강한 시 <오감도> 등을 써오다가 1936년 소설 〈날개〉를 발표하면서 시에서 시도했던 자의식을 소설로 승화시켰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그는 아버지 연창(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의 2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세 살 때부터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큰집에서 살았는데, 권위적인 큰아버지와 무능력한 친부모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이 심했으며 이런 체험이 그의 문학에 나타나는 불안의식의 뿌리를 이루게 되었다. 1927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1934년 김기림·이태준·박태원 등과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했으며,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했다.  1936년 6월 변동림과 결혼한 뒤, 그해 9월 도쿄에 건너갔다가 1937년 2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감금되었다. 이로 인해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1937년 4월 17일 도쿄 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죽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오감도는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연작시로서, 종래 시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긴장 · 불안 · 갈등 · 싸움 · 공포 · 죽음 · 반전(反戰) 등 자의식 과잉에 의한 현실의 해체를 그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오감도 제1호>는 사람들이 서로를 두려워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역전(逆轉)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13인의 아해(兒孩)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 이하 생략 -

 


 한편, 이상(李箱)이 지은 단편소설인 <날개>는 1936년 9월 종합지인 ≪조광 朝光≫에 발표되었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식 청년인 ‘나’는 놀거나 밤낮없이 잠을 자면서 아내에게 사육된다. ‘나’는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자아의식이 강하며 현실 감각이 없다. 오직 한 번 시행착오로 아내를 차지해본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아내’의 남편이었던 적이 없다.
  아내가 외출하고 난 뒤에 아내의 방에 가서 화장품 냄새를 맡거나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면서 아내에 대한 욕구를 대신한다. 아내는 자신의 매음 행위에 거추장스러운 ‘나’를 ‘볕 안 드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수면제를 먹인다.
  그 약이 감기약 아스피린인 줄 알고 지내던 ‘나’는 어느 날 그것이 수면제 아달린이라는 것을 알고 산으로 올라가 아내를 연구한다.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를 수면제를 한꺼번에 여섯 개씩이나 먹고 일주야를 자고 깨어난다.
  아내에 대한 의혹을 미안해하며 ‘나’는 아내에게 사죄하러 집으로 돌아왔다가 그만 아내의 매음 현장을 목도하고 만다. 도망쳐 나온 ‘나’는 쏘다니던 끝에 미스꼬시 옥상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물여섯 해의 과거를 회상한다.
  이 때 정오의 사이렌이 울고 ‘나’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자기 소모적이고 자기 해체적인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사회 현실의 문제를 심리적인 의식의 내면으로 투영시킨 문학기법상의 방향전환으로 문학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날개>는 한국 소설사의 전통에서 이상 문학의 비범성을 부각시키고 한국 소설의 전통시학에 변혁을 가져온, 문학사상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가옥은 그가 실제 길게 살았던 집은 아니지만, 짧은 생애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머물렀던 공간으로서 의미가 크다. 한때 ‘제비다방’으로 운영되던 가옥을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첫 보전재산으로 매입하였으며, 개·보수를 끝내고 2014년 5월 지금의 형태로 손질하여 사단법인 '아름지기'가 복합문화공간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다.

  새로 문을 연 이상의 집은 이상을 기억하고 지역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랑방으로서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관련된 도서가 구비 되어 있으며, 이상의 집 내에서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이상의 예술혼을 잇는 이 시대의 이상들이 창조적 활동과 교류를 펼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다.(문의 070-8837-8374)

 

 

*이상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시반사우(詩伴四友) 江.山.岩.浦 최복현, 유화웅, 이충섭, 남상학 시인들(좌로부터)

 

노천명(盧天命) 가옥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하동 225-1

 

 

  종로구 누하동 노천명(1911~1957) 가옥은 1949년 독신인 채 양녀와 이 집에 안착했다가 8년 뒤인 1957년 병마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46세였다. 지금은 개인의 가정집이어서 들어가 볼 수 없다.

〈사슴〉을 비롯한 고독과 애수가 깃든 시들을 썼다. 1920년 아버지가 죽자 서울로 이사하여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4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그해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가 되었다. 1935년 〈시원〉 창간호에 〈내 청춘의 배는〉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고, 대표작인 〈사슴〉이 실려 있는 시집 〈산호림 珊瑚林〉(1938)을 펴냈다.

  1938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하여 체호프의 〈앵화원〉에 출연했고 〈여성〉의 편집을 맡기도 했으며 1943년 매일신보 학예부 기자를 지냈다. 1945년 두 번째 시집 〈창변 窓邊〉을 펴냈는데 〈산호림〉과 마찬가지로 고독·애수·향수가 짙은 시를 실었다. 그러나 그중에 향토적인 소재의 시가 보여주는 건강함과 소박함은 고독을 노래한 시와 대조적이었다.

  해방 후에는 서울신문과 부녀신보 등에서 일했으며, 6·25전쟁 때 서울에 남아 있다가 부역했다는 이유로 9·28 수복 때 투옥되었다. 뒤에 여러 문인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왔으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 가운데 펴낸 시집이 〈별을 쳐다보며〉(1953)이다. 이 시집에는 4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중 21편이 옥중시로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는 현실에 대한 혐오감과 심한 고독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녀가 자기중심적인 내면세계로 빠져들려는 모습은 이후 일관된 시세계를 이루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남색 치마, 흰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 약간의 골동취미도 갖고 있었으며, 다른 여성 시인들과 구분되는 명확한 시세계를 갖고 있었다. 1956년 〈이화 70년사〉의 무리한 집필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이듬해(1957) 3월 서울 위생병원에서 뇌빈혈로 죽었다. 그의 나이 46세였다.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는 그의 대표작 <사슴>을 음미해 보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族屬)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드려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이 시는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자기를 다스려 온 자세를 사슴에 비유하여 단아하고 청초한 기품을 엿보게 하는 시이다. 이것은 마치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고독과 빈궁으로 일생을 마친 지은이의 자아 투영이기도 하다. 노천명은 <사슴> 외에도 <푸른 오월>, <고향>, <고별>,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등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의 시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를 읊어보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이 작품에는 현실에 대한 혐오감과 심한 고독감을 배어 있다. 그녀는 자기중심적인 내면세계로 빠져드는 일관된 시세계를 보였다.   



* 노천명 시인의 가옥으로 추정되는 가옥, 개인 주거 가옥으로 개방이 되지 않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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