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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서촌 탐방(2) - 사직공원과 황학정(黃鶴亭)

by 혜강(惠江) 2014. 6. 12.

서촌 탐방(2)

사직공원(社稷公園)과 황학정(黃鶴亭)

 

글·사진 남상학

 

 

 


사직공원(社稷公園)의 사직단과 단군성전

서울 종로구 사직동 146-2번지

 

 

  경복궁과 창덕궁 중간에 북촌이 있다면 경복궁의 서쪽, 인왕산 밑에는 서촌이 있다. 서촌에는 조선을 호령하는 노론계층의 관료들이 주로 살았던 북촌한옥마을과는 달리 역관이나 의원 등의 중인계급이 많이 모여 살았다. 조선시대에는 화가 겸재 정선과 최고의 문필가 추사 김정희 선생도 이곳을 거쳐 갔다. 근대에는 화가 이상범과 박노수, 이중섭, 시인 이상과 노천명, 윤동주도 이 지역에 살면서 예술의 꿈을 키웠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촌에는 한옥과 양옥이 촘촘히 어우러진 골목마다 문화적 향기와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그래서 서촌을 탐방하는 것은 특별한 묘미가 있다. 서촌 탐방의 첫걸음은 사직공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인왕산 남동쪽 기슭에 있는 사직공원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5년에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 즉 경복궁의 왼쪽에는 종묘를 짓고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짓는다는 원칙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사직단과 종묘를 건립했다. ‘사직(社稷)’이라는 말의 뜻을 보면 '사(社)'는 땅의 신이며 '직(稷)'은 오곡의 신으로 이들에게 제사를 올려 풍년을 기원했던 곳이 사직단이다. 사적 121호.

   사직단은 제단으로 종묘와 함께 나라의 신과 곡식을 담당하는 신께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었다. 조선은 농업을 천하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는 것은 왕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국가적 행사 중 하나였다. 2월과 8월에 제례를 지내고 기우제와 풍년제도 이곳에서 지냈다. 종묘사직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직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직단에서는 오늘날까지도 풍습에 따라 음의 기운이 높다고 전해지는 매년 9월 셋째 주 일요일(음력 8월 중순경)에 사직대제를 지낸다.    192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사직단이 사적으로 지정되고, 경성부로 이관되었다. 경성부는 조선 왕조의 성지로 잡인이 근접하지 못했고, 1897년 고종 황제가 사직단 정문(보물 제177호)을 태사(太社)·태직(太稷)이라 높여 부르게 했던 사직단의 격을 낮추어 이곳에 순환도로·정자·벤치 등을 설치해 1924년 5월부터 공원화했다. 1940년 3월 정식으로 서울의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서울시에서 사직단을 새롭게 단장·복원했다. 원래 사직단은 5만 평이 넘는 큰 규모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겨우 2,500평에 불과한 공간만 남아있다.   

  공원내부에는 어린이놀이터가 동서로 길게 마련되어 있고, 사직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신사임당(申師任堂)과 이이(李珥) 모자의 동상이 서 있으며, 그 뒤에 단군성전(檀君聖殿)과 김동인문학비(金東仁文學碑)도 세워져 있다. 서편으로는 여름철에 어린이들로 붐비는 수영장시설이 있고, 간이건물로 된 매점이 있어 산책 및 휴게소로 이용되고 있다. 북쪽에는 서울특별시종로구도서관이 있다. 사직공원 옆의 인왕산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인왕산 등산로가 나온다.

 

 

 

 

등과정(登科亭) 터의 황학정(黃鶴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32(사직동 산1)

 

 


  인왕산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서촌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고종이 활을 쏘기 위해 즐겨 찾았다는 황학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대한제국 때의 누정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 이 정자는 본래 1898년 어명에 의하여 경희궁의 회상전(會祥殿) 북쪽 궁장(宮墻) 가까이에 꾸며졌던 궁술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다. 그 후 1913년 경희궁이 헐리고 1922년 총독부 전매국 관사가 황학정 자리에 지어지면서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한말에는 도성 안 서쪽에 다섯 군데의 사정이 있어서 이것을 ‘서촌오사정(西村五射亭)’이라 하였다. 옥동(玉洞)의 등룡정(登龍亭), 삼청동의 운룡정(雲龍亭), 사직동의 대송정(大松亭), 누상동의 풍소정(風嘯亭), 필운동(弼雲洞)의 등과정(登科亭)이 그것이다.

  현재 황학정이 서 있는 자리는 원래 오사정의 하나인 등과정이 있던 자리이다. 오사정은 조선 전기부터 무인의 궁술연습지로 유명했는데, 갑신정변 이후 활쏘기 무예가 쇠퇴하자 많은 활터가 사라졌고 일제강점기에는 활쏘기를 금지했으나 황학정만 그 맥을 이어왔다. 지금 황학정이 세워져 있는 곳은 오사정의 하나인 등과정이 있던 자리이다. 대한제국 때까지 남아 있던 유일한 궁술연마장으로 지금도 이곳에서는 궁술행사가 열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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