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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국립서울현충원, 호국영령의 충혼(忠魂)이 깃든 국가의 성역

by 혜강(惠江) 2014. 4. 25.

국립서울현충원

호국영령의 충혼(忠魂)이 깃든 국가의 성역


글·사진 남상학

 

 

 

  봄이 무르익는 어느 날 나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현충원 봄꽃 나들이는 지하철 동작역(현충원역) 4호선(4번출구)과 9호선(8번출구)로 쉽게 닿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은 저절로 엄숙하고 경건해진다. 조국 수호를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국가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현충원은 지형적으로 보아, 뒤로는 관악산 기슭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를 타고 능선이 병풍 치듯 포근히 감싸고 앞으로는 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아늑하고 포근한 어머니 품과도 같다.

 

  이곳에 잠든 영웅들을 만나러 간다는 기분에 엄숙함이 깃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다. 광장 99.174㎡, 임야 912.400㎡ 및 공원 행정지역 178.513㎡라고 하니 올려다보는 경내는 아주 넓게 보인다. 

 

  이 넓은 대지에는 국가원수묘역, 임시정부요인묘역,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제단, 국가유공자묘역, 장군묘역, 장병묘역, 경찰묘역, 외국인묘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외 시설로는 충혼당, 위패봉안당, 봉안식장, 참배․추모시설, 현충․선양시설(현충관, 유물전시관, 사진전시관), 조형․휴게시설(만남의 집, 육각정, 호국종, 공작지, 현충지) 등이 있다.

 

 

  국립현충원은 글자 그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을 모신 곳으로 그 충의와 위훈을 후손에게 영구히 보존, 계승시킬 수 있는 겨레의 성역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었다.  


  경건한 마음이 되어 정면을 들어서니, 마침 충성분수대 주변으로 꽃단장이 한창이다. 우측 종합민원실에 들러 경내 시설안내도를 받아들고 새파란 잔디가 돋고 있는 광장(겨레얼마당) 좌측길로 걸어올라갔다. 현충천은 국립서울현충원은 양쪽으로 가르며 흐르고 있다. 

 

 현충탑을 옆으로 바라보며 현충원을 좌우로 나누는 개천(현충천)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위로 향했다. 현충천변에는 우리 젊은 영령들의 충성을 말해주듯 붉은 꽃이 만발하였다.  현충천을 가로지르는 정국교 좌측으로 반듯한 구획으로 조성된 묘역은 30묘역부터 낮은 경사면을 따라 언덕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묘비를 보니 사병묘역이다. 

 

* 현충문과 현충탑


  이 중 30묘역은 7사단(칠성부대) 출신 전사자 123명을 안장한 묘역이다. 그런데 이 묘역에는 6․25전쟁 중 전사한 이만우 하사(형)와 이천우 이등중사(동생) 형제가 함께 형제애를 나누며 영면해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 길을 걷노라니 시인 모윤숙이 쓴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중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중략)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고
         (중략)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 가고             
젖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 가도             
나는 유쾌히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 숲을 달리고 능선을 넘어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 이슬 내리는 풀숲에서 가족과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대한민국 아들들의 뜨거웠던 의지가 푸르게 돋는 묘역에서 나는 그대들이 주고 간 마지막 말을 가슴 깊이 되새겨본다. 언덕을 따라 길가에 안병범장군순의비, 파월전몰영령추모비를 지나니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묘 안내표지판이 보였다. 국가원수묘역에 접어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묘소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의 묘가 동남향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서재필 박사와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해 독립사상을 전파하고 민족계몽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 상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항일투쟁 외교활동을 펼치던 중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1948년 제헌국회의장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거치면서 해방 직후의 혼돈을 극복하고 자유민주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졌다.

  6·25전쟁의 국난을 극복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반공 포로를 석방하였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한미동맹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4·19민주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뒤 하와이에서 생활하다 1965년 7월 19일 서거하여 동년 7월 27일 가족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하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국립묘지에 최초로 안장된 국가원수이다.


  1900년 6월 1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이승만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193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회의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만나 1934년 10월 8일 뉴욕시에서 결혼하고 1948년 영부인이 되었다. 1992년 3월 19일 이화장에서 향년 93세로 서거하여 3월 23일 가족장으로 이곳에 합장되었다.

  1998년 광복절에 정부와 국민의 정성을 모아 세운 묘비의 전면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박사 내외분의 묘’라 쓰여 있고, 후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약력과 영부인 프란체스카의 약력을 새겼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였다. 

  세계를 움직이신 웅대한 기상이시여               
  거룩한 나라 사랑 민족의 은인이시여                
  아무도 범할 수 없던 순수하고 고결한 영원한 한국인이시여                
  반도 산하 읊으신 민족시인이시여                
  오늘도 임 그리며 오가는 동작의 성지에                
  주님의 은총 중 영복을 누리소서         
  一九九八년 광복절에 정부와 국민의 정성을 모아 세우다

 

  그리고 묘지 한 곁에 또 하나의 헌시비가 있다. 1971년 7월 19일 최영옥이 쓴 헌시비의 전면에는, 

  배달민족의 독립을 되찾아 
  우리를 나라 있는 백성 되게 하시고  
  겨레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 
  안녕과 번영의 터전을 마련해 주신
  거룩한 나라 사랑
  불멸의 한국인 우리의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금수강산 흘러오는 한강의 물결
  남산을 바라보는 동작의 터에 
  일월성신과 함께 이 나라 지키소서

 

 헌시 후면에는 1971년 7월 19일에 ‘하와이 한인 동지회’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헌사는 박종화, 글씨 김충현이 썼다.

  한국의 큰 별 세계를 움직였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이곳에 고요히 잠드시다                 
  구십 평생을 자주와 독립으로 나라 위해 몸
  바치신 박사의 위대한 모습을 추모하는 마음                 
  간절하여 하와이 동지들 정성을 모아 눈물을
  마시며 삼가 이 비를 세운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립묘지에 최초로 안장된 대통령이 되었다. 묘지 주변에 수령 60여 년 된 이 백송(白松)은 2013년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138주년 탄신일을 기념하여 전주이씨 방계증손 효령대군 19대손 이성재와 손부 이영자가 자택에서 정성껏 가꾸던 나무를 이곳에 옮겨 심은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묘소

  이승만 대통령묘에서 내려와 옆길을 오르면 바로 우측에 김대중 대통령의 묘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묘가 동남향인데 반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는 서남향으로 앉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1924년 1월 6일 전남 신안 하의도에서 출생하여 1961년 민의원, 1963년 제 6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7, 8, 13,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세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를 딛고 1997년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어 1998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오랜 기간의 정치적 역경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를 이 땅에 정착시킨다는 일념으로 헌신했다. 그해 12월에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에 헌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2009년 8월 18일 서거하여 8월 23일 국장으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묘 앞 비석 전문에는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묘’라 써 있고, 후면에는 약력이 기록뙤어 있다. 약력 설명 중에는 “ ~ 숱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정치보복을 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하셨다. 1998년 첫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에 취임한 후 경제위기의 국난을 극복하였고 우리나라를 민주주의와 인권국가, 경제와 사회복지 선진국, 정보화 강국으로 이끌었고 자주 외교를 펼쳐 국격(國格)을 높였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반세기 동안의 적대감을 녹이고 지속적인 햇볕정책으로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하는 평화의 시대를 여셨다. 같은 해 12월에는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는 내용이 새겨 있고, 측면에는 약력과 상훈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리고 고 은(高銀) 시인이 쓴 김대중 대통령에 바치는 헌시비가 옆으로 비껴서 세워져 있다. 헌시 ‘당신은 우리입니다’ 전문을 소개한다.

  당신은 민주주의입니다 / 어둠의 날들
  몰아치는 눈보라 견디고 피어나는 / 의지입니다.
  몇 번이나 죽음의 마루턱 / 몇 번이나 그 마루턱 넘어
  다시 일어나는 / 목숨의 승리입니다
  아 당신은 / 우리들의 자유입니다
  당신은 민족 통일입니다 / 미움의 세월
  서로 겨눈 총부리 거두고 /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 그 누구도 바라마지 않는 것
  마구 달려오는 / 하나의 산천입니다
  아 당신은 / 우리들의 평화입니다
  우리입니다 / 당신은 이제 세계입니다
  외딴 섬 아기 / 자라나서 겨레의 지도자
  겨레 밖의 교사입니다 / 당신의 고난
  당신의 오랜 꿈 / 지구의 방방곡곡 떠돌아
  당신의 이름은 / 세계의 이름입니다
  아 당신은 우리의 내일입니다 / 이제 가소서
  길고 긴 서사시 / 두고 가소서



 


박정희 대통령 묘소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에서 장군묘역을 오른쪽으로 끼고 언덕을 향해 오르면 현충원 맨 위쪽에 5대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 묘소가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 11월 14일 경북 선산에서 출생했다. 1963년 대한민국 5대 대통령에 취임해 연이어 9대 대통령까지 역임하는 동안 수차례에 걸친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산업입국을 다지는 한편, 근면·자조·협동을 기본정신으로 한 새마을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하여 가난을 극복하고 ‘하면 된다’는 국민적 자신감을 일깨움으로써 우리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여 ‘민족중흥(民族中興)’으로 표현되는 대한민국 선진화의 기반을 구축했다.


  또한 오늘날 우리 국군의 현대화를 위한 율곡계획을 집념 있게 추진하여 국방력 증강 및 자주국방의 기틀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1979년 10월 26일 서거하여 11월 3일 국장으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1925년 11월 29일 충북 옥천에서 출생하여 영부인이 된 후 각종 사회사업과 육영사업에 앞장섰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 중 북한의 사주를 받은 괴한의 저격으로 서거하여 8월 19일 국민장으로 이곳에 안장되었다.

 

  1980년 2월 2일 세워진 묘비는 전면에 ‘박정희대통령 육영수 영부인 묘’라 쓰고, 후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약력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약력이 새겨 있다. 이은상이 쓴 ‘박정희 대통령 영전에’라는 제목의 헌시비’가 있다. 


  태산이 무너진 듯 강물이 갈라진 듯 
  이 충격 이 비통 어디다 비기리까
  이 가을 어인 광풍 낙엽지듯 가시어도
  가지마다 황금열매 주렁주렁 열렸소이다. 
  오천 년 이 겨레의 찌든 가난 몰아내고
  조상의 얼과 전통 찾아서 되살리고
  세계의 한국으로 큰 발자국 내디뎠기
  민족의 영도자외다
  역사의 중흥주외다
  자유와 평화통일 그게 님의 이상과 소원
  착한 국민 되라시고 억센 나라 만들다가
  십자가 지신 오늘 붉은 피 흘리셔도
  피의 값 헛되지 않아 보람 더욱 찾으리다. 
  육십 년 한평생 국민의 동반자였고
  오직 한길 나라 사랑 그 길에 바친 이여  
  굳센 의지 끈질긴 실천 그 누구도 못 지을 업적
  민족사의 금자탑이라 두고두고 우러보리라 
  우리는 슬기론 겨레 어떤 고난 닥쳐와도
  끼치신 뜻을 이어 어김없이 가오리다
  몸 부디 편히 쉬시고 이 나라 수호신 되어
  못다 한 일 이루도록 큰 힘 되어 주소서.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를 내려와 공작지 아래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차 보존관을 지나 장군묘역, 유공자묘역으로 내려왔다. 장군묘역은 광복 이후 국군의 창설과 발전은 물론 6․25 전쟁, 대간첩작전 등에서 전공을 세운 군 장성들이 잠들어 있다. 

 

 

장군묘역에 안장된 장군묘들이 봄볕을 받고 있다  



  국가유공자묘역에는 초대국무총리 이범석 장군, 1983년 전두환 대통령 동남아시아 국가 순방시 미얀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서에서폭탄테러로 순직한 17분의 외교사절,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 등 국가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생애를 바친 국가 유공자 62분이 잠들어 있다.



* 국가유공자 묘역의 묘비들

 


  국가유공자묘역을 거쳐 충혼당을 뒤로하고 현충탑(위패봉안관)으로 향했다. 현충탑은 국가의 성역인 국립서울 현충원을 상징하는 곳으로 현충원의 가장 중심에 세워져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 야외에 모셔진 위패들 옆으로 헌화한 꽃들이 놓여있다.

 

*위패봉안당의 옆문

 


  탑 내부 6․25 전쟁 당시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 4천여 호국용사들의 위패, 그리고 시신은 찾았으나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7천여 무명용사의 유해를 모셨다. 국가기념일에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요인들과 한국을 방문한 국빈들이 참배하는 장면을 T.V를 통해서 늘 보던 바로 그곳이다. 


            

* 위패봉안관안에 세운 조각상 

 

 

봉안된 유패의 일부


     
   현충탑의 출입문격인 현충문은 전통 양식으로 지었다. 문 좌우로 호랑이상이 있고, 두 명의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을 지키려는 뜻일 것이다. 이어 현충문으로 발길을 옮겨 참배하고 방명록에 용사들의 위업을 찬양하는 글귀를 남긴 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이 우뚝 서 있다.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은 각 지구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신 7천여 학도의용군을 추모하고 이들 전몰학도의용군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 4월 건립한 탑이다.  3개의 아치형의 문으로 구성되어, 중앙의 큰 문속에 ‘무명용사영현’이 쓰인 비석이 세워져 있고 탑 뒤쪽에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반구형 석묘가 설치되어 있다. 탑 하단에는 ‘’학도의용군의 묘‘라고 씌여있다. 이 탑은 1954년 ‘무명용사비’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현충탑 자리에 세워졌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을 상징하는 현충탑의 위치에 무명용사비가 있었다는 사실로 당시 무명용사비의 위상을 가늠하실 수 있다.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  

 

 

  다음 수충교, 정난교, 정국교가 가로지르고 있는 현충천의 구름다리를 건넜다. 유품전시관과 현충관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현충천 주변에는 봄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구름다리 건너 현충지는 물에 비친 꽃들로 더욱 운치를 드러낸다. 주변에는 유원지는 아니지만, 삼삼오오 나들이 나온 상춘객들이 봄을 즐기고 있다. 


* 현충천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와 건너편의 현충지 


  

  현충지 옆 유품전시관과 사진전시관, 현충관에서는 호국 선열이 활동한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현충원 나들이는 나라를 위해 꽃잎처럼 스러져간 선열의 뜻을 되새기며, 요란하거나 북적이지 않게 봄을 음미할 수 있다. 

 

 

*유품전시관에 전시된 자료들

 

 

현충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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