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타워 2층에서 만난 김종삼 시인의 시 <어부>
어부
-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완도타워에 올라 두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오늘 이른 새벽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간밤 뒤숭숭한 꿈자리로 잠을 설쳐 새벽에 눈을 붙이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면서 일찍부터 바다의 두 얼굴을 목격하며 살았습니다. 잔잔한 바다에 태풍 일어 바다가 뒤집히는 날에는 으레 새벽 바닷가 모래사장에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밀려온 물체를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이 악몽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바람이 자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물을 걷어 배에 싣고 망망한 바다로 나가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지요.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오늘도 기역 없이 속울음을 삼키는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세상에 대해, 사람과 희망에 대해, 더는 믿을 수 없다고 항변해도 누가 당신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완도타워 벽에서 두 번째로 발견한 시 역시 답답한 내 가슴에 잔잔히 다가왔습니다.
새벽 바다는 흐느끼듯 출렁거렸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아물고 슬픈 기억은 흐려질까? 사랑을, 그리고 사람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될까?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나는 바다 앞에 서서 먼바다를 바라보며 실존적(實存的)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여든네 번이나 허탕을 치고 돌아왔던 늙은 어부가 사자 꿈을 꾸고 나간 출어(出漁)에서 상어와 겨루는 사투 끝에 대어(大魚)의 꿈은 사라지고 앙상한 뼈대만 남은 것을 바라보며 “인간은 죽임을 당할지는 모르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중얼거리는 헤밍웨이의 노인처럼 초연하고 당당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제게 침착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그렇다면 우리도 삶의 고뇌를 이야기하면서도 희망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의 고통을 고난 극복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시인의 생각이 왠지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헤밍웨이처럼 넓은 바다를 향해 또 다른 출어를 꿈꿀 수 있는 날을 고대해 봅니다. <완도에서 남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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