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도타워 2층에서 만난 채호기의 시 <바다 2 >
바다 2
- 채호기
바다에 와서야
바다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하늘을 향해 열린 그
거대한 눈에 내 눈을 맞췄다.
거울을 보면 그
속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바다는 읽을 수 없는
푸른 책이었다.
쉼 없이 일렁이는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췄다. 바다를 떠나고 나서야
눈이
바다를 향해 열린 창임을 알았다.
<해설> 바다의 눈에 내 눈을 맞추고
완도타워에서 세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진도는 완도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진도 팽목항 앞바다는 우리가 부딪치며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한 현장입니다. 숙명이라고나 할까요? 삶의 현장으로 비유된 바다는 어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늘 위협의 대상이며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되지요.
그 바다는 때로는 집채만 한 파도를 앞세워 배를 삼키고 허연 이빨을 드러내어 만용(蠻勇)을 부리곤 하지요. 이럴 때 우리는 안타깝게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인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 바다는 만용을 부리는 것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완도타워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시, 채호기의 < 바다 2 > 는 우리에게 바다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었습니다.
눈이 '바다로 열린 창'이었을 때 바다는 위협하는 존재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좌절할 때 평안한 쉼이 되고, 가슴 답답할 때 마음을 달래는 음악이 되고, 삶을 열광하게 하는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음을 시인은 이미 깨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거대한 바다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고, 납작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던 것은 아닐까요? 바다에 순응하려는 의지적인 태도. 이것이 바다와 친근해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걸 터득한 것이지요.
오늘도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바다는 우리에게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존재입니다. 우둔한 나는 완도에 와서야 이 사실을 새롭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바다는 이미 나의 마음 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파란 눈을 뜬 채 말입니다. 마치 시인의 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입니다. (완도에서 남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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