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련1790 (수필) 일관성에 대하여 / 김광섭 일관성에 대하여 김광섭 내 나이 이제 일흔이니, 이른바 기성 세대다. 아니, 기성 세대에서 구세대라 할 것이다. 그러나 구세대는 구세대임으로 겪어야 했던 과거가 있으니, 이는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삶을 영위하는데 혹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 70을 살고도 한 시간의 생각거리가 못 되는 인생이나마 여기 적는 것은 다만 '참고하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다. 나는 1905년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집안에는 자녀가 드물었기 때문에,나의 조부모께서는 나를 백 날 동안 사람에게도 해에도 달에도 보이지 않으시고, 당신들의 방 안에서 무릎에다 놓고 키우셨다 한다. 나는 이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나쁜 일이나 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생각한다. 이것이 평범한 한 아기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신 그분들께 최소한으로나마 보답하는 .. 2014. 1. 10. (수필) 생활의 운치(韻致) / 신석정 생활의 운치(韻致) 신석정 "어디 우리에게 생활이 있나? 그저 생존하는 거지 ."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이요, 또 교양인이라고 자타가 공인한다는 층에서 이런 푸념(?)을 더욱 많이 듣게 된다. 생존 자체가 생활을 위한 것이요, 생존을 위한 생존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있어서도 안 돌 것이며, 생활다운 생활이 못 될지언정 우리들의 호흡이 생존에 그친다면, 그 이상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생활다운 생활을 영위할 만한 여건이 갖추어졌느냐면 그것은 우리들의 꿈이요, 현실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 역사가 비롯한 뒤, 한 번도 갖추어진 적이 없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어찌하랴? 만일 인간이 의욕하는 바 생활당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이 지구가 깡그리 .. 2014. 1. 10. (수필) 인생의 주제가 무엇인가 / 김동길 인생의 주제가 무엇인가 김동길 사람을 가장 똑똑한 둥물이라 하여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가 주어졌겠지만 인간은 아직도 무식한 동물이다. 첫째, 시간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는가. 남편과 자기 자신의 생년월일은 알고 있지만,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짜에 태어났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지만 꽝하는 소리와 함께 태양계가 형성된지 족히 50억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천문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는데 그 기나긴 세월은 이해할 수 없다. 50억년 전에도 시간은 있었는가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고 앞으로 50억년 뒤에도 시간은 있겠는가 물으면 그것도 대답하기 어렵다. 철학을 한다는 매우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을 이해할 수가 없어 아마도 영원(Eternity)이라는 말을 생각해 냈겠지만 영원이라는 말은.. 2014. 1. 10. (수필) 시집 가는 친구의 딸에게 / 피천득 시집 가는 친구의 딸에게 피천득 너의 결혼을 축하한다. 아름다운 사랑에서 시작된 결혼이기에 더욱 축하한다. 중매 결혼을 아니 시키고 찬란한 기적이 나타날 때를 기다려 온 너의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예식장에 너를 데리고 들어가는 너의 아버지는 기쁘면서도 한편 가슴이 빈 것 같으시리라. 눈에는 눈물이 어리고 다리가 휘청거리시리라. 시집 보내는 것을 딸을 여읜다고도 한다. 왜 여읜다고 하는지 너의 아빠는 체험으로 알게 되시리라. 네가 살던 집은 예전 같지 않고 너와 함께 모든 젊음이 거기에서 사라지리라. 너의 아버지는 네 방에 들어가 너의 책, 너의 그림들, 너의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시리라. 네가 쓰던 책상을 가만히 만져 보시리라. 네 화병의 꽃물을 갈아 주시려고 파란 화병을 들고 나오시리라. 사돈집.. 2014. 1. 10. (수필) 서영이 / 피천득 서영이 피천득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탈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버릇이 없을 때가 있지만, 나이가 좀 들면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남들이 술마시느라고 없앤 시간, 바둑 두느라고 없앤 시간, 돈을 버느라고 없앤 시간, 모든 시간을 서영이와 이야기 하느라고 보냈다. 아마 내가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내가 산 참된 시간이요, 아름다운 시간이었 음은 .. 2014. 1. 10. (수필) 피 어린 육백 리 / 이은상 피 어린 육백 리 - 이은상 오늘은 휴전선(休戰線) 행각(行脚)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지금 동부 전선(東部戰線)에서도 가장 치열한 격전을 치렀다는 향로봉(香爐峯)을 향해서 가는 길이다. 여기는 바로 설악산(雪嶽山) 한계령(寒溪領)으로부터 흘러오는 한계의 시냇가, 발길은 북쪽을 향하면서 눈은 연방 설악산 들어가는 동쪽 골짜기를 바라본다. 30년 만에 다시 보아도 밝은 빛, 맑은 기운이 굽이쳐 흐르는 물 소리와 함께 가슴 속의 티끌을 대번에 씻어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시원하냐! 그래, 이런 데서 그렇게 피비린내를 풍겼더란 말이냐! 친소(親疎)도 없이, 은원(恩怨)도 없이, 싸우다 말고 총을 던지고 냇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데가 아니냐! 그림보다 더 .. 2014. 1. 10. (수필) 한국의 미(美) / 김원룡 한국의 미(美) 김원룡 한국의 미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자연의 미’라고 할 것이다. 자연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은 한국적 자연으로, 한국에서의 미술 활동의 배경이 되고 무대가 된 바로 그 한국의 자연이다.한국의 산수(山水)에는 깊은 협곡(峽谷)이 패어지고 칼날 같은 바위가 용립(聳立)하는 그런 요란스러운 곳은 적다. 산은 둥글고, 물은 잔잔하며, 산줄기는 멀리 남북으로 중첩(重疊)하지만, 시베리아의 산맥처럼 사람이 안 사는 광야(曠野)로 사라지는 그러한 산맥은 없다. 둥근 산 뒤에 초가집 마을이 있고, 산봉(山峰)이 높은 것 같아도 초동(樵童)이 다니는 길 끝에는 조그만 산사(山寺)가 잇다. 차창에서 내다보면, 높은 산 위에 서 있는 촌동(村童) 2, 3 인의 키가 상상 이외로 커 보이는.. 2014. 1. 10. (수필) 손수건의 사상 / 조연현(趙演鉉) 손수건의 사상 - 조연현(趙演鉉)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손수건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쩌다가 손수건을 빠뜨리고 나오는 날이면, 육체의 어느 한 부분을 떼어 놓고 나온 것처럼 어색하거나 꼭 입어야 될 의류의 하나를 빠뜨리고 나온 것처럼 허전해진다. 그만치 손수건은 인간에게 있어 없지 못할 일상적인 생활용품의 하나이다. 한글 학회 발행의 우리말 사전을 보면, 손수건은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작은 수건'으로 되어 있고, 문세영씨 사전을 보면, '땀을 씻는 작은 수건, 손을 씻는 작은 헝겊'으로 되어 있다. 전자는 주로 손수건의 형태와 위치에 대한 설명이고, 후자는 주로 그 용도에 대한 설명으로 볼 것이다. 이 두 개의 설명에서 우리는 손수건이란, 첫째 작은 헝겊으로 된 수건이며, 둘째 몸에 지니고 .. 2014. 1. 10. (수필) 봄 / 피천득 봄 피천득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天癡)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凡俗)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띄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業)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자취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 2014. 1. 10. (수필) 수학이 모르는 지혜 / 김형석 수학이 모르는 지혜 - 김형석(金亨錫) 재미있는 우화가 있다. 옛날 아리비아의 어떤 상인이 임종을 맞게 되었다. 그는 자기 앞에 세 아들을 불러 앉혔다. 그리고는 "내가 너희들에게 남겨 줄 유산이라고는 말 열일곱 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고장의 습관에 따라 꼭 같이 나누어 줄 수는 없으니까 맏아들 너는 열일곱 마리의 반을, 둘째 아들 너는 3분의 1을, 그리고 막내 아들 너는 전체의 9분의 1을 갖도록 하라." 고 유언을 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재산을 나누어 가져야 할 삼형제 간에는 오랜 싸움이 계속되었으나 해결을 얻을 길이 없었다. 맏아들은 열일곱의 반으로 아홉 마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동생들은 아홉 마리는 2분의 1이 넘으니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여덟 마리 반이 되지만 반 .. 2014. 1. 10. (수필) 밤이 깊었습니다 / 전헤린 밤이 깊었습니다 전혜린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추악하고 권태로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베일을 씌우고 약간의 안개로 가리고 삶을 볼 때 삶은 아름다워지고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무엇으로 변형됩니다. 덜 냉혹하게 덜 권태롭게 느껴집니다. 저녁 때 푸른 어둠 속을 형광등이 일제히 켜지는 시간부터 신비는 비롯하는 것입니다. 어둠은 기적을 낳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연히 만나 옛날에 알던 사람과 우리는 곧 핵심에 와 닿는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낮은 적나라한 일광으로 모든 낭만을 박탈해 버리는데 비해서 밤은 우리를 꿈 속같이 막연하고 불투명하게 부드러운 낭만으로 감싸줍니다. 우리들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자기가 대낮을 외치.. 2014. 1. 10. (수필) 슬픔에 관하여 / 유달영 슬픔에 관하여 - 유달영(柳達永) 사람의 일생은 기쁨과 슬픔을 경위(經緯)로 하여 짜 가는 한 조각의 비단일 것 같다. 기쁨만으로 일생을 보내는 사람도 없고 슬픔만으로 평생을 지내는 사람도 없다. 기쁘기만 한 듯이 보이는 사람의 흉중(胸中)에도 슬픔이 깃들이며, 슬프게만 보이는 사람의 눈에도 기쁜 웃음이 빛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기쁘다 해서 그것에만 도취(陶醉)될 것도 아니며, 슬프다 해서 절망만 일삼을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책상 앞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고 있다. 고호가 그린 이다.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얇게 무늬지고, 넓은 들에는 추수(秋收)할 곡식이 그득한데, 젊은 아내는 바구니를 든 채 나귀를 타고, 남편인 농부는 포크를 메고 그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생활하는 .. 2014. 1. 10. (수필) 말의 힘과 책임 / 이규호 말의 힘과 책임 이규호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나 현실 속에서 살고 있고, 또 그 상황에 필요하다고 믿는 ‘말’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큰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말은 좋지 않은 방향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생각할 때에는, 말에 따르는 ‘책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말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려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위한 말의 창조적 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에 따르는 책임에 관해서도 말해 보려고 한다. 어쩌면 우리의 언어생활을 반성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의 힘 어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한 뒤에 “폐병(肺病)입니다.”하고 말했다 하.. 2014. 1. 10. (수필) 국토 예찬 / 최남선 국토예찬 최남선 우리의 국토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시이며, 정신입니다. 문학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림자와 생활의 자취는 고스란히 똑똑히 이 국토 위에 박혀서 어떠한 풍우라도 마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나는 우리 역사의 한 작은 학도요, 우리 정신의 한 어설픈 탐구자로서, 진실로 남다른 애모와 탄미와 함께 무한한 궁금스러움을 이 산하대지에 가지는 것입니다. 자갯돌 하나와 마른 나무 한 밑동도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흥미와 또 연상을 자아냅니다. 이것을 조금씩 색독이나마 하게 된 뒤부터 우리 나라가 위대한 시의 나라, 철학의 나라임을 알게 되고 또 완전, 상세한 실물적 오랜 역사의 소유자임을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쳐다볼수록 거.. 2014. 1. 10. (수필) 마고자 / 윤오영 마고자 윤오영 (尹五榮) 나는 마고자를 입을 때마다 한국 여성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한다. 남자의 의복 가운데 가장 사치스러운 호사(豪奢)가 마고자다.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감은 다른 옷보다 더 값진 천을 사용한다. 또, 남자 옷에 패물(佩物)이라면 마고자의 단추다. 마고자는 방한용(防寒用)이 아니요 모양새다. 방한용이라면 덧저고리가 있고 잘덧저고리도 있다. 화려하고 찬란한 무늬가 있는 비단 마고자나 솜 둔 것은 촌스럽고, 청초한 겹마고자가 원격(原格)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노인네가 겨울에 소탈(疏脫)하게 방한삼아 입으려면, 그 대신에 약식인 반배(半褙)를 입었던 것이다. 마고자는 섶이 알맞게 여며져야 하고, 섶귀가 날렵하고 예뻐야 한다. 섶이 조금만 벌어지거나 조금만 더 여며져도 표가 나고, 섶귀가 .. 2014. 1. 10. (수필) 문학과 인생 / 최재서 문학(文學)과 인생(人生) 최재서 인생 오십 고개에 올라서, 그 사이 한 말이 많은 것 같지만, 돌아다보면 실오라기만한 외길이 보일 둥 말 둥, 줄거리 잡아 이렇다 할 아무 일도 없다. 나는 인생의 허무와 무가치를 느낀다. 나는 좀더 충실하고, 좀더 가치 있는 생을 체험하고 싶다. 그럴 때에 나는 베토벤의 교향악을 듣고, 혹은 밀턴의 시를 읽고, 혹은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는다. 이 글을 읽어 줄 독자는 대개 20 전의 청년들임을 나는 알고 있다. 여러분은 아직 인생을 회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앞을 내다보며 기쁨과 슬픔을 다같이 희망의 품안에 포옹하면서 전진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앞으로 간혹 문학 작품을 읽어, 인생에 대해서 그 무엇을 반성하게 될 때에, 이글이 약간의 도움이 될까 해서 붓을 .. 2014. 1. 10. (수필) 별 / 알퐁스 도데 별 알퐁스 도데 내가 뤼르봉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몇 주일씩이나 사람이라고는 통 그림자도 구경 못하고, 다만 양떼와 사냥개 검둥이를 상대로 홀로 목장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이따금 몽들뤼르의 은자가 약초를 찾아 그 곳을 지나가는 일도 있었고, 또는 피에몽에서 온 숯 굽는 사람의 거무데데한 얼굴이 눈에 띄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도 외로운 생활을 해 온 나머지, 좀처럼 입을 여는 일이 없는 순박한 사람들이어서 남에게 말을 거는 취미도 잃어버렸거니와, 도무지 무엇이 지금 산 아래 여러 마을이나 읍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는지를 통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두 주일마다 보름치의 양식을 실어다 주는 우리 농장 노새의 방울 소리가 언덕길에서 들려올 때, 그리고 꼬마.. 2014. 1. 10. (수필) 질화로 / 양주동 질화로 - 양주동 촌가의 질화로는 가정의 한 필수품, 한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 그들의 사랑의 용로이었다. 되는대로 만들어진, 흙으로 구운 질화로는, 그 생김생김부터가 그들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건마는, 지그시 누르는 넓적한 불돌 아래, 사뭇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저 혼자 불을 지니고 보호하는 미덥고 덕성스러운 것이었다. 갑자기 확확 달았다가 이내 식고 마는 요새의 문화 화로와는 무릇 그 본성이 다른 것이다. 이 질화로를 두른 정경은 안방과 사랑이 매우 달랐다. 안방의 질화로는 비록 방 한구석에 있으나, 그 위에 놓인 찌개 그릇은 혹은 '에미네'가 '남정'을 기다리는 사랑, 혹은 '오마니'가 '서당아이'를 고대하는 정성과 함께 언제나 따뜻했다. 토장에 무를 썰어서 버무린 찌개나마 거기에는 정이 .. 2014. 1. 10. (수필) 낙엽과 문학 / 이무영 낙엽과 문학 이무영 귀뚜라미, 달, 낙엽, 단풍‥‥‥, 우리는 이런 낱말들만 보고서도 흔히 시정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 온 시 속에는 가을을 소재로 한 것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가을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 감상에 깊이 빠지고 있음도 사실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문학하는 태도를 한 번쯤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낙엽이니 단풍이니 하는 것이 다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는 것임엔 틀림이 없지만, 이를 보고 다만 감상에 빠지는 데서 끝나고 만다면, 이것은 결국 우리 문학을 나약하게 만들 위험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을을 조락의 계절로만 파악하여 애수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는 문학의 길을 개척해야겠다. 애수니 .. 2014. 1. 10. (수필) 나의 고향 / 전광용 나의 고향 전광용 나의 고향은 함경도 북청이다. 북청이란 지명이 사람들의 귀에 익게 된 것은 아마도 '북청 물장수' 때문인 것 같다.수도 시설이 아직 변변하지 않았던 8.15 전의 서울에는 물장수가 많았었다.그런데, 그 대부분이 북청 사람이었던 까닭으로 '물장수'하면 북청, '북청 사람' 하면 물장수를 연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청 사람이 물장수를 시작한 것은 개화이후, 신학문 공부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 북청 물장수 치고 치부를 하기 위해서 장사를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고, 그들 뒤에는 반드시 서울 유학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들이나 동생의 학자를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 좋은 조카나 사촌을 위해서까지도 그들은 서슴지 않고, 희망과 기대 속에 물장수의 고역을.. 2014. 1. 10. (수필) 갑사로 가는 길 / 이상보 갑사로 가는 길 이상보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東鶴寺)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丹粧)한 콘크리트 사찰(寺刹)은 솜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관광 버스도 끊인 지 오래다. 등산복 차림으로 경내(境內)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우리 넷뿐, 허전함조차 느끼게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대충 절주변을 살펴보고 갑사(甲寺)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은 산정(山頂)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어 팍팍한 허벅다리만 두들겼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성장(盛裝)을 벗은 뒤 여윈 몸매로 찬 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 코트를 입은 듯이 탐스러운 자태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흙이나 돌이 모두 눈에 덮인 산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우리들.. 2014. 1. 10. (수필) 한국(韓國)의 미(美) / 김원룡 한국(韓國)의 미(美) 김 원 룡 (金元龍) 한국(韓國)의 미(美)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자연(自然)의 미’라고 할 것이다. 자연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은 한국적(韓國的) 자연으로, 한국에서의 미술 활동(美術活動)의 배경(背景)이 되고 무대(舞臺)가 된 바로 그 한국의 자연이다. 한국의 산수(山水)에는 깊은 협곡(峽谷)이 패어지고 칼날 같은 바위가 용립(聳立)하는 그런 요란스러운 곳은 적다. 산은 둥글고 물은 잔잔하며, 산 줄기는 멀리 남북으로 중첩(重疊)하지만, 시베리아의 산맥(山脈)처럼 사람이 안 사는 광야(曠野)로 사라지는 그러한 산맥은 없다. 둥근 산 뒤에 초가집 마을이 있고, 산봉(山峯)이 높은 것 같아도 초동(樵童)이 다니는 길 끝에는 조그만 산사(山寺)가 있다. 차창(車窓)에.. 2014. 1. 10. (수필) 독서와 인생 / 이희승 독서와 인생 이희승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갈대'라고 한 것은 아마 약하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한다. 갈대는 웬만한 바람일지라도,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저리 쏠리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와 같은 약한 존재이면서, 생각하는 작용을 한다. 이 '생각한 다'는 일, 이것이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한 가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이르는 것도, 이 생각하는 작용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은 그만큼 놀랍고 위대한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문화를 창조하여 내려왔고, 또 그것을 흐뭇하게 누리고 있는 것은 온전히 사고작용의 덕분이라 할 수 있으며, 오늘날 월세계를 생각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벌써 수십 년 전.. 2014. 1. 10. (수필) 탈고(脫稿) 안 될 전설 / 유주현 탈고(脫稿) 안 될 전설 유주현(柳 周鉉) 벌써 여러 해 전의 이야기다. 도회 생활에 심신이 피로하여 여름 한 달을 향리(鄕里)에 가서 지낸 일이 있다. 나는 그 때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 나의 생애를 두고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며, 필시(必是) 그들은 내 메말라가는 서정(抒情)에다 활력(活力)의 물을 주는 역할을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해 줄 줄로 안다. 향리 노원(蘆阮)에는 내 형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물이 맑고 산이 높아, 여름 한철에는 찾아 오는 대처(大處) 사람들이 선경(仙境)에 비길 만큼, 그 풍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그 여름 한달을 형의 원두막에서 살았다. 마침 형이 참외와 수박을 많이 심고,.. 2014. 1. 10. (수필) 물 / 박지원 물 박지원( 朴趾源)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 나와 돌에 부딪혀, 싸우는 듯 뒤틀린다. 그 성난 물결, 노한 물줄기, 구슬픈 듯 굼실거리는 물 갈래와 굽이쳐 돌며 뒤말리며 부르짖으며 고함치는, 원망(怨望)하는 듯한 여울은, 노상 장성(長城)을 뒤흔들어 쳐부술 기세(氣勢)가 있다. 전차(戰車) 만 승(萬乘)과 전기(戰騎) 만 대(萬隊), 전포(戰砲) 만 가(萬架)와 전고(戰鼓) 만 좌(萬座)로써도 그 퉁탕거리며 무너져 쓰러지는 소리를 충분히 형용(形容)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엔 엄청난 큰돌이 우뚝 솟아 있고, 강 언덕엔 버드나무가 어둡고 컴컴한 가운데 서 있어서, 마치 물귀신과 하수(河水)의 귀신(鬼神)들이 서로 다투어 사람을 엄포 하는 듯한데, 좌우의 이무기들이 솜씨를 시험(試驗)하여 사람을 붙.. 2014. 1. 9. (수필) 나의 소원 / 김구 나의 소원(所願) 김구(金九) 네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大韓獨立)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自主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同胞)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칠십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達)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칠십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2014. 1. 9. (수필) 금당벽화 / 정한숙 금당벽화(金堂壁畵) 정한숙 (鄭漢淑) 목탁 소리가, 비늘진 금빛 낙조 속에 여운을 끌며 울창한 수림을 헤치고 구릉의 기복을 따라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무성한 숲과 숲, 스며드는 습기로 바위의 이끼는 변함 없이 푸른데, 암수 서로 짝지어 어르는 사슴의 울음은, 남국적인 정서로 이국의 애수를 돕는 듯했다. 바위에 앉은 채 움직이려 하질 않았다. 서녘 하늘은 젖빛 구름 속에 붉은 빛을 머금는가 하면, 자줏빛 구름이 솟구쳐 흐르고, 그것이 퍼져 다시 푸른 바탕으로 변하면, 하늘은 자기 재주에 겨워 회색빛으로 아련히 어두워 갔다. 바위에 기대앉은 담징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동광은 하늘 빛을 닮은 듯, 담뿍 부풀어올랐던 희열의 빛이 잦아들며, 몽롱한 꿈 속에 잠기듯이 흐려졌다... 2014. 1. 9. (수필) 깨어진 그릇 / 이항녕 깨어진 그릇 이항녕(李恒寧) 광복(光復) 전에, 나는 경남(慶南)에서 군수(郡守) 노릇을 한 일이 있다. 광복이 되자 나는 그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소나마 속죄(贖罪)가 될까 하여 교육계(敎育界)에 투신(投身)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교육에 종사한다는 것이 전비(前非)에 대한 속죄가 되는지에 관해선 지금도 의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은 가장 신성한 사업이다. 그런 사업에 죄(罪) 있는 사람이 참여(參與)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지금, 내가 속죄를 한답시고 교육계에 들어온 것이 교육에 대한 모독이 아니었나 하고 반성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속죄의 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국민학교 평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기왕 교육계에 투신하기고 결심한 이.. 2014. 1. 9. (수필) 한 눈 없는 어머니 / 이은상 한 눈 없는 어머니 이은상(李殷相) 김 군(金君)에게 김 군이 다녀간 어젯밤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소. 김 군에게 보내는 이 편지(便紙)는 쓰고 싶으면서도 실상은 쓰고 싶지 않은 글이오. 왜냐 하면, 너무도 어리석은 일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슬픈 사연(事緣)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꼭 써야만 한다는 의무감(義務感) 같은 것을 느끼었소. 그래서 이 붓을 들었소. 어젯밤 우리가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소.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르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소. 아, 거기서만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그대는 품 속에서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寫眞)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소.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생전(生前)에 뵈온 일이 없었기에 반가이 .. 2014. 1. 9. (수필) 감사 / 임옥인 감사 - 임옥인 오늘은 우리가 새 집을 짓기 시작하는 날이다. 평생 '임시'와 '방랑'을 면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주하고 싶은 것이다. 기쁘다. "얼마나 더 살려고 그래?" "누구에게 물려주려고?" 내가 집을 짓겠다고 할 때, 이렇게 말하는 벗들도 있었다. 내가 늙은 탓이고 나에게 아들딸이 없는 까닭일 것이다. 이 말들 속에는 물론 내가 고생할 것을 염려하는 따뜻한 우정도 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집이 누구에게 돌아간들 어떠랴. 누구라도 들어와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로써 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말할 수 없이 신선한 오전이었다. 아름답게 흐르는 오월의 맑은 햇빛, 뜰 안.. 2014. 1. 9. 이전 1 ··· 43 44 45 46 47 48 49 ···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