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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수필) 생활의 운치(韻致) / 신석정

by 혜강(惠江) 2014. 1. 10.

 

<수필>

 

생활의 운치(韻致) 

 

신석정

 

 

     "어디 우리에게 생활이 있나? 그저 생존하는 거지 ."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이요, 또 교양인이라고 자타가 공인한다는 층에서 이런 푸념(?)을 더욱 많이 듣게 된다. 생존 자체가 생활을 위한 것이요, 생존을 위한 생존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있어서도 안 돌 것이며, 생활다운 생활이 못 될지언정 우리들의 호흡이 생존에 그친다면, 그 이상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생활다운 생활을 영위할 만한 여건이 갖추어졌느냐면 그것은 우리들의 꿈이요, 현실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 역사가 비롯한 뒤, 한 번도 갖추어진 적이 없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어찌하랴?

  만일 인간이 의욕하는 바 생활당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이 지구가 깡그리 천국이 되는 날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설사 경제적둁니 문제가 해결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의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일 것이다.

  그러기에 도연명은 오두미에 허리를 굽힐 수 가 없어 팽택의 현력을 내던지고 그 무서운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평담 한아(平淡閑雅)한 속에 귀거래사(歸去來辭)로 마음을 달래야 했고, 끝내는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의 정점(訂點)에 도달한 것이 아니겠는가?

  빵으로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빵 이전에, 그리고 빵 이후에 인생은 시작되는 것이다. 본능의 행동화로 능히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면 어찌 우리에게 비극이 있을 것인가?

  차라리 비극은 인간의 정신사를 찬연히 장식하는 가장 고귀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우리는돼지가 통곡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 비계 덩어리에서 무근 값진 눈물이 나오겠는가? 그러기에 시인이나 예술가의 목덜미에서 사장급의 비계 덩어리를 발견할 수 없는 것도 노상 그들의 영양 섭취가 A급이 못 되는 데만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 성싶다.

  운치를 찾자면 사람은 여위기 마련이다. 아니, 날짐승을 두고 보더라도 알 일이다. 뉴햄프셔가 학을 따라 하늘로 날아갔다는 말은 아직 없다. 비행기는 월맹을 폭격하는 데도 필요하겠지만, 관광 지대를 찾아 밀월 여행을 떠날 때에도 필요하다. 이것이 또한 운치다. 뉴햄프셔가 우리에게 달걀을 공급할 때 학은 천공을 날아야 하고, 저금 통장을 계산하고 밀수를 음모하는 패거리가 있는가 하면, 오류(五柳) 선생은 못 될지언정 그래도 문 앞에 버드나무를 심고, 좁은 대로 뜰에는 잔디와 꽃을 가꾸는 운치를 잊지 않는 사람이 있어 세상은 살맛이 나는가 보다. 이렇게 혼탁한 속에서도 운치는 근절되지 않고 장강처럼 곤곤(滾滾)히 흐르기에 더 값진 것이리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지(知) 정(情) 의(意)는 한정된 세계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비판하기를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주어진 현실에서보다도 갖고 싶어하는 현실의 실현을 위하여 아름답게 느껴야 하고, 밝게 비판해야 하고, 선하게 행동하여 부단한 전진을 의욕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나이 들수록 세사(世事)에 대범해지는 것이 인간의 상정(常情)이라면,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데서 담담하게여생을 올바로 보내자는 것이 나의 생활 신조이지만, 그 반면에 남에게서 해를 입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또한 나의 생활 신조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밟히지도 않고 밟아서도 안 되겠다고 굳은 신념으로 다짐하곤 한다.

  그렇다. 인간이 의욕하는 것은 가장 자유로운 속에서 아무 구애없이 스스로의 개성을 십이분 발휘할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그러나 오늘이란 현실을 굽어볼 때 무참히 짓밟히고 무참히 짓밟는 것을 목도하게 되니 가슴 아플 수밖에.

  한 국가가 한 국가를 짓밟는가 하면, 개인이 개인을 짓밟고 있지 않은가? 국가나 개인을 막론하고 짓밟는다는 것은 비극임에 틀림없다. 아무래도 민주주의의 참다운 모습은 밟히지도 밟지도 않는 데서 제 1 꽈 제 2장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운치 있는 내일의 생활을 위한 그 기본 문제의 해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는 날, 시인은 비로소 맑은 목청을 다듬을 것이요, 천공을 비상하는 단정학(丹頂鶴)을 선망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꿈과 현실은 그 거리가 너무 아득하기에 시인과 더불어 우리는 한숨을 내쉬어야 하고, 때로는 가슴을 쥐어뜯어야 한다.

  일찍이 도연명(陶淵明)은 술로 그의 울분과 빈궁을 달래던 나머지 "天秋萬歲後 誰知榮與辱 但恨在世傳 飮酒不得足"(천만년이나 지나간 뒤, 뉘 있어 영예로움과 욕됨을 알리오? 다만 한 되는 것은 내 세상에 있었을 때, 마음껏 술을 마시지 못한 것이로다). 이런 데카당적 자만(自輓)을 써 놓았음을 볼 때, 새삼 가슴에 파고드는 측은한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기에 동쪽 울밑에 피어 있는 국화꽃을 꺾어 들고, 유연히 남산을 보았으리라. 그 또한 꿈에서 살고 꿈을 먹다가 꿈같이 떠나간 시인이다. 아아 위대한 무상일진저!

  각설, 이미 울밑에 개나리가 만개했고 뒤이어 수선이 터지더니, 용담, 도라지, 더덕, 백합이 지각(地殼)을 뚫고 일어서느라고 수런대고, 백목련이 화피를 벗는가 하면, 후박도 움을 싸고 있던 그 투박한 껍질을 훌훌 벗어던지고, 목단도 고물고물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더니, 식나무도 묵은 잎새를 한두 잎 떨구고 있다.

  고대하던 라일락 홍매가 첫 꽃을 선보이고, 장미들도 다투어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렇게 봄은 수다를 떨고 있건만 태연스럽게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춘산목(春山木), 호랑가시, 동백, 낙우송 그리고 은행나무, 석류도 봄을 외면한 듯 영 말이 없다. 글세! 파초도 무장을 해제시켜야겠는데 아직도 아침 저녁은 쌀쌀하니 걱정이다.

  라디오에서 떠들어대는 약 광고 유행가에는 기가 질렸으니, 말할것도 없고 시시한 친구들의 김빠진 이야기에 지칠 때에는 으레 나는 좁은 내 정원의 어린 식물 가족을 보살피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물론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요, 더 아름다운 넋은 그 아름다운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사없이 나오는 웃음이지만, 어디 요즘에는 그런 인간을 대하고 그런 인간의 웃음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고 보니, 차라리 정원의 어린 식물 가족들의 죄없는 얼굴들을 들여다보고, 그 침묵 속에서 갸륵한 마음을 굽어본다는 것은 다시 없는 나의 열락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속운(俗韻)을 동반하는 희로애락을 초월할 무념 무상의 경지라고 해도 좋다. 올 봄에는 시누대와 곁들여 오죽(烏竹)을 심어 바람과 햇볕에 머물다 가게 하고, 남쪽 울밑에는 이팝나무를 심어 5월에는 백설 같은 꽃을 피게 하리라.

  이 나무들이 풍기는 그 싱싱하고도 향긋한 내음 속에서 나는 그저 천천히 그리고 되도록 청수하게 늙어가리라. 내 만일 오류(五柳) 선생을 본받아 자만(自輓)을 쓸 양이면 재세전(在世傳)의 부족한 음주를 탓하기 전에 한 그루 나무나 한 포기 풀로 화신(化身)할 것을 초(草)하리라. 가로되,

  내 그림자를 거두는 날엔
  한 그루 춘산목(春山木)으로 서서 
  저 수려한 거악(巨嶽)을 마주 보리라. 
  그도 아니면
  천 년을 넘어도 오히려 솟구치는 
  의젓한 은행나무로 하고 서서
  못다한 한을 풀어 보리라.
  그도 아니면 
  아아 그도 아니면 
  한 포기 노루귀의 빨간 꽃잎술로
  춘분(春分)에 앞서 봄을 핥으리라. 

   이 서투른 자만(自輓)이 어느 가을날 황혼의 바람에 펄펄 날릴 때에도, 저 오리나무 숲 너머 고덕산은 지금 보이는 저 모습으로 푸르게만 서 있을 것이다.

 

▲필자 : 신석정(辛石汀)


  본명 석정(錫正). 전라북도 부안(扶安)군 출생.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약 1년간 불전(佛典)을 연구하였다. 1931년 《시문학》 3호부터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작품활동을 본격화, 그 해에 〈선물〉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등을 발표했고, 계속 〈나의 꿈을 엿보시겠읍니까〉 〈봄의 유혹〉 〈어느 작은 풍경〉 등 목가적인 서정시를 발표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8 ·15광복 후에는 시작(詩作)과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저서로는 초기의 주옥 같은 전원시가 주류를 이룬 제1시집 《촛불》(1939)과, 역시 8 ·15광복 전의 작품을 묶은 제2시집 《슬픈 목가(牧歌)》(1947), 그 뒤 계속 《빙하(氷河)》 《산의 서곡(序曲)》 《대바람 소리》 등의 시집을 간행했다. 그의 시풍은 잔잔한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 노래하는 데 특색이 있고, 그 맑은 시정(詩情)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감동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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