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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수필) 인생의 주제가 무엇인가 / 김동길

by 혜강(惠江) 2014. 1. 10.

인생의 주제가 무엇인가 

 

 

김동길

 

 

 

 

  사람을 가장 똑똑한 둥물이라 하여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가 주어졌겠지만 인간은 아직도 무식한 동물이다. 첫째, 시간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는가. 남편과 자기 자신의 생년월일은 알고 있지만,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짜에 태어났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지만 꽝하는 소리와 함께 태양계가 형성된지 족히 50억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천문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는데 그 기나긴 세월은 이해할 수 없다.


  50억년 전에도 시간은 있었는가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고 앞으로 50억년 뒤에도 시간은 있겠는가 물으면 그것도 대답하기 어렵다. 철학을 한다는 매우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을 이해할 수가 없어 아마도 영원(Eternity)이라는 말을 생각해 냈겠지만 영원이라는 말은 나는 시간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는 솔직한 고백이라고 여겨진다.


  인간이 또 하나 알고 싶어하는 것이 공간인데 공간도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과제이다. 달나라에까지는 다녀온 사람들이 있다. 그밖에 몇몇 별나라까지는 탐방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어떤 동물작가의 노래처럼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 갑니다 /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넓은 하늘로 / 엄마 엄마 부르며 날아갑니다." 라고 했을 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넓은 하늘을 이해할 수 있는 자가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하여라. 수천억 개의 별들이 들어 있다는 은하수와 비슷한 것들이 이 우주에는 또 다시 수천억 개가 있다고 하니 공간에 대하여 우리는 무한(Infinity)이라고 외치며 두 손을 반짝 들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아닌가.


  이런 엄청난 시간과 공간을 의식하면서 우리들의 인생은 요 콩알만한 지구위에서 전개된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70년, 90세가 되고 100세가 되기까지 사는 사람도 드물고 여행을 많이 한다는 사람도 지구를 몇 바퀴 돌아보는 정도가 아닌가. 계절에 춘하추동이 있듯이 인생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인생의 봄은 언제인가, 태어나서 한 20년, 봄을 계절의 여왕이라 하는 것은 그것이 날마다 변하는 다양한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갓난아기는 날마다 변하고 그 놀라운 계절이 인생의 봄이다. 그렇다면 20대, 30대를 무성한 여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시인은 녹음이 우거지고 풀의 향긋한 냄새가 감도는 여름철이 꽃피는 봄철보다 못하지 않다라고 읊었는데 여름은 인생에 있어 가장 활동적인 계절로 힘든 일, 고달픈 일을 모두 여름철에 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40대에 올라서면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젊어서는 미인이라고 하던 사람도 솔솔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그 눈 언저리에 잔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면 미인의 자격은 상실하게 마련이다. 50의 언덕에 서면 가을도 깊어가니 인생에 대하여 좀더 깊이 반성하며 삶을 정리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60대, 70대는 인생의 겨울철이다. 꽃도 잎사귀도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무가지만이 보이는 나무 한그루 - 그것이 인생의 겨울이고 그 겨울 어느 날 인간이란 조용히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월의 템포가 한결같지 않다는 사실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인생의 봄, 여름은 음악의 용어로 한다면 아다지오(Adagio)같이 느리게 가는 세월이지만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면 그 때부터 알레그로(Allegro)로 변조가 된다. 세월이 쏜살 같이, 화살 같이 빠르게 간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눈 한번 깜빡할 사이를 일순이라고 하는데, 인생의 가을과 겨울은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인생을 75년이나 살면서 나는 무엇을 깨달았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돈이나 감투인줄 잘못 알고 있는데 나는 75년의 연륜을 거듭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인생의 주제가 돈도 아니고 감투도 아니고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속지 말라. 돈이 그대에게 행복을 줄 수 없고 감투가 그대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 행복을 창조하는 것은 사랑 뿐이다. 사랑하라. 끝까지 사랑하라.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라. 아들·딸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조국을 사랑하라. 사랑만이 인간의 삶을 보람있게 만드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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