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단문(수필)

(수필) 마고자 / 윤오영

by 혜강(惠江) 2014. 1. 10.

<수필>

 

마고자 

 

윤오영 (尹五榮)

 

 

   나는 마고자를 입을 때마다 한국 여성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한다. 남자의 의복 가운데 가장 사치스러운 호사(豪奢)가 마고자다.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감은 다른 옷보다 더 값진 천을 사용한다. 또, 남자 옷에 패물(佩物)이라면 마고자의 단추다. 

 마고자는 방한용(防寒用)이 아니요 모양새다. 방한용이라면 덧저고리가 있고 잘덧저고리도 있다. 화려하고 찬란한 무늬가 있는 비단 마고자나 솜 둔 것은 촌스럽고, 청초한 겹마고자가 원격(原格)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노인네가 겨울에 소탈(疏脫)하게 방한삼아 입으려면, 그 대신에 약식인 반배(半褙)를 입었던 것이다.

  마고자는 섶이 알맞게 여며져야 하고, 섶귀가 날렵하고 예뻐야 한다. 섶이 조금만 벌어지거나 조금만 더 여며져도 표가 나고, 섶귀가 조금만 무디어도 청초한 맛이 사라진다. 깃은 직선에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둥글어도 안 되며, 조금 더 파도 못쓰고, 조금 덜 파도 못쓴다. 안이 속으로 짝 붙으며 앞뒤가 상그럽게 돌아가야 하니, 깃 하나만 보아도 마고자는 바느질 솜씨를 몹시 타는 까다로운 옷이다.

  마고자는 원래 중국(中國)의 마괘자(馬圫子)에서 왔다 한다. 귀한 사람은 호사스러운 비단 마괘자를 입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청마괘자를 걸치고 다녔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마고자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고자는 마쾌자와 비슷도 아니 한 딴 물건이다. 한복(韓服)에는 안성맞춤으로 어울리는 옷이지만, 중국 옷에는 입을 수 없는, 우리의 독특한 옷이다. 그리고 그 마름새나 모양새가 한국 여인의 독특한 안목(眼目)과 솜씨를 제일 잘 나타내는 옷이다. 그 모양새는 단아(端雅)하고 아취(雅趣)가 있으며, 그 솜씨는 섬세(纖細)하고 교묘(巧妙)하다. 우리 여성들은 실로 오랜 세월을 두고 이어받아 온 안목과 솜씨를 지니고 있던 까닭에 어느 나라 옷을 들여오든지 그 안목과 그 솜씨로 제게 맞는 제 옷을 지어냈던 것이다. 만일, 우리 여인들에게 이런 전통(傳統)이 없었던들, 나는 오늘 이 좋은 마고자를 입지 못할 것이다.

  문화의 모든 면이 다 이렇다. 전통적인 안목과 전통적인 솜씨가 있으면 남의 문화가 아무리 거세게 밀려든다 할지라도 이를 고쳐서 새로운 제 문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송자(宋瓷)에서 고려(高麗)의 비취색(翡翠色)이 나오고, 고전(古典) 금석문(金石文)에서 추사체(秋史體)가 탄생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귤(橘)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엔 남의 문물(文物)이 해동(海東)에 들어오면 해동 문물(海東文物)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탱자가 아니라 진주(眞珠)였다. 그런데 근래(近來)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남의 것이 들어오면 탱자가 될 뿐 아니라, 내 귤(橘)까지 탱자가 되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필자 : 윤오영(尹五榮 1907-1976)

수필가. 교육자. 서울 출생. 호는 치옹(痴翁). 서울 보성고등학교 교사 역임. 주로 토속적인 제재를 사용하여 동양적인 인생관의 가치를, 고전의 세계와 조응되는 한국적 정신을 바탕으로 많은 작품을 썼다.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