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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수필) 탈고(脫稿) 안 될 전설 / 유주현

by 혜강(惠江) 2014. 1. 10.

 

<수필>

 

탈고(脫稿) 안 될 전설

 

유주현(柳 周鉉)

 

 

 

 

   벌써 여러 해 전의 이야기다.

  도회 생활에 심신이 피로하여 여름 한 달을 향리(鄕里)에 가서 지낸 일이 있다. 나는 그 때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 나의 생애를 두고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며, 필시(必是) 그들은 내 메말라가는 서정(抒情)에다 활력(活力)의 물을 주는 역할을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해 줄 줄로 안다.

 

  향리 노원(蘆阮)에는 내 형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물이 맑고 산이 높아, 여름 한철에는 찾아 오는 대처(大處) 사람들이 선경(仙境)에 비길 만큼, 그 풍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그 여름 한달을 형의 원두막에서 살았다. 마침 형이 참외와 수박을 많이 심고,밭둑에는 높직한 원두막을 지어 놓았던 것이다. 그 원두막에서 낮이나 밤이나 외로이 뒹굴며 시장하면 참외를 따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무료(無聊)하면 공상을 하고, 그것도 시들해지면 원고지(原稿紙)에 가벼운 낙서를 하고, 그래도 권태를 느끼면 풀 베는 아이들을 불러 익은 참외 고르기 내기를 해서, 잘 익은 놈을 고른 녀석에게는 잘 익은 놈을, 안 익은 놈을고른 녀석에게는 씨도 안 여문 참외를 한 두 개씩 상(賞)으로 안겨 주며 희희낙락(喜喜樂樂),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을 흘렸다.

 

  어느 날인가, 장대비가 몹시 쏟아지는데 뽀얀 우연(雨煙)이 하늘 땅 사이에 꽉 찼다. 줄기차게 퍼 붓는 빗발은 열 발자국 앞의 시야를 흐리게 하며 땅을 두드리는 소리는 태초(太初)의 음향처럼 사뭇 장엄(莊嚴)한 어느 오후였었다. 나는 원두막에 누워서 비몽사몽(非夢似夢間)을 소요(逍遙)하다가, 빗소리가 너무도 장엄하여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늘과 땅과 공간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된 들판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흐릿한 시야에 들어오는 어떤 물체를 바라보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원두막에서 멀지 않은 밭 언저리로 사람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아가며, 서두르지 않고 유연(悠然)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여자 한 사람이 등에는 분명 바랑을 지고 있었다. 회색 승복(僧服)이 비에 젖고 있는 작달만한 키의 여승(女僧)이었다.

 

  나는 흥미에 앞서 경이(驚異)의 눈으로, 장엄한 자연 앞에 외로이 서 있는 하나의 점(點)을 봤다.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었다. 한 발 두 발 옮기는 걸음이 그대로 태산(泰山) 같은 안정(安定)이고 초연(超然)이었다.

 

  잠시 후, 여승은 발길을 돌려 내가 있는 원두막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잘 생긴 코 끝에서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유난히 흰 얼굴과 원만한 턱을 가졌다. 여승(女僧)은 분명코 원두막 위에서 사람이, 그것도 안경을 쓴 도회풍(都會風)의 젊은 녀석이 내려다보고 있는 줄을 눈치챘으련만, 전연 도외시(度外視)한 채 서서히 다가와 낙숫물 듣는 처마 밑으로 들어서서 비를 긋는 것이다. 관음보살(觀音菩薩)처럼 보였다. 다소곳하게 머리를 숙인 채, 사선(斜線)을 그으며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그의 그윽한 눈매와 표정은, 인간세(人間世)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한두 방울 빗물로 용해(溶解)되고 있는, 해탈(解脫)의 경지 그대로였다. 그렇게 느꼈다.

 

  “좀 올라와 쉬시죠,비가 몹시 쏟아집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래를 보고 말을 걸었다.여승은 대답도 없이,고개도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정한 듯, 빗물 떨어지는 웃옷을 후르르 떨고 사다리에 한발을 걸쳤다. 나는 원두막 위에서 몸을 구부리고는 한 손을 내려 보냈다. 여승은 주저하지 않았다. 내려온 손을 잡고 몸을 원두막 위로 올린, 손과 손끝의 접촉은 비정적(非情的)일 만큼 싸늘한 촉감을 여운처럼 남겼다. 초면(初面)의 남녀가 말없이 앉았기란 지극히 부자연스러워 말을 걸어 보았다.

 

  “어느 절에 계신가요?”

  “불암사(佛巖寺)에 있읍니다.”

 

  불암사란, 원두막에서 10리쯤 떨어진 산 속에 위치한 조그만 절이지만, 내력(來歷)은 오래 됐다는 소문울 듣고 있었다.

 

  “비가 몹시 쏟아집니다.이런 비를 맞으시고 어딜....”

  “그저 거닐었읍니다.하도 장(壯)하게 오시는 비이기에....”

 

  스물 몇쯤이나 될까, 갸름한 얼굴에는 교양미(敎養美)가 깃들여 있고, 흠뻑 젖은 승복(僧服)은 세련된 여체를 감싸고 있었다.

 

  “불암사에 오신 지는 오래되셨나요?”

  “1년 가량 됩니다.”

  “서울서 오셨군요?”

  “....참외가 많이 열렸읍니다.”

 

  극성스럽게 쏟아지는 빗발이 무성한 덩굴을 마구 헤쳐 놓는 바람에 희끗희끗한 조랑 참외가 유난히 드러나 보였다.  나는 이승(尼僧)이 시장기를 느끼고 있음을 눈치채고, 참외를 한아름 따다가 깎아 주었다. 여승은 담백(淡白)하고 솔직한 여자였다.

 

  “좀 시장했어요. 아주 달군요.”

 

  첫입을 베어물며 배시시 웃는데, 이가 고르게 희었다. 잠시 후에 여승은 가 보아야겠다고 일어나더니, 원두막을 내려가 표연(飄然)히 쏟아지는 빗발 속으로 나섰다.

 

  “절에 한번 놀러 가겠읍니다.”

  “구경 오시지요.”

 

  이 대화가 그 여승과 나와는 기약(期約)할 수 없는 작별 인사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우연히도 소나기가 퍼붓는 저녁 나절, 내가 있는 그 원두막을 찾아든 젊은 나그네 하나가 있었다. 서울서 왔다는, 삼십 전후의, 얼굴이 해사한 청년인데, 아깝게도 왼쪽 팔이 하나 없었다.

 

  “이 근처에 혹 절이 없읍니까?”

  “어느 절을 찾으시는데요?”

  “글세요, 어느 절이라기보다 여승이 있을 만한 절이 혹 없을는지요?“

 

  나는 문득, 며칠 전에 만난 그 여승의 영상(影像)이 머리에 떠올라, 그 젊은이를 유심히 살펴봤다.

 

  ”전장(戰場)에 갔다 오셨군요?“

 

  조심스런 내 물음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4년 만에 돌아 왔읍니다."

 

  딴전을 보는 그의 표정이 퍽은 쓸쓸했다.

 

  "절을 찾으시나요,아니면 여승을 찾으시나요?“

  "둘 다 찾습니다.여승이 있는 절이면,필요한 자료(資料)나 하나 얻으려고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더 자세히 물어 보았자 생면부지(生面不知)인 나에게 그가 어떤 긴절한 이야기를 해 줄리도 없을 것이며, 설령 흥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반갑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며칠동안 그 여승의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환상(幻像)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 사나이가 그 환상을 깨뜨려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따라서, 막상 그 이야기를 듣고나면 그 여인에 대한 나의 존경의 염(念)과 연연(戀戀)한 마음이 여지(餘地)없이 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더할 수 없이 신비스럽고 깨끗하며, 꿈을 먹고 믿음 속에서 사는 여인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요망(妖妄)한 여자가 악(惡)의 구렁에서 헤매던 끝에 문득 깨달은 체하는 가면(假面)으로 승복(僧服)을 빌어 입어, 구렁이 같은 육신을 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까닭이다.

 

  청년은 참외를 하나 달래서 달게 먹더니, 댓가를 치르려고 했다. 그 얼굴을 보니 괴로움을 질겅질겅 씹는 표정이었다. 나는 돈 받기를 가볍게 거절하면서, 그 사나이에게 불암사를 가리켜 주어야 옳을 것인가 아닌가를 곰곰 생각했다. 나는 그의 괴로움을 보며 적의(敵意)를 느끼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요 뒷산에 불암사라는 절이 있읍니다. 거기 젊은 여승 한 분이 계시더군요.”

 

  젊은이의 얼굴은 꽃구름처럼 밝아지며 생기가 넘쳐 흘렀다. 그는 더 이상 묻는 말없이 가 버렸다. 잠시 후에 비는 개고 햇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벌써 서녘 하늘에는 저녁놀이 타고 있었다.  이튿날, 황금빛 아침 햇살이 부채살처럼 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참외밭머리에 사람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제 본 젊은이가, 며칠 전에 만난 여승과 헤어지고 있었다. 승복차림의 여인은 합장(合掌)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석상(石像)이 되어 있었다.

 

  별리(別離), 나는 그들의 별리가 어떤 쓰라림을 지닌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진실과 사랑과 참회(懺悔)의 성스러운 자태(姿態)로 보였다. 나는 그네들이 다시 만날는지 안 만날는지는 생각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날까지 그들 남녀의 서글픈 전설을 뇌리(腦裡)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구상(構想)되지 않을 이 전설을 영원히 탈고(脫稿)하지 않을 작정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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