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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1790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④ - 지금은 나 자신을 매질해야 할 때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④ 지금은 나 자신을 매질해야 할 때 완도타워에서 네 번째 꿈의 편지를 띄웁니다. 사리 때로 접어드는 오늘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게 일 것”이라는 예보가 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지?’란 말이 들려옵니다. 이래저래 가슴 찢는 소식에 제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오늘도 허공에 시선을 놓아둔 채 넋을 잃고 먼바다를 바라보는 당신에게 또 한 장의 위로의 편지라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상습적인 과적(過積), 그것을 속이려는 뻔뻔스런 눈가림과 속임수, 탐욕(貪慾)과 거짓으로 가득찬 이 도시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슴을 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너나.. 2014. 5. 2.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③ -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췄다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③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췄다 완도타워에서 세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진도는 완도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진도 팽목항 앞바다는 우리가 부딪치며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한 현장입니다. 숙명이라고나 할까요? 삶의 현장으로 비유된 바다는 어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늘 위력의 대상이며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되지요. 그 바다는 때로 집채만 한 파도를 앞세워 배를 삼키고 허연 이빨을 드러내어 만용(蠻勇)을 부리곤 하지요. 이럴 때 우리는 안타깝게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인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 바다는 만용을 부리는 것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완도타워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시, 채호기의 는 우리에게 .. 2014. 5. 2.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②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②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완도타워에 올라 두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오늘 이른 새벽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간밤 뒤숭숭한 꿈자리로 잠을 설쳐 새벽에 눈을 붙이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면서 일찍부터 바다의 두 얼굴을 목격하며 살았습니다. 잔잔한 바다에 태풍 일어 바다가 뒤집히는 날에는 으레 새벽 바닷가 모래사장에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밀려온 물체를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이 악몽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바람이 자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물을 걷어 배에 싣고 망망한 바다로 나가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지요. 헤밍웨이의 처럼 말입니다. 아무.. 2014. 5. 2.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① -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①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완도에 갔었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온 나라가 비통에 젖어 있는 때에 진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완도타워에 올라 바라본 바다는 예상외로 잔잔했습니다. 그런 그곳에 죄 없는 어린 것들이 잠들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미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점전 그 책임자들이 밝혀지면서 분통이 터집니다. 어른인 나는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밖에,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 바라본 완도 타워 2층 벽 한쪽에는 몇 편의 시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김종해 시인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는 시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2014. 5. 1.
(수필) 짝 잃은 거위를 곡(哭)하노라./ 오상순 짝 잃은 거위를 곡(哭)하노라 오상순 내 일찍이 고독의 몸으로서 적막과 무료의 소견법으로 거위 한 쌍을 구하여 자식삼아 정원에 놓아 기르기 십개 성상이러니 금하에 천만 뜻밖에도 우연히 맹견의 습격을 받아 한 마리가 비명에 가고 한 마리가 잔존하여 극도의 고독과 회의와 비통의 나머지 음식과 수면을 거의 전폐하고 비 내리는 날, 달 밝은 밤에 여윈 몸 넋 빠진 모양으로 넓은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동무 찾아 목메어 슬피 우는 단장곡은 차마 듣지 못할러라. 죽은 동무 부르는 제 소리의 메아리인 줄은 알지 못하고 찾는 동무의 소린 줄만 알고 홀연 긴장한 모양으로 조심스럽게 소리 울려 오는 쪽으로 천방지축 기뚱거리며 달려가다가는 적적무문, 동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때 또다시 외치며 제소리 울려 오는 편으.. 2014. 1. 11.
(수필) 선비정신 / 송건호 선 비 정 신 송건호 기사도(騎士道) 무사도(武士道) 선비 예찬론이 심심찮게 저널리즘의 화제가 되고 있다. 아다시피 선비는 이조 5백 년간 양반들의 이상적 지식인상으로서 중세 유럽의 기사도나 일본의 무사도처럼 지난날의 이상상이지 지금 우리가 모범으로 삼을 만한 인간상은 못 된다. 원래 이상적 인간상이란 나라나 시대마다 그 사회의 역사적 조건에 따라 다르며 선비가 우리 사회의 이상이 된 것은 그 때 양반 신분이라는 사회적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고, 유럽에 기사도가 있고 일본에 무사도가 생긴 것도 제각기 중세의 봉건제가 그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필요로 한 인간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시민 사회에서 이런 인간상이 필요 없게 된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한데 근래 '선비론'이 새삼스럽게 대두되고 심.. 2014. 1. 11.
(수필)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 이어령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이어령 통 나무를 잘라 보면 안다. 한가운데를 톱으로 자르면 동심원의 나이테 무늬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이 장작을 팰 때처럼 세워 놓고 자르면 그 동그라미들은 온데 간데 없고 물결처럼 흐르는 나무결의 곡선 모양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나무로 죽창을 만들 때처럼 사선으로 비스듬히 쳐 보면 동그라미도,줄 무늬도 아닌 타원형 파문이 생겨나게 된다. 같은 통나무인데도 자르는 방식에 따라 이렇게 전연 다른 무늬가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무늬도 그와 같이 변한다. 슬픔이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가난이 풍요로 바뀌기도 한다. 나의 운명, 나의 가정 그리고 사랑과 사업, 또 이념이나 나의 조국 -- 그 모든 것들이 통나무를 자를 때처럼 다르게 변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2014. 1. 11.
(수필) 해학송(諧謔頌) / 최태호 해학송(諧謔頌) 최태호 우스갯소리를 잘 하는 사람이 친구 집에 찾아가니, 주인이 차려온 술상에 안주라고는 채소뿐이었다. 주인이 미리 말막음으로 "집안이 구차해서 고기 한 점 안 놓여 미안하네." 하였다. 시쳇말로 green field였던 모양이다. 그 때 마침 마당에 닭 여러 마리가 나와서 모이를 쪼고 있었다. 우스개 잘 하는 친구 말하기를, "대장부가 친구를 만나 어찌 천금을 아끼겠나? 내 당나귀 잡아 안주를 장만하게나." 하였다. 주인이 깜짝 놀라 "나귀를 잡아먹으면 자넨 무엇을 타고 돌아가겠나?" 그 친구 대답이 태연하였다. "닭을 타고 가지." 주인은 크게 웃고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서거정의 속의 한 토막이다. 대문장가로서 , , 등을 남긴 분의 글 속에서 왜 하필이면 이런 것이 나의 흥미를 돋.. 2014. 1. 11.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박완서 가끔 별난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싶은 충동 같은 것 말이다. 마음속 깊이 잠재한 환호(歡呼)에의 갈망 같은 게 이런 충동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샌 좀처럼 이런 갈망을 풀 기회가 없다. 환호가 아니라도 좋으니 속이 후련하게 박장 대소라도 할 기회나마 거의 없다. 의례적인 미소 아니면 조소·냉소·고소가 고작이다. 이러다가 얼굴 모양까지 얄궂게 일그러질 것 같아 겁이 난다. 환호하고픈 갈망을 가장 속 시원하게 풀 수 있는 기회는 뭐니뭐니 해도 잘 싸우는 운동 경기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국제 경기에서 우리편이 이기는 걸 텔레비전을 통해서나마 볼 때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일로 신이 .. 2014. 1. 11.
(수필) 고독과 사색 / 안병욱 고독과 사색 안병욱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사물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것은 오직 고독 속에서다-괴테 제일의 탄생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한 번은 생활하기 위하여 태어난다.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출생하여 이 세상에 내던져진다. 나의 몸뚱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생명의 탄생이요 신체의 탄생이다. 필자는 이것을 제 1의 탄생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제 2의 탄생이 있다. 자아가 탄생하고 나의 정신이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청년 시대에 이것을 경험한다. 사람은 제 2의 탄생과 더불어 참된 자기가 되고 진실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동물에는 제 1의 탄생밖에 없다. 동물은 정신 탄생과 자아의 탄생을 모른다. 오직 인간만이 제 2의 탄생을 갖.. 2014. 1. 11.
(수필) 딸에게 / 피천득 딸에게 피천득 '책 볼 기운이 없어 빨래를 하며 집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는 가벼운 하소연, 그러나 너의 낭랑한 전화 목소리는 아빠의 가슴에 단비를 퍼부었다. 전번 네 편지에 네가 외로움을 이겨 나가는 버릇이 생겼고 무엇이나 혼자서 해결하여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여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학문하는 사람에게 고적은 따를 수밖에 없다.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거의 전부이기에 일상생활의 가지가지의 환락을 잃어버리고 사람들과 소원해지게 된다. 현대에 있어 연구생활은 싸움이다. 너는 벌써 많은 싸움을 하여왔다. 그리고 이겨왔다. 아 싸움을 네가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그리고 너에게 용기를 북돋워준다는 것이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진리 탐구는 결과보다도 그 과정.. 2014. 1. 11.
(수필) 청추수제(淸秋數題) / 이희승 청추수제(淸秋數題) 이희승 벌 레 낮에는 아직도 90 몇 도의 더위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는다. 그런데, 어느 틈엔지 제일선에 나선 가을의 전령사가 전등빛을 따라와서, 그 서늘한 목소리로 노염에 지친 심신을 식혀 주고 있다. 그들은 여치요, 베짱이요, 그리고 귀뚜라미들이다. 물론, 이 전령사들이 전초역을 맡아 가지고 훨씬 먼저 온 것으로 매미, 쓰르라미가 있지마는 그을은 소란한 대낮에, 우거진 녹음 속에서 폭양에 항거하면서 부르는 외침이라, 듣는 사람에게 '가을이다'하는 기분을 부어 주기에는 아직 부족한 무엇이 있었다. 그렇더니, 이 저녁에 들리는, 정밀 속에 전진하여 오는 소리야말로, '인젠 확실한 가을이로구나!' 하는 영추송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게 한다. 달 전들을 끄고 .. 2014. 1. 11.
(수필) 싸리꽃 / 조병화 싸리꽃 - 조병화 지다 남은 꽃은 들판에 피어난 요염한 첫 꽃보다 더 사랑스러워라 그것은 더욱더 애절한 그리움을 우리 가슴에 안겨 주는 거 아, 그와도 같이 헤어질 땐 만날 때보다 더욱더 몸에 저려드는 것을. 이 시는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Pushkin)의 이다. 가을이 되면 머리에 떠오르는 싯귀절이다. 하늘에선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고, 파릇파릇 풀잎이 남아있는 바람이 부는 늦가을 들 풍경, 그곳에 지다 남은 작은꽃송이 하나를 연상해 본다. 바람에 떨고 있는 그 애절,그 애련, 그 청초, 그 가냘픔, 그 사랑, 그 몸에 저려드는생명의 절감,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느끼며.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나의 장조카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고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쯤 나이가 많았던가 한다. 그 장조카의.. 2014. 1. 11.
(수필) 가을의 여정 / 전광용 가을의 여정 전광용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리고 여름은 여름, 겨울은 겨울대로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그대로 다 새로운 즐거움을 가슴 속에 안겨다 주는 청신제라고나 할까. 그뿐인가.농촌은 농촌대로 전원의 유장한 목가적인 맛을 ,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것만이 지니는 독특한 자연의 시정을 선물하는가 하면, 새롭고 낯선 도시의 가로는 그것대로 흙 속에 파묻혔던 사람들에게 산뜻한 미지의 감각에 경이에 찬 눈동자를 뒹굴리게 한다. 그러기에 천하 명산 금강산도 계절에 따라 봉래,풍악,개골, 금강 등 그 때마다의 승경의 아치를 상징하는 이명들을 가지고 있다. 새 움 트는 봄의 정경이 산책이나 소풍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리듬이라면, 여름의 무르익은 녹음과 작열하는 태양은.. 2014. 1. 11.
(수필)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 라이나 마리아 릴케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 라이나 마리아 릴케 내가 한 주일 전부터 오늘까지 동화 같은 아침의 들에서 집으로 가져온 꽃들은 벌써 부드러운 압지의 넓은 천지 한 장 사이에 깊이 잠재워 두었소. 그러나 내가 오늘 그 꽃들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에게 소담스런 회상의 미소를 보내며, 모든 걸 그 때처럼 퍽 즐겁게 보이고자 하더군요……. 소중한 시간들 중의 한 시간이었소. 그러한 시간들은 촘촘히 들어찬 꽃들이 피어난 섬나라와 같아요. 물결들은 아주 나직이 봄의 울타리 뒤에서 숨쉬며, 어떤 나룻배도 과거로부터 다가오지 않으며 아무도 더 이상 미래로 향하고자 하지 않소. 평범한 나날로의 귀한(貴翰)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이러한 시간의 섬에는 아무런 해도 끼칠 순 없소―이 시간들은 다른 모든 시간과 무관하오. 어떤 훨.. 2014. 1. 11.
(수필) 마음의 메아리 / 법정 마음의 메아리 법정(法頂) 봄의 꽃자리에 연두빛 신록이 싱그럽게 펼쳐지고 있는 요즘, 남도의 절들에서는 차 따기가 한창이다. 옛 문헌에는 곡우를 전후하여 따는차가 가장 상품이라고 했는데 우리 조계산에서는 그 무렵이면 좀 빠르고 입하 무렵에 첫 차를 따는 것이 가장 알맞다. 이곳 선원에서도 엊그제 한 차례 따다가 볶았고, 오늘 대중들이 나가 또 한 차례 따왔다. 예년 같으면 나도 아랫마을 사람들을 몇 데리고 따로 차를 땃을 텐데, 올봄에는 하는 일이 많아 짬이 없을뿐더러 이제는 대중 속에 섞여 살 게 되었으니 나누어 주는 한 몫으로 족할 수밖에 없다. 차잎이 펼쳐지는 걸 보면 하루가 다르다. 그래서 바쁜 일에 쫓기다 보면 하루 이틀 사이에 적기를 놓치고 말 때가 더러 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고유의.. 2014. 1. 11.
(수필) 명사십리 / 한용운 명사십리 한용운 경성역의 기적일성(汽笛一聲), 모든 방면으로 시끄럽고 성가시던 경성을 뒤로 두고 동양에서 유명한 해수욕장인 명사십리(明沙十里)를 향하여 떠나게 된 것은 8월 5일 오전 8시 50분이었다. 차중(車中)은 승객의 복잡으로 인하여 주위의 공기가 불결하고 더위도 비교적 더하여 모든 사람은 벌써 우울을 느낀다. 그러나 증염(蒸炎), 열뇨(熱鬧), 번민(煩悶), 고뇌(苦惱) 등등의 도회를 떠나서 만리 창명(滄溟)의 서늘한 맛을 한 주먹으로 움킬 수 있는 천하 명구(名區)의 명사십리로 해수욕을 가는 나로서는, 보일보(步一步) 기차의 속력을 따라서 일선의 정감이 동해에 가득히 실린 무량(無量)하 양미(?味)를 통하여 각일각(刻一刻) 접근하여 지므로 그다지 열뇌(熱惱)를 느끼지 아니하였다. 그러면 천산만.. 2014. 1. 11.
(수필) 폭포와 분수 / 이어령 폭포와 분수 이어령 동양인은 폭포를 사랑한다. 비류 직하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란 상투어가 있듯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 물 줄기를 사랑한다. 으레 폭포수 밑 깊은 못 속에는 용이 살며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다. 폭포수에는 동양인의 마음 속에 흐르는 원시적인 환각의 무지개가 서려 있다. 서구인들은 분수를 사랑한다. 지하로부터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오르는 분수, 로마에 가든 파리에 가든 런던에 가든, 어느 도시에나 분수의 물줄기를 볼 수 있다. 분수에는 으레 조각이 있고 그 곁에는 콩코르드와 같은 시원한 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는 비둘기떼가 날고 젊은 애인들의 속삭임이 있다. 분수에는 서양인의 마음 속에 흐르는 원초적인 꿈의 무지개가 서려 있다. 폭포수와 분수는 동양과 서양의 각기 다른 두 .. 2014. 1. 11.
(수필) 슬픔에 관하여 / 몽테뉴 슬픔에 관하여 몽테뉴 나는 이 감정에서 가장 면제된 자들의 축에 든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치 여기 정가를 매겨 놓은 것처럼 특별한 기호(嗜好)를 가지고 이 심정을 존중하는 면이 있지만 나는 이것을 좋아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이것으로 예지(叡智), 도덕(道德), 양심(良心)에 옷을 입힌다. 어리석고 망측스런 장식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이 낱말에 괴악(怪惡)하다는 뜻을 붙였다. 왜냐 하면 이 심정은 언제나 해롭고 언제나 철부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토아 학파는 이것을 겁 많고 비굴한 소질이라고 보며, 그 파의 학자들에게 이 심정을 금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집트의 왕 프삼메니투스가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에게 패하여 잡혔을 때, 사로잡힌 자기 딸이 노예복을 입고.. 2014. 1. 11.
(수필) 평화를 위한 기도 /헤르만 헤세 평화를 위한 기도 헤르만 헤세 사랑하는 벗이여! 알 수 없는 약속과 위협을 가지고 새해는 우리들을 맞아 주었다. 지금은 새해의 한밤중, 이 시간은 우리들이 언제나 생활하고 있는 시간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제전(祭典)처럼 축하하고, 그것도 엄숙한 제전으로서 축하하고 있다. 이렇게 축하한다는 것은 올바른 것이다. 왜냐 하면, 한 시간이나마 속된 일상 생활에서 물러나서 반성, 자기 비판, 청산이나 명상의 기회를 얻는 다는 것은 소란스럽고 빈곤한 생활에 있어서 혜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고 인생은 허무하며, 인간의 사업이란 무상하기 짝이 없다. 그 점을 생각해 볼 때, 가령 슬픔에 잠겨서 고민하든지, 또는 대담무쌍하게 기쁨에 날뛰며 생각하든지 간에 그것은 우리들에.. 2014. 1. 11.
(수필) 술 / 피천득 술 - 피천득 "술도 못 먹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시오?" 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렇기도 하다. 술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진리로 알 전부이다. 나는 입에다 잔을 들고 그대 바라보고 한 숨 짓노라. 예이츠는 이런 노래를 불렀고, 바이런은 인생의 으뜸가는 것은 만취(滿醉)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백(李白)을 위시하여 술을 사랑하고 예찬하지 않은 영웅 호걸, 시인,묵객이 어디 있으리오. 나는 술을 먹지 못하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름날 철철 넘는 맥주잔을 바라다보면 한숨에 들이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차라리 종교적 절제라면 나는 그 죄를 쉽사리 범하였을 것이요, 한때 미국에 있던 거와 같은 금주법(禁酒法)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벌금을 각.. 2014. 1. 11.
(수필)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 김태길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김태길 버스 안은 붐비지 않았다. 손님들은 모두 앉을 자리를 얻었고, 안내양만이 홀로 서서 반은 졸고 있었다. 차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자 어린이 하나가 그 앞으로 확 달려들었다. 버스는 급정거를 했고, 제복에 싸인 안내양의 몸둥이가 던져진 물건처럼 앞으로 쏠렸다. 찰나에 운전기사의 굵직한 바른팔이 번개처럼 수평으로 쭉 뻗었고, 안내양의 가는 허리가 그 팔에 걸려 상체만 앞으로 크게 기울었다. 그녀의 안면이 버스 앞면 유리에 살짝 부딪치며, 입술 모양 그대로 분홍색 연지가 유리 위에 예쁜 자국을 남겼다. 마치 입술로 도장을 찍은 듯이 선명한 자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운전기사는 묵묵히 앞만 보고 계속 차를 몰고 있었다. 그의 듬직한 뒷.. 2014. 1. 11.
(수필) 덧칠을 벗겨낸 얼굴의 값 / 함영숙 덧칠을 벗겨낸 얼굴의 값 함영숙 성형수술이 발달한 지금은 얼굴이나 신체 부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배우처럼 고치는 사람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화장술이 발달하여 조금만 관심 가지고 화장하는 법을 익히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때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습 보다 더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화장독으로 인하여 망가진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 시킬수 있을까? 또한 성형 수출한 후에 맘에 들지 않는다고 예전의 모습으로 되 돌릴수 있을까? 돈으로 여기저기 이곳저곳 고쳐 놓고 흉물스러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 다시 고치려 하다가 더욱 더 나빠진 것을 본다. 사람이 젊음 그대로 있다면 오죽 좋으랴! 허나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늙어지게 마련인데. 돈으로 예쁘게 만드는 것도 .. 2014. 1. 11.
(수필) 효석(孝石)과 나 / 김남천 효석(孝石)과 나 - 김남진 소화 십육 년 정월에 나는 고향 가까운 어느 시골 온천에서 효석의 편지를 받았다. 몸이 불편해서 주을서 정양을 하던 중 부인이 갑자기 편치 않다는 기별이 와서 시방 평양으로 돌아왔는데 병명이 복막염 이어서 구하기 힘들 것 같다는 총망 중에 쓴 편지였다. 그 뒤에 부인의 병을 간호하면서 쓴 간단한 엽서를 한 장 더 받고는 이내 부고였다. 그 엽서에는, 내가 부인의 병환도 병환이려니와 효석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쓴 데 대해서, 부인의 병은 거의 절망 상태여서 이제 기적이나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는 것과 자기의 건강은 충분히 회복이 되었다는 것 등이 적혀 있었다. 부고는 시골집에서 받아서 자동차 편으로 온천에 있는 나에게 회송이 된 것으로, 발인 날짜가 얼마간 지난 뒤였다. 몹시 추운 .. 2014. 1. 11.
(수필) 사랑을 하면 / 김사빈 사랑을 하면 김사빈 사랑을 하면 예뻐지고, 바빠지고, 기뻐진다고, 교회 다니면 세 가지 '뻐'가 생긴다고 목사님의 강도 높은 말씀을 들었다. 첫째는 예뻐지고, 둘째는 바빠지고, 셋째는 기뻐진다 하였다. 내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면 주일날이면 교회 가는 사람들 곱게 차려 입고, 분이라도 찍어 바르고, 가지고 있는좋은 것을 들고 교회로 간다. 전에는 마을 가서 화투 놀이하였는데, 교회 다니면 주일 날 교회 가야지, 수요일 저녁 가지, 금요일 가지, 거기다 새벽 기도 가야지, 자연 바빠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전에 하던 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교회 가더니 사람 버렸네 하면 안되니까, 말이다 . 안 바르던 분이라도 바르고 바쁘게 다니다 보니 시름과 근심은 없어지고 자연 기뻐지니 삼뻐가 되는 비결인 것이.. 2014. 1. 11.
(수필) 외길의 고독, 그리고 아름다움 / 이정림 외길의 고독, 그리고 아름다움 - 이정림 가톨릭 신자도 아니면서, 성당에 다니는 언니의 초대로 미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그 성당에서 부제(副際)로 있던 쌍둥이 형제가 사제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하는 날이었다. 성당은 보통 때도 이렇게 신자가 많을까 싶을 만큼 사람들로 붐볐고,분위기는 엄숙하면서도 무슨 축제날처럼 조금 들떠 있었다. 얼굴이 너무도 닮은 쌍둥이 형제는 진지한 모습으로 그들의 첫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정결한 두 손을 들어 신자들의 머리 위에 축복을 내렸다. 미사가 끝나자 사제로서 첫출발을 하는 이들에게 기념품을 전달하는 순서가 있었다. 먼저 나이 어린소녀들이 수줍은 몸짓으로 조그마한 선물들을 이들에게 증정했다. 싱그러운 꽃다발을 꽃보다 더 싱그러워 보이는.. 2014. 1. 11.
(수필) 인생의 묘미 / 김소운 인생의 묘미 - 김소운 실패란 것이 있고 성공이란 것이 있다, 어떤 것이 성공이며 어떤 것이 실패인가를 ㄱ씨는 모른다. 천 원어치 행상꾼이 만 원 밑천으로 판자 가게를 내게 된 것도 성공이요, 10억 자본의 큰 회사가 5억으로 줄어든 것도 실패라면 실패이다. 10만 원 이윤을 기대했던 장사가 5만 원 번 것은 실패라고 볼 수 있고, 5천 원을 바랐다가 만 원이 생기면 이것은 성공일 수밖에 없다. 하필 물질이나 장삿속에만 한한 것이 아니리라. 인간 일생을 통틀어 과연 어느 것이 성공이요 어느 것을 실패라고 할 것인가? 이 점에 있어서는 언제나 ?씨는 회의적(懷疑的)이다. 그러나 누구의 눈에도 뚜렷한 결정적인 실패란 것이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불행도 있다. 이 실패, 이 불행에 인생을 아로새기는 묘미가 있.. 2014. 1. 11.
(수필) 어느 장님 부부의 사랑이야기 / 전경린 어느 장님 부부의 사랑이야기 - 전경린 산에는 요즘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 아카시아 향과 찔레 향을 앞세운 산 향이 왈칵 왈칵 넘쳐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민가로 덮친다. 창을 열면 금세 내장 속까지 음기 가득한 푸른 멍 빛이 들어 버린다. 오랜만에 앞산의 안부를 알자고 늘 입고 뒹구는 목면 원피스 아래 발목까지 오는 면양말을 신고 운동화 차림으로 나섰다. 쉰여섯 개의 계단을 빙빙 돌아내려가니 좁은 길에 봉고차 한 대가 서 있고 옆 통로에 사는 장님 부부가 젖먹이 아기를 안고 나와 있었다. 봉고차엔 종로구 세탁물 봉사대라는 글귀가 박혀 있다. 중증 장애자와 독거노인, 소년 소녀가 가장인 가정의 세탁물을 씻어다 준단다. 봉사대들이 4층 장님부부의 아파트에서 이불 보퉁이와 빨래거리를 안고 내려오느라 부산.. 2014. 1. 11.
(수필) 사랑을 받고 싶은 본능 / 전혜린 사랑을 받고 싶은 본능 전혜린 사랑만이 우리를 온갖 악에서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요새다. 많은 사랑을 적당한 방법으로 받고 자라난 사람만이 정상적인 정서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의 부드러운 풍요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생래의 두 가지 본능이 있다. 하나는 타인 또는 사회로부터 자기(또는 자기의 재능, 기타 어떤 형태의 현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충동이고 또 하나는 남의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랑받고 싶은 본능은 몹시도 강하게 우리에게 집착하는 내면적 욕구이다. 순탄하게 정상적이고 절도 있는 범위 내에서 풍요하고 만족스럽게 사랑을 받고 자라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하늘과 땅 이상의 심연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한 .. 2014. 1. 11.
(수필) 쉴러와의 첫 만남 / 괴테 쉴러와의 첫 만남 괴테 급진전을 이룬 실러와의 관계는 만년에 나에게 행복을 마련해 준 가히 최상의 것으로 손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내 모든 욕구와 희망들을 압도했다. 나는 이 유익한 일이 식물의 변형론 연구 덕이라 믿는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그와 나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오해가 없어졌던 것이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일어났던 일에 구애됨이 없이 온갖 예술 분야에서 보다 명료하고 순수한 자아를 형성시키려 했던 이탈리아에서의 귀향 이후로 나는, 그 대단한 명성을 떨치며 점점 영향을 끼치는 최근의 문예 작품이나 옛 문예 작품이 유감스럽게도 극도로 역겨운 것들임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하인제의 와 쉴러의 가 그것이다. 전자는 감성과 혼란된 정신 자세를 조형 예술을 통해 고상하게 보이고자 하는 겉치레가 싫었고, .. 2014.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