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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수필) 명사십리 / 한용운

by 혜강(惠江) 2014. 1. 11.

<수필>

 

명사십리

 

한용운

 

 

   경성역의 기적일성(汽笛一聲), 모든 방면으로 시끄럽고 성가시던 경성을 뒤로 두고 동양에서 유명한 해수욕장인 명사십리(明沙十里)를 향하여 떠나게 된 것은 8월 5일 오전 8시 50분이었다.

  차중(車中)은 승객의 복잡으로 인하여 주위의 공기가 불결하고 더위도 비교적 더하여 모든 사람은 벌써 우울을 느낀다. 그러나 증염(蒸炎), 열뇨(熱鬧), 번민(煩悶), 고뇌(苦惱) 등등의 도회를 떠나서 만리 창명(滄溟)의 서늘한 맛을 한 주먹으로 움킬 수 있는 천하 명구(名區)의 명사십리로 해수욕을 가는 나로서는, 보일보(步一步) 기차의 속력을 따라서 일선의 정감이 동해에 가득히 실린 무량(無量)하 양미(?味)를 통하여 각일각(刻一刻) 접근하여 지므로 그다지 열뇌(熱惱)를 느끼지 아니하였다.

  그러면 천산만수(千山萬水)를 격(隔)하여 있는 천애(天涯)의 양미(?味)를 취하려는 미래의 공상으로 차중의 현실 즉 열뇌(熱惱)를 정복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이른바 일체유심(一切唯心)이다. 만일 그것이 유심(唯心)의 표현이 아니라면 유물(遺物)의 반현(反現)이라고 할는지도 모른다.

  나는 갈마(葛麻)역에서 명사십리로 갔다. 명사십리는 문자와 같이 가늘고 흰 모래가 소만(小灣)을 연(沿)하여 약 10리를 평포(平鋪)하고, 만내(灣內)에는 참차부제(參差不齊) 한 대여섯의 작은 섬이 점점이 놓여 있어서 풍경이 명미(明媚)하고 조망(眺望)이 극가(極佳)하며 욕장(浴場)은 해안으로부터 약 5,60보(步) 거리, 수심은 대개 균등하여 4척 내외에 불과하고 동해에는 조석(潮汐)의 출입이 거의 없으므로 모든 점으로 보아 해수욕장으로는 이상적이다.

  해안의 남쪽에는 서양인의 별장 수십 호가 있는데, 해수욕의 절기에는 조선 내에 있는 사람은 물론 동경, 상해, 북경 등지에 있는 사람들까지 와서 피서를 한다 하니 그로만 미루어 보더라 도 명사십리가 얼마나 명구(名區)인 것을 알 수가 있다 허락지 않는 다소의 사정을 불고(不顧)하고 반천리(半千里)의 산하를 일기(一氣)로 답파(踏破)하여 만부 일적(萬夫一的) 단순한 해수욕만을 위하여 온 나로서는 명사십리의 수려한 풍물과 해수욕장의 이상적 천자(天姿)에 만족치 아니할 수 없었다. 목적이 해수욕인지라 오승? 벗고 바다로 들어갔다. 그 상쾌한 것은 말로 형언할 배 아니다. 얼마든지 오래하고 싶었지마는 욕의(浴衣)를 입지 아니한지라 나체로 입욕함은 욕장의 예의상 불가하므로 땀만 대강 씻고 나와서 모래 위에 앉았다가 돌아보니, 김군은 욕의 기타를 사가지고 돌아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7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보니 일기가 흐리었다. 7시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였으나 계속적으로 오는 것이 대단치 아니하였다. 아침 밥을 먹고 나서 바다에 갈 욕심으로 비가 개이기를 기다렸으나 좀처럼 개이지 않는다.

  11시경 비가 조금 멈추기에 해수욕하는 데는 비를 맞아도 관계치 않겠다는 생각으로 나섰다. 얼마 아니 가서 비가 쏟아지는 데 할 수 없이 쫓기어 들어왔다. 신문이 왔기에 대강 보고 나니 원산(元山)의 오포(午砲)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교정하여 가지고 나서니 비가 개이기 시작한다. 맨발에 짚신을 신고 노동모를 쓰고 나섰다. 진 길에 짚신이 불어서 단단하여지매 발이 아프다. 짚신을 벗어 들고 맨발로 가는데 비가 그쳐서 rf이 반은 물이요, 반은 흙이다. 맨발로 밟기에 자연스러운 쾌감을 얻었다. 더구나 명사십리에 들어서서 가늘고 보드라운 모래를 밟기에는 너무도 다정스러워서 맨발이 둘뿐인 것이 부족하였다.

  해수욕장에 다다르니 마침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목욕을 하는데 남녀노유(男女老幼)가 한데 섞여서 활발하게 수영도 하고 유희도 한다. 혼자 온 것은 나 하나뿐이다. 나는 그들 목욕하는데서 조금 떨어져서 바다에 들어가 실컷 뛰고 놀았다. 여간 상쾌하지 않다. 조금 쉬기 위하여 나와서 모래 위에 앉았다. 이 때에 모든 것은 신청(新晴)의 상징뿐이다.

 쪽같이 푸른 바다는

 잔잔하면서 움직인다.
 돌아오는 돛대들은
 개인 빛을 배불리 받아서
 젖은 돛폭을 쪼이면서
 가벼웁게 돌아온다.
 걷히는 구름을 따라서
 여기저기 나타나는
 조그만씩한 바다 하늘은
 어찌도 그리 푸르냐.
 멀고 가깝고 작고 큰 섬들은
 어디로 날아가려느냐.
 발적여 디디고 오똑 서서
 쫓다 잡을 수가 없고나.

  얼마 동안 앉았다가 다시 바다로 들어가서 할 줄 모르는 헤엄도 쳐 보고 머리를 물 속에 거꾸로 잠가도 보고 마음 나는대로 활발하게 놀았다. 다시 나와서 몸을 사안(沙岸)에 의지하여 발을 물에 잠그었다.

 모래를 파서 샘을 만드니
 샘 위에는 뫼가 된다.
 어여쁜 물결은
 소리도 없이 가만히 와서
 한 손으로 샘을 메우고
 또 한 손으로 뫼를 짓는다.
 모래를 모아 뫼를 만드니
 뫼 아래에 샘이 된다.
 짓궂은 물결은
 해죽해죽 웃으면서
 한 발로 모를 차고
 한 발로 샘을 짓는다.

  다시 목욕을 하고 나서 맨발로 모래를 갈면서 배회하는데, 석양이 가까워서 저녁 놀은 물들기 시작한다. 산 그림자는 어촌의 작은 집들에 따뜻이 쪼이는데, 바닷물은 푸르러서 돌아오는 돛대를 물들인다. 흰 고기는 누워서 뛰고 갈매는 옆으로 날은다. 목욕은 사람들의 말소리는 높아지고 저녁 연기를 지음친 나무 빛은 옅어진다. 나도 석양을 따라서 돌아왔다.

  9일은 우편국에 소관이 있어서 원산에 갔다. 볼 일을 보고 송도원(松濤園)으로 갔다. 천연의 풍물로 말하면 명사십리의 비교가 아니나 해수욕장으로서의 시설은 비교적 상당하다. 해수욕을 잠깐하고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고 송림(松林) 사이에서 조금 배회하다가 다시 원산을 경유하여 여사(旅舍)에 돌아와 조금 쉬고 명사십리에 가 또 해수욕을 하였다. 행보(行步)를 한 까닭인지 조금 피로한 듯하여 곧 돌아왔다.

  10일엔 신문이 오기를 기다려서 보고 나니 11시 반이 되었다. 곧 해수욕장으로 나가서 목욕을하고 사장에 누웠으니 풍일(風日)이 아름답고 바닥 작은 물결이 움직인다. 발을 모래에다 묻었다가 파내고 파내었다가 다시 묻으며, 손가락으로 아무 구상(構想)이나 목적이 없이 함부로 모래를 긋다가 손바닥으로 지워 버리고 다시 긋는다. 그리 하다가 홀연히 명상(冥想)에 들어갔다. 멀리 날아오는 해조(海藻)의 소리는 나를 깨웠다. 
 

  어여쁜 바다새야
  너 어디로 날아오나.
  공중의 어느 곳이

  너의 길이 아니련만,
  길이라 다 못 오리라.
  잠든 나를 깨워라.
  갈매기 가는 곳에
  나도 같이 가고지고.
  가다가 못 가거든
  달 아래서 자고 가자.
  둘의 꿈 깊은 때야야

  네나 내나 다르리

  해수욕장에 범선(帆船)이 하나 띄었다. 그 배 밑에 가서, "이게 무슨 배요?" 선인(船人)들이, "애들 놀잇배요." "그러면 이것이 아무개의 배요?" "아니요, 다른 사람의 배요."

  나는 배에 올라가서 자세히 물은즉 그 배는 해수욕하는 데 소용되는 배인데, 배에 올라가서 물에 뛰어 내리기도 하고 혹은 그 배를 타고 선유(船遊)도 하는 배다. 1개월 95원(圓)을 받고 삯을 파는 배로 매일 오전 9시경에 와서 오후 5시에 가는데, 선원은 다섯 사람이라 한다. 95원을 5인에 분배하면 매일 매일 60여 전인데 그 중에서 선세(船貰)를 제하면 대단히 박한 임금이다. 여기에서 그들의 생활난을 볼 수가 있다. 오후 4시경에 여사에 돌아왔다.

  11일 상오 11시경에 해수욕장으로 나오는데 그 동리 뒤 솔밭 속에 있는 참외막 아래에 서너 사람의 부로(父老)들이 앉아서 바람을 쐬며 이야기들을 한다. 나도 그 자라에 참례하였다. 이 날이 마침 음력으로 칠석(七夕)날이므로 견우성이 장가를 드느니 직녀성이 시집을 가느니 하였다. 나는 칠석에 대한 토속(土俗)을 물었는데 별로 지적하여 말할 것이 없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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