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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수필) 밤이 깊었습니다 / 전헤린

by 혜강(惠江) 2014. 1. 10.

 

<수필>

 

밤이 깊었습니다

 

전혜린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추악하고 권태로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베일을 씌우고 약간의 안개로 가리고 삶을 볼 때 삶은 아름다워지고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무엇으로 변형됩니다. 덜 냉혹하게 덜 권태롭게 느껴집니다. 저녁 때 푸른 어둠 속을 형광등이 일제히 켜지는 시간부터 신비는 비롯하는 것입니다.

  어둠은 기적을 낳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연히 만나 옛날에 알던 사람과 우리는 곧 핵심에 와 닿는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낮은 적나라한 일광으로 모든 낭만을 박탈해 버리는데 비해서 밤은 우리를 꿈 속같이 막연하고 불투명하게 부드러운 낭만으로 감싸줍니다. 우리들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자기가 대낮을 외치고 '빛'이기만 하고 어둠일 줄 모르는 슬픔을 노래한 니체 보다는 우리는 "오 밤이여, 나는 또 코카인을 먹었다!" 라고 시를 쓴 벤에 더 동정이 갑니다. 그만큼 니체의 시대보다 현대는 생활이 복잡해지고 낮의 부담이 더 무거워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신비화하기 위해서, 또 일상생활의 기계적인 궤도가 주는 피로에서 놓여나기 위해서 또 정말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 위해서 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밤은 우리를 포근히 안아줍니다. 모든 괴로운 사람에게도 다 밤은 부드러운 이불이 되어주고 감싸줍니다. 마치 우리는 어머니의 태(胎) 안에 있는 것 같은, 완전히 모순 없는 내재(內在)의 의식이 주는 하모니를 심신에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몸을 밤에 내어 맡깁니다. 고독하게 어둠 속에 누워있을 때 우리는 사물이 돌연 그의 일상성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온갖 물체가 입체성을 잃고 마치 유동체처럼 우리의 의식속에 흘러 들어오고 외계와 우리가 기묘한 새로운 관계에 서게 됩니다. 낮 동안에는 관찰이나 평가의 대상이었건 대상이상으로서의 외계가 불시에 그 한계를 넘고 우리와 '너의 관계' 즉 아무런 제 3 조건이 개입할 수 없는 단 둘만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외계와 완전히 합일될 수 있는 완전한 순간을 우리는 그때 체험하게 됩니다. 여태까지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던 모든 일이 불시에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일상성의 테두리밖에 있는 것이니까... 그때 우리는 정말로 우리들 자신일수가 있습니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것, 더 부드러운 것 그리고 더 순수한 것이 있을까? 모든 조잡과 부조화와 추악의 원색은 추상해 낸 검은 빛, 누비아 여인의 몸의 빛과 같이 매끈한 암흑이 지금 훈훈하게 우리를 안고 있습니다.

  어둠에 몸을 맡기십시오. 밤의 품안에 안기십시오. 낮의 생활의 소용돌이가 남겨놓은 원색 자갈들을 어둠으로 덮으십시오. 암흑을 포옹하십시오. 순수를 갈구하십시오.

  우리의 생은 투쟁과 갈등의 끊임없는 반목의 지속상태입니다. 꿈과 현실, 예술과 생활, 생과 사, 이런 반대 개념들이 우리의 생의 순간 순간 갈등과 결단으로 몰아넣고 우리를 긴장시킵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우리의 의식의 결단없이는 흘러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의 총체가 우리의 생이며 우리는 우리의 생에 책임이라는 무거운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유라는 날개가 우리의 등에 달려 있는 것도 우리의 발에 묶인 쇠사슬의 대가인 것이니 결국 우리는 일생동안 꿈 속에서 밖에는 날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순과 갈등, 그리움과 환멸의 불연속선인생에 대해서 죽음은 휴식과 모든 투쟁의 종언을 뜻합니다. 생이 위대한 대낮이라면 사(死)는 밤일 것입니다.

  모든 모순과 분규를 일단 그대로 받아들인 채 포근히 감싸 덮고 마는 포섭력과 유화력의 소유자가 밤입니다. 괴로운 사람일 수록 밤을 사랑합니다. 햄릿도 "죽는다는 것은 잘 자는 것... 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밤을 갈구해왔고 종래는 덴마크 왕국의 기나긴 밤 - 깨어남 없는 잠을 가져오는 영원한 밤을 빚어내고 말았습니다. 그는 모든 생각하는 사람, 괴로워하는 사람 처럼 밤의 인간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낮보다는 밤에, 생보다는 사에 그의 관심이 가 있던 인간이었습니다. 밤은 그러니까 일상성으로부터의 탈피에서부터 생명으로부터의 초절(超絶)로까지 승화될 수 있는 힘의 소유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괴로울 때 우리는 밤을 바랍니다. 밤을 그립니다. 그리고 밤이 되고자 우리를 파괴해버리는 일까지도 있는 것입니다.

  차 소리도 발걸음 소리도 멎었고 바람소리가 별과 섞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암흑의 마력이 분수처럼 소리높이 우리속에서 또 우리 주변에서 솟아나고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시간입니다.

  내 마음도 밤입니다. 모든 연인들의 마음처럼 밤입니다. 그리고 분수처럼 소리높이 내 마음은 깨어납니다. 낮 동안 모든 굴레와 생활이 주는 오욕에 눌려져 있던 내 마음이 비로소 크게 노래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낮 동안 우리는 얼마나 밤에 굶주렸었는지 모릅니다. 거칠고 손때 묻은 석회벽 속에서 손을 더럽히는 노동에 종사해야 했던 우리의 영혼이 한 송이의 리라꽃으로 변신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마술의 시간, 도취의 시간, 사람을 위한 시간입니다. 낮 동안 잠들었던 우리의 마음이 활짝 깨어나고 그리움에 몸부림치면서 순수를 찾는 때입니다. 아, 영혼으로만 가득찬 밤 속에 잇고 싶습니다. 산문 대신에 시를, 계산 대신에 낭만을, 현실 대신의 꿈을 우리에게 갖다주는 것은 다만 밤뿐입니다. 어떤 애인보다도 부드럽고 감미롭고 짙은 밤 뿐입니다. 밤이 없다면 우리의 생은 살만한 것일까요? 계속적인 권태와 피곤에 질식해버릴 것이고 애인과 만나는 일도 없어지게 되고 말지 않았을까요? 밤이 없었다면...

  밤이 있으므로 해서 우리의 생은 생기를 얻습니다. 우리의 애인은 매혹을 얻습니다. 밤처럼 우리를 도취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요? 우리들 누구나를 마술사로 만들어 버리고 동화의 주인공으로 착각시키는 것은 밤이 가진 힘입니다.

  밤에 우리는 낮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비약을 합니다. 우리는 미칠듯이 불타고 흐르고 불길 속에 뛰어듭니다. 한없는 불길 속에, 목숨 속에 우리는 마음을 던져넣고 몸을 내어 맡깁니다. 누구나가 누구나에 대해서 애인일 수 있는 순수한 순간을 밤은 만들어 냅니다. 어떤 낮의 일광보다도 우리의 밤의 영혼은 뜨겁고 열광적이고 맑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가슴을 더듬듯 우리는 밤의 유방에 얼굴을 파묻고 밤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와 꿀을 빨어드립니다. 연인을 위한 시간! 우리 모두가 참다운 연인으로 변신하는 시간! 가슴속에서부터 맑은 샘물이 소리를 내면서 쏟아져 나오는 시간입니다.

  누구나에게 밤은 연인이 되어줍니다. 우리의 작열하는 영혼과 신비하게 비약하는 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검게 무겁게 포옹해 주는 애인이 밤입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순결한 육체를 우리는 어둠속에 내어 맡깁니다. 그리고 뜨겁게 뜨겁게 땅과 포옹합니다. 우리는 흙의 습기와 암흑에서 모성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낮동안의 노동이 창백하고 입체감없이 평평한 무엇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낮을 관념이라면 밤을 땅이라고, 육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관념에만 없는 망혼에 불과합니다.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향수가 향하고 있는 것은 밤입니다. 무엇보다도 밤입니다.

  밤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한 사람은 아닙니다. 밤이 우리에게 주는 충일감과 보호되어있는 느낌이 자기의 것이 아닌 사람은 정신의 불구입니다. 절름발이입니다. 생에 열광하는 사람이 동시에 죽음을 열애하고 있듯 우리는 낮과 밤을 모두 사랑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에 제일 밑에 고여 있는 샘물을 끌어내어 솟아오르게 하는 것은 낮이 아니고 밤입니다. 낮을 일에, 밤을 휴식에 할당하신 하나님은 과연 예지로운 분입니다. 낮은 투쟁과 모순 밤은 조화와고요, 낮은 생활, 밤은 사랑, 낮은 산문, 밤은 시, 이렇게 분류되는 것도 모두 그것에 비롯하는 것이니까요.

  밤입니다. 바람소리가 별들과 혼합되는 시간, 신비가 탄생하는 시간, 마술이 이루어지고 연금술이 증명되는 시간, 애인들의 침대가 딸기빛으로 불타는 시간입니다. 어둠의 두터운 포옹 속에 우리의 그림움들 모두 쏟아버리는 시간입니다. 질식을 위한 위한 시간 환희와 도취를 약속하는 시간입니다.

  카아텐이 두껍게 가린 창은 어둠을 더 질게 몰아다주고 있습니다. 완전한 암흑속에서 당신의 영혼을 라일락꽃으로 변형시키십시오. 지금이 바로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인 것입니다. 당신의 애인은 침대 속에 당신 대신에 한 송이의 흰 라일락 가지가 놓여있는데 놀랄 것입니다. 밤입니다. 모든 연인들의 시간입니다. 내 마음도 지금 분수처럼 소리를 내면서 밤을 향해 솟아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저녁때 어둠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공포가... 어렸을 때 나의 머릿속은 무섬과 우울과 별이 쏟아지는 마당에서의 유희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붉고 노랗고 녹색빛 나는 은하수가 어둠 속을 흘러서 나의 의식 속까지 파고 들었고 눈을 뜨면 유령같은 물체가 나를 응시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마당을 달리고 있는 들쥐의 모습을 생각해냈습니다. 푸른 거울속에서부터 아름다운 공주가 나타났고 나는 죽음과 같은 암흑속에 가라 앉았습니다. 밤의 입술은 붉은 과실같이 열렸고 별들은 밤의 가슴에 감추어진 비애 위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어둠 속을, 나의 환상은 무덤가를 거닐었습니다. 시체를 바라보았습니다. 병풍 뒤에 눕혀졌던 할머니의 주검이 주었던 기묘한 착란을 느끼면서... 할머니의 아름다운 손에는 부패의 녹색 반점이 떠 있었습니다. 나의 영혼은 산속을 헤매었고 절간의 문전에서 한 조각의 떡을 애걸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리의 검은 말이 돌연 옆에서 튀어 나와 길을 막는데 놀라면서.

 다시 한 이부자리속에 혼자 누워있는 자신을 알고 이유 모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이마에 손을 얹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시 나는 환상속을 찾아 헤메었습니다. 아, 들판에 넘친 어린애들의 환성, 누렇게 익은 보리이삭을 노래한 마음, 불처럼 타오르는 경건한 두려움, 나는 조용히 개구리같은 별의 눈을 보았습니다. 떨리는 손에 낡은 돌의 차거움을 느꼈고 푸른 샘의 전설을 들었습니다. 은빛 나는 생선떼 허리 구부린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일, 나의 걸음걸이에서 울리는 음향, 어린 마음은 어른을 경멸하는 마음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시 자기방으로 돌아오기 전에 나의 어린 영혼은 아무도 살지않는 고성 곁을 지났습니다. 지쳐버린 대리석상이 슬픔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저녁의 어둠속에 서서 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늑대같이 어두운 동굴에서 날을 보내고 의식의 박명(搏明)속에서 증오하면서 밤을 기다렸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훔치고 엄마의 흰 얼굴에서 몸을 숨겼습니다. 폭풍우 속의 숲길, 내가 걷는 광란의 샛길을 피해 달아나는 검은 짐승, 증오는 나의 마음을 불태웠습니다.

  초록빛 여름의 마당속에서 아무 말도 안하는 아이에게 가했던 폭력, 그리고 그 아이의 얼굴에서 나의 착란한 모습을 찾을 수 있었을 때의 환희, 그것은 새빨간 꽃에서 잿빛을 띈 해골이, 죽음이 나타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 어린시절의 창가의 어둠은 서글픈 것이었습니다. 탑과 종, 그리고 나의 우에 돌처럼 떨어져 내린 죽음의 그림자,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어둠이 감긴 방속에서 허위와 음탕이 나의 어린 머리를 태웠습니다. 파란 옷의 스치는 소리가 나의 몸을 굳게 했습니다. 문간에 엄마의 밤의 모습이 서 있었습니다. 나들이옷의 향기, 비단 스치는 소리, 흰 털외투, 그리고 천사의 날개처럼 소리없이 다가와서 이마를 만지는 어둠의 손길. 나는 엄마를 소리높이 부르는 대신 굳은 몸으로 잠을 가장하고 어머니가 바쁜걸음으로 나간 뒤의 향기와 비단 스치는 푸른 음향에 굶주렸었습니다. 아, 밤이여, 어둠과 별들이여, 나는 어둠 속의 불구자들과 함께 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얼어붙은 산정에는 오로라 빛이 덮여 있었고 나의 마음은 어둠 속에서 가냘픈 소리를 냈었습니다. 거치른 나뭇가지가 내 위에 무섭게 가라앉았고 붉은 수인(囚人)들이 숲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어린아이의 간을 빼어먹는다는 붉은 남자들이었습니다. 나의 마음은 밤마다 수정으로 되어서 깨어져 흩어졌고 어둠이 나의 이마를 때렸습니다. 잎이 없이 앙상한 느티나무 밑에서 나는 얼어붙은 손으로 한 마리의 검은 고양이를 목졸라 죽였습니다. 그때 슬픔의 소리를 높이 지르면서 왼손 편에 한 천사의 흰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붉은 남자들의 모습이 커져 갔습니다. 그러나 내가 돌을 집어서 그 그림자에 던졌더니 신음소리와 함께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느티나무 그늘에서 천사와 흰 얼굴이 한숨을 짓고는 사라졌습니다. 나는 돌 밭에 누워서 별들이 수놓은 금빛 포장을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박쥐 떼에 물려서 나는 어둠 속에, 완전한 암흑 속에 다시 떨어져버렸습니다. 허물어진 집속에 걸어 들어가서 나는 야수가 되어 깊고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밤이 왔습니다. 밤은 때로는 두려운 무엇이기도 합니다. 외로운 사람, 병든 사람, 늙은 사람에게는. 특히 겨울 밤은 그렇습니다. 바깥은 검은 추위가 꽉 채우고 있고 대지는 딱딱하고 공기는 싸늘한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별들까지도 무슨 나쁜 전조를 알리고 있는 듯 슬프게만 보입니다. 외로운 우리는 돌같이 무거운 다리를 끌고 언 가도를 터덜터덜 걸어갑니다. 우리의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새파란 얼음 같은 소리가 나고 우리의 얼굴은 비애로 석화(石花)됩니다. 돌로 덮인 언덕, 철로가의 제방, 금빛 눈과 얼음 속에서 고요하게 해체되어가는 차가운 육신, 찬 바람만이 점령하고 있는 방 속에서 가구는 부식되어가고 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으로 유년시대를 탐지해 보지만 살찐 쥐 떼들의 장롱을 갉아먹는 소리에 부딪쳐 무너지고 맙니다. 암흑 속에서 굶주림의 저주가 붉게 피어 오르고 허위의 검은 칼이 먼 청동색 문울 때려 부수는 메아리 소리도 들립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밤! 허무와 비애와 추위와 기아만이 지배하고 밤의 마력의 권위에 놓은 부록같은 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많이 갖게 될지 모르는 소망되지 않는 밤. 견디는 것이 전부인 밤... 이런 밤은 정말로 우리를 미치게 합니다. 자기가 할 일, 이러한 일에 대한 후회 그리고 모든 것을 일어난 그대로 놓아 둘 수 밖에 없고 교정이 불가능한 것을 깨달은 데서 오는 늪 속 같은 쓰디쓴 밤의 비애입니다.

  우리가 검은 독을 마시고 죽음의 미각을 알고 싶어지는 곳은, 또 한 번만 머리를 검게 만들고 지나간 해들은 다시 고쳐 살고 몰락하기 전에 다시 한 번만 활짝 피어 보고 싶어서 흰 가루를 먹는 것은 이런 밤입니다. 옛 시인들이 술 항아리를 끌어내 지하실로 내려간 것도 이런 밤입니다. 불기도 없는 방, 열도 없는 마음과 몸, 아무 그리움도 채울 수 없는 눈동자를 하고 우리는 그저 아침에 올 것을 기다립니다. 이때 텅 빈 가슴에 호수처럼 밀려와서 꽉 차는 감정이 있습니다. 공포, 존재의 공포 또는 죽음에의 공포거 그런 것입니다. 물끄러미 어둠을 응시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는 것은 자기의 생과 사 뿐입니다. 고정관념처럼 공포가 가슴에 붙어버립니다. 자기가 지난 날 자기 자신이었던 어느 특정의 존재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고 그 피부의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을 자신이 깨닫는 데서 오는 숨막히는 공포감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이고 다른 것일 수 없는가? 의문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택할 최선의 방법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일일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안 일어났고 안 일어나며 앞으로 일어날 수 없는데 이 생을 무엇 때문에 일초라도 더 견딜 필요가 있단 말인가?" 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가슴 속에 들릴 것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그 목소리에 귀를 막도록 애써 봅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경험 중에서 그것을 살기함으로써 잠시 동안의 기쁨을 가질 수 있고 사건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체험이 적은 생에서 특히 작은 공간을 차지했던 일들- 표현도 거의 되지 않고만 우정 또는 망쳐버릴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끝난 애정- 이 감미로움을 끝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젊음의 전장에서 우리가 거치고 지나간 시체들중에 불쾌감 없이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둘의 애정이 끓어오르기도 전에, 따라서 식을 수 있게 되기도 전에 어떤 외부적 상황에 의해서 이별해야 했던 사람은 그 중에 들어가겠지요. 먹지 않고 놓아둔 과자를 어린애가 언제라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기도 합니다. 서양 할머니들 중에는 갖가지 리본으로 묶어 놓은. 젊은 시절에 받은 연서(戀書)를 고이 간직해두고 그것을 잠 안오는 밤에 읽다가 잠드는 분들이 흔히 있다고 합니다. 외로울 때 옛 편지나 옛 일기를 읽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너무나 시간적 거리가 있어서 소설보다는 그 연문들은 남의 얘기 같이 들리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결국 졸리게 만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잠이 안 오는 사람, 또는 최면제가 될 염문도 안 모아둔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공상 속에서 별을 세어 보십시오. 천까지 세고 또 천까지 세고... 또 만약에 당신이 박카스와 조금 친한 분이라면 주저 마시고 포도주병을 꺼내 오십시오. 밤이 깊었습니다.

 

▲작가소개  전혜 린

<약력>
1934년 1월 1일 (일요일) 평안남도 순천에서 출생. 경기 여중*고 졸업.
1952년 서울대 법과대학 입학.
1955년 서울대 법대 재학중 독일로 유학.
1959년 뮌헨대 독문과 졸업후 귀국.
서울대 법대 * 이화여대 강사 * 성균관대 교수 지냄.
1965년 1월 10일 (일요일). 자살로 생을 마감.
경기도 안양시 조남리 선산에 잠들어 있다.

<번역서>
어떤 미소 (F * 사강, 1956)
한 소녀의 걸어온 길 (E * 슈나벨, 1958)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1959)
파비안 (E * 케스트너, 1960)
생의 한 가운데 (루이제 린저, 1961)
에밀리에 (H * 게스턴, 1963)
그래도 인간은 산다 (W * 막시모프, 1963)
태양 병 (H * 노바크, 1965)

<저서(유고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필집, 1966),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일기, 서간집, 1968)

 

 먼 곳을 향한 그리움

- 전혜린의 수필 "자유와 천재성 뒤의 불안·평범…"

그러나 애특하고 아름다운 전혜린

  전혜린(1934~1965)이 생전에 낸 책은 모두 번역서다. 에리히 케스트너, 루이제 린저, 이미륵(이의경), 에른스트 슈나벨, 하인리히 노바크 같은 독일어권 문인들이 전혜린의 손을 거쳐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전혜린은 또 프랑수아즈 사강이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같은 독일어권 바깥 작가들도, 독일어 중역(重譯)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그래서 생전의 전혜린은 번역문학가로 불렸다.

  문단 한 귀퉁이를 저릿하게 만든 그의 자살 이후, 전혜린의 이름으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와 일기 모음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1968)가 그것이다. 이 두 책을 통해 전혜린은 수필가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전설이 되었다. 전혜린의 수필은 한 세대의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그 젊은이들의 추앙을 통해 전혜린이라는 이름은 지적 독립성과 천재의 여성적 상징이 되었다.

  전혜린의 짧은 삶은 '먼 곳을 향한 그리움'에 들려(憑)있었다. 낭만주의의 한 연료라 할 이 정서적 오리엔테이션은, 거기 해당하는 독일어 단어 Fernweh를 곁들여, 전혜린의 글에서 거듭 표출됐다. 전혜린이 수필의 소재로 삼은 것은 대개 먼 곳이었다. 그 먼 곳은 자신이 떠나온 곳이었다. 그러니까, 먼 곳을 향한 전혜린의 그리움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Heimweh)이기도 했다. 그 먼 곳, 그가 떠나온 곳은 유럽이었다. 그의 태가 묻힌 곳은 평남 순천이었고 그가 자란 곳은 서울이었지만, 그의 마음의 고향은 서유럽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가 20대의 네 해를 보낸 독일 뮌헨이었다. 특히 뮌헨의 슈바빙 구역이었다. 뮌헨에 있을 때나 서울에 와서나, 전혜린은 이 도시의 슈바빙 구역을 지상의 이상적 공간으로 여겼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그렇다고 우겼다.

  뮌헨대학에 다니던 1958년 한국일보가 공모한 해외 유학생 편지에서, 전혜린은 "감수성 있는 사람들이 젊었을 때 누구나 가진 청춘과 보헴과 천재에의 꿈을 일상사로서 생활하고 있는 곳, 위(胃)보다는 두뇌가, 환상이 우선하는 곳, 이런 곳이 슈바빙인 것 같다. (중략) 이 곳에서는 아직도 가난이 수치 대신에 어떤 로맨틱을 품고 있고, 흩어진 머리는 정신적 변태가 아니라 자유를 표시한 것으로 간주되며, 면밀한 계산과 부지런한 노력 대신에 무료로 인류를 구제할 계획이 심각히 토론된다"('뮌헨의 몽마르트르')고 썼다. 또 서울로 돌아와 대학 강사로 일하던 1963년에 쓴 글에서는 "나는 편견 없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슈바빙 구역에서) 본 것 같다. 정신만이 결국 문제되는 유일의 것이라는 것도. 국적도 피부색도 거기서는 문제가 되고 있지 않았다. 영혼의 교통이 가능하여 정신이 일치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벗이냐 그렇지 않느냐만이 문제였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문제되지 않았다"('독일로 가는 길')고도 말했다. 슈바빙 구역과 뮌헨을 향한 송가는 그의 다른 글에서도 여러 차례 되풀이됐다.

  나라 바깥 경험이 일반화한 오늘날의 독자가 전혜린의 이런 판단에 선뜻 동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950년대든 지금이든, 지상의 어딘가에 국적도 피부색도 문제가 되지 않는 공간이, 아무런 편견 없이 오직 '영혼의 교통'만이 문제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설령 슈바빙에선 '영혼의 교통'만이 문제된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또 다른 '편견'(영혼 제일주의)의 소산이랄 수도 있을 테다. 전혜린은 (뮌헨의 슈바빙에) 설득된 사람이 아니라 매혹된 사람이었다. 홀린 사람이었다. 그 홀림은 장년의 김현이 제 청년기를 되돌아보며 명명한 '정신의 불구' 비슷한 것이었다. 그 홀림은, 그 불구는 유럽을 향한 전혜린의 눈길을 부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전혜린을 호린 것이 슈바빙만은 아니다. 눈으로 보았든 귀로만 들었든, 유럽 전체가 전혜린의 마음의 공간이었다. 프랑스가 그랬고, 오스트리아가 그랬고, 이탈리아가 그랬다. 유럽은 전혜린이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지적 미적 준거이기도 했다. '1964년 여름, 만리포'라는 글의 첫 부분은 이렇다.

  "얼마나 오랜만의 바다였는가? 그리고 자유! 아무것도 그 어느 것도 나는 다 털어버리고 훨훨 바다로 갔다. 리비에라와 똑같은 감색 바다가 그 곳에도 아무도 모르는 보석처럼 암석 틈에 차갑게 괴어 있었다." 전혜린이 만리포 앞바다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것은 리비에라 해안의 (어쩌면 상상된) 기억에 기대서다. 말하자면 만리포 앞바다에서 전혜린이 리비에라를 향해 드러내는 감정은 향수다! 전혜린에 앞서 유럽 취향에 크게 휘둘렸던 시인 박인환조차 이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서 전혜린에 맞먹는 정서적 수평에서 유럽을 제 고향으로 삼은 사람은 불문학자 김화영 정도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우연解鍍?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편집한 이는 대학 졸업을 앞둔 김화영이었다. "전설이나 신화 속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혜린, 그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어둠이 깔리는 박명의 층계 위에서 그 여자는 기다리듯이 서 있다"로 시작하는 이 책 서문의 끝에는 이어령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으나, 그 서문 역시 김화영이 쓴 것이다. 김화영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사였던 이어령은 이름을 빌려달라는 대학생 제자의 청을 받고는, 단 한 군데만 고치고 나서 자신의 서명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한다.

그 일화를 털어놓은 글에서, 김화영은 "나는 원고를 가지고 온 친구와 둘이서 원고정리(상당 부분은 아예 뜯어 고쳤다), 제목 달기, 에피그라프 첨가, 편집 등을 맡았다"('화전민의 달변과 침묵')고 회고한 바 있다. 죽은 이의 유고를 뜯어고치는 것이 편집자의 권한에 속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미뤄 두자. 김화영의 이 고백은 전혜린의 (미정리 상태의) 원고가 그만큼 허술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허술함은 김화영의 손을 거치고도 말끔히 씻기지 않았다. 판을 거듭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악문의 전시장이다.

먼 곳을 향한 그리움과 함께 전혜린 수필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은 극심한 정서 불안이다. 전혜린은 자살 충동과 삶의 의지 사이에서, 열정과 허무 사이에서, 들뜸과 처짐 사이에서, 독립 욕구와 의존 욕구 사이에서, 독단과 회의 사이에서 끝없이 동요했다. 그가 영혼의 집시를 자처했을 때, 그 '집시 됨'은, 그가 믿었던 것과 달리, 자유의 갈망에 있지 않고 불안의 일상성에 있었다. 이 불안은 생전에 활자화한 수필에선 그저 배음(背音)을 이룰 뿐이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을 일기 텍스트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에서는 날것 그대로 노출된다. 그 정직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정직을 일기장 바깥으로 끌어내 공개하기로 결정한 유족의 심사도 아름다울까? (나는 그 심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불안은 그 자체로 비범함이 아니다. 먼 곳에 대한 그리움도 그 자체로는 비범함이 아니다. 전혜린의 수필들은 비범함을 열망했던 평범한 여성의 평범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를테면 '문학소녀'의 글이다. 최우등생으로 일관한 그의 학창 시절과 죽음을 선택한 방식의 과격함에 대한 이런 저런 상념이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 버무려지며 그의 글을 터무니없이 매혹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전혜린의 텍스트와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그는 내 어머니 세대의 여성이다. 그가 지닌 재능이 아무리 컸다 하더라도, 전혜린의 지적 정서적 지평에는 1950년대 한국 문화의 맥락이 깊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글의 한계는, 부분적으로는, 그의 시대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 시대 한국 문화의 궁핍함에서 잠시 풀려나 유럽의 한 가운데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여성이 유럽에 대한 환상과 허위의식을 만들어내고 그 곳을 제 고향으로 삼았다 해서, 그것을 무턱대고 비방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나중에 말하는 자의 유리함에 기대어 불공정한 게임을 했다. 더구나 나는 전혜린보다 16년을 더 살았다. 그러니까 나는 초로의 나이에 이르러 청년 전혜린의 글을 헐뜯었다. 16년이면 제 둔함을 감추고 날램을 가장하기에 넉넉한 세월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이든 자의 유리함에 기대어 불공정한 게임을 했다.

  서른에 이른 전혜린이 "삼십 세! 무서운 나이! 끔찍한 시간의 축적이다. 어리석음과 광년(狂年)의 금자탑이다"('긴 방황')라고 말할 때, 오직 자살할 용기가 없어서 그 끔찍한 시간의 축적을 그보다 훨씬 오래 견디고 있는 나는 부끄럽다. 오로지 일상의 관성에 떠밀리며 내가 세우고 있는 어리석음과 광년의 금자탑이 혐오스럽다. 딸에 대한 애정과 우애를 끝없이 확인할 때, 어머니의 현실 감각으로 제 허영을 지워나갈 때, 전혜린은 애틋하고 아름답다. 그 때, 그의 마음은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균형과 높이에 이르러 있다. 그러니, 내가 앞에서 늘어놓은 전혜린 험담은 모두 무효다.

 

-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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