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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수필) 한국의 미(美) / 김원룡

by 혜강(惠江) 2014. 1. 10.

 

<수필>

 

한국의 미(美)

 

김원룡

  

   

 한국의 미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자연의 미라고 할 것이다. 자연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은 한국적 자연으로, 한국에서의 미술 활동의 배경이 되고 무대가 된 바로 그 한국의 자연이다.한국의 산수(山水)에는 깊은 협곡(峽谷)이 패어지고 칼날 같은 바위가 용립(聳立)하는 그런 요란스러운 곳은 적다. 산은 둥글고, 물은 잔잔하며, 산줄기는 멀리 남북으로 중첩(重疊)하지만, 시베리아의 산맥처럼 사람이 안 사는 광야(曠野)로 사라지는 그러한 산맥은 없다.

 

  근 산 뒤에 초가집 마을이 있고, 산봉(山峰)이 높은 것 같아도 초동(樵童)이 다니는 길 끝에는 조그만 산사(山寺)가 잇다. 차창에서 내다보면, 높은 산 위에 서 있는 촌동(村童) 2, 3 인의 키가 상상 이외로 커 보이는 곳은 우리 나라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 나라의 산은 부드럽고, 사람을 위압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여기에 진달래가 피고, 가을이 오면 맑은 하늘 아래 단풍이 든다. 단풍은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으나,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길을 뒤덮고 산을 감추어 버리는 그러한 거대하고 위압적인 단풍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겸손 그대로의 단풍이다. 아니, 겸손하다기보다는 아주 자기의 존재조차 무각무인(無覺無認)하는 천의무봉(天衣無縫), 해탈성불(解脫成佛)한 것 같은 단풍이다. 단풍 든 시절의 한국의 산은, 보고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가, 산꼭대기서부터 옆으로 누워 데굴데굴 굴러 보고 싶은 그러한 산이다. 이것이 한국의 자연이다. 한국의 산에는 땅을 가르고 불을 내뿜는 그 무서운 화산도 없다.

 

  또한, 한국의 하늘에도 구름이 뜨지만, 태풍을 휘몰아 오는 그런 암운(暗雲)은 없다. 여름에는 때때로 하늘을 덮고, 우레 소리로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추석(秋夕)이 되면, 동산에 떠오르는 중추 명월(中秋 明月)에 자리를 비켜 주는 그런 구름이다. 세상 또 어디에 흰 구름 날아간 뒤의 맑은 한국 하늘의 어여쁨이 있을까!

 

  이 맑은 하늘 밑, 부드러운 산수 속에 그 동심 같은 한국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미의 세계요, 이 자연의 미가 바로 한국의 미다. 여기에서 어떻게 사색을 요구하는 괴이한 미가 나타나고, 인공의 냄새 피우는 추상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되풀이하지만, 한국의 미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바로 자연의 미라 할 것이다.

 

  자연에 인공이 끼여서는 자연이 아니다. 자연은 미추(美醜)를 초월한, 미 이전의 세계다. 사람의 꾀에서 생겨나는 인공의 미가 여기에는 있을 수 없다. 자연에는 오직 자연의 미가 있을 따름이며, 자연의 섭리(攝理)에 입각한 만유 존재(萬有 存在) 그 자체의 미가 있을 뿐이다. 미추를 인식하기 이전, 미추의 세계를 완전 이탈한 미가 자연의 미다.

 

  한국의 미에는 이러한 미 이전의 미가 있다. 이것은 시대와 분야에 따라서 미의 형태가 바뀌고 강약집산(强弱集散)의 차는 있으나, 한국의 미의 근본을 흐르는 이 자연의 미의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고구려 시대의 고분 벽화에는 중국 회화에서 보는 세련된 선이 없을는지 모른다. 나뭇잎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손바닥 같고, 연봉(連峰) 잇닿은 산맥이 사람이나 호랑이보다 작게 나온다. 이 선은 굵고, 색은 어둡다. 그뿐 아니라, 이 고구려의 벽화에는 기교가 없다. 유치원이나 국민학교 아동들처럼 화면에 그저 자기가 기도하는 대상물이나 장면을 재현하려고 할 뿐, 구도나 배색에는 아무런 생각이나 욕심이 없다. 그림을 부탁한 사람도, 부탁을 받고 그림을 그린 사람도, 그림의 결과나 효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림의 내용이 주문한 대로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그것이 미술 작품이라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미술 작품을 만든다고 자각한 것도 아니다. 석공들이 묘실(墓室)을 쌓아 올리면 화공이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이것은 예술가로서의 화가가 아니고, 기술 직업인으로서의 화공, 화장(畵匠)이 그린 그림이다. 옛날, 골목길 구멍가게 간판에 그려 있던, 담배 피우는 호랑이 같이, 이것은 예술가 기질 이전의 순진 무구(純眞無垢)한 작품이다. 이런 그림에 무슨 기질이 들면, 그 그림은 아예 망그러지고 만다.

 

  고구려 벽화에서도 강서(江西)의 삼묘(三墓)나 퉁코우의 사신총(四神塚)처럼 화공의 기술이 발달된 예에 있어서는, 전대(前代)의 순진한 벽화에서 보고 느끼던 고구려의 세계는 많이 변하고 속화(俗化)되어 있다. 이것을 나는 중국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인이 그린 중국화에서는 중국이 가지는 중국적인 격()과 정신이 있으나, 외국에서 그 외형만을 빌어 가면, 외형과 내형과의 융화가 잘되지 않아 이상한 것으로 되고 만다. 고구려는 말기에 새로 밀려들어오는 중국 회화의 영향을 충분히 소화해서 다시 고구려 자체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망하고 말았다.

 

 고구려의 벽화에는 확실히 남쪽 나 · 제의 미술과 공통되는 점이 있다. 고구려 벽화의 미는 날카로운 선과 강렬한 색채에서 오는 그런 미가 아니라, 보통 세상살이하는 사람의 세계에서 생겨 나오는 은근한 자연의 미다. 한편에서는 산야를 질주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조용히 씨름을 구경하는 장면이 나오고, 주인이 앉아 있으면 부인이 나오고, 손님이 오면 시녀가 음식을 날라 온다. 아무 신기한 것도 없고, 인목(人目)을 놀라게 하려는 선이나 색도 없다. 아무 과장도, 장식도 없고, 그저 일상 보아 오는 세상이다. 그러면서, 여기에 생생한 고구려의 세계가 있고, 미가 있다. 아니, 그렇게 자기를 솔직하게 나타내니까 우리에게 더 강한 고구려의 체취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눈을 돌이켜 고구려의 조각을 보자. 고구려의 조각으로서 가장 확실한 것은 평양 부근의 사지(寺址)에서 나온 이불(泥佛)들로서, 이는 흙으로 만든 조그마한 불상들이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중국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복스럽고, 어린 아이 같은 아름다운 웃음이 소리 없이 퍼지고 있으며, 빰에 붙은 부드러운 살은 손등에도 있고, 대좌(臺座)의 연판(蓮辦)에도 있다. 이 부드러운 살은 신라나 백제의 와당(瓦當)에서 보는 것과 근본적으로 통하고 있다.

 

  또 고구려의 미술에는 신라, 백제에서 보기 힘든 강한 힘이 있으나, 중국의 미술에서 보지 못하는 유화(柔和)와 온순이 있고, 인공적인 자극을 피하는 자연에의 복귀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미가 서 있는 한국의 세계인 것이다.

 

 신라, 백제에서는 많은 불상이 제작되었으나, 양식상, 형식상의 출발점이 된 것은 중국 불상이었다. 이 경우, 작은 불상들은 여행자들에 의해 운반될 수도 있었으나, 큰 불상이나 마애불 같은 것은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화공들, 즉 조각승들이 유학승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을 것이며, 거기서 그들은 불상 의궤(佛像儀軌)에 의한 도상뿐 아니라, 조각법 자체도 공부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마침내 중국의 불공(佛工)이 되고 만 것은 아니다.

 

  충남 서산의 마애 삼존 불상이나 경북 군위의 삼존 석굴에서 보는 것처럼, 비록 옷이나 자세는 중국을 따르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얼굴에 있어서만은 어디까지나 백제의 얼굴이요, 신라의 얼굴인 것이다. 백제불의 얼굴에는 나 자신이 백제의 미소라고 명명(命名)했던, 백제에서만 볼 수 있는 화창하고 인간적인 웃음이 있고, 군위불의 얼굴에는 보이소하는 경상도의 고집이 뚜렷하다. 이것들은 모두 중국불에서처럼, 인격을 초월하여 불격(佛格)을 과시하려는 상상 세계의 얼굴이 아니라, 살고 있는 백제인, 신라인의, 인간으로서의 얼굴들이다. 국립 중앙 박물관이 자랑하고 있는 유명한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에도 같은 인간의 얼굴이 달렸다. 규각(圭角)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곡선이 넘친 아름다운 육체에 조용히 자기 혼자 웃는 삼매경(三昧境)의 얼굴······, 발버둥치며 자기를 보라는 그러한 것도 아니면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움켜잡을 수 있는 바로 그것이 한국의 미가 아닌가?

 

  석굴암의 조각은 고대 한국의 미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의 미가 가장 발달된 솜씨, 세련된 형태를 통해서 구상화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조각의 울타리를 벗어나 인류 미술의 정화로 꽃 핀 것으로서, 이것은 고구려의 벽화에 비하면 확실히, 사람에게 탄성을 발하게 하는 예술의 세계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한국 특유의 정밀(靜謐)의 미, 적막(寂寞)의 미, 그리고 자연의 미가 흐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석굴암이 불도의 도량이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조용한 산중에 그리 단순하지 않은 화강석을 재료로 썼을 뿐, 특별히 사람의 눈에 자극을 주는 기발한 규각있는 선이나 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강석 위에 이루어진, 종이보다도 엷고 부드러운 천의(天衣)에 가리어, 입상(立像)의 보살들이 영겁(永劫)의 명상에 잠긴 석가여래를 둘러선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 때마다 뻐꾹새가 운다. 그저 그것뿐이다. 참배인들을 보고 어서 오라는 듯이 야단법석하는 라마교의 불()도 아니고, 해골 같은 형상을 하고 사람을 멀리하는 인도의 고행상(苦行相)의 불도 아니다. 그저 본존(本尊)은 앉고, 보살은 서고, 뒤에는 제자가 있고, 문에는 인왕(仁王)이 지키고, 앞에서는 감로수(甘露水)가 흐르는 조용한 산암(山庵)의 석불이다.

 

  이것이 바로 석굴암의 미의 세계다. 그의 표현이 하도 잘되고 정화되고 세련되었기 때문에, 석굴암의 정밀 세계에 들어선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일종의 삼엄한 전율감 같은 것을 느낀다. 조상이 만들어 낸 미의 극치 속에서, 감탄을 넘어서, 신앙에 가까운 신비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포가 아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 밑에서 느끼는, 이국의 문물에 의한 위압감 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 조상의 미에 대한 경건한 마음이며, 자기의 미감과의 공감에서 오는 민족적 희열이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초월하며 우리들 몸 속에 살고 있는 한국의 미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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