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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학48

(시) 그날은 몇 날인가 / 남상학 그날은 몇 날인가 - 남상학 이 자리는 어디쯤인가 돌아보는 날은 불씨 하나 살아 남아서 모진 바람 부대끼며 꺼지지 않는 작은 불꽃이었지 한 방울 물이 모여 흐르는 저만치 강물처럼 오늘이 어제런듯 어둠에서 빛으로 늘 출발뿐인 길이었다 해도 허허로운 바람 소리 영혼의 불꽃은 흔들리고 하늘 꿈꾸는 동안 발자국마다 따라와 친구가 되어 내 곁에 눕는 그대 그림자 별이 눈을 뜨고 새벽 닭 울음으로 타는 불꽃 한 떨기로 비로소 환한 아침이 열리는 아, 그날은 몇 날인가.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8. 11. 27.
(시) 빛의 작업 / 남상학 빛의 작업 - 남상학 한밤중에 어부(漁夫)들은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찾아 짙은 어둠의 바다에서 갓 올라온 물고기 비늘 같은 광채(光彩)를 그물에 걷어 올린다 빛을 낚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눈부시다. 가장 날카로운 곡괭이로 암반을 쪼아내는 광부(鑛夫)들은 빛의 광맥을 따라 한 발짝씩 어둠을 뚫어내고 부싯돌 같은 빛의 원형(原型)을 쪼아낸다 빛을 캐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눈부시다. 살아 있는 의식(意識)을 위하여 길가에서 주운 하찮은 것들을 독특한 연금술(鍊金術)로 구워내는 시인(詩人)들은 외로운 밤을 홀로 앉아 싱싱한 언어를 갈고 닦는다 빛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눈부시다. 무형(無形)의 빛, 그 위대한 빛의 작업(作業)은 몇 년이 걸릴까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8. 11. 27.
(시) 라보니어 / 남상학 라보니여 - 남상학 그 옛날 팔레스타인의 현자(賢者)처럼 당신의 위대한 이름을 불러 봅니다. 라보니여 낮게 더 낮게 작게 더 작게 이 땅에 오셔서 큰 스승으로 사신 이여 당신은 찬란한 빛이십니다. 사랑의 빛 용서의 빛 평화의 빛 정의의 빛 진리의 빛 라보니여, 당신과 더불어 한 점 빛이 되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가늘게 아주 가늘게 흔들립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을 그리는 마음이 불타듯이 라보니여, 우리 삶의 어둠 속에서 빛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넘치도록 기름을 부어 주소서. * 라보니(Rabboni)는 '선생'을 의미하는 히부리어, '랍비'의 또 다른 표기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8. 11. 27.
(시) 자화상 / 남상학 자 화 상(自畵像) - 남상학 하늘 우러러 물빛 눈매를 닮은 학(鶴)이 운다. 아득한 간구(墾求)만이 표적(標的) 위에 나부끼기엔 이제 힘이 겨워 목을 흔들어 학이 운다. 다가갈수록 초조해지고 우러러 볼수록 달아나는 얼굴 빈 공간을 휩싸고 도는 바람 소리에 아픈 울음을 삼키다가도 태어날 때 이미 배운 습성(習性) 때문에 행여나 기다림에 가슴 조이며 하늘에 목을 올려 오늘도 학이 운다.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8. 11. 27.
(시) 땅 위에 쓰는 글씨 / 남상학 땅 위에 쓰는 글씨 - 남상학 무리 속에서 당신이 허리 굽혀 땅 위에 글을 쓰듯이 나는 어둠의 골방에 숨어 감히 당신의 흉내를 내어 남몰래 글을 쓴다. 가녀린 새싹처럼 고개를 세운 나의 부끄러운 언어(言語)들은 어느 광명한 날 눈부신 태양 아래 당당한 얼굴로 나설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는 곳에 사랑은 용서하듯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믿음은 증거하듯 잠자는 마음 속 양심을 푸른 생명처럼 일깨울 수 있을까. 돌팔매질 일보 전(一步前)에 하나씩 둘씩 슬그머니 돌을 놓고 돌아가는 기적 아닌 기적을 위하여 싸늘한 겨울 가지 끝에 매어 달린 메마른 나의 언어에는 언제쯤 하이얀 눈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아니면 어느 이른 봄날 화신(花信)이 오는 길목의 잔설을 헤집는 바람 되어 꽃샘 바람이 되어 무리 속에서 당신이 .. 2008. 11. 27.
(시) 참회 1 / 남상학 참회 · 1 - 남상학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수없이 말하고 혀 끝으로 수없이 거짓을 보태면서 작은 진실 하나에도 끝내 깃발을 들지 못하면서 비굴하게 살았습니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스럽게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태연스럽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듯한 이 거룩한 초연(超然)함 내 잘못을 남의 탓으로 여기면서 모른 척 눈 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입을 열 때마다 거룩거룩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기도는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얼굴은 여전히 경건(敬虔)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혀 끝으로 수없이 배반하며 혀 끝으로 수없이 맹세하며 시집 '저만치 그리움이 보이네' 2008. 3. 21.
(시) 다시 수난절에 / 남상학 다시 수난절에 - 남상학 죄인이로되 고통을 모르고 멀리 있었네 돌아와 다시 맞는 수난절 십자가 새 형틀 앞에 엎드려 가시관 쓰신 당신 얼굴을 신 포도주를 마시듯 눈물로 보네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던 나 위하여 다시 죽으러 오신 당신 앞에 이 가책을 어이할까 이 부끄러움 어이할까 연민을 담으신 그 얼굴 뵈오며 가시관 둘레, 또 피어나는 진홍의 보혈로 아픔 속에 키워내는 진주의 눈부심같이 한 줄기 찬란한 은총의 빛으로 가슴 적시네 고난의 땅 끝에서 만나 주시는 주님, 상한 영혼 갈피갈피 사랑으로 어루만지며 쓰디쓴 목마름으로 오늘도 그렇게 서 계신 당신 앞에 눈물 쏟으며 부끄러움인 채로 다시 서네. 해마다 더 큰 사랑 안고 피와 물 흐르는 그 죽음 없었다면 그 사랑 없었다면 ······ 2008. 3. 21.
(시) 골고다 연가(戀歌) / 남상학 ● 서사시 골고다 연가(戀歌) - 가상칠언을 중심으로 - 남상학 1 그 날 아침,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성난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가고 있었네. 앞뒤 양 옆에는 창을 든 병사가 서고 긴 행렬(行列)의 뒤쪽에는 가슴 치며 슬피우는 여인들이 있었네. 그 가운데쯤 거대한 십자가 형틀을 멘 이는 가죽 채찍에 맞아 쓰러지고 넘어지고 길고 긴 행렬은 시간의 흐름 따라 흥분의 도(度)를 더해 가고 있었네. 2 예루살렘 밖 골고다 언덕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 오고, 쾅 콰앙 대못질 소리가 빈 하늘을 가를 때 울음 소리, 비웃음 소리, 아우성 소리...... 조롱과 욕설이 뒤섞인 함성(喊聲) 속으로 한 틀의 십자가가 하늘을 치솟고 있었네. 옷 벗긴 알몸에 푸른 멍이 들고 깊은 상처에선 검붉은 피가 흥건히 솟아나고 가시관 .. 2008. 3. 20.
(시) 크리스마스 송가(頌歌) / 남상학 크리스마스 송가(頌歌) - 남상학 이천 년 전 유대 고을 작은 베들레헴 말구유에 한 아기 탄생하였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도 아닌 유대왕 헤롯의 아들도 아닌 대제사장의 아들도 아닌 다윗의 자손 이름 없는 비천한 나사렛 목수의 아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겸비하신 분 온유하신 분 숨은 곳에서 은밀히 선을 행하시려 하는 분 가난한 자 병든 자 억울한 자 절망한 자 죄로 얽매인 자의 친구로서 해방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하늘의 크신 권세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버리고 너와 나의 구원을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친히 찾아오신 분 가난한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평화 병든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위로 억울한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평등 절망한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소망 죄로 얽매인 자가 누려야 할 진.. 2007. 12. 23.
(시) 단풍 / 남상학 단풍 - 남상학 별이 분신 낙하하는 아, 저 섬광(閃光) 그립고 아득한 품에 안겨 제 몸 저리 불태우는가 그대 향한 열애 불꽃처럼 타올라 이승을 밝히는 혼(魂)불이거니 미처 다 사르지 못한 사랑 그대 가슴 뜨겁게 달궈 그 어느 날 부활의 기약으로 한 잎 두 잎 그대 가슴에 아낌없이 스러지리라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 시집 「그리움 불꽃이 되어」 * 작자의 말 가을이 붉은 단장을 했습니다. 고층아파트에서 문을 열고 내다보면 눈이 환히 열립니다.눈이 부셔서 잠시동안 정신이 혼절할 뻔했습니다. 단풍나무, 은행나무는 그렇다 치더라도 벚나무 잎마저 황홀한 가을 잔치에 참여했습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미처 사르지 못한 사랑을 불태우나 봅니다. 이 가을의 모습을 담고 싶어 급히 디카를 들고 나가 몇 장 사진에 담.. 2007. 11. 8.
(시) 내재율(內在律) / 남상학 내재율(內在律) - 남상학 속삭이지 않으나 내 속에 여울지는 소리 번쩍이지 않으나 내 속에 아롱지는 빛깔 바람으로 나의 옷깃을 스치다가 파도로 나를 설레이게 하다가 아침으로 나에게 빛을 주다가 햇빛으로 나를 꽃 피우게 하다가 이토록 뜨거운 열기로 달아 오르게 하는가. 그 어디에도 없으면서 그 어디에나 가득차는 충만(充滿) 그 속에 흔들리는 나의 영혼 해맑은 눈물로 닦아 잠들게 하소서. 시집 「가장 낮은 목소리로」 2007. 10. 4.
(시) 우리는 서로에게 / 남상학 우리는 서로에게 - 남상학 어두운 골목을 갈 곳 몰라 머뭇거리는 그대에게 작은 불씨 하나 줄 수 있다면 험한 바윗길 끝없이 걷는 기진한 그대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할 수 있다면 하늘 우러러 기도의 손을 펴고 손짓하는 그대에게 작은 꽃 한 송이 건넬 수 있다면 너와 나의 이웃들은 겨울 살얼음판에서도 꿈의 얼음 조각 입에 물고 따스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리 우리는 서로에게 불빛이 되고 우리는 서로에게 별빛이 되고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되기 위하여 나를 갈고 닦고 키우고 그리고 끝없이 버릴 일이다. 시집「가장 낮은 목소리로」 2007. 10. 4.
(시) 가을에 드리는 기도 / 남상학 가을에 드리는 기도 - 남상학 감사합니다, 주님 봄이 누운 산허리에 부활(復活)의 기쁨을 진달래로 피게 하시더니 여름 정원에선 내일을 가꾸는 향기로운 땀방울을 포도송이로 영글게 하시더니 이 가을에는 고뇌의 잡풀 무성한 땅에도 크고 작은 사랑의 알곡 눈부신 열매를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풀잎을 적시는 새벽 이슬 상큼한 아침 바람 포도의 단맛을 빚어내는 뜨거운 햇볕 가슴을 두드리는 힘찬 빗줄기 돌아보면 그 어느 것 하나 주님, 당신의 은총 아닌 것이 없습니다. 넘치는 수확의 기쁨이 빨간 석류로 터지는 오늘 우리들 감사 축제(祝祭)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진정 소리 높여 외칠 것은 당신의 크신 은혜(恩惠)뿐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맺게 하신 주님, 당신 한 분 믿고 감사하게 하소서. 해 저문 들판에 말.. 2006. 11. 4.
(시) 추석, 고향 가는 길 / 남상학 추석, 고향 가는 길 - 그것은 본능적인 끌림이었다 - 남상학 집단 최면에 걸린 행렬이 꼬리를 물고 서 있습니다 바다로 나갔던 연어가 수만 킬로를 헤엄쳐 낯익은 강줄기 타고 돌아오듯이 평소보다 백 배, 천 배 고생이 되어도 얼굴에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손주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나오실 노부모님 걸쭉한 입담으로 해후할 그리운 얼굴들 입에 쩍쩍 달라붙는 고향 음식 그리웠던 마을길 옆으로 대추나무, 감나무 코 흘리며 뛰놀던 널따란 운동장이 눈앞에 삼삼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황금벌판 위로 둥두렷이 솟아오른 한가위 보름달이 보입니다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숙명처럼 추석길은 언제나 설레임으로 떠나는 우리들의 성지순례입니다. 2006. 9. 25.
(시) 사랑이여 / 남상학 사랑이여 - 남상학 추운 날 한 줌 입김이거나 손바닥만큼의 햇볕이라도 안개 꽃 눈을 감듯 여린 바람에 흩어지는 눈송이일지라도 그대 있음에 실낱 같은 그리움도 눈부신 하늘인 것을 사랑이여 내가 행복할 때에도 내가 서러울 때에도 어딘가에 함께 있을 우린 새로 한 몸인 것을 사랑인 것을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6. 9. 5.
(시) 장미 / 남상학 장미 - 남상학  너를 보는 내 눈빛이늘 예사롭지 않아뜨거운 숨결로 달궈낸잉걸불 같은 사랑인 것을 촛불 켜고 너를 기다리는 깊은 밤멀찌감치 너를 바라만 볼 뿐꺾지 못하는 아픔에난 늘 가슴이 아파내 눈에 이슬이 맺히고때로 전의(戰意)가 번뜩이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너는 낌새를 차리지 못하게슬며시 내 곁으로 찾아와“나 여기 있어요”라며 품에 안겼지!그때 내 마음은 둥둥 하늘 높이 솟고,난 네 뜨거운 가슴에 얼굴을 묻어너는 나의 우주(宇宙)가 되고그 향기 영혼을 적시는 샘물이 된 것을 내가 떠나고 난 뒤에야넌 비로소 알 거야그때 내 빈 자리를 바라보렴   잉걸불 : 이글이글 핀 숯불 2005. 12. 11.
(시) 꽃밭에 서면 / 남상학 꽃밭에 서면 - 남상학 꽃밭에 서면 왜 이리 떨릴까? 이 세상 어느 목소리나 은유(隱喩)로도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거리 까르르까르르 '나 잡으면 요옹치?' 손가락을 세우고 끝없이 달아나는 저 철없는 가시내 웃음소리 따라가다 그만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이 꽃 저 꽃, 꽃자리를 옮기며 꽃술을 더듬는 한 마리 나비 사이로 아지랭이로 피어나는 저 속내를 한 치도 가늠하지 못하는 나는 이 봄볕에 몹씨 부끄럽고 아프다. 아니 뻐근하고 저리다. 세찬 바람에 날개가 찟기고 가슴에 금이 몇 개, 심장 판막 하나가 가녀린 꽃잎처럼 떨고 있다. 유난히 어지러운 봄을 타는 것일까 나는 시집 「그리움 불꽃이 되어」 나는 학생들 앞에서 나름대로 열정이 있는 교사로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오래지 않아 학생들과 .. 2005. 12. 10.
(시) 기다림 - 간월암 / 남상학 기다림 - 간월암 저 풍상에 머리 깎는 보살(菩薩)님 좀 보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찬 바람 한 몸에 안고 먼 바다를 향하여 귀를 연 기다림은 기쁨 같은 형벌 한 사리 물길에나 눈을 떴다 감는 졸음에 겨운 빈 소라껍질 * 간월암은 충남 서산 방조제 중간에 있는 바닷가 작은 섬의 암자 바다가 그립고, 섬이 가고싶을 때 떠올리는 곳입니다. 만조(滿潮)가 되어 간월도가 마치 섬처럼 떠있습니다. 그 가운데 작은 암자는 오랜 세월 속에서 기다림을 잘 참아내고 있었습니다. , 은 버릴 수 없는 속성인가 봅니다. 2005.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