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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122

(수필) 가을의 여정 / 전광용 가을의 여정 전광용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리고 여름은 여름, 겨울은 겨울대로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그대로 다 새로운 즐거움을 가슴 속에 안겨다 주는 청신제라고나 할까. 그뿐인가.농촌은 농촌대로 전원의 유장한 목가적인 맛을 ,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것만이 지니는 독특한 자연의 시정을 선물하는가 하면, 새롭고 낯선 도시의 가로는 그것대로 흙 속에 파묻혔던 사람들에게 산뜻한 미지의 감각에 경이에 찬 눈동자를 뒹굴리게 한다. 그러기에 천하 명산 금강산도 계절에 따라 봉래,풍악,개골, 금강 등 그 때마다의 승경의 아치를 상징하는 이명들을 가지고 있다. 새 움 트는 봄의 정경이 산책이나 소풍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리듬이라면, 여름의 무르익은 녹음과 작열하는 태양은.. 2014. 1. 11.
(수필)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 라이나 마리아 릴케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 라이나 마리아 릴케 내가 한 주일 전부터 오늘까지 동화 같은 아침의 들에서 집으로 가져온 꽃들은 벌써 부드러운 압지의 넓은 천지 한 장 사이에 깊이 잠재워 두었소. 그러나 내가 오늘 그 꽃들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에게 소담스런 회상의 미소를 보내며, 모든 걸 그 때처럼 퍽 즐겁게 보이고자 하더군요……. 소중한 시간들 중의 한 시간이었소. 그러한 시간들은 촘촘히 들어찬 꽃들이 피어난 섬나라와 같아요. 물결들은 아주 나직이 봄의 울타리 뒤에서 숨쉬며, 어떤 나룻배도 과거로부터 다가오지 않으며 아무도 더 이상 미래로 향하고자 하지 않소. 평범한 나날로의 귀한(貴翰)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이러한 시간의 섬에는 아무런 해도 끼칠 순 없소―이 시간들은 다른 모든 시간과 무관하오. 어떤 훨.. 2014. 1. 11.
(수필) 마음의 메아리 / 법정 마음의 메아리 법정(法頂) 봄의 꽃자리에 연두빛 신록이 싱그럽게 펼쳐지고 있는 요즘, 남도의 절들에서는 차 따기가 한창이다. 옛 문헌에는 곡우를 전후하여 따는차가 가장 상품이라고 했는데 우리 조계산에서는 그 무렵이면 좀 빠르고 입하 무렵에 첫 차를 따는 것이 가장 알맞다. 이곳 선원에서도 엊그제 한 차례 따다가 볶았고, 오늘 대중들이 나가 또 한 차례 따왔다. 예년 같으면 나도 아랫마을 사람들을 몇 데리고 따로 차를 땃을 텐데, 올봄에는 하는 일이 많아 짬이 없을뿐더러 이제는 대중 속에 섞여 살 게 되었으니 나누어 주는 한 몫으로 족할 수밖에 없다. 차잎이 펼쳐지는 걸 보면 하루가 다르다. 그래서 바쁜 일에 쫓기다 보면 하루 이틀 사이에 적기를 놓치고 말 때가 더러 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고유의.. 2014. 1. 11.
(수필) 명사십리 / 한용운 명사십리 한용운 경성역의 기적일성(汽笛一聲), 모든 방면으로 시끄럽고 성가시던 경성을 뒤로 두고 동양에서 유명한 해수욕장인 명사십리(明沙十里)를 향하여 떠나게 된 것은 8월 5일 오전 8시 50분이었다. 차중(車中)은 승객의 복잡으로 인하여 주위의 공기가 불결하고 더위도 비교적 더하여 모든 사람은 벌써 우울을 느낀다. 그러나 증염(蒸炎), 열뇨(熱鬧), 번민(煩悶), 고뇌(苦惱) 등등의 도회를 떠나서 만리 창명(滄溟)의 서늘한 맛을 한 주먹으로 움킬 수 있는 천하 명구(名區)의 명사십리로 해수욕을 가는 나로서는, 보일보(步一步) 기차의 속력을 따라서 일선의 정감이 동해에 가득히 실린 무량(無量)하 양미(?味)를 통하여 각일각(刻一刻) 접근하여 지므로 그다지 열뇌(熱惱)를 느끼지 아니하였다. 그러면 천산만.. 2014. 1. 11.
(수필) 폭포와 분수 / 이어령 폭포와 분수 이어령 동양인은 폭포를 사랑한다. 비류 직하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란 상투어가 있듯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 물 줄기를 사랑한다. 으레 폭포수 밑 깊은 못 속에는 용이 살며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다. 폭포수에는 동양인의 마음 속에 흐르는 원시적인 환각의 무지개가 서려 있다. 서구인들은 분수를 사랑한다. 지하로부터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오르는 분수, 로마에 가든 파리에 가든 런던에 가든, 어느 도시에나 분수의 물줄기를 볼 수 있다. 분수에는 으레 조각이 있고 그 곁에는 콩코르드와 같은 시원한 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는 비둘기떼가 날고 젊은 애인들의 속삭임이 있다. 분수에는 서양인의 마음 속에 흐르는 원초적인 꿈의 무지개가 서려 있다. 폭포수와 분수는 동양과 서양의 각기 다른 두 .. 2014. 1. 11.
(수필) 슬픔에 관하여 / 몽테뉴 슬픔에 관하여 몽테뉴 나는 이 감정에서 가장 면제된 자들의 축에 든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치 여기 정가를 매겨 놓은 것처럼 특별한 기호(嗜好)를 가지고 이 심정을 존중하는 면이 있지만 나는 이것을 좋아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이것으로 예지(叡智), 도덕(道德), 양심(良心)에 옷을 입힌다. 어리석고 망측스런 장식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이 낱말에 괴악(怪惡)하다는 뜻을 붙였다. 왜냐 하면 이 심정은 언제나 해롭고 언제나 철부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토아 학파는 이것을 겁 많고 비굴한 소질이라고 보며, 그 파의 학자들에게 이 심정을 금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집트의 왕 프삼메니투스가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에게 패하여 잡혔을 때, 사로잡힌 자기 딸이 노예복을 입고.. 2014. 1. 11.
(수필) 평화를 위한 기도 /헤르만 헤세 평화를 위한 기도 헤르만 헤세 사랑하는 벗이여! 알 수 없는 약속과 위협을 가지고 새해는 우리들을 맞아 주었다. 지금은 새해의 한밤중, 이 시간은 우리들이 언제나 생활하고 있는 시간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제전(祭典)처럼 축하하고, 그것도 엄숙한 제전으로서 축하하고 있다. 이렇게 축하한다는 것은 올바른 것이다. 왜냐 하면, 한 시간이나마 속된 일상 생활에서 물러나서 반성, 자기 비판, 청산이나 명상의 기회를 얻는 다는 것은 소란스럽고 빈곤한 생활에 있어서 혜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고 인생은 허무하며, 인간의 사업이란 무상하기 짝이 없다. 그 점을 생각해 볼 때, 가령 슬픔에 잠겨서 고민하든지, 또는 대담무쌍하게 기쁨에 날뛰며 생각하든지 간에 그것은 우리들에.. 2014. 1. 11.
(수필) 술 / 피천득 술 - 피천득 "술도 못 먹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시오?" 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렇기도 하다. 술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진리로 알 전부이다. 나는 입에다 잔을 들고 그대 바라보고 한 숨 짓노라. 예이츠는 이런 노래를 불렀고, 바이런은 인생의 으뜸가는 것은 만취(滿醉)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백(李白)을 위시하여 술을 사랑하고 예찬하지 않은 영웅 호걸, 시인,묵객이 어디 있으리오. 나는 술을 먹지 못하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름날 철철 넘는 맥주잔을 바라다보면 한숨에 들이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차라리 종교적 절제라면 나는 그 죄를 쉽사리 범하였을 것이요, 한때 미국에 있던 거와 같은 금주법(禁酒法)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벌금을 각.. 2014. 1. 11.
(수필)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 김태길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김태길 버스 안은 붐비지 않았다. 손님들은 모두 앉을 자리를 얻었고, 안내양만이 홀로 서서 반은 졸고 있었다. 차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자 어린이 하나가 그 앞으로 확 달려들었다. 버스는 급정거를 했고, 제복에 싸인 안내양의 몸둥이가 던져진 물건처럼 앞으로 쏠렸다. 찰나에 운전기사의 굵직한 바른팔이 번개처럼 수평으로 쭉 뻗었고, 안내양의 가는 허리가 그 팔에 걸려 상체만 앞으로 크게 기울었다. 그녀의 안면이 버스 앞면 유리에 살짝 부딪치며, 입술 모양 그대로 분홍색 연지가 유리 위에 예쁜 자국을 남겼다. 마치 입술로 도장을 찍은 듯이 선명한 자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운전기사는 묵묵히 앞만 보고 계속 차를 몰고 있었다. 그의 듬직한 뒷.. 2014. 1. 11.
(수필) 덧칠을 벗겨낸 얼굴의 값 / 함영숙 덧칠을 벗겨낸 얼굴의 값 함영숙 성형수술이 발달한 지금은 얼굴이나 신체 부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배우처럼 고치는 사람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화장술이 발달하여 조금만 관심 가지고 화장하는 법을 익히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때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습 보다 더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화장독으로 인하여 망가진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 시킬수 있을까? 또한 성형 수출한 후에 맘에 들지 않는다고 예전의 모습으로 되 돌릴수 있을까? 돈으로 여기저기 이곳저곳 고쳐 놓고 흉물스러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 다시 고치려 하다가 더욱 더 나빠진 것을 본다. 사람이 젊음 그대로 있다면 오죽 좋으랴! 허나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늙어지게 마련인데. 돈으로 예쁘게 만드는 것도 .. 2014. 1. 11.
(수필) 효석(孝石)과 나 / 김남천 효석(孝石)과 나 - 김남진 소화 십육 년 정월에 나는 고향 가까운 어느 시골 온천에서 효석의 편지를 받았다. 몸이 불편해서 주을서 정양을 하던 중 부인이 갑자기 편치 않다는 기별이 와서 시방 평양으로 돌아왔는데 병명이 복막염 이어서 구하기 힘들 것 같다는 총망 중에 쓴 편지였다. 그 뒤에 부인의 병을 간호하면서 쓴 간단한 엽서를 한 장 더 받고는 이내 부고였다. 그 엽서에는, 내가 부인의 병환도 병환이려니와 효석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쓴 데 대해서, 부인의 병은 거의 절망 상태여서 이제 기적이나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는 것과 자기의 건강은 충분히 회복이 되었다는 것 등이 적혀 있었다. 부고는 시골집에서 받아서 자동차 편으로 온천에 있는 나에게 회송이 된 것으로, 발인 날짜가 얼마간 지난 뒤였다. 몹시 추운 .. 2014. 1. 11.
(수필) 사랑을 하면 / 김사빈 사랑을 하면 김사빈 사랑을 하면 예뻐지고, 바빠지고, 기뻐진다고, 교회 다니면 세 가지 '뻐'가 생긴다고 목사님의 강도 높은 말씀을 들었다. 첫째는 예뻐지고, 둘째는 바빠지고, 셋째는 기뻐진다 하였다. 내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면 주일날이면 교회 가는 사람들 곱게 차려 입고, 분이라도 찍어 바르고, 가지고 있는좋은 것을 들고 교회로 간다. 전에는 마을 가서 화투 놀이하였는데, 교회 다니면 주일 날 교회 가야지, 수요일 저녁 가지, 금요일 가지, 거기다 새벽 기도 가야지, 자연 바빠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전에 하던 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교회 가더니 사람 버렸네 하면 안되니까, 말이다 . 안 바르던 분이라도 바르고 바쁘게 다니다 보니 시름과 근심은 없어지고 자연 기뻐지니 삼뻐가 되는 비결인 것이.. 2014. 1. 11.
(수필) 외길의 고독, 그리고 아름다움 / 이정림 외길의 고독, 그리고 아름다움 - 이정림 가톨릭 신자도 아니면서, 성당에 다니는 언니의 초대로 미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그 성당에서 부제(副際)로 있던 쌍둥이 형제가 사제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하는 날이었다. 성당은 보통 때도 이렇게 신자가 많을까 싶을 만큼 사람들로 붐볐고,분위기는 엄숙하면서도 무슨 축제날처럼 조금 들떠 있었다. 얼굴이 너무도 닮은 쌍둥이 형제는 진지한 모습으로 그들의 첫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정결한 두 손을 들어 신자들의 머리 위에 축복을 내렸다. 미사가 끝나자 사제로서 첫출발을 하는 이들에게 기념품을 전달하는 순서가 있었다. 먼저 나이 어린소녀들이 수줍은 몸짓으로 조그마한 선물들을 이들에게 증정했다. 싱그러운 꽃다발을 꽃보다 더 싱그러워 보이는.. 2014. 1. 11.
(수필) 인생의 묘미 / 김소운 인생의 묘미 - 김소운 실패란 것이 있고 성공이란 것이 있다, 어떤 것이 성공이며 어떤 것이 실패인가를 ㄱ씨는 모른다. 천 원어치 행상꾼이 만 원 밑천으로 판자 가게를 내게 된 것도 성공이요, 10억 자본의 큰 회사가 5억으로 줄어든 것도 실패라면 실패이다. 10만 원 이윤을 기대했던 장사가 5만 원 번 것은 실패라고 볼 수 있고, 5천 원을 바랐다가 만 원이 생기면 이것은 성공일 수밖에 없다. 하필 물질이나 장삿속에만 한한 것이 아니리라. 인간 일생을 통틀어 과연 어느 것이 성공이요 어느 것을 실패라고 할 것인가? 이 점에 있어서는 언제나 ?씨는 회의적(懷疑的)이다. 그러나 누구의 눈에도 뚜렷한 결정적인 실패란 것이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불행도 있다. 이 실패, 이 불행에 인생을 아로새기는 묘미가 있.. 2014. 1. 11.
(수필) 어느 장님 부부의 사랑이야기 / 전경린 어느 장님 부부의 사랑이야기 - 전경린 산에는 요즘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 아카시아 향과 찔레 향을 앞세운 산 향이 왈칵 왈칵 넘쳐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민가로 덮친다. 창을 열면 금세 내장 속까지 음기 가득한 푸른 멍 빛이 들어 버린다. 오랜만에 앞산의 안부를 알자고 늘 입고 뒹구는 목면 원피스 아래 발목까지 오는 면양말을 신고 운동화 차림으로 나섰다. 쉰여섯 개의 계단을 빙빙 돌아내려가니 좁은 길에 봉고차 한 대가 서 있고 옆 통로에 사는 장님 부부가 젖먹이 아기를 안고 나와 있었다. 봉고차엔 종로구 세탁물 봉사대라는 글귀가 박혀 있다. 중증 장애자와 독거노인, 소년 소녀가 가장인 가정의 세탁물을 씻어다 준단다. 봉사대들이 4층 장님부부의 아파트에서 이불 보퉁이와 빨래거리를 안고 내려오느라 부산.. 2014. 1. 11.
(수필) 사랑을 받고 싶은 본능 / 전혜린 사랑을 받고 싶은 본능 전혜린 사랑만이 우리를 온갖 악에서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요새다. 많은 사랑을 적당한 방법으로 받고 자라난 사람만이 정상적인 정서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의 부드러운 풍요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생래의 두 가지 본능이 있다. 하나는 타인 또는 사회로부터 자기(또는 자기의 재능, 기타 어떤 형태의 현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충동이고 또 하나는 남의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랑받고 싶은 본능은 몹시도 강하게 우리에게 집착하는 내면적 욕구이다. 순탄하게 정상적이고 절도 있는 범위 내에서 풍요하고 만족스럽게 사랑을 받고 자라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하늘과 땅 이상의 심연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한 .. 2014. 1. 11.
(수필) 쉴러와의 첫 만남 / 괴테 쉴러와의 첫 만남 괴테 급진전을 이룬 실러와의 관계는 만년에 나에게 행복을 마련해 준 가히 최상의 것으로 손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내 모든 욕구와 희망들을 압도했다. 나는 이 유익한 일이 식물의 변형론 연구 덕이라 믿는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그와 나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오해가 없어졌던 것이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일어났던 일에 구애됨이 없이 온갖 예술 분야에서 보다 명료하고 순수한 자아를 형성시키려 했던 이탈리아에서의 귀향 이후로 나는, 그 대단한 명성을 떨치며 점점 영향을 끼치는 최근의 문예 작품이나 옛 문예 작품이 유감스럽게도 극도로 역겨운 것들임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하인제의 와 쉴러의 가 그것이다. 전자는 감성과 혼란된 정신 자세를 조형 예술을 통해 고상하게 보이고자 하는 겉치레가 싫었고, .. 2014. 1. 11.
(수필) 일관성에 대하여 / 김광섭 일관성에 대하여 김광섭 내 나이 이제 일흔이니, 이른바 기성 세대다. 아니, 기성 세대에서 구세대라 할 것이다. 그러나 구세대는 구세대임으로 겪어야 했던 과거가 있으니, 이는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삶을 영위하는데 혹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 70을 살고도 한 시간의 생각거리가 못 되는 인생이나마 여기 적는 것은 다만 '참고하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다. 나는 1905년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집안에는 자녀가 드물었기 때문에,나의 조부모께서는 나를 백 날 동안 사람에게도 해에도 달에도 보이지 않으시고, 당신들의 방 안에서 무릎에다 놓고 키우셨다 한다. 나는 이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나쁜 일이나 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생각한다. 이것이 평범한 한 아기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신 그분들께 최소한으로나마 보답하는 .. 2014. 1. 10.
(수필) 생활의 운치(韻致) / 신석정 생활의 운치(韻致) 신석정 "어디 우리에게 생활이 있나? 그저 생존하는 거지 ."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이요, 또 교양인이라고 자타가 공인한다는 층에서 이런 푸념(?)을 더욱 많이 듣게 된다. 생존 자체가 생활을 위한 것이요, 생존을 위한 생존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있어서도 안 돌 것이며, 생활다운 생활이 못 될지언정 우리들의 호흡이 생존에 그친다면, 그 이상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생활다운 생활을 영위할 만한 여건이 갖추어졌느냐면 그것은 우리들의 꿈이요, 현실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 역사가 비롯한 뒤, 한 번도 갖추어진 적이 없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어찌하랴? 만일 인간이 의욕하는 바 생활당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이 지구가 깡그리 .. 2014. 1. 10.
(수필) 인생의 주제가 무엇인가 / 김동길 인생의 주제가 무엇인가 김동길 사람을 가장 똑똑한 둥물이라 하여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가 주어졌겠지만 인간은 아직도 무식한 동물이다. 첫째, 시간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는가. 남편과 자기 자신의 생년월일은 알고 있지만,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짜에 태어났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지만 꽝하는 소리와 함께 태양계가 형성된지 족히 50억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천문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는데 그 기나긴 세월은 이해할 수 없다. 50억년 전에도 시간은 있었는가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고 앞으로 50억년 뒤에도 시간은 있겠는가 물으면 그것도 대답하기 어렵다. 철학을 한다는 매우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을 이해할 수가 없어 아마도 영원(Eternity)이라는 말을 생각해 냈겠지만 영원이라는 말은.. 2014. 1. 10.
(수필) 시집 가는 친구의 딸에게 / 피천득 시집 가는 친구의 딸에게 피천득 너의 결혼을 축하한다. 아름다운 사랑에서 시작된 결혼이기에 더욱 축하한다. 중매 결혼을 아니 시키고 찬란한 기적이 나타날 때를 기다려 온 너의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예식장에 너를 데리고 들어가는 너의 아버지는 기쁘면서도 한편 가슴이 빈 것 같으시리라. 눈에는 눈물이 어리고 다리가 휘청거리시리라. 시집 보내는 것을 딸을 여읜다고도 한다. 왜 여읜다고 하는지 너의 아빠는 체험으로 알게 되시리라. 네가 살던 집은 예전 같지 않고 너와 함께 모든 젊음이 거기에서 사라지리라. 너의 아버지는 네 방에 들어가 너의 책, 너의 그림들, 너의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시리라. 네가 쓰던 책상을 가만히 만져 보시리라. 네 화병의 꽃물을 갈아 주시려고 파란 화병을 들고 나오시리라. 사돈집.. 2014. 1. 10.
(수필) 서영이 / 피천득 서영이 피천득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탈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버릇이 없을 때가 있지만, 나이가 좀 들면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남들이 술마시느라고 없앤 시간, 바둑 두느라고 없앤 시간, 돈을 버느라고 없앤 시간, 모든 시간을 서영이와 이야기 하느라고 보냈다. 아마 내가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내가 산 참된 시간이요, 아름다운 시간이었 음은 .. 2014. 1. 10.
(수필) 피 어린 육백 리 / 이은상 피 어린 육백 리 - 이은상 오늘은 휴전선(休戰線) 행각(行脚)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지금 동부 전선(東部戰線)에서도 가장 치열한 격전을 치렀다는 향로봉(香爐峯)을 향해서 가는 길이다. 여기는 바로 설악산(雪嶽山) 한계령(寒溪領)으로부터 흘러오는 한계의 시냇가, 발길은 북쪽을 향하면서 눈은 연방 설악산 들어가는 동쪽 골짜기를 바라본다. 30년 만에 다시 보아도 밝은 빛, 맑은 기운이 굽이쳐 흐르는 물 소리와 함께 가슴 속의 티끌을 대번에 씻어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시원하냐! 그래, 이런 데서 그렇게 피비린내를 풍겼더란 말이냐! 친소(親疎)도 없이, 은원(恩怨)도 없이, 싸우다 말고 총을 던지고 냇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데가 아니냐!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이런 산.. 2014. 1. 10.
(수필) 한국의 미(美) / 김원룡 한국의 미(美) 김원룡 한국의 미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자연의 미’라고 할 것이다. 자연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은 한국적 자연으로, 한국에서의 미술 활동의 배경이 되고 무대가 된 바로 그 한국의 자연이다.한국의 산수(山水)에는 깊은 협곡(峽谷)이 패어지고 칼날 같은 바위가 용립(聳立)하는 그런 요란스러운 곳은 적다. 산은 둥글고, 물은 잔잔하며, 산줄기는 멀리 남북으로 중첩(重疊)하지만, 시베리아의 산맥처럼 사람이 안 사는 광야(曠野)로 사라지는 그러한 산맥은 없다. 둥근 산 뒤에 초가집 마을이 있고, 산봉(山峰)이 높은 것 같아도 초동(樵童)이 다니는 길 끝에는 조그만 산사(山寺)가 잇다. 차창에서 내다보면, 높은 산 위에 서 있는 촌동(村童) 2, 3 인의 키가 상상 이외로 커 보이는.. 2014. 1. 10.
(수필) 손수건의 사상 / 조연현(趙演鉉) 손수건의 사상 - 조연현(趙演鉉)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손수건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쩌다가 손수건을 빠뜨리고 나오는 날이면, 육체의 어느 한 부분을 떼어 놓고 나온 것처럼 어색하거나 꼭 입어야 될 의류의 하나를 빠뜨리고 나온 것처럼 허전해진다. 그만치 손수건은 인간에게 있어 없지 못할 일상적인 생활용품의 하나이다. 한글 학회 발행의 우리말 사전을 보면, 손수건은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작은 수건'으로 되어 있고, 문세영씨 사전을 보면, '땀을 씻는 작은 수건, 손을 씻는 작은 헝겊'으로 되어 있다. 전자는 주로 손수건의 형태와 위치에 대한 설명이고, 후자는 주로 그 용도에 대한 설명으로 볼 것이다. 이 두 개의 설명에서 우리는 손수건이란, 첫째 작은 헝겊으로 된 수건이며, 둘째 몸에 지니고 .. 2014. 1. 10.
(수필) 봄 / 피천득 봄 피천득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天癡)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凡俗)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띄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業)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자취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 2014. 1. 10.
(수필) 수학이 모르는 지혜 / 김형석 수학이 모르는 지혜 - 김형석(金亨錫) 재미있는 우화가 있다. 옛날 아리비아의 어떤 상인이 임종을 맞게 되었다. 그는 자기 앞에 세 아들을 불러 앉혔다. 그리고는 "내가 너희들에게 남겨 줄 유산이라고는 말 열일곱 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고장의 습관에 따라 꼭 같이 나누어 줄 수는 없으니까 맏아들 너는 열일곱 마리의 반을, 둘째 아들 너는 3분의 1을, 그리고 막내 아들 너는 전체의 9분의 1을 갖도록 하라." 고 유언을 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재산을 나누어 가져야 할 삼형제 간에는 오랜 싸움이 계속되었으나 해결을 얻을 길이 없었다. 맏아들은 열일곱의 반으로 아홉 마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동생들은 아홉 마리는 2분의 1이 넘으니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여덟 마리 반이 되지만 반 .. 2014. 1. 10.
(수필) 밤이 깊었습니다 / 전헤린 밤이 깊었습니다 전혜린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추악하고 권태로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베일을 씌우고 약간의 안개로 가리고 삶을 볼 때 삶은 아름다워지고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무엇으로 변형됩니다. 덜 냉혹하게 덜 권태롭게 느껴집니다. 저녁 때 푸른 어둠 속을 형광등이 일제히 켜지는 시간부터 신비는 비롯하는 것입니다. 어둠은 기적을 낳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연히 만나 옛날에 알던 사람과 우리는 곧 핵심에 와 닿는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낮은 적나라한 일광으로 모든 낭만을 박탈해 버리는데 비해서 밤은 우리를 꿈 속같이 막연하고 불투명하게 부드러운 낭만으로 감싸줍니다. 우리들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자기가 대낮을 외치.. 2014. 1. 10.
(수필) 슬픔에 관하여 / 유달영 슬픔에 관하여 - 유달영(柳達永) 사람의 일생은 기쁨과 슬픔을 경위(經緯)로 하여 짜 가는 한 조각의 비단일 것 같다. 기쁨만으로 일생을 보내는 사람도 없고 슬픔만으로 평생을 지내는 사람도 없다. 기쁘기만 한 듯이 보이는 사람의 흉중(胸中)에도 슬픔이 깃들이며, 슬프게만 보이는 사람의 눈에도 기쁜 웃음이 빛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기쁘다 해서 그것에만 도취(陶醉)될 것도 아니며, 슬프다 해서 절망만 일삼을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책상 앞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고 있다. 고호가 그린 이다.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얇게 무늬지고, 넓은 들에는 추수(秋收)할 곡식이 그득한데, 젊은 아내는 바구니를 든 채 나귀를 타고, 남편인 농부는 포크를 메고 그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생활하는 .. 2014. 1. 10.
(수필) 말의 힘과 책임 / 이규호 말의 힘과 책임 이규호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나 현실 속에서 살고 있고, 또 그 상황에 필요하다고 믿는 ‘말’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큰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말은 좋지 않은 방향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생각할 때에는, 말에 따르는 ‘책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말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려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위한 말의 창조적 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에 따르는 책임에 관해서도 말해 보려고 한다. 어쩌면 우리의 언어생활을 반성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의 힘 어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한 뒤에 “폐병(肺病)입니다.”하고 말했다 하.. 2014.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