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단문(수필)122

(수필) 국토 예찬 / 최남선 국토예찬 최남선 우리의 국토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시이며, 정신입니다. 문학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림자와 생활의 자취는 고스란히 똑똑히 이 국토 위에 박혀서 어떠한 풍우라도 마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나는 우리 역사의 한 작은 학도요, 우리 정신의 한 어설픈 탐구자로서, 진실로 남다른 애모와 탄미와 함께 무한한 궁금스러움을 이 산하대지에 가지는 것입니다. 자갯돌 하나와 마른 나무 한 밑동도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흥미와 또 연상을 자아냅니다. 이것을 조금씩 색독이나마 하게 된 뒤부터 우리 나라가 위대한 시의 나라, 철학의 나라임을 알게 되고 또 완전, 상세한 실물적 오랜 역사의 소유자임을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쳐다볼수록 거.. 2014. 1. 10.
(수필) 마고자 / 윤오영 마고자 윤오영 (尹五榮) 나는 마고자를 입을 때마다 한국 여성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한다. 남자의 의복 가운데 가장 사치스러운 호사(豪奢)가 마고자다.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감은 다른 옷보다 더 값진 천을 사용한다. 또, 남자 옷에 패물(佩物)이라면 마고자의 단추다. 마고자는 방한용(防寒用)이 아니요 모양새다. 방한용이라면 덧저고리가 있고 잘덧저고리도 있다. 화려하고 찬란한 무늬가 있는 비단 마고자나 솜 둔 것은 촌스럽고, 청초한 겹마고자가 원격(原格)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노인네가 겨울에 소탈(疏脫)하게 방한삼아 입으려면, 그 대신에 약식인 반배(半褙)를 입었던 것이다. 마고자는 섶이 알맞게 여며져야 하고, 섶귀가 날렵하고 예뻐야 한다. 섶이 조금만 벌어지거나 조금만 더 여며져도 표가 나고, 섶귀가 .. 2014. 1. 10.
(수필) 문학과 인생 / 최재서 문학(文學)과 인생(人生) 최재서 인생 오십 고개에 올라서, 그 사이 한 말이 많은 것 같지만, 돌아다보면 실오라기만한 외길이 보일 둥 말 둥, 줄거리 잡아 이렇다 할 아무 일도 없다. 나는 인생의 허무와 무가치를 느낀다. 나는 좀더 충실하고, 좀더 가치 있는 생을 체험하고 싶다. 그럴 때에 나는 베토벤의 교향악을 듣고, 혹은 밀턴의 시를 읽고, 혹은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는다. 이 글을 읽어 줄 독자는 대개 20 전의 청년들임을 나는 알고 있다. 여러분은 아직 인생을 회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앞을 내다보며 기쁨과 슬픔을 다같이 희망의 품안에 포옹하면서 전진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앞으로 간혹 문학 작품을 읽어, 인생에 대해서 그 무엇을 반성하게 될 때에, 이글이 약간의 도움이 될까 해서 붓을 .. 2014. 1. 10.
(수필) 별 / 알퐁스 도데 별 알퐁스 도데 내가 뤼르봉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몇 주일씩이나 사람이라고는 통 그림자도 구경 못하고, 다만 양떼와 사냥개 검둥이를 상대로 홀로 목장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이따금 몽들뤼르의 은자가 약초를 찾아 그 곳을 지나가는 일도 있었고, 또는 피에몽에서 온 숯 굽는 사람의 거무데데한 얼굴이 눈에 띄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도 외로운 생활을 해 온 나머지, 좀처럼 입을 여는 일이 없는 순박한 사람들이어서 남에게 말을 거는 취미도 잃어버렸거니와, 도무지 무엇이 지금 산 아래 여러 마을이나 읍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는지를 통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두 주일마다 보름치의 양식을 실어다 주는 우리 농장 노새의 방울 소리가 언덕길에서 들려올 때, 그리고 꼬마.. 2014. 1. 10.
(수필) 질화로 / 양주동 질화로 - 양주동 촌가의 질화로는 가정의 한 필수품, 한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 그들의 사랑의 용로이었다. 되는대로 만들어진, 흙으로 구운 질화로는, 그 생김생김부터가 그들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건마는, 지그시 누르는 넓적한 불돌 아래, 사뭇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저 혼자 불을 지니고 보호하는 미덥고 덕성스러운 것이었다. 갑자기 확확 달았다가 이내 식고 마는 요새의 문화 화로와는 무릇 그 본성이 다른 것이다. 이 질화로를 두른 정경은 안방과 사랑이 매우 달랐다. 안방의 질화로는 비록 방 한구석에 있으나, 그 위에 놓인 찌개 그릇은 혹은 '에미네'가 '남정'을 기다리는 사랑, 혹은 '오마니'가 '서당아이'를 고대하는 정성과 함께 언제나 따뜻했다. 토장에 무를 썰어서 버무린 찌개나마 거기에는 정이 .. 2014. 1. 10.
(수필) 낙엽과 문학 / 이무영 낙엽과 문학 이무영 귀뚜라미, 달, 낙엽, 단풍‥‥‥, 우리는 이런 낱말들만 보고서도 흔히 시정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 온 시 속에는 가을을 소재로 한 것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가을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 감상에 깊이 빠지고 있음도 사실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문학하는 태도를 한 번쯤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낙엽이니 단풍이니 하는 것이 다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는 것임엔 틀림이 없지만, 이를 보고 다만 감상에 빠지는 데서 끝나고 만다면, 이것은 결국 우리 문학을 나약하게 만들 위험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을을 조락의 계절로만 파악하여 애수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는 문학의 길을 개척해야겠다. 애수니 .. 2014. 1. 10.
(수필) 나의 고향 / 전광용 나의 고향 전광용 나의 고향은 함경도 북청이다. 북청이란 지명이 사람들의 귀에 익게 된 것은 아마도 '북청 물장수' 때문인 것 같다.수도 시설이 아직 변변하지 않았던 8.15 전의 서울에는 물장수가 많았었다.그런데, 그 대부분이 북청 사람이었던 까닭으로 '물장수'하면 북청, '북청 사람' 하면 물장수를 연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청 사람이 물장수를 시작한 것은 개화이후, 신학문 공부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 북청 물장수 치고 치부를 하기 위해서 장사를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고, 그들 뒤에는 반드시 서울 유학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들이나 동생의 학자를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 좋은 조카나 사촌을 위해서까지도 그들은 서슴지 않고, 희망과 기대 속에 물장수의 고역을.. 2014. 1. 10.
(수필) 갑사로 가는 길 / 이상보 갑사로 가는 길 이상보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東鶴寺)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丹粧)한 콘크리트 사찰(寺刹)은 솜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관광 버스도 끊인 지 오래다. 등산복 차림으로 경내(境內)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우리 넷뿐, 허전함조차 느끼게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대충 절주변을 살펴보고 갑사(甲寺)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은 산정(山頂)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어 팍팍한 허벅다리만 두들겼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성장(盛裝)을 벗은 뒤 여윈 몸매로 찬 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 코트를 입은 듯이 탐스러운 자태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흙이나 돌이 모두 눈에 덮인 산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우리들.. 2014. 1. 10.
(수필) 한국(韓國)의 미(美) / 김원룡 한국(韓國)의 미(美) 김 원 룡 (金元龍) 한국(韓國)의 미(美)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자연(自然)의 미’라고 할 것이다. 자연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은 한국적(韓國的) 자연으로, 한국에서의 미술 활동(美術活動)의 배경(背景)이 되고 무대(舞臺)가 된 바로 그 한국의 자연이다. 한국의 산수(山水)에는 깊은 협곡(峽谷)이 패어지고 칼날 같은 바위가 용립(聳立)하는 그런 요란스러운 곳은 적다. 산은 둥글고 물은 잔잔하며, 산 줄기는 멀리 남북으로 중첩(重疊)하지만, 시베리아의 산맥(山脈)처럼 사람이 안 사는 광야(曠野)로 사라지는 그러한 산맥은 없다. 둥근 산 뒤에 초가집 마을이 있고, 산봉(山峯)이 높은 것 같아도 초동(樵童)이 다니는 길 끝에는 조그만 산사(山寺)가 있다. 차창(車窓)에.. 2014. 1. 10.
(수필) 독서와 인생 / 이희승 독서와 인생 이희승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갈대'라고 한 것은 아마 약하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한다. 갈대는 웬만한 바람일지라도,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저리 쏠리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와 같은 약한 존재이면서, 생각하는 작용을 한다. 이 '생각한 다'는 일, 이것이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한 가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이르는 것도, 이 생각하는 작용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은 그만큼 놀랍고 위대한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문화를 창조하여 내려왔고, 또 그것을 흐뭇하게 누리고 있는 것은 온전히 사고작용의 덕분이라 할 수 있으며, 오늘날 월세계를 생각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벌써 수십 년 전.. 2014. 1. 10.
(수필) 탈고(脫稿) 안 될 전설 / 유주현 탈고(脫稿) 안 될 전설 유주현(柳 周鉉) 벌써 여러 해 전의 이야기다. 도회 생활에 심신이 피로하여 여름 한 달을 향리(鄕里)에 가서 지낸 일이 있다. 나는 그 때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 나의 생애를 두고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며, 필시(必是) 그들은 내 메말라가는 서정(抒情)에다 활력(活力)의 물을 주는 역할을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해 줄 줄로 안다. 향리 노원(蘆阮)에는 내 형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물이 맑고 산이 높아, 여름 한철에는 찾아 오는 대처(大處) 사람들이 선경(仙境)에 비길 만큼, 그 풍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그 여름 한달을 형의 원두막에서 살았다. 마침 형이 참외와 수박을 많이 심고,.. 2014. 1. 10.
(수필) 물 / 박지원 물 박지원( 朴趾源)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 나와 돌에 부딪혀, 싸우는 듯 뒤틀린다. 그 성난 물결, 노한 물줄기, 구슬픈 듯 굼실거리는 물 갈래와 굽이쳐 돌며 뒤말리며 부르짖으며 고함치는, 원망(怨望)하는 듯한 여울은, 노상 장성(長城)을 뒤흔들어 쳐부술 기세(氣勢)가 있다. 전차(戰車) 만 승(萬乘)과 전기(戰騎) 만 대(萬隊), 전포(戰砲) 만 가(萬架)와 전고(戰鼓) 만 좌(萬座)로써도 그 퉁탕거리며 무너져 쓰러지는 소리를 충분히 형용(形容)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엔 엄청난 큰돌이 우뚝 솟아 있고, 강 언덕엔 버드나무가 어둡고 컴컴한 가운데 서 있어서, 마치 물귀신과 하수(河水)의 귀신(鬼神)들이 서로 다투어 사람을 엄포 하는 듯한데, 좌우의 이무기들이 솜씨를 시험(試驗)하여 사람을 붙.. 2014. 1. 9.
(수필) 나의 소원 / 김구 나의 소원(所願) 김구(金九) 네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大韓獨立)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自主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同胞)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칠십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達)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칠십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2014. 1. 9.
(수필) 금당벽화 / 정한숙 금당벽화(金堂壁畵) 정한숙 (鄭漢淑) 목탁 소리가, 비늘진 금빛 낙조 속에 여운을 끌며 울창한 수림을 헤치고 구릉의 기복을 따라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무성한 숲과 숲, 스며드는 습기로 바위의 이끼는 변함 없이 푸른데, 암수 서로 짝지어 어르는 사슴의 울음은, 남국적인 정서로 이국의 애수를 돕는 듯했다. 바위에 앉은 채 움직이려 하질 않았다. 서녘 하늘은 젖빛 구름 속에 붉은 빛을 머금는가 하면, 자줏빛 구름이 솟구쳐 흐르고, 그것이 퍼져 다시 푸른 바탕으로 변하면, 하늘은 자기 재주에 겨워 회색빛으로 아련히 어두워 갔다. 바위에 기대앉은 담징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동광은 하늘 빛을 닮은 듯, 담뿍 부풀어올랐던 희열의 빛이 잦아들며, 몽롱한 꿈 속에 잠기듯이 흐려졌다... 2014. 1. 9.
(수필) 깨어진 그릇 / 이항녕 깨어진 그릇 이항녕(李恒寧) 광복(光復) 전에, 나는 경남(慶南)에서 군수(郡守) 노릇을 한 일이 있다. 광복이 되자 나는 그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소나마 속죄(贖罪)가 될까 하여 교육계(敎育界)에 투신(投身)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교육에 종사한다는 것이 전비(前非)에 대한 속죄가 되는지에 관해선 지금도 의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은 가장 신성한 사업이다. 그런 사업에 죄(罪) 있는 사람이 참여(參與)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지금, 내가 속죄를 한답시고 교육계에 들어온 것이 교육에 대한 모독이 아니었나 하고 반성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속죄의 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국민학교 평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기왕 교육계에 투신하기고 결심한 이.. 2014. 1. 9.
(수필) 한 눈 없는 어머니 / 이은상 한 눈 없는 어머니 이은상(李殷相) 김 군(金君)에게 김 군이 다녀간 어젯밤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소. 김 군에게 보내는 이 편지(便紙)는 쓰고 싶으면서도 실상은 쓰고 싶지 않은 글이오. 왜냐 하면, 너무도 어리석은 일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슬픈 사연(事緣)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꼭 써야만 한다는 의무감(義務感) 같은 것을 느끼었소. 그래서 이 붓을 들었소. 어젯밤 우리가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소.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르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소. 아, 거기서만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그대는 품 속에서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寫眞)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소.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생전(生前)에 뵈온 일이 없었기에 반가이 .. 2014. 1. 9.
(수필) 감사 / 임옥인 감사 - 임옥인 오늘은 우리가 새 집을 짓기 시작하는 날이다. 평생 '임시'와 '방랑'을 면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주하고 싶은 것이다. 기쁘다. "얼마나 더 살려고 그래?" "누구에게 물려주려고?" 내가 집을 짓겠다고 할 때, 이렇게 말하는 벗들도 있었다. 내가 늙은 탓이고 나에게 아들딸이 없는 까닭일 것이다. 이 말들 속에는 물론 내가 고생할 것을 염려하는 따뜻한 우정도 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집이 누구에게 돌아간들 어떠랴. 누구라도 들어와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로써 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말할 수 없이 신선한 오전이었다. 아름답게 흐르는 오월의 맑은 햇빛, 뜰 안.. 2014. 1. 9.
(수필) 글을 쓴다는 것 / 김태길 글을 쓴다는 것 김태길(金泰吉)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整理)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姿勢)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 무언(有言無言)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約束)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充實)하게 실천(實踐)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整頓)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方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反省)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想念)을 어떤 형식으로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 자신(自己自身)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自畵像)이다. .. 2014. 1. 9.
(수필) 행복의 메타포 / 안병욱 행복의 메타포 - 안병욱 [1] 앉은뱅이꽃의 노래 괴테의 시(詩) 가운데 「않은뱅이꽃의 노래」라는 시가 있다. 어느 날, 들에 핀 한 떨기의 조그만 앉은뱅이꽃이 양의 젖을 짜는 순진 무구한 시골 처녀의 발에 짓밟혀서 시들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앉은뱅이꽃은 조금도 그것을 서러워하지 않는다. 추잡하고 못된 사내의 손에 무참히 꺾이우지 않고 밝고 깨끗한 처녀에게 밟혔기 때문에 꽃으로 태어났던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의 상징을 좋아한다. 들에 핀 조그만 꽃 한 송이에도 꽃으로서의 보람, 생명으로 태어났던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람 있는 생(生)을 원한다. 누구나 보람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보람 있는 일생을 마치고 싶어한다. 우리 인생의 희열(喜悅)과 행복(.. 2009. 2. 13.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 /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윤 오 영(尹五榮)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가지고 가려고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던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었다. 더 깍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2008. 11. 26.
(수필) 끝없는 만남 / 안병욱 끝없는 만남 - 안 병 욱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 만나기 위해서다. 누구를?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을. 독서는 인생의 깊은 만남이다. 우리는 매일 가족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동료를 만나고 또 이웃을 만난다. 만남이 없이는 인생이 있을 수 없다. 인생은 끊임없는 조우요, 부단한 해후다. 우리는 같은 시대의 사람을 만나는 동시에 옛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옛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가? 책을 통하는 길밖에 없다. 독서는 옛 사람들과의 깊은 정신적 만남이다. 만남에는 얕은 만남이 있고 깊은 만남이 있다. 불행한 만남이 있고 행복한 만남이 있다. 소비적인 만남이 있고 생산적인 만남, 창조적인 만남이 있다. 옛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들의 정신과 만나는 것이요. 그들의 사상과 만나는 것이다. .. 2008. 11. 25.
(수필) 고독에의 향수 / 안병욱 고독에의 향수 -안병욱 인간은 세 개의 눈을 갖는다. 첫째는 밖으로 향하는 눈이요, 둘째는 위로 향하는 눈이요, 셋째는 안으로 향하는 눈이다. 밖으로 향하는 눈은 자연과 객관적 대상의 세계로 향한다. 위로 향하는 눈은 신과 종교적 신앙의 세계로 향한다. 안으로 향하는 눈은 자아와 내면적 세계로 향한다. 청년의 사색과 관심의 특색은 내향성과 내면성이 있다. 그는 눈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고 남에게서 자기에게로 돌린다. 청년은 주로 자아와 내면적 세계로 향한다. 그것은 자기 발견, 자기 탐구, 자기 성찰, 자기 응시의 눈이다. 내가 나의 내적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눈이다. 사색에는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색하기 위해서 주위의 접촉에서 격리되어 조용한 장소를 구한다. 더구나 자기 성찰에는 그러한 환경이.. 2008. 11. 25.
(수필) 하루에 한번쯤은 / 안병욱 하루에 한번쯤은 안병욱 1. 높은 하늘과 아름다운 자연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쯤은 높은 하늘을 쳐다보자. 별이 총총히 깔린 흰 구름이 시름없이 떠도는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은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인간이 자연에서 자꾸만 멀어진다는 것은 병들어 간다는 증거다. 본래 인간은 자연의 아들이요 자연의 딸이다. 자연은 우리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다.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위에서 살다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발바닥이 흙을 밟지 않을 때 인간의 몸과 마음에는 병이 생긴다. 우리는 오늘날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서, 산업화 도시화라는 명목하에서 우리의 따뜻한 품이요, 어머니인 자연에서 자꾸 멀어져 가고 있다. 조용한 산길을 걷고, 맑은 풀냄새의 향기를 맡고, 깨끗한 시냇물에.. 2008. 11. 25.
(수필) 미리내 / 서정범 미리내 - 서정범 은하수를 우리말로 미리내라고 한다. 미리내는 '미리'는 용(龍)의 옛말 '미르'가 변한 말이고 '내'는 천(川)의 우리말로서, 미리내는 '용천(龍川)'이란 어원을 갖는 말이라 하겠다. 어원에서 보면 용은 하늘에서는 은하수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보통 학교 아이들이 기차를 본 횟수를 늘리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 달려가기도 하고 기차를 보려고 밤 늦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기차에서 얼마큼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느냐가 큰 자랑거리였다. 하루는 셋이서 새로운 기록을 내려고 기차 오기를 기다렸다. 선로가에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 기적을 울리기 때문에 숨어 있다가 지날 때 바싹 다가서야 된다. 기차가 굽이를 돌아 나타났다. 뛰어나왔다. 뒤늦게 우리를 .. 2008. 11. 25.
(수필) 우덕송(牛德頌)/이광수 우덕송(牛德頌) 이광수 금년은 을축년(乙丑年)이다. 소의 해라고 한다. 만물에는 각각 다소의 덕(德)이 있다. 쥐 같은 놈까지도 밤새도록 반자위에서 바스락거려서 사람에게, "바쁘다!" 하는 교훈을 주는 덕이 있다. 하물며 소는 짐승 중에 군자다. 그에게서 어찌해 배울 것이 없을까. 사람들아! 소 해의 첫날에 소의 덕을 생각하여, 금년 삼백육십오 일은 소의 덕을 배우기에 힘써 볼까나. 특별히 우리 조선 민족과 소와는 큰 관계가 있다. 우리 창조신화(創造神話)에는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서 사람의 조상을 낳았다 하며, 또 꿈에서 소가 보이면 조상이 보인 것이라 하고 또 콩쥐팥쥐 이야기에도 콩쥐가 밭을 갈다가 호미를 분지르고 울 때에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서 밭을 갈아 주었다. 이 모양으로 우리 민족.. 2008. 11. 25.
(수필) 가을이면 앓는 병 / 전혜린 가을이면 앓는 병 전혜린 이 결별과 출발의 집념은 매년 가을이면 나에게 다가오는 병마이다.가을처럼 여행에 알맞는 계절이 또 있을까? 모든 정을 다 결별하고 홀가분하게 여행을 하고 싶어지는 계절이 가을이다. 엷어진 일광과 냉랭한 공기 속을 어디라고 정한 곳 없이 떠나 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난다. 매일 매일의 궤도에 오른 생활이 뽀얀 오후의 먼지 속에서 유난히 염증나게 느껴진다. 여름의 생기가 다 빼앗아가 버린 나머지의 잔해처럼 몸도 마음도 피로에 사로잡히게 되고 생 전반에 대한 지긋지긋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럴 때 어디로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출발을 생각하며 자기의 정해진 궤도 밖으로 튀어 나갈 생각에 몸부림친다. 이 결별과 출발의 집념은 매년 가을이면 나에게 다가오는 병마(.. 2008. 11. 24.
(수필) 심춘순례 서(尋春巡禮 序) / 최남선 심춘순례 서(尋春巡禮 序) 최남선 우리의 국토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시이며, 정신입니다. 문학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림자와 생활의 자취는 고스란히 똑똑히 이 국토 위에 박혀서 어떠한 풍우(風雨)라도 마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나는 우리 역사의 한 작은 학도(學徒)요, 우리 정신의 한 어설픈 탐구자(探究者)로서, 진실로 남다른 애모(哀慕)와 탄미(歎美)와 함께 무한한 궁금스러움을 이 산하대지(山河大地)에 가지는 것입니다. 자갯돌 하나와 마른 나무 한 밑동도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흥미(興味)와 또 연상(聯想)을 자아냅니다. 이것을 조금씩 색독(色讀)이나마 하게 된 뒤부터 우리 나라가 위대한 시의 나라, 철학의 나라임을 알게 되.. 2008. 11. 24.
(수필) 갑사로 가는 길 / 이상보 갑사(甲寺)로 가는 길 - 이상보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東鶴寺)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丹粧)한 콘크리트 사찰(寺刹)은 솜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관광(觀光) 버스도 끊인 지 오래다. 등산복 차림으로 경내(境內)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우리 넷뿐, 허전함조차 느끼게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대충 절 주변을 살펴보고 갑사(甲寺)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은 산정(山頂)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어 팍팍한 허벅다리만 두들겼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성장(盛裝)을 벗은 뒤 여윈 몸매로 찬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 코트를 입은 듯이 탐스러운 자태(姿態)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흙이나 돌이 모두 눈에 덮인 산길을 도란도란 이.. 2008. 11. 24.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幸福) / 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幸福) 김 소 운(金素雲) 먹을 만큼 살게 되면 지난날의 가난을 잊어버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 가난은 결코 환영(歡迎)할 것이 못 되니, 빨리 잊을수록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하고 어려웠던 생활에도 아침 이슬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회상(回想)이 있다. 여기에 적는 세 쌍의 가난한 부부(夫婦)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옛날 이야기지만, 내게 언제나 새로운 감동(感動)을 안겨다 주는 실화(實話)들이다. 그들은 가난한 신혼 부부(新婚夫婦)였다. 보통(普通)의 경우(境遇)라면, 남편이 직장(職場)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反對)였다. 남편은 실직(失職)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會社)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2008. 11. 24.
(수필) 불국사 기행 / 현진건 불국사 기행 현진건 7월 12일, 아침 첫 차로 경주를 떠나 불국사로 향했다. 떠날 임시에 봉황대(鳳凰臺)에 올랐건만, 잔뜩 찌푸린 일기에 짙은 안개는 나의 눈까지 흐리고 말았다. 시포(屍布)를 널어 놓은 듯한 희미한 강줄기, 몽롱한(흐릿한) 무덤의 봉우리, 쓰러질 듯한 초가집 추녀가 눈물겹다. 어젯밤에 나를 부여잡고 울던 옛 서울은 오늘 아침에도 눈물을 거두지 않은 듯. 그렇지 않아도 구슬픈 내 가슴(객수)이어든 심란한 이 정경에 어찌 견디랴? 지금 떠나면 1년, 10년, 혹은 20년 후에나 다시 만날지 말지! 기약 없는 이 작별을 앞두고 눈물에 젖은 임의 얼굴! 내 옷소매가 촉촉이 젖음은 안개가 녹아 내린 탓만은 아니리라. 장난감 기차는 반 시간이 못 되어 불국사역까지 실어다 주고, 역에서 등대(等待.. 2008.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