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5340

(수필) 가을이면 앓는 병 / 전혜린 가을이면 앓는 병 전혜린 이 결별과 출발의 집념은 매년 가을이면 나에게 다가오는 병마이다.가을처럼 여행에 알맞는 계절이 또 있을까? 모든 정을 다 결별하고 홀가분하게 여행을 하고 싶어지는 계절이 가을이다. 엷어진 일광과 냉랭한 공기 속을 어디라고 정한 곳 없이 떠나 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난다. 매일 매일의 궤도에 오른 생활이 뽀얀 오후의 먼지 속에서 유난히 염증나게 느껴진다. 여름의 생기가 다 빼앗아가 버린 나머지의 잔해처럼 몸도 마음도 피로에 사로잡히게 되고 생 전반에 대한 지긋지긋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럴 때 어디로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출발을 생각하며 자기의 정해진 궤도 밖으로 튀어 나갈 생각에 몸부림친다. 이 결별과 출발의 집념은 매년 가을이면 나에게 다가오는 병마(.. 2008. 11. 24.
(수필) 심춘순례 서(尋春巡禮 序) / 최남선 심춘순례 서(尋春巡禮 序) 최남선 우리의 국토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시이며, 정신입니다. 문학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림자와 생활의 자취는 고스란히 똑똑히 이 국토 위에 박혀서 어떠한 풍우(風雨)라도 마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나는 우리 역사의 한 작은 학도(學徒)요, 우리 정신의 한 어설픈 탐구자(探究者)로서, 진실로 남다른 애모(哀慕)와 탄미(歎美)와 함께 무한한 궁금스러움을 이 산하대지(山河大地)에 가지는 것입니다. 자갯돌 하나와 마른 나무 한 밑동도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흥미(興味)와 또 연상(聯想)을 자아냅니다. 이것을 조금씩 색독(色讀)이나마 하게 된 뒤부터 우리 나라가 위대한 시의 나라, 철학의 나라임을 알게 되.. 2008. 11. 24.
(수필) 갑사로 가는 길 / 이상보 갑사(甲寺)로 가는 길 - 이상보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東鶴寺)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丹粧)한 콘크리트 사찰(寺刹)은 솜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관광(觀光) 버스도 끊인 지 오래다. 등산복 차림으로 경내(境內)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우리 넷뿐, 허전함조차 느끼게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대충 절 주변을 살펴보고 갑사(甲寺)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은 산정(山頂)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어 팍팍한 허벅다리만 두들겼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성장(盛裝)을 벗은 뒤 여윈 몸매로 찬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 코트를 입은 듯이 탐스러운 자태(姿態)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흙이나 돌이 모두 눈에 덮인 산길을 도란도란 이.. 2008. 11. 24.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幸福) / 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幸福) 김 소 운(金素雲) 먹을 만큼 살게 되면 지난날의 가난을 잊어버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 가난은 결코 환영(歡迎)할 것이 못 되니, 빨리 잊을수록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하고 어려웠던 생활에도 아침 이슬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회상(回想)이 있다. 여기에 적는 세 쌍의 가난한 부부(夫婦)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옛날 이야기지만, 내게 언제나 새로운 감동(感動)을 안겨다 주는 실화(實話)들이다. 그들은 가난한 신혼 부부(新婚夫婦)였다. 보통(普通)의 경우(境遇)라면, 남편이 직장(職場)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反對)였다. 남편은 실직(失職)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會社)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2008. 11. 24.
(수필) 불국사 기행 / 현진건 불국사 기행 현진건 7월 12일, 아침 첫 차로 경주를 떠나 불국사로 향했다. 떠날 임시에 봉황대(鳳凰臺)에 올랐건만, 잔뜩 찌푸린 일기에 짙은 안개는 나의 눈까지 흐리고 말았다. 시포(屍布)를 널어 놓은 듯한 희미한 강줄기, 몽롱한(흐릿한) 무덤의 봉우리, 쓰러질 듯한 초가집 추녀가 눈물겹다. 어젯밤에 나를 부여잡고 울던 옛 서울은 오늘 아침에도 눈물을 거두지 않은 듯. 그렇지 않아도 구슬픈 내 가슴(객수)이어든 심란한 이 정경에 어찌 견디랴? 지금 떠나면 1년, 10년, 혹은 20년 후에나 다시 만날지 말지! 기약 없는 이 작별을 앞두고 눈물에 젖은 임의 얼굴! 내 옷소매가 촉촉이 젖음은 안개가 녹아 내린 탓만은 아니리라. 장난감 기차는 반 시간이 못 되어 불국사역까지 실어다 주고, 역에서 등대(等待.. 2008. 11. 24.
(수필) 보름달 / 김동리 보름달 - 김동리(金東里) 새벽달보다는 초승달이 나에게는 한결 친할 수 있다. 개나리, 복숭아, 살구꽃, 벚꽃들이 어우러질 무렵의 초승달이나 으스름달이란, 그 연연하고 맑은 봄밤의 혼령(魂靈)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소식(蘇軾)의 ‘봄 저녁 한 시각은 천 냥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늘(春宵一刻値千金 花有淸香月有陰)’이라고 한 시구(詩句) 그대로다. 어느 것이 달빛인지 어느 것이 꽃빛인지 분간할 수도 없이 서로 어리고 서려 있는 봄밤의 정취란 참으로 흘러가는 생명의 한스러움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단들 초승달로 보름달을 겨룰 수 있으랴. 그것은 안 되리라. 마침 어우러져 피어 있는 개나리, 복숭아, 벚꽃들이 아니라면, 그 연한 빛깔과 맑은 향기가 아니라면, 그 보드라운 숨결 같은.. 2008. 11. 24.
(수필) 구두 / 계용묵 구두 - 계용묵(桂鎔默) 구두 수선(修繕)을 주었더니, 뒤축에다가 어지간히도 큰 징을 한 개씩 박아 놓았다. 보기가 흉해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더니, 그런 징이래야 한동안 신게 되고, 무엇이 어쩌구 하며 수다를 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신기는 신었으나, 점잖지 못하게 저벅저벅, 그 징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심히 귓맛에 역(逆)했다. 더욱이, 시멘트 포도(鋪道)의 딴딴한 바닥에 부딪쳐 낼 때의 그 음향(音響)이란 정말 질색이었다. 또그닥 또그닥, 이건 흡사 사람이 아닌 말발굽 소리다. 어느 날 초어스름이었다. 좀 바쁜 일이 있어 창경원(昌慶苑) 곁담을 끼고 걸어 내려오노라니까, 앞에서 걸어가던 이십 내외의 어떤 한 젊은 여자가 이 이상히 또그닥거리는 구두 소리에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으로,.. 2008. 11. 24.
(수필) 어린이 찬미 / 방정환 어린이 찬미 방정환 ​ 1​.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달게 자고 있다. ​ 볕 좋은 첫 여름 조용한 오후이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의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은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것 같고, 이 세상의 평화라는 평화는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 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 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결 같은 꽃잎, 아니 아니, 이 세상에 곱고 보드랍다는 아무것으로도 형용할 수 없이 보드랍고 고운, 이 자는 .. 2008. 11. 24.
(수필) 고인(古人)과의 대화 / 이병주 고인(古人)과의 대화 이 병 주(李丙疇) 고인(古人)과의 대화(對話)를 하며 생각에 잠긴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 문향(聞香)의 동안이 얼마나 소담스러운가는 저 국보(國寶)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像)’을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짐작이 갈 것이다. 나는 고서(古書)와 고화(古畵)를 통해 고인과 더불어 대화하면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 손때로 결은 먹 너머에 서린 생각의 보금자리 속에 고이 깃들이고 싶어서다. 사실, 해묵은 서화(書畵)에 담긴 사연을 더듬는다는 그 마련부터가 대단히 즐겁고 값진 일이니, 비록 서화에 손방인 나라 할지라도 적쟎은 반기가 끼쳐짐에서다. 이런 뜻에서 지난 달은 정말 푸짐한 한 달이었다. 성북동(城北洞) 간송 박물관(澗松博物館)에서 단원(檀園)을 보며 꿈을.. 2008. 11. 23.
(수필) 돌의 미학(美學) / 조지훈 돌의 미학(美學) 조지훈 돌의 맛─그것도 낙목한천(落木寒天)의 이끼 마른 수석(瘦石)의 묘경(妙境)을 모르고서는 동양의 진수를 얻었달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의 마당 귀에 작은 바위를 옮겨다 놓고 물을 주어 이끼를 앉히는 거라든다, 흰 화선지 위에 붓을 들어 아주 생략되고 추상된 기골이 늠연(凜然)한 한 덩어리의 물체를 그려 놓고 이름하여 석수도(石壽圖)라고 바라보고 좋아하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흐뭇해진다. 무미한 속에서 최상의 미를 맛보고, 적연부동(寂然不動)한 가운데서 뇌성벽력(雷聲霹靂)을 듣기도 하고, 눈 감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마음이 모두 이 돌의 미학에 통해 있기 때문이다. 동양화, 더구나 수묵화의 정신은 애초에 사실이 아니었다. 파초 잎새 위에 백설을 듬뿍 실어놓기도 하고, 10리 둘레의.. 2008. 11. 23.
(수필) 들국화 / 정비석 들국화 정 비 석 가을은 서글픈 계절이다. 시들어 가는 풀밭에 팔벼개를 베고 누워서, 유리알처럼 파아랗게 개인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까닭없이 서글퍼지면서 눈시울ㄹ이 눈물에 어리어지는 것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순순(純粹)한 감정이다. 섬돌 밑에서 밤을 새워 가며 안.. 2008. 11. 23.
(수필) 설 / 전숙희 설 전숙희 설이 가까와 오면, 어머니는 가족들의 새 옷을 준비하고 정초 음식 차리기를 서두르셨다. 가으내 다듬이질을 해서 곱게 매만진 명주(明紬)로 안을 받쳐 아버님의 옷을 지으시고, 색깔 고운 인조견(人造絹)을 떠다가는 우리들의 설빔을 지으셨다. 우리는 그 옆에서, 마름질하다 남은 헝겊 조각을 얻어 가지는 것이 큰 기쁨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살림에 지친 어머니는 그래도 밤 늦게까지 가는 바늘에 명주실을 꿰어 한 땀 한 땀 새 옷을 지으셨다. 우리는 눈을 비벼 가며 들여다 보다가 잠이 들었다. 착한 아기 잠 잘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잠든 아기는 어머니가 꿰매 주신 바지를 입고 산줄기를 타며 고함도 지를 것이다. 우리는 설빔을 입고 널 뛰는 꿈도.. 2008. 11. 23.
(수필) 청포도의 사상 / 이효석 청포도의 사상 이효석 육상으로 수천 리를 돌아온 시절의 선물 송이의 향기가 한꺼번에 가을을 실어 왔다. 보낸 이의 마음씨를 갸륵히 여기고, 먼 강산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눈앞의 가을에 눈을 옮긴다. 남창으로 향한 서탁이 차고 투명하고 푸르다. 하늘을 비침이다. 갈릴리 바다.. 2008. 11. 23.
(수필) 피어린 육백리 / 이은상 피어린 육백리 이은상 오늘은 휴전선(休戰線) 행각(行脚)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지금 동부 전선(東部戰線)에서도 가장 치열한 격전을 치렀다는 향로봉(香爐峯)을 향해서 가는 길이다. 여기는 바로 설악산(雪嶽山) 한계령(寒溪領)으로부터 흘러오는 한계의 시냇가, 발길은 북쪽을 향하면서 눈은 연방 .. 2008. 11. 23.
(수필) 헐려 짓는 광화문 / 설의식 헐려 짓는 광화문(光化門) 설의식(薛義植)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은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청사 까닭으로 헐리고 정책 덕택으로 다시 짓게 된다. 원래 광화문은 물건이다.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며,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꾸물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의식 없는 물건이요, 말 못하는 물건이라, 헐고 부수고 끌고 옮기고 하되, 반항도 회피(回避)도 기뻐도 설워도 아니한다. 다만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 잊어할 뿐이다. 오 백년동안 풍우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그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할 뿐이다. 석공(石工)의 망치가 네 가슴을 두드려도 너는 알음[知.. 2008. 11. 23.
(수필) 모송론(母頌論) / 김진섭 모송론(母頌論) 김진섭 사람이면 사람이 모두 그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을 누구에게 감사할 이유는 물론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흔히 다른사람이 뿌린 씨를 자시 스스로 거두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괴로운 운명을 슬퍼 하기도 하는 까닭이올시다. 자기의 뜻에는 오로지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이왕 사.. 2008. 11. 23.
(수필) 주부송(主婦頌) / 김진섭 주부송(主婦頌) - 김진섭 한말로 주부(主婦)라고는 해도,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 종류의 형태로 꾸민, 말하자면 다모다채(多貌多彩)한 여인상을 안전(眼前)에 방불시킬 수 있겠으나, 이 주부라는 말이 가진 음향으로서 우리가 곧 연상하기 쉬운 것은 무어라 해도 백설 같이 흰 행주치마를 가는 허리에 맵시도 좋게 두른 여자가 아닐까 한다. 그러한 자태의 주부가 특히 대청마루 위를 사뿐사뿐 거닌다든가, 또는 길에서도 찬거리를 사 들고 가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실로 행주치마를 입은 건전한 주부의 생활미를 한없이 찬탄하고 사랑하며 또 존경하는 바다. '먹는 자(者) 그것이 사람이다.' 하고 일찍이 갈파(喝破)한 것은 철학자 루우드비히 안드레아스 포이에르바하였다. 영양(榮養)이 인간의 정력과 품위를 결정하는 표.. 2008. 11. 22.
(수필) 그믐달 / 나도향 그믐달 나도향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븐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승달은 마치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쫒겨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들어 하는 .. 2008. 11. 22.
(수필) 딸깍발이 / 이희승 딸깍발이 이희승 '딸깍발이'란 것은 '남산(南山)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別號)가 생겼느냐 하면, 남산골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쳐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 요새 청년들은 아마 그런 광경을 못 구경하였을 것이니, 좀 상상하기에 곤란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 시대에 일인들이 '게다'를 끌고 '콘크리트' 길바닥을 걸어 다니던 꼴을 기억하고 있다면 딸깍발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까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산골샌님이 마른 날 나막신 소리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얘깃거리가 될 것도 없다. 그 소리와 아울러 그 모양이 퍽 초라하고 궁상(窮狀)이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인생으로서 한 고비가 겨워.. 2008. 11. 22.
떨어진 낙엽마다 시(詩)가 되고 노래가 된다 [포토에세이] 가을빛 떨어진 낙엽마다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가을빛이 온 산을 물들여가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수채화물감을 풀어 놓은 듯 가을산이 가을빛으로 충만하다. 가을빛은 화사하지만 동시에 쓸쓸하다. 그래서 가을빛은 비장하다. 낙엽이 떨어진다. 떨어지니까 낙엽이다. 오는 계절을 준비하는 마음, 그래야 내년 봄에 또다시 희망의 새싹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도 충만하던 생명의 기운, 때가 되면 그 힘찬 기운들을 막고 막은 흔적들이 가을빛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 가을빛 하룻밤 사이에 물들어 버린듯하다. 오는 계절을 마다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옷을 벗어버린다. 차곡차곡 쌓아둠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벗음.. 2008. 11. 21.
내장산 단풍, 그 현란한 세상 속을 걷다. 내장산 단풍 그 현란한 세상 속을 걷다 글·사진 남상학 의 금년 단풍여행은 내장사 쪽으로 잡았다. 먼저 내장사를 보고 백양사로 이동하여 백양사 쪽 단풍을 구경한 다음 전주에 가서 1박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동안 호남을 즐겨 찾았으면서도 전주는 그냥 지나치는 아쉬움이 많던 터에 이번에는 하루 일정이지만 전주를 탐방하고 싶어서였다. 12명의 회원 중에서 심한 감기로 한 쌍이 참여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안고 떠났다. 정읍 금호호텔 앞에 있는 정금식당(정읍시 수성동 711-6, 063-535-3644 )에서 백반으로 점심을 했다. 남도의 음식은 넉넉하고 인심 좋기로 유명하지만 5천 원짜리 백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다. 푸짐한 상차림을 받고 먼저 내장사로 행했다. 평일이라 해도 예년 같으면 내장사.. 2008. 11. 21.
백양사(白羊寺), 내장사와 쌍벽을 이루는 단풍 터널 백양사(白羊寺) 내장사와 쌍벽을 이루는 단풍 터널 글·사진 남상학 내장사를 둘러보고 일행은 서둘러 백양사로 향했다. 백양사로 가는 길은 내장사 입구에서 순창으로 향하는 49번 도로로 추령을 넘어야 한다. 이 길은 내장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험한 산세를 타고 뚫려 있어 아래에서 보면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다. 20여 년 전 겨울, 눈이 덮인 이 길을 통과한 적이 있다. 신년 연휴(당시는 3일간 휴무) 첫날은 서울에서 지내고 남은 이틀을 이용하여 아내와 아들 둘, 모두 4명이 가족여행을 한 적이 있다. 내장산 입구에서 1박을 하고 백양사를 거쳐 해남 땅끝마을(갈두리)에 갔다가 상경하기로 한 것이다. 내장산 구경을 하고 여관에서 잠자리에 들 때 내리기 시작한 눈이 밤새 그치지 않다가 아침에서야 멈.. 2008. 11. 21.
완주 위봉사, 추줄산 산허리에 자리 잡은 비구니 사찰 완주 위봉사 추줄산 산허리에 자리 잡은 비구니 사찰 글·사진 남상학 완주 송광사에서 나와 진안의 운일암․반일암으로 가기 위해 종남산을 넘는 고갯길은 오후의 햇빛을 받은 주변 산들이 오색의 향연을 베푸는 듯했다. 이곳 단풍이 유명한 것을 아는 사람들이 승용차와 택시를 대절하여 이곳 산등성이 고갯길에 주차시켜 놓고 만추의 가을 정취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탄성을 지르며 고갯길을 넘어서니 조그마한 분지 마을이 보이고, 이 마을 주변 역시 노란 은행잎이 울려 더욱 황홀하다. 속도를 늦추고 달리는 차창으로 위봉사라는 사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예정에 없었으나 이곳 정취를 더 맛보고 싶은 마음에 마치 보물이나 발견한 듯 위봉사를 찾았다. 위봉사는 소양면 대흥리 추줄산 마루턱, 위봉산성 안에 자리하고 있다. 돌담.. 2008. 11. 19.
완주(完州) 송광사, ‘한국의 아름다운 길’ 끝에서 만나는 천년 고찰 완주(完州) 송광사 ‘한국의 아름다운 길’ 끝에서 만나는 천년고찰 글·사진 남상학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리 송광사 입구에서부터 소양천변 좌우로 벚꽃길이 장관을 이루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에 선정되었다. 송광사라면 누구나 전남 순천시 송광사를 생각하기 쉽지만 전북 완주에도 송광사가 있어 순천 송광사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전북 전주에서 완주군 송광사를 찾아가는 길은 2km의 짧은 구간이지만 건교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곳으로 선정될 만큼 유명하다.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에서 해월리에 이르는 지방도 741번 도로에는 40년생 벚나무가 2km구간에 걸쳐 빼곡히 늘어서 있어 매년 4월이면 입구에서부터 은빛 물결 출렁이는 환상의 벚꽃터널이 된다. 이곳은 경남 하.. 2008. 11. 19.
사랑시[50] : 행복 - 유치환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끝] 행복 - 유치환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 2008. 11. 19.
사랑시[49] : 낙화, 첫사랑 - 김선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49] 낙화, 첫사랑 - 김선우 * 일러스트=클로이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 2008. 11. 19.
사랑시[48] : 제부도 - 이재무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48] 제부도 - 이재무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 2008.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