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보름달 / 김동리
보름달 - 김동리(金東里) 새벽달보다는 초승달이 나에게는 한결 친할 수 있다. 개나리, 복숭아, 살구꽃, 벚꽃들이 어우러질 무렵의 초승달이나 으스름달이란, 그 연연하고 맑은 봄밤의 혼령(魂靈)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소식(蘇軾)의 ‘봄 저녁 한 시각은 천 냥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늘(春宵一刻値千金 花有淸香月有陰)’이라고 한 시구(詩句) 그대로다. 어느 것이 달빛인지 어느 것이 꽃빛인지 분간할 수도 없이 서로 어리고 서려 있는 봄밤의 정취란 참으로 흘러가는 생명의 한스러움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단들 초승달로 보름달을 겨룰 수 있으랴. 그것은 안 되리라. 마침 어우러져 피어 있는 개나리, 복숭아, 벚꽃들이 아니라면, 그 연한 빛깔과 맑은 향기가 아니라면, 그 보드라운 숨결 같은..
2008.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