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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12

연 2 / 김영랑 연 2 - 김영랑 좀평나무 높은 가지 끝에 얽힌 다아 해진 흰 실낱을 남은 몰라도 보름 전에 산을 넘어 멀리 가 버린 내 연의 한 알 남긴 설움의 첫 씨. 태어난 뒤 처음 높이 띄운 보람 맛본 보람 안 끊어졌다면 그럴 수 없지. 찬바람 쐬며 콧물 흘리며 그 겨우내 그 실낱 치어다보러 다녔으리. 내 인생이란 그때부터 벌써 시든 상싶어 철든 어른을 뽐내다가도 그 실낱같은 병의 실마리 마음 어느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어 얼씬거리면 아이고! 모르지. 불다 자는 바람 타다 버린 불똥 아! 인생도 겨레도 다아 멀어지더구나. - 《영랑 시선》(193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연날리기와 유년의 꿈 꾸기를 대응시켜 날아가 버린 ‘연’에 빗대어 인생의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연’은 화자는 .. 2020. 5. 1.
북 / 김영랑 북 -김영랑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 2020. 4. 30.
거문고 / 김영랑 거문고 - 김영랑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디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饗宴)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 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 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 《조광》(193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김영랑의 작품 중에서 현실 인식이 비교적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소리를 마음껏 내면서 울지도 못한 채 벽에 기대 선 거문고를 통해,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자유를 빼앗긴 상태로 살아가는 화자의 답답함과 비애 어린.. 2020. 4. 30.
독(毒)을 차고 / 김영랑 독(毒)을 차고 - 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 《문장》(1939) 수록 ◎시어.. 2020. 4. 29.
오월(五月) / 김영랑 오월(五月) -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 2020. 4. 29.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출처 : 다음카페 'hellootrade'>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도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시문.. 2020. 2. 15.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링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래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추석을 몇 일 앞둔 어느 날 누.. 2020. 2. 14.
내 마음 아실 이 / 김영랑 내 마음 아실 이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볼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 《시문학》 3호(1931. 6)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순수한 서정의 세계와 언어적 세련미를 추구했던 영랑의 시 세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여성을 화자로 설정하여 ‘내 마음을 알아줄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남도 특유의 섬세한 감각적 시어를 바탕으로 그려내.. 2020. 2. 14.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시문학》2호 (1930.6) 수록 ▲이해와 감상 우리 민족의 정한을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진 영랑의 시 세계는 동양적 은일(隱逸)의 시관과 한시, 특히 고산 윤선도의 시조 등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자연에 대한 음풍농월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면서 동시에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 앞에서 승복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일제 치하의 억압적 신민지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자연에 자신의 감정.. 2020. 2. 14.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金永郞)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3호(1934.4) 하냥 : 한결같이, 늘. 우옵내다 : ‘우옵나이다’의 준말, 혹은 ‘우옵니다’의 전라도 방언.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순수시인 김영랑의 대표작으로 유미적, 낭만적, 탐미적 성격을 띤 순수시이다.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2020. 2. 14.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 2020. 2. 7.
김영랑(金永郞) 생가에서 만나는 '찬란한 슬픔' 강진 김영랑 생가에서 만나는 ‘찬란한 슬픔'의 봄 - 남도에 피어난 순수 서정의 세계 - 글·사진 남상학 유홍준의 - 남도답사 1번지 강진· 해남 편에 소개되어 널리 알려진 김영랑 생가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가려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장성을 지나 광산 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빠져나간다. 나가자마자 만나게 되는 1번 국도에서 좌회전하여 곧바로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 13번 국도로 우회전하여 나주 방향으로 간다. 13번 국도를 달리다가 다시 22번 국도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하여 나주 방향의 22번 국도로 간다. 22번 국도를 따라 나주까지 간 후 나주에서 영암으로 빠지는 13번 국도로 들어가야 한다. 이 13번 국도를 따라 영암을 .. 2006.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