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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by 혜강(惠江) 2020. 2. 14.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시문학2(1930.6) 수록

 

 

▲이해와 감상

 

 

  우리 민족의 정한을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진 영랑의 시 세계는 동양적 은일(隱逸)의 시관과 한시, 특히 고산 윤선도의 시조 등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자연에 대한 음풍농월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면서 동시에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 앞에서 승복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일제 치하의 억압적 신민지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맑게 투영한 탁월한 서정시를 쓴 이 시인은 추상적 관념을 거부하고 자연물에 대한 순정한 심정을 투사함으로써, 고요한 내면을 지순한 언어로 표상한 점이 <돌담에 삭이는 햇발>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 시는 지상의 세계에서 천상의 세계, 하늘로 표현된 순수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는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시어와 감각적 표현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 시의 내용과 형식은 매우 단순하다. 4행씩 두 개의 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의 각 연 제1, 2행은 모두 ‘~같이, 마지막 행은 ‘~고 싶다로 끝난다. 얼핏 보기에 화자의 동경과 소망은 지나치게 소박하지만, 직유를 통해 간절한 소망을 되풀이 된다. 이 시에서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는 소망은 역설적으로 화자가 발붙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불행한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불행한 이 땅의 현실 속에서 그가 지닌 그늘진 마음은 밝고 평화로운 세계를 동경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러한 세계에 대한 지향이 햇발’, ‘샘물’, ‘물결같은 어휘에 나타나 있다. 이 또한 그의 삶이 그늘진 것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시어들는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주고 울림이 좋은 모음이나 ’, ‘’, ‘과 같은 받침을 가진 유성음이며 새악시’, ‘살포시’, ‘보드레한등의 음악성을 고려한 시어들이 3음보 율격을 타고 운율을 형성한다.

 

  햇빛이 비치는 돌담, 풀 아래의 맑은 샘터와 같은 자연 속, 즉 찬란한 봄날의 정경 속에서 시인의 심미적 탐구 자세가 매우 정감 있게 묘사되고 있다. 시를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봄으로써 태어난 고운 시상과 시어의 조탁(彫琢), 탁월한 표현 기교 등 감정을 거르고 걸러서 도달한 순수 시정의 극치를 보여 주는 김영랑의 대표작의 하나이다. 여기서는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일체가 씻기어 나가고 오직 자연의 서정만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시어 하나하나가 섬세미묘하게 조탁(彫琢)되어 기묘한 뉘앙스를 지니고 반짝인다. ‘새악시새색시의 방언이지만, ‘색시에다 음운 를 첨가한 형태이고, ‘부끄럼은 리듬을 살리기 위하여 부끄러움에서 를 생략한 표현이다. 시의 가슴시정으로 가득 찬 가슴 속이며, ‘실비단 하늘가는 실로 짠 비단처럼 고운 하늘이다. 김영랑은 이와 같이 언어의 예술성과 음악성을 미감(美感)으로 높여 놓고 있다.

 

  또한, 김영랑의 시는 자신이 겪은 체험의 내용을 극도로 단순화시킬 뿐더러, 그것을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김영랑의 시 세계는 한마디로 내 마음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은 그가 외부 세계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다기보다는 그것을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내면화하는 데 주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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