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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떠나가는 배 / 박용철

by 혜강(惠江) 2020. 2. 14.

 

 

 

 

 

떠나가는 배

 

 

                                       - 박용철(朴龍喆)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압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 시문학창간호(1930.3)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인이 스물여섯 살 때인 19303월에 김영랑 시인과 함께 발간한 시문학창간호에 발표한 시이다. 젊은이가 암울한 일제 강점하의 현실을 눈물로만 보낼 수 없다는 강변(强辯)을 담은 것으로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서글픈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순수문학을 이끈 시문학파는 김영랑,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이다. 옥죄인 현실 속에서 젊은이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갈등이 오죽했을까. 젊은 피가 철철 흐르던 젊은 날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조국의 운명. 백성의 절규는 더욱 결연할 수밖에. 어디론가 떠날 수밖에 없는 유랑민의 처지라면 그 비애와 비장함은 클 수밖에.

  용아 박용철은 시문학파이지만 김영랑, 정지용에 비해 서정성이 강하고 사상성과 민족의식을 작품 밑바닥에 깔았던 시인이었다.

 

  1연에서 일제 강점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그로 인해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노래하고 있으며, 2연에서는 떠나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과 차마 떠날 수 없다는 감성적 행동 사이에서 겪는 고뇌와 갈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3연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로 인식하는 시적 화자가 자신의 처지를 항구를 '떠나가는 배'에 비유하여 괴로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훌쩍, 떠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 가는 마음인들이라는 시구에 비장함이 함축돼 있다. “돌아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희살짓는다라는 뜻은 짓궂게 일을 훼방 놓는다는 것. ‘헤살짓는다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그렇게 앞 대일 언덕도 없이 떠나야만 한다. 타의에 의해.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여정을 의미한다. 그렇게, 훼방의 바람에 밀려 망명가는 백성. 조국을 떠나는 우리는 모두 떠나가는 배. 4연은 1연을 반복함으로써 의미의 강조를 꾀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표면적으로는 '나두야 가련다.'고 하며 미래 지향적 태도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갈등과 고뇌가 깔려 있다. 몇 번씩이나 자신에게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며 강변하지만, 그 내면의 의지는 극복되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안개같이 물 어린 눈'을 글썽이는 인간적 나약함을 보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시적 화자의 모습을 통하여 일제의 수탈을 피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당대 유랑인들의 비애와 슬픔을, 한숨과 눈물로써 세월을 보내야 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고뇌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작자 박용철(朴龍喆, 1903~1938)

 

 호는 용아(龍兒). 1904621일 전남 광(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생. 광주보통학교 졸업 후 배재고보를 거쳐 일본의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를 졸업했다.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과, 연희전문 등에서 잠시 수학하기도 했다

 

 1930년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을 창간하여 시 떠나가는 배, 싸늘한 이마, 비 내리는 밤, 밤 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1931시문학에 이어 문예월간, 1934문학을 잇달아 발간하여, 당시 계급문학의 이데올로기와 모더니즘의 경박한 기교에 반발하며 문학의 순수성 추구를 표방했다. 그러나 그의 시는 같은 시문학동인인 정지용이나 김영랑의 시를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1938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에 발표된 글 <시적 변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널리 읽혀지는 그의 대표적인 평론으로서 그의 시작이론(詩作理論)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후 그는 시 창작보다는 번역에 주력했으며, 평론가로도 활약했다.


  실러의 시 <헥토르의 이별>, 하이네의 시 <내 눈물에서는> 등을 시문학에 번역해 실었으며, 해외문학파와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서 <인형의 집>, <바보>, <베니스의 상인> 등의 희곡도 번역한 바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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