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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by 혜강(惠江) 2020. 2. 14.

 

 

<사진 : 전남 강진의 영랑생가에 핀 모란>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金永郞)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문학> 3(1934.4)

 

<시어 풀이>

하냥 : 한결같이, .
우옵내다 : ‘우옵나이다의 준말, 혹은 우옵니다의 전라도 방언.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순수시인 김영랑의 대표작으로 유미적, 낭만적, 탐미적 성격을 띤 순수시이다.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결국 미적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귀결된다. 시인은 봄을 기대하는 마음과 봄을 보내는 서러움을 모란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기다리는 정서잃어버린 설움을 대응시키고 모란으로 상징되는 소망의 실현에 대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작품은  봄을 기다림(1~2) 봄의 상실과 슬픔(3~10) 봄을 기다림(11~12)’이라는 순환 구조를 보이고 있다. 모란이 피는 봄을 기다리다 모란이 피면 기뻐하고, 모란이 지면 절망에 빠지고, 그러면서 또 모란이 피는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것은 꽃이 지는 것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때가 되면 재생하는 것이고, 이러한 과정이 곧 삶 자체라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시의 중심 소재인 모란은 화자에게 아름다움이자 삶의 보람이며 간절히 소망하는 대상이다. 화자가 참고 기다리고 또 우는 것도 모두 모란이 피고 지는 까닭에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에게 은 모란이 피는 기쁜 시간이지만 모란이 지기 때문에 슬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화자는 모란이 피어 있는 잠깐의 시간을 위해 삼백예순 날의 기다림과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일 년이라는 시간을 9행에서는 한 해’, 10행에서는 삼백예순 날로 표현하고 있는데, ‘한 해에는 모란이 진 후 상실감 때문에 남은 나날들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심리가 드러나며, ‘삼백예순 날에는 모란이 다시 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다고 느끼는 화자의 심리가 드러나 있다.

 

 이러한 화자의 태도는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축약되어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모란을 보는 기쁨과 지는 슬픔의 동시적 표현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또한 11~12행에서 1~2행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간절한 소망과 달성의 기쁨, 기쁨의 소멸과 좌절, 그리고 다시 간절한 소망, 이런 반복과 순환의 과정이 바로 삶 자체라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다.


  한편, 이 시는 언어적 감각과 문학의 순수성을 중요시한 1930년대 시문학파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시의 음악성과 시어의 세련된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모란으로 상징되는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겠다는 점에서 유미주의적 태도가 드러난다.

 

 

작자 김영랑(永郞, 1903~1950)

 

 1915년 강진 보통 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하여 홍사용·박종화 등의 선배와 정지용·이태준 등의 후배를 만나면서 문학에 관한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고 동급 반에 화백 이승만(李承萬)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 데 직접·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하였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그의 본격적인 시작 활동은 박용철·정지용·이하윤(異河潤) 등과 시문학 동인을 결성하여 1930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6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문학》 《여성》 《문장》 《조광》 《인문평론》 《백민등에 연달아 시와 역시(譯詩) 및 수필·평문(評文) 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의 세계는 전기와 후기로 크게 구분된다. 초기 시는 1935년 박용철에 의하여 발간된 영랑시집초판에 수록한 시편들이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인생 태도에서 역정(逆情회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 비애 의식은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져 정감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요컨대, 그의 초기치는 같은 시문학 동인인 정지용 시의 감각적 기교와 더불어 그 시대 한국 순수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1940년을 전후한 민족 항일 게 말기에 발표된 <거문고> <()을 차고> <망각(忘却)> <묘비명(墓碑銘)> 등 일련의 후기 시에서는 그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의 의식이 나타나 있다.

 

 광복 이후에는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면서 각종 단체에서 활동,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의욕을 보여 새 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의욕을 담은 시편들이 주류를 이뤘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하다가, 9·28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영랑시집외에, 1949년 자선(自選)으로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된 영랑시선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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