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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1790

(수필) 지조론(志操論) - 변절자를 위하여 / 조지훈 지조론(志操論) ― 변절자(變節者)를 위하여 조지훈(趙芝薰)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 확고한 집념)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엄숙한 차림새)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자는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와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2007. 6. 8.
(논설문) 기미독립선언문(원문 및 번역문) 기미독립선언문(원문) 선언서(宣言書)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 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 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 자존)의 政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半萬年(반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발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 2007. 6. 8.
(수필) 글을 쓴다는 것 / 김태길 글을 쓴다는 것 김태길(金泰吉)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整理)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姿勢)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 무언(有言無言)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約束)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充實)하게 실천(實踐)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整頓)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方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反省)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想念)을 어떤 형식으로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 자신(自己自身)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自畵像)이다. .. 2007. 6. 8.
(수필) 매화찬(梅花讚) / 김진섭 매화찬(梅花讚) 김진섭 나는 매화를 볼 때마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감정에 붙들리고야 마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으니, 왜냐하면, 첫째로 그것은 추위를 타지 않고 구태여 한풍(寒風)을 택해서 피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것은 그럼으로써 초지상적(超地上的)인, 비현세적인 인상을 내 마음 속에 던져 주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혹은 눈 가운데 완전히 동화된 매화를 보고, 혹은 찬 달 아래 처연(悽然)히 조응된 매화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매화가 사군자의 필두(筆頭)로 꼽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겠지만, 적설(積雪)과 한월(寒月)을 대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에라야만 고요히 피는 이 꽃의 한없이 장엄하고 숭고한 기세에는, 친화(親和)한 동감(同感)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굴복감을 우리는 품지 않을 수 없는 것.. 2007. 6. 8.
(수필) 얼굴 / 안병욱 얼굴 - 안 병 욱(安秉煜) 사람은 저마다 정다운 얼굴을 갖고 있다. 착하고 품위 있는 얼굴의 소유자도 있고 흉하고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이도 있다. 우리는 자기의 얼굴을 선택하는 자유는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님한테서 선물로 받은 얼굴이다. 제주나 체질과 마찬가지로 운명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누구나 맑고 아름다운 얼굴을 갖기를 원한다. 추하고 못생긴 얼굴을 바라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자서전적 작품을 읽어보면 젊었을 때 자기의 코가 넓적하고 보기 흉한 것을 무척 비관하고 염세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젊었을 때에는 특히 자기 얼굴의 미추에 대해서 유별한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젊은 여자일수록 더하다. 얼굴의 근본 바탕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운명적으로.. 2007. 6. 8.
(수필) 고독에의 향수 / 안병욱 고독에의 향수 -안병욱(安秉煜) 인간은 세 개의 눈을 갖는다. 첫째는 밖으로 향하는 눈이요, 둘째는 위로 향하는 눈이요, 셋째는 안으로 향하는 눈이다. 밖으로 향하는 눈은 자연과 객관적 대상의 세계로 향한다. 위로 향하는 눈은 신과 종교적 신앙의 세계로 향한다. 안으로 향하는 눈은 자아와 내면적 세계로 향한다. 청년의 사색과 관심의 특색은 내향성과 내면성이 있다. 그는 눈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고 남에게서 자기에게로 돌린다. 청년은 주로 자아와 내면적 세계로 향한다. 그것은 자기 발견, 자기 탐구, 자기 성찰, 자기 응시의 눈이다. 내가 나의 내적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눈이다. 사색에는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색하기 위해서 주위의 접촉에서 격리되어 조용한 장소를 구한다. 더구나 자기 성찰에는 그러.. 2007. 6. 8.
(수필) 행복(幸福)의 메타포 / 안병욱 행복(幸福)의 메타포 - 안병욱(安秉煜) [1] 앉은뱅이꽃의 노래 괴테의 시(詩) 가운데 「않은뱅이꽃의 노래」라는 시가 있다. 어느 날, 들에 핀 한 떨기의 조그만 앉은뱅이꽃이 양의 젖을 짜는 순진 무구한 시골 처녀의 발에 짓밟혀서 시들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앉은뱅이꽃은 조금도 그것을 서러워하지 않는다. 추잡하고 못된 사내의 손에 무참히 꺾이우지 않고 밝고 깨끗한 처녀에게 밟혔기 때문에 꽃으로 태어났던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의 상징을 좋아한다. 들에 핀 조그만 꽃 한 송이에도 꽃으로서의 보람, 생명으로 태어났던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람 있는 생(生)을 원한다. 누구나 보람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보람 있는 일생을 마치고 싶어한다. 우리 인생의 희열.. 2007. 6. 8.
(수필)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위암(葦庵) 장지연(張志淵)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 2007. 6. 8.
(수필) 권태 / 이상 권태(倦怠) - 이상(李箱) 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아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십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대싸리나무, 오늘도 보는 김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려쪼인다. 아침이나 저녁.. 2007. 6. 7.
(수필) 생활인(生活人)의 철학(哲學) / 김진섭 생활인(生活人)의 철학(哲學) - 청천(聽川) 김진섭(金晋燮) 철학을 철학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결코 무리한 일은 아니니, 왜냐 하면, 그만큼 철학은 오늘날 그 본래의 사명――사람에게 인생의 의의와 인생의 지식을 교시(敎示)하려 하는 의도를 거의 방기(放棄)하여 버렸고, 철학자는 속세와 절연(絶緣)하고, 관외(管外)에 은둔(隱遁)하여 고일(高逸)한 고독경(孤獨境)에서 오로지 자기의 담론(談論)에만 경청(傾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철학과 철학자가 생활의 지각(知覺)을 온전히 상실하여 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부단히 인생의 예지(叡智)를 추구하는 현대 중국의 '양식(良識)의 철학자' 임어당(林語堂)이 .. 2007. 6. 7.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시나크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시나크 (Anton Schnack) / 김진섭 옮김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人跡)은 끊어져 거의 일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 그래서, 벽은 헐어서 흙이 떨어지고, 어느 문설주의 삭은 나무 위에 거의 판독(判讀)하기 어려운 문자를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될 때. 그 곳에 씌었으되,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너의 소행(所行)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不眠)의 밤을 가져오게 했는가……." 대체 나의.. 2007. 6. 7.
(수필) 페이터의 산문 / 이양하 페이터의 산문 - 이양하(李敭河) 만일 나의 애독하는 서적을 제한하여 이삼권 내지 사오 권만을 들라면, 나는 그 중의 하나로 옛날 로마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들기를 주저하지 아니하겠다. 혹은 설움으로 혹은 분노로, 혹은 욕정으로 마음이 뒤흔들리거나, 또는 모든 일이 뜻같이 아니하여, 세상이 귀찮고, 아름다운 동무의 이야기까지 번거롭게 들릴 때 나는 흔히 이 견인주의자 황제를 생각하고, 어떤 때는 직접 조용히 그의 명상록을 펴 본다. 그리하면, 그것은 대강의 경우에 있어,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회복해 주고, 당면한 고통과 침울을 많이 완화해 주고, 진무해 준다. 이러한 위안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모르거니와, 그것은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내 마음에 달.. 2007. 6. 7.
(수필) 은근과 끈기 / 조윤제 은근과 끈기 - 조윤제(趙潤濟) 한국 문학과 한국 사람 생활의 특질(特質)이란 어떤 것인가? 오랜 역사의 전통에서 살아 온 한국 사람의 생활에 특질이 없을 리 없고, 또 그를 표현한 한국 문학에 특질이 없을 수 없다. 한국 예술(藝術)을 흔히들 선(線)의 예술이라 하는데, 기와집 추녀 끝을 보나, 버선의 콧 등을 보나, 분명히 선으로 이루어진 극치(極致)다. 또, 미인(美人)을 그려서 한 말에 '반달 같은 미인'이란 말이 있으니, 이도 또한 선과 선의 묘미(妙味)일 뿐 아니라, 장구 소리가 가늘게 또 길게 끄는 것도 일종의 선의 예술일 시 분명하다. 그런데, 반달은 아직 충만(充滿)하지 않은 데 여백이 있고, 장구 소리에는 여운(餘韻)이 있다. 이 여백과 여운은 그 본체(本體)의 미완성(未完成)을 말함일.. 2007. 6. 7.
(수필) 면학(勉學)의 서(書) / 양주동 면학(勉學)의 서(書) - 양주동(梁柱東) 독서(讀書)의 즐거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東西) 전배(前輩)들의 무수(無數)한 언급(言及)이 있으니, 다시 무엇을 덧붙이랴. 좀 과장(課長)하여 말한다면, 그야말로 맹자(孟子)의 인생 삼락(人生三樂)에 무름지기 '독서(讀書), 면학(勉學)'의 제 4일락(第四一樂)을 추가(追加)할 것이다. 진부(陳腐)한 인문(引文)이나 만인(萬人) 주지(周知)의 평범(平凡)한 일화(逸話) 따위는 일체 그만두고, 단적(端的)으로 나의 실감(實感) 하나를 피력(披瀝)하기로 하자. 열 살 전후 때에 논어(論語)를 처음 보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운운(云云)이 대성현(大聖賢)의 글의 모두(冒頭)로 너무나 평범한 데 놀랐다. "배우고 .. 2007. 6. 7.
(수필) 산정무한(山情無限) / 정비석 산정무한(山情無限) - 금강기행(金剛紀行) - 정비석(鄭飛石)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해선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몸이 지닌 기쁨이 하도 컸던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던 영봉(靈峯)들을 대면(對面)하려고 새댁 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준봉(峻峯)은 상기 깊은 구름 속에서 용이(容易)하게 자태를 엿보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까운 데의 전나무, 잣나무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모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밋밋하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한 야산(野山)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귀공자와 같이 기품(.. 2007. 6. 7.
(수필) 신록예찬(新綠禮讚) / 이양하 신록예찬(新綠禮讚) - 이양하(李敭河)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 2007. 6. 7.
(수필) 나무 / 이양하(李敭河) 나무 - 이양하(李敭河)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滿足)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處地)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 2007. 6. 7.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 /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李孝石)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뜰의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 새 날아 떨어져서, 또 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調練)ㅎ지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제일 귀찮은 것이 담쟁이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굴뚝의 붉은 빛만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거들떠 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 2007. 6. 7.
(수필) 청춘 예찬 / 민태원 청춘예찬(靑春禮讚) 민태원(閔泰瑗, 1894~1935)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얼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 내는 것이 따뜻한 .. 2007. 6. 7.
(수필) 장미 / 피천득 장 미 - 피천득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 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C의 하.. 2007. 6. 7.
(수필) 수필 / 피천득 수필 - 피천득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를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 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빛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 2007. 6. 7.
이해인 수녀의 추모사 - 피천득 선생을 그리워하며 이해인 수녀의 추모사 - 피천득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 * 29일 오전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금아(琴兒) 피천득 교수의 영결식이 엄수된 가운데 시인 이해인 수녀가 조시를 읽고 있다. 존재 자체로 시와 수필이 되시고 산호가 되고 진주가 되신 선생님, 생전에도 뵙고 나서 .. 2007. 5. 30.
작품 "인연"으로 유명한 피천득, 세상과 <인연(因緣)>을 끊다. &lt;수필&gt; 인연(因緣) 피천득(皮千得)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하게 된 것은, 주수녀님과 김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 2007. 5. 27.
<버지니아참사 추모시> 이 부끄러운 슬픔을 딛고/이해인 수녀 * 버지니아 참사 추모시 이 부끄러운 슬픔을 딛고 - 이해인 수녀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하염없이 한숨만 쉬는 4월입니다 이 부끄러운 슬픔 속에 우리는 지금 어떻게 울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한국의 아들이 쏜 총탄에 맞아 무참히 희생당한 가족들을 부르.. 2007. 4. 23.
80년대 팝 속에 영근 사랑의 하모니,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 영화 * 80년대 팝 속에 영근 사랑의 하모니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usic and Lyrics) 글 남상학 장르: 멜로/ 애정/ 로맨스/ 코미디 / 휴 그랜트·드루 배리모어 주연 월요일 친구들과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다. 12시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인근 영화관에서 로맨틱 코미디「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을 감상했다. 꽃샘추위가 세찬 바람의 영향으로 완전히 가시지 않아 날씨는 다소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이 음악을 소재로 한 코믹한 영화가 주는 경쾌함이 우리를 한결 밝고 명랑하게 해주었다. 이 영화는의 휴 그랜트와 의 드류 베리모어를 커플로 내세운 로맨틱 코믹 드라마다. 출연진으로는, 로맨틱 코메디 장르의 이상적 커플이라고 할 수 있는 휴 그랜트와 드류 .. 2007. 3. 12.
현대과학이 밝혀낸 무병장수 7가지 비결 현대과학이 밝혀낸 무병장수 7가지 비결 - 100세 청년 7가지 비결 현대과학이 밝혀낸 장수비결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100년을 살 수 있을까? 유사 이래 수많은 장수비법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17세기 유럽에선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수은을 장수의 만병통치약으로 믿고 장기 복용하기도 했다. 요즘도 갖가지 생약이나 자연에서 찾아낸 신비의 영약들이 수백만 원씩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으로 입증된 장수 방법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적게 먹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가지며, 배우자와 함께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 등 대부분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현대과학이 밝혀낸 장수의 비결 7가지를 소개한다. 1. 소식(小食)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확실한 장수 방법이다. 지난 70여 년간 물고기, 파리, 쥐,.. 2007. 2. 7.
사상 최대 규모의 시화전, 그림과 붓으로 읊었노라. 그림과 붓으로 읊었노라, 한국시 100년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 100년 현대시 이정표 세우자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 박영진 서예, 노재순 그림. 사상 최대 규모의 시화전이다. 시인 550명의 시에 화가.서예가 380명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7~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1~4전시실에서 열리는.. 2007. 2. 6.
[스크랩] 오규원/저 여자, 그 여자, 한 잎의 여자 저 여자 오 규 원 좁은 난장의 길을 오가며 한 시간씩이나 곳곳을 기웃거리는 저 여자 월남치마를 입고 빨간 스웨터를 걸치고 한 손에 손지갑을 들고 한 손으로 아이들의 내복을 하나하나 들었다 놓았다 하며 이마에 땀을 흘리는 저 여자 시금치 한 단을 달랑 들고 그냥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2007. 2. 5.
<영화> 코믹 스릴러 ‘스쿠프’, 로맨틱한 만남 뒤에 숨겨진 비밀 * 영화 코믹스릴러 “스쿠프(Scoop)” 로맨틱한 만남 뒤에 숨겨진 비밀 * 원제 : 스쿠프(Scoop) * 감독 : 우디 앨런 * 주연 : 우디 앨런, 스칼렛 요한슨, 휴 잭맨 * 개봉일 : 2007-02-01 * 감상 : 2월 1일 / 대한극장(좋은벗님네와 함께) 런던에서 휴가를 즐기던 미국인 기자 지망생 산드라는 마술사 시드니의 공연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다. 마술박스 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 얼마 전 죽은 유명 기자 조 스트롬벨의 영혼과 마주치게 되는데…. 저승을 향하던 배 안에서 당대 최고의 특종기자 조 스트롬벨은 중요한 정보 하나를 얻는다. 내로라하는 귀족집안의 도련님 피터가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타로 카드 연쇄 살인’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사실. 마지막 특종을 놓칠 수 없었던 스트롬벨은 미.. 2007. 2. 2.
(시)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 남상학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 T.D의 감격 - 남상학 말로는 안 되네 은밀한 곳 어디선가 발원하여 침묵을 뚫고 들려오는 그윽한 묵시(默示)의 소리 어느 새 마음은 비워지고 이 맑고 깊은 산하에서 다시 태어나는 눈뜸의 기적을, 경이(驚異)로운 신생의 감격을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말로는 안 되네 벅찬 감격 안으로 흐르고 넘쳐 작은 가슴 흥건히 적시고 일시에 나를 휩싸고 도는 엄청난 사태 형언할 길 없이 달아오르는 뜨거운 격정(激情)의 소용돌이를 말로는 다할 수 없네. 차마, 말문 막히는 은총에의 감사를 어찌할까 눈물로 갈고닦은 보석(寶石) 가슴에 안고 그 찬란한 광채(光彩)의 눈부심으로 사랑의 등불 높이 치켜든 어둠 밝힐 일꾼들, 그 신비스런 체험을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EWTD #21 영성훈련에서 받.. 2007.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