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련1790 (수필) 고인(古人)과의 대화 / 이병주 고인(古人)과의 대화 이 병 주(李丙疇) 고인(古人)과의 대화(對話)를 하며 생각에 잠긴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 문향(聞香)의 동안이 얼마나 소담스러운가는 저 국보(國寶)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像)’을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짐작이 갈 것이다. 나는 고서(古書)와 고화(古畵)를 통해 고인과 더불어 대화하면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 손때로 결은 먹 너머에 서린 생각의 보금자리 속에 고이 깃들이고 싶어서다. 사실, 해묵은 서화(書畵)에 담긴 사연을 더듬는다는 그 마련부터가 대단히 즐겁고 값진 일이니, 비록 서화에 손방인 나라 할지라도 적쟎은 반기가 끼쳐짐에서다. 이런 뜻에서 지난 달은 정말 푸짐한 한 달이었다. 성북동(城北洞) 간송 박물관(澗松博物館)에서 단원(檀園)을 보며 꿈을.. 2008. 11. 23. (수필) 돌의 미학(美學) / 조지훈 돌의 미학(美學) 조지훈 돌의 맛─그것도 낙목한천(落木寒天)의 이끼 마른 수석(瘦石)의 묘경(妙境)을 모르고서는 동양의 진수를 얻었달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의 마당 귀에 작은 바위를 옮겨다 놓고 물을 주어 이끼를 앉히는 거라든다, 흰 화선지 위에 붓을 들어 아주 생략되고 추상된 기골이 늠연(凜然)한 한 덩어리의 물체를 그려 놓고 이름하여 석수도(石壽圖)라고 바라보고 좋아하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흐뭇해진다. 무미한 속에서 최상의 미를 맛보고, 적연부동(寂然不動)한 가운데서 뇌성벽력(雷聲霹靂)을 듣기도 하고, 눈 감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마음이 모두 이 돌의 미학에 통해 있기 때문이다. 동양화, 더구나 수묵화의 정신은 애초에 사실이 아니었다. 파초 잎새 위에 백설을 듬뿍 실어놓기도 하고, 10리 둘레의.. 2008. 11. 23. (수필) 설 / 전숙희 설 전숙희 설이 가까와 오면, 어머니는 가족들의 새 옷을 준비하고 정초 음식 차리기를 서두르셨다. 가으내 다듬이질을 해서 곱게 매만진 명주(明紬)로 안을 받쳐 아버님의 옷을 지으시고, 색깔 고운 인조견(人造絹)을 떠다가는 우리들의 설빔을 지으셨다. 우리는 그 옆에서, 마름질하다 남은 헝겊 조각을 얻어 가지는 것이 큰 기쁨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살림에 지친 어머니는 그래도 밤 늦게까지 가는 바늘에 명주실을 꿰어 한 땀 한 땀 새 옷을 지으셨다. 우리는 눈을 비벼 가며 들여다 보다가 잠이 들었다. 착한 아기 잠 잘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잠든 아기는 어머니가 꿰매 주신 바지를 입고 산줄기를 타며 고함도 지를 것이다. 우리는 설빔을 입고 널 뛰는 꿈도.. 2008. 11. 23. (수필) 헐려 짓는 광화문 / 설의식 헐려 짓는 광화문(光化門) 설의식(薛義植)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은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청사 까닭으로 헐리고 정책 덕택으로 다시 짓게 된다. 원래 광화문은 물건이다.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며,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꾸물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의식 없는 물건이요, 말 못하는 물건이라, 헐고 부수고 끌고 옮기고 하되, 반항도 회피(回避)도 기뻐도 설워도 아니한다. 다만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 잊어할 뿐이다. 오 백년동안 풍우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그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할 뿐이다. 석공(石工)의 망치가 네 가슴을 두드려도 너는 알음[知.. 2008. 11. 23. (수필) 주부송(主婦頌) / 김진섭 주부송(主婦頌) - 김진섭 한말로 주부(主婦)라고는 해도,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 종류의 형태로 꾸민, 말하자면 다모다채(多貌多彩)한 여인상을 안전(眼前)에 방불시킬 수 있겠으나, 이 주부라는 말이 가진 음향으로서 우리가 곧 연상하기 쉬운 것은 무어라 해도 백설 같이 흰 행주치마를 가는 허리에 맵시도 좋게 두른 여자가 아닐까 한다. 그러한 자태의 주부가 특히 대청마루 위를 사뿐사뿐 거닌다든가, 또는 길에서도 찬거리를 사 들고 가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실로 행주치마를 입은 건전한 주부의 생활미를 한없이 찬탄하고 사랑하며 또 존경하는 바다. '먹는 자(者) 그것이 사람이다.' 하고 일찍이 갈파(喝破)한 것은 철학자 루우드비히 안드레아스 포이에르바하였다. 영양(榮養)이 인간의 정력과 품위를 결정하는 표.. 2008. 11. 22. (수필) 그믐달 / 나도향 그믐달 나도향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븐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승달은 마치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쫒겨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들어 하는 .. 2008. 11. 22. (수필) 딸깍발이 / 이희승 딸깍발이 이희승 '딸깍발이'란 것은 '남산(南山)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別號)가 생겼느냐 하면, 남산골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쳐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 요새 청년들은 아마 그런 광경을 못 구경하였을 것이니, 좀 상상하기에 곤란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 시대에 일인들이 '게다'를 끌고 '콘크리트' 길바닥을 걸어 다니던 꼴을 기억하고 있다면 딸깍발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까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산골샌님이 마른 날 나막신 소리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얘깃거리가 될 것도 없다. 그 소리와 아울러 그 모양이 퍽 초라하고 궁상(窮狀)이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인생으로서 한 고비가 겨워.. 2008. 11. 22. 떨어진 낙엽마다 시(詩)가 되고 노래가 된다 [포토에세이] 가을빛 떨어진 낙엽마다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가을빛이 온 산을 물들여가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수채화물감을 풀어 놓은 듯 가을산이 가을빛으로 충만하다. 가을빛은 화사하지만 동시에 쓸쓸하다. 그래서 가을빛은 비장하다. 낙엽이 떨어진다. 떨어지니까 낙엽이다. 오는 계절을 준비하는 마음, 그래야 내년 봄에 또다시 희망의 새싹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도 충만하던 생명의 기운, 때가 되면 그 힘찬 기운들을 막고 막은 흔적들이 가을빛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 가을빛 하룻밤 사이에 물들어 버린듯하다. 오는 계절을 마다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옷을 벗어버린다. 차곡차곡 쌓아둠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벗음.. 2008. 11. 21. 사랑시[50] : 행복 - 유치환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끝] 행복 - 유치환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 2008. 11. 19. 사랑시[49] : 낙화, 첫사랑 - 김선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49] 낙화, 첫사랑 - 김선우 * 일러스트=클로이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 2008. 11. 19. 사랑시[48] : 제부도 - 이재무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48] 제부도 - 이재무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 2008. 11. 19. 사랑시[47] : 날랜 사랑 - 고재종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47] 날랜 사랑 - 고재종 ▲ 일러스트=클로이 장마 걷힌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푸른 햇발 튀는구나 오.. 2008. 11. 15. 사랑시[46] :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46]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 일러스트=이상진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 2008. 11. 15. 사랑시[45] : 저녁의 연인들 - 황학주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45] 저녁의 연인들 - 황학주 ▲ 일러스트=클로니 침대처럼 사실은 마음이란 너무 작아서 뒤척이기만 하지 여태도 제 마음 한번 멀리 벗어나지 못했으니 나만이 당신에게 다녀오곤 하던 밤이 가장 컸습니다 이제 찾아오는 모든 저녁의 애인들이 인적 드문 길을 한동안 .. 2008. 11. 13. 사랑시[44] : 백년(百年) - 문태준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44] 백년(百年) - 문태준 ▲ 일러스트=이상진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 2008. 11. 13. 사랑시[43] :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 박성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43]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 박성우 ▲ 일러스트=클로이 뒤척이는 밤, 돌아눕다가 우는 소릴 들었다 처음엔 그냥 귓밥 구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누군가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다 부질없는 일이야, 잘래잘래 고개 저을 때마다 고추씨 같은.. 2008. 11. 13. 사랑시[42] : 사랑 - 박형준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42] 사랑 - 박형준 ▲ 일러스트=이상진 오리떼가 헤엄치고 있다. 그녀의 맨발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홍조가 도는 그녀의 맨발, 실뱀이 호수를 건너듯 간질여 주고 싶다. 날개를 접고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떼. 맷돌보다 무겁게 가라앉는 저녁 해. 우리는 풀밭에 앉아있.. 2008. 11. 10. 사랑시[41] : 농담 - 이문재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41] 농 담 - 이 문 재 ▲ 일러스트=클로이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 2008. 11. 8. 사랑시[40]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4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 일러스트=이상진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추한 세상을 뒤로 하고 나타샤, 함께 산골로.. 2008. 11. 7. 사랑시[39] : 마치…처럼 - 김민정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39] 마치…처럼 - 김민정 ▲ 일러스트=클로이 내가 주저앉은 그 자리에 새끼고양이가 잠들어 있다는 거 물든다는 거 얼룩이라는 거 빨래엔 피존도 소용이 없다는 거 흐릿해도 살짝, 피라는 거 곧 죽어도 빨간 수성사인펜 뚜껑이 열려 있었다는 거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얼.. 2008. 11. 6. 사랑시[38] :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 박라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38]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 박라연 * 일러스트=이상진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일기를 쓴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평강공주의 꽃밭 색색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흩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 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이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우리는… 새벽녘 우리 낮은 창문가엔 달빛이 언 채로 걸려 있거나 별 두서넛이 다투어 빛나고 있었다 전등의 촉수를 더 낮추어도 좋았을 우리의 사랑방에서 꽃씨 봉지랑 청색 도포랑 한 땀 한 땀 땀흘려 깁고 있지만 우리 사랑 살아서 앞마당 대추나무에 뜨겁게 열리지만 장안.. 2008. 11. 5. 사랑시[37] : 마른 물고기처럼 - 나희덕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37] 마른 물고기처럼 - 나희덕 ▲ 일러스트=클로이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 2008. 11. 4. 사랑시[36] : 서귀포 - 이홍섭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6] 서귀포 - 이홍섭 ▲ 일러스트=이상진 울지 마세요 돌아갈 곳이 있겠지요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당신, 머리채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는 당신 섬 속에 숨은 당신 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 울지 마세.. 2008. 11. 4. 사랑시[35] : 바람 부는 날 - 김종해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5] 바람 부는 날 - 김종해 ▲ 일러스트=클로이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 2008. 11. 1. 사랑시[34] : 어느 사랑의 기록 - 남진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4] 어느 사랑의 기록 - 남진우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하고 싶을 때 내 몸엔 가시가 돋아난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은빛 가시가 돋아나 나를 찌르고 내가 껴안는 사람을 찌른다 가시 돋친 혀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핥고 가시 돋친 손으로 부드럽게 가슴을 쓰다듬는.. 2008. 10. 31. 사랑시[33]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 용 택 * 일러스트=이상진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이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 2008. 10. 31. 사랑시[32] : 거미 - 김수영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2] 거미 - 김수영 ▲ 일러스트=이상진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 2008. 10. 29. 사랑시[31] : 사랑의 역사 - 이병률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31] 사랑의 역사 - 이병률 ▲ 일러스트=클로이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혔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상처'에 아픈 나, 그래도 심장은 또 뛰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국문과 교수 여행을 하다 보면 '사고 다발 지역'이라는 팻말을 볼 때가 있다. 길에도 사.. 2008. 10. 29. 사랑시[30] : 찔레 - 이근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0] 찔레 - 이근배 ▲ 일러스트=이상진 창호지 문에 달 비치듯 환히 비친다 네 속살꺼정 검은 머리칼 두 눈 꼭두서니 물든 두 뺨 지금도 보인다 낱낱이 보인다 사랑 눈 하나 못 뜨고 헛되이 흘려버린 불혹 거짓으로만 산 이 부끄러움 네게 던지마 피 걸레에 싸서 희디흰 .. 2008. 10. 27. 사랑시[29] : 사랑 사랑 내 사랑 - 오탁번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29] 사랑 사랑 내 사랑 - 오탁번 ▲ 일러스트=클로이 논배미마다 익어가는 벼이삭이 암놈 등에 업힌 숫메뚜기의 겹눈 속에 아롱진다 배추밭 찾아가던 배추흰나비가 박넝쿨에 살포시 앉아 저녁답에 피어날 박꽃을 흉내낸다 눈썰미 좋은 사랑이여 나도 메뚜기가 되어 그대 .. 2008. 10. 25. 이전 1 ··· 50 51 52 53 54 55 56 ···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