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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8

광장 / 김광균 광장 - 김광균 비인 방에 호올로 대낮에 체경(體鏡)을 대하여 앉다. 슬픈 도시엔 일몰이 오고 시계점 지붕 위에 청동 비둘기 바람이 부는 날은 구구 울었다 늘어선 고층 위에 서걱이는 갈대밭 열없는 표목(標木) 되어 조으는 가등(街燈) 소리도 없이 모색(暮色)에 젖어 엷은 베옷에 바람이 차다 마음 한구석에 벌레가 운다 황혼을 쫓아 네거리에 달음질치다 모자도 없이 광장에 서다 - 《와사등》(1939) 수록 ◎시어 풀이 *체경(體鏡) : 온몸이 비치는 큰 거울. 몸거울. *서걱이는 : 무엇이 스치거나 밟히는 소리가 잇따라 나는 *열없는 : 어설프고 짜임새가 없는. *표목(標木) : 푯말. *가등(街燈) : ‘가로등(街路燈)’의 준말. *모색(暮色) : 날이 저물어 가는 무렵의 어스레한 빛. ▲이해와 감상 이 .. 2020. 4. 19.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푸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세로판지(紙)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 《인문평론》(1940) 수록 ◎시어 풀이 *포화(砲火) : 총포를 쏠 때 일어나는 불. *도룬시 : 폴란드의 도시 이름. *.. 2020. 4. 19.
추일 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추일 서정(秋日抒情) 김 광 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 《인문평론》(1940) 포화(砲火) : 총포를 쏠 때 일어나는 불. 일광(日光) : 햇빛. 근골(筋骨) .. 2020. 2. 25.
데생 / 김광균 데생 -김광균 1 향료를 뿌린 듯 곱단한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라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조선일보》(1939) 데생 : 소묘(素描), 주로 선에 의하여 어떤 이미지를 그려 내는 기술. 또는 그런 작품. 곱단한 : 곱다란 고가선(高架線) : 높이 건너질러 가설하여 고압 전류를 송전하는 전선.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데생’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화자는 노을이 지는 황혼의 풍경을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데생처럼 그려내고 있다. 화자는 ‘전신주-구름-들길’로 시선을 이동하면서 노을이 지는 황혼의 외로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 2020. 2. 25.
외인촌(外人村) / 김광균 외인촌(外人村) - 김 광 균 하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 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 2020. 2. 24.
와사등(瓦斯燈) / 김광균 와사등(瓦斯燈) - 김 광 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 2020. 2. 24.
설야(雪夜) / 김광균 설야(雪夜)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 2020. 2. 23.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일러스트 잠산 추일서정(秋日抒情)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2020.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