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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외인촌(外人村) / 김광균

by 혜강(惠江) 2020. 2. 24.

 

 

 

 

외인촌(外人村)

   

    - 김 광 균

 

하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 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 조선중앙일보(1935)

 

 

<시어 풀이>

모색(暮色) : 날이 저물어 갈 무렵의 희미한 빛,
산협촌(山峽村) :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
역등(驛燈) : 역마차의 등불
화원지(花園地) : 꽃밭. 꽃 등의 식물 재배지

가느란 : 가느다란
성교당(聖敎堂) : 종교 단체의 신자들이 모이는 곳.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외국인이 사는 마을(외인촌)의 풍경을 시각적, 회화적 이미지로 풍경을 통하여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를 표현한 서정시이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하게 하는 이 시는 주지적, 감각적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고요하면서도 은근한 정감이 서려 있어 애상적인 느낌을 준다.

 시의 배경은 '하이얀 모색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의 고독한 그림'이다. 모두 6연으로 이루어진 시는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그 그림은 연마다 그 나름의 독립된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1연을 보자. 외인촌이 자리 잡은 산협(산골)에 어스름하게 저녁 햇살이 피어올라 고독감을 느끼게 한다. 그 그림 속으로 파란 등불을 달고 역마차가 사라져 간다. 그리고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전신주 위엔 구름 한 조각이 붉게 물들어 있다. ‘잠기어 가고라는 표현에 아쉬움과 서운함이 느껴지고, ‘우두커니서 있는 전신주의 모습 또한 한없는 동경과 그리움에 젖어 있는 고독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야말로 고독과 우수에 잠긴 외인촌의 모습이다.

 고독해 보이는 외인촌의 풍경은 2연으로 이어진다. 작은 집들과 돌다리 아래의 시냇물이 등장한다.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는 밤이 찾아오고 있다. 그런데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의 표현은 묻히인과 연결되어 산협촌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적막감을 표현하고 있다. 어둠 속에 몰락하는 산협촌에는 물방울 굴리는 소리뿐 적막감이 흐를 뿐이다.

 3연은 또 다른 그림이다. 지금까지 산협촌의 저녁 풍경에서 밤 풍경으로 옮겨져 꽃밭의 공허한 밤 풍경이 그려진다. 꽃밭에 안개 자욱한것은 꽃밭의 상황이 앞을 잘 가릴 수 없이 불투명하여 방황 감각을 잃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소녀들이 앉았던 벤치에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라는 공감각적 표현으로 공허감을 한층 드러내고 있다.

  4연은 외인 묘지의 밤 풍경이다. 묘지 주변의 수풀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다. ‘죽음의 이미지가 시의 분위기를 한층 어둡게 한다. 그 어둠 속에 밤새도록 내리는 가느다란 별빛은 산협촌의 밤을 우수와 애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마지막 두 연은 우수에 싸인 산협촌의 아침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공백한 하늘’, ‘여윈 손길’, ‘퇴색한 성교당의 표현으로 보아 아침 역시 산협촌의 분위기는 여전히 우울하고 애상에 젖어 있다. 마지막 등장하는 푸른 종소리에서 밝음의 이미지로 약동하는 생명력을 암시하지만, 전반적인 외인촌의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미흡하다.

  특히 마지막 연의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는 내용 면으로 보면 굳이 따로 연을 구분할 필요가 없으나 한 연으로 독립시킨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아마도 각 연의 나열식 장면에 통일된 이미지를 부여하는 의도일 것이며, 더구나 종소리의 청각적 이미지와 분수처럼’ ‘푸른의 시각적 이미지가 어우러져 공감각적 심상을 이루어 외인촌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김광균 金光均 [1914~1993]

  경기 개성 출생. 송도상고 졸업. 중앙일보에 시 가는 누님(1926)을 발표한 뒤 동아일보에 시 (1929) 야경차(夜警車)(1930) 등을 발표했으며, 시인부락(1936) 동인, 자오선(子午線)(1937) 동인으로 활동했다. T.E., E.파운드, T.S.엘리엇 등 영국 주지주의 시운동을 도입 소개한 김기림(金起林)의 이론과 시작에 영향을 받고 시는 회화(繪畵)라는 모더니즘의 시론을 실천했다.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共感覺的)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으며, 이미지의 공간적인 조형(造形)을 시도한 점 등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시집으로 와사등(瓦斯燈)(1939) 기항지(寄港地)(1947)가 있다. 6 ·25전쟁 후에는 실업계에 투신, 문단과는 거의 인연을 끊었으며, 2 집 이후 10여 년 만에 문단 고별 시집 황혼가(黃昏歌)(1969)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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