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블로그 '느티나무' 켑처>
비의 image
- 장 만 영
병든 하늘이 찬 비를 뿌려……
장미 가지 부러지고
가슴에 그리던
아름다운 무지개마저 사라졌다.
나의 '소년'은 어디로 갔느뇨, 비애를 지닌 채로
이 오늘 밤은
창을 치는 빗소리가
나의 동해(童骸)를 넣은 검은 관에
못을 박는 쇠망치 소리로
그렇게 자꾸 들린다……
마음아, 너는 상복을 입고
쓸쓸히, 진정 쓸쓸히 누워 있을
그 어느 바닷가의 무덤이나 찾아가렴
- 《조광》 25호(1940.2)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느끼는 ‘비’와 ‘빗소리’의 이미지는 어둡고 우울하고 절망적인 색조로 표현되었다. 장만영의 또 다른 시 ‘비’에서 “비는 새파아란 잔디를 밟으며 온다.”처럼 맑고 선명한 이미지였으나, 이 작품에서의 ‘비’는 상실, 절망, 허무의 이미지로 나타나 있다.
1연은 사랑도, 희망도 사라진 폐허와 절망적 상황을 나타낸다. ‘병든 하늘’과 ‘찬비’는 ‘장미’, ‘무지개’와 대립 되는 상징어를 사용하여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이 사랑과 희망을 앗아갔다는 것이다.
2연에서는 순수한 사랑, 희망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소년’으로 상정하여 소년이 슬픔과 절망을 안고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노라고 노래한다. 소년의 행방을 묻는 형식으로 표현한 것은 슬픔과 절망을 강조하면서, 사랑과 희망 세계에 대한 동경이 스며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3연의 ‘오늘 밤은’이란 말로 현재의 처지를 강조하고 나서 정신적 불안과 공포가 극에 달하여 죽음에 처해 있는 습이 그려져 있다. ’창을 치는 빗소리‘가 ’관에 못을 박는 쇠망치 소리로’ 들린다는 표현은 희망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상황이다. 창에 비가 치는 것과 관에 못을 박는 모습의 대비도 절망과 초조와 공포의 극을 보여 주며, 어린아이를 뜻하는 ‘동해’는 앞 연의 소년과 연결되는 것으로, “동해를 넣은 검은 관에 못을 박는 쇠망치 소리”는 ‘사랑’, ‘희망’의 ‘영원히 상실된 죽음의 비유로 해석할 수 있다.
4연에는 3연에 이어 상실과 죽음의 극단적인 상황, 즉 무덤의 참배를 묘사한다. 사랑과 희망들을 관에 못 박아 장사지냈으니 이제는 상복을 입고 자신의 꿈과 희망과 사랑이 누워있는 그 어느 바닷가의 무덤이나 찾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 감정의 저편에는 희망에 대한 동경이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시에서 보이는 절망적 상황은 개인적인 정서일 수도 있으나 제작된 시기로 볼 때,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이 절망감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적 자아의 이러한 극단적 정서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기인한 정신적 불안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장만영 (張萬榮, 1914~1975)
황해도 연백 출생. 1932년 도쿄 유학 중 김억의 추천으로 《동광》에 시 〈봄 노래〉가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모더니즘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시를 발표했으나, 당시의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이 도시적·이국적 서정을 노래하고 있는데 반해 그는 농촌과 자연을 소재로 동심의 세계를 즐겨 다룬 점이 특징적이다.
1937년에 펴낸 첫 시집 《양(羊)》 이후 시집 《축제》(1939) 《유년송(幼年訟)》(1948) 등에 실린 시들은 이러한 동심의 세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들이다. 〈아직도 거문고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가을 아침 풍경〉, 〈달·포도·잎사귀〉 등이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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