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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설야(雪夜) / 김광균

by 혜강(惠江) 2020. 2. 23.





설야(雪夜)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追憶)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조선일보(1938.1)

 

<시어 풀이>

호롱불 : 호롱(석유등의 석유를 담는 그릇)에 켠 불

여위어 가다빛이나 소리 따위가 점점 작아지거나 어렴풋해지다

추회(追悔) : 지나간 일이나 사람을 생각하여 그리워함. 지나간 잘못을 뉘우침.
차단한 : 차디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눈을 매개로 하여 과거의 서글픈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서정시로, 눈이 내리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930년대 모더니즘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여러 가지 심상(시각적, 청각적, 공감각적)을 통해 눈 내리는 밤의 추억과 애상을 노래하고 있다.

 

  제재가 되는 눈()그리운 소식’, ‘서글픈 옛 자취’, ‘잃어진 추억의 조각’, ‘차단한 의상'으로 비유되어 있다. ''은 시적 화자에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서글픈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잃어버린 과거의 추억 속의 여인을 떠올리게 한다.


  1연은 화자는 한밤에 홀로 서서 그리운 소식처럼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소리 없이내리는 눈의 이미지는 고요하다. 그런 시간은 그리움이 간절해지는 시간인데 '머언 곳‘ ’흩날리느뇨라는 표현으로 볼 때 옛적의 그리운 추억은 희미하게 떠오른다. '''머언'으로 음질을 늘인 것도 더욱 멀리 느껴지게 하는 효과를 주며 ’~느뇨는 작품의 애성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2연은 내리는 눈을 보며 서글픈 추억을 떠올린다. 화자에게는 눈이 '서글픈 옛 자취'로 보이는 것이다.처마 끝에 호롱불이 여위어 가며라는 표현은 시간적 경과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여위어 가며에서 보듯, 과거의 추억이 화자의 의식 속으로 어렴풋이, 혹은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을 암시한다.       


 3연은 추억에 젖어 드는 마음의 설레임을 표현하고 있는데, 화자는 하이얀 입김이 절로 가슴에 메이듯사랑의 추억 때문에 가슴 아파한다. 아픈 마음이 고조되어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드러낸다. 여기서 마음 허공은 화자의 텅 빈 마음을 시각화한 표현인데, '등불을 켜고'는 텅 빔 마음에 떠오른 옛 추억을 회상하려는 태도를 의미하며, 상념에 젖기 위해 깊은 밤 홀로 뜰에 나간다는 것이다.    


 4연은 마음에 등불을 켜고 뜰에 나가보니, 눈 내리는 모습이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보인다. 눈이 내리는 시각적 심상을 청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공감각 표현이다. 이때의 '머언 곳'은 옛 추억을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해 보고 싶은 화자의 심리적 표현이며 동시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는 추억 속의 대상이 여인임을 분명히 알려준다.  얼핏 보면 은밀하며 관능적인 설렘을 주지만 이 시의 분위기로 볼 때 부정(不淨)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환상적인 여인의 신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진다. 


  5연에서 화자가 내리는 눈을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라 생각하며. 지난날을 후회하며 회한(悔恨)에 젖는다. 이미 지난 추억 속의 여인이 되었으니 어이하랴? 그래서 6연에서 눈 속에 어른거리는 여인은  화자에게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차단된 의상'의 여인으로 보일 뿐이다.  화자는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단절감을 느끼며, '내려 내려서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눈 내리는 뜰에서  주체하지 못하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에 화자는 뜰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 추억을  '그리움> 서글픔>후회(추회)> 슬픔"의 단계로 끌고 나가면서 눈 오는 밤의 추억과 애상을 노래하고 있다.  


 
작가 김광균(金光均,1914~1993)

 

시인, 개성 출생. 중앙일보에 시 <가는 누님>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인부락》 《자오선동인. 온건하고 차분한 회화적 심상으로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를 표현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썼다.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으며, 이미지의 공적인 조형(造形)을 시도한 점 등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시집으로 와사등(1939), 기항지(1947), 황혼가(1957) 등이 있다.

 

 김광균 시인의 시적 경향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김광균 시인은 김기림, 정지용과 더불어 1930년대 모더니즘 시를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시인이다. 그는 특히 김기림이 지적했듯이, '소리조차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지고 회화적인 시를 즐겨 쓴 이미지즘 계열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도시적 소재를 바탕으로 공감각적 이미지나 강한 색채감, 이미지의 공간적 조형 등의 기법을 시에 차용하였으며, 특히 사물의 한계를 넘어 관념이나 심리의 추상적 차원마저 시각화시켰다. 그의 작품 경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으며, 둘째 이미지의 공간적인 조형을 시도했으며, 셋째 강한 색채감으로 감각도 높은 정서를 형상화하였고, 넷째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여 사물은 물론 관념이나 심리 등의 추상적인 것을 감각적으로 그려 내려고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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