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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와사등(瓦斯燈) / 김광균

by 혜강(惠江) 2020. 2. 24.




와사등(瓦斯燈)

   

- 김 광 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구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
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조선일보 (1936)

 

 

<시어 풀이>

와사등 : 가스(gas), 등불
차단- : 차디찬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현대 문명의 상징물이자 이국적 문화를 의미하는 와사등의 불빛을 보면서 현대 문명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를 그려낸 서정시이다. 따라서 어조가 애상적이며, 암울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193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회화적 이미지를 중시하여 시각화하여 주지적 성격을 띤다.
  시의 제목인 와사등(瓦斯燈)이란 서양에서 사용하는 가스등(gas)을 말하는데, 이국적인 도시 풍경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사용되었으며, 이 시에서는 어둠을 밝히는 시인의 내면 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1연은 현대 문명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은 현대인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와사등'의 빛은 따뜻함을 주는 불빛이 아니라 `차단-'(차디찬) 불빛이며, `비인 하늘'에 걸려 있는 쓸쓸한 불빛이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는 물질문명 속에서 방향을 잃고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갈 길을 재촉하는 신호처럼 보이지만, 실상 갈 곳이 없어 비인 하늘처럼 공허하고 슬퍼한다는 표현이다.

 2연에서는 삭막하고 무질서한 도시의 야경의 모습이다. 해가 지는 것을 `황망히 나래를 접고'로 표현한다거나, 도시의 늘어선 고층 건물을 묘지에 세워진 `묘석'으로 보고 있다거나, 찬란한 야경을 헝클어진 무성한 잡초로 표현한 것은 도시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풍경이 화자에게 슬픔과 방황, 그리고 공허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화자는 도시의 야경을 보며 사념의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문다라는 표현으로 도시의 삶이 주는 중압감으로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라는 표현은 어둠을 날개를 접는 새에 비유한 감각적 표현이다.

 3연에서는 도시적 삶을 살아가면서 현대인의 느끼는 비애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한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은 시각을 촉각으로 표현한 것은 공감각적 기법이며, 뒤에 오는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와 함께 내용상으로는 도시에 사는 화자에게 절망과 고독, 낯선 도시 문명 속에 사는 슬픔을 안겨준다. 문장을 눈물겹고나의 영탄법(咏嘆法)을 사용한 것도 비애와 절망의 감정을 강조하는 데 일조하였다.

 4연은 군중 속에서 소외된 삶에서 오는 비애감을 노래했다. ‘공허한 군중은 힘없이 돌아가는 도시인의 저녁 풍경으로 화자의 외로움과 절망감을 심화시키는 대상이다. 무기력한 자아 인식이다. 화자는 그 행렬에 끼여 무거운 비애를 질어졌다며 슬퍼한다.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다.’라는 추상적 내용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게 늘인 그림자는 고독한 자신의 자화상인 동시에 현대인의 비애를 시각화하여 화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5연은 수미상관(首尾相關)의 구성으로, 방향 감각을 잃은 현대인의 모습을 강조한다. 수미상관법은 대개 시상의 균형과 안정을 위해 사용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와사등에서는 5연은 1연과 다르게 행을 바꿔 역 대칭의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김광균이 현재의 방향 상실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생활이 계속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와사등은 자기를 잃어버린 채 그림자의 삶을 살아가는 화자의 고독한 상태를 묘사함으로써 방향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문명 생활을 고발하였다는 점에서 문명 비판적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참고 사항


모더니즘 : 현대주의 또는 근대주의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기성의 도덕과 권위를 부정하고 기계 문명과 도회적 감각,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고 추구하는 사조이다. 예술에서 모더니즘은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 등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프로문학이 퇴조하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노골적으로 대두한 1930년대에 영미(英美)의 주지주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사조로 불린다. 김기림이 시의 낭만주의를 배격하고 기술주의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소설에서는 최재서와 이상이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이다. 8·15 이후 박인환, 김경린 등 <후반기> 동인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모더니즘 경향의 작품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지적이고 시각적이다.
(2)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3) 의식적이고 기교를 추구한다.
(4)  회화적이고 기교를 추구한다.

 

작자 김광균 (金光均, 1914~1993)

  경기 개성 출생. 송도상고 졸업. 중앙일보에 시 <가는 누님>(1926)을 발표한 뒤 동아일보에 시 <>(1929) <야경차(夜警車)>(1930) 등을 발표했으며, 시인부락(1936) 동인, 자오선(子午線)(1937) 동인으로 활동했다.

 T.E., E.파운드, T.S.엘리엇 등 영국 주지주의 시운동을 도입 소개한 김기림의 이론과 시작에 영향을 받고 시는 회화(繪畵)라는 모더니즘의 시론을 실천했다.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共感覺的)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으며, 이미지의 공간적인 조형(造形)을 시도한 점 등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시집으로 와사등(瓦斯燈)(1939) 기항지(寄港地)(1947)가 있다. 6 ·25전쟁 후에는 실업계에 투신, 문단과는 거의 인연을 끊었으며, 2 시집 이후 10여 년 만에 문단 고별 시집 황혼가(黃昏歌)(1969)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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