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형도7

'시인 기형도의 집' 탐방 '시인 기형도의 집' 탐방 삶의 우수(憂愁)를 노래하다 요절한 「안개」의 시인, 기형도 글·사진 남상학 기형도문학관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그의 등단 작품인 에 나오는 표현처럼 ‘공장의 검은 굴뚝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을씨년스럽게 수시로 안개가 끼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화로 인해 옆으로 제2경인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앞으로는 왕복 3차선 ’오리로‘ 너머에 CNG 충전소가 있다. 바로 옆에는 SK주유소와 글로벌 기업인 ‘이케아(IKEA)' 매장과 KTX 광명역사 등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문학관 자리로는 기형도 작품에 나오는 풍광과는 다르더라도 그리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다소 기형도답다고나 할까? 그래서 오히려 기형도 문학관 자리로는 가장 제격(?)이라는 이.. 2021. 9. 20.
홀린 사람 / 기형도 홀린 사람 - 기형도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 2020. 4. 17.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시집 《입속의 검은 잎》(1991)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나’의 모습을 성찰함으로써 현재의 자기 삶에 대한 반성과 바람직한 삶의.. 2020. 4. 16.
엄마 걱정 / 기형도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입속의 검은 잎》(198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가슴 아팠던 유년 시절에 대한 회고와 그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작품이다. 화자는 유년 시절 빈방에 앉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던 기억을 떠올리며 외롭고 두려웠던 마음을 유사한 문장의 반복과 변조를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 2020. 4. 16.
빈집 / 기형도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 시집 《입속의 검은 잎》(198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과 공허한 마음을 노래한 시로, 사랑을 잃은 슬픔과 의미를 가졌던 모든 것과의 이별로 인해 공허해진 내면을 ‘빈집’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빈집’은 실연한 화자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사랑을 잃은 화자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이 잃은 것을 확인하는 행위이며.. 2020. 4. 16.
빈집 / 기형도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 2020. 2. 8.
사랑시[23] :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23]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 일러스트=클로이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 2008. 10. 18.